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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338화 (338/1,055)

0살부터 슈퍼스타 338화

일요일 오후.

수빈이, 은수와 실컷 놀아준 서은찬과 서준은 두 아이를 재우고 거실로 나왔다. 끙끙 앓는 소리를 낸 서은찬이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아이고. 더워라.”

아직 4월이지만 아이들과 놀아준 것 때문에 땀이 뻘뻘 날 정도로 더웠다.

“삼촌. 아이스크림 먹을래?”

“그래. 하나만 줘 봐.”

서은찬은 에어컨을 켜고 서준은 냉장고에서 아이스크림 두 개를 가지고 왔다. 찬이 삼촌 입맛은 엄마랑 똑같아 까먹으려야 까먹을 수가 없었다.

소파에 나란히 앉아 한 손에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들고 있는 삼촌과 조카의 모습이 아주 편해 보였다.

“주민등록증 만든다며?”

“응.”

팥 맛 아이스크림을 입에 문 서은찬은 자신이 주민등록증을 받았던 날을 떠올렸다.

“너무 오래돼서 기억도 안 나네. 언제 신청하러 가? 지문도 찍어야 해서 시간 좀 걸릴 텐데.”

서은찬의 물음에 초콜릿 맛 아이스크림을 입에 문 서준이 어깨를 으쓱였다.

“주말에는 주민센터 문 안 여니까 평일에 가야 하는데 평일에는 학교에 가야 하니까 시간을 잘 잡아야 해. 좀 있으면 개교기념일이거든. 그때 갈 생각이야.”

“그래? 그러고 보니 친구들은 주민등록증 있어?”

“미나는 있어. 1월생이라서 겨울방학 때 만들었대. 쌍둥이는 2월생인데 3월에 통지서 받아서 아직 신청 못 했고 지윤이는 나보다 생일이 늦긴 한데 3월생이니까 크게 차이는 안 나.”

서준의 이야기를 들으며 서은찬은 서준과 함께 놀던 꼬마 아이들을 떠올렸다.

서준을 통해 이런저런 이야기는 자주 들었지만 직접 본 건 초등학교 때가 마지막이었다. 서준은 물론이고 그 작던 아이들이 벌써 주민등록증을 만들 정도로 크다니. 남의 애는 참 빨리 큰다.

‘우리 은수는 언제쯤 크려나.’

서준의 방에서 세상 모르고 자고 있을 딸을 떠올린 서은찬이 미소를 지었다.

“그럼 친구들한테 물어보면 되겠네.”

“물어봤는데 바쁠 것 같은 시간에는 가지 말라고 하더라.”

“동사무소는 언제 안 바쁠까?”

“그러게.”

아이스크림을 다 먹은 삼촌과 조카가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쐬며 휴식을 가졌다. 조금 전까지는 높은 아이들의 목소리가 집을 들썩였는데 적막한 집 안이 너무 아늑했다.

“사진은 어떻게 할 거야?”

“동사무소 앞에 가서 찍으려고. 사진관 있던데?”

지도 앱으로 동사무소에 가는 길을 찾아보니 그 앞에 사진관이 몇 군데 있었다. 서준은 그중 아무 곳이나 들어가서 사진을 찍을 생각이었다.

“아니면 집 근처 사진관에서 찍어도 되고. 6개월 이내 사진이면 되니까.”

“으음.”

서준의 대답에 코코아엔터 사장의 눈을 데굴데굴 굴렀다.

“서준아. 사진 스튜디오에서 찍을래?”

“스튜디오?”

뜻밖의 단어에 서준이 고개를 갸웃했다.

서은찬이 눈을 빛냈다.

“주민등록증 사진은 재발급받지 않는 이상 평생 가니까 잘 나온 사진으로 만들면 좋잖아. 그리고 이번 기회에 서준이 네 프로필 사진도 찍고.”

“프로필 사진?”

“그래. 배역이 너무 굴러들어와서 찍을 필요가 없긴 했지만…… 이번 기회에 찍어보는 것도 좋지 않아?”

코코아엔터 사장, 서은찬은 솔직히 들어오다 못해 넘치는 화보 제안을 꺼내고 싶었지만 서준이 화보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모르는 상태라 일단 간단한 프로필 사진을 던져보기로 했다.

“글쎄…….”

떨떠름한 서준의 반응에 서은찬이 입을 열었다.

이서준의 외삼촌 서은찬은 서준을 꼬시는 방법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프로필 사진에서 네 색다른 매력을 알아본 감독님이나 작가님이 재미있는 대본을 보내줄 수도 있고 말이야.”

“할래.”

1초도 고민하지 않고 단번에 승낙하는 조카를 어이없는 눈빛으로 바라보던 서은찬이 여섯 살짜리 꼬마에게 말하듯 말했다.

“서준아. 처음 보는 사람이 대본 보여준다고 해도 따라가면 안 된다?”

“……안 따라가.”

조금 늦게 나온 서준의 대답에 눈을 동그랗게 뜬 서은찬이 자세를 바로잡고 앉아 서준을 바라보았다.

“너 앞에 공백은 뭐야? 당연히 안 따라간다고 해야지.”

“뭐…….”

눈알을 데굴데굴 굴리던 서준이 헤죽 웃었다.

“다호 형이랑 같이 가면 되지 않을까?”

“……안 팀장님한테 너랑 꼭 붙어 있으라고 해야겠다.”

“하하.”

기가 막힌 듯 이마를 짚는 서은찬의 모습에 서준이 웃음을 터뜨렸다.

* * *

“프로필 사진이라.”

갑작스럽게 잡힌 일정에 코코아엔터 배우 이서준 전담팀인 2팀 직원들이 모였다.

안다호 팀장이 꺼낸 이야기에 각자 생각에 잠겼다.

프로필 사진.

여러 가지 뜻이 있겠지만, 배우에게는 ‘이런 모습도 있습니다’, ‘이미지가 비슷한 배역이 있으면 꼭 불러주십시오’ 하고 연예계 관계자들에게 알리는 홍보물이나 다름없었다.

“신인 배우는 자신의 얼굴을 알릴 때 사용하고 이름 있는 배우들은 색다른 이미지를 보여주기 위해서 사용하죠.”

“근데 서준이는 알리지 않아도…….”

직원들의 시선이 사무실 한편에 쌓여 있는 대본들로 향했다. 서준이 미국에서 [생존자들]을 촬영하는 동안 그리고 촬영이 끝난 후 들어온 것들이었다.

“잘 들어오니까요.”

잘 나가는 자신의 배우에 안다호와 2팀 직원들이 뿌듯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프로필 사진보다는 화보라고 생각해야 할까요?”

프로필 사진은 배우에게 시선이 집중되어야 하기 때문에 옷이나 소품이 단순할 때가 많았다.

“배경도 단순하고요.”

“그건 좀 아쉽지 않아요? 아예 아이돌 같은 느낌도 좋지 않아요?”

“화보 쪽으로 간다면 같이 일할 곳이 많습니다.”

직원 하나가 상자 하나를 가져와 열었다. 상자 안에는 종이들이 가득했다. 구구절절이 서준이 할 콘셉트와 스튜디오의 이력에 대해 적어 놓은 화보 제안서였다.

2팀 직원들이 화보 제안서를 하나씩 꺼내 읽었다.

예전에도 읽어봤지만, 서준의 관심 밖이라 대본과 비교하면 조금 허술하게 읽은 감이 있었다. 그래서 화보 제안서가 새롭게 다가왔다.

“이 스튜디오는 유명한 아이돌은 한 번씩 다 찍었답니다. 결과물도 좋고요.”

“이쪽은 해외 촬영도 있네요.”

“서준이랑 에메랄드빛 해변이라……!”

배우 이서준의 팬이기도 한 직원들이 들떠 이야기를 나누었다.

안다호도 그런 직원들의 마음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원래 목적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일단 이번 촬영의 첫 번째 목적은 증명사진입니다.”

“……아.”

“그리고 두 번째 목적은 ‘작품’을 위한 프로필 사진이고요. 서준이가 생각하는 프로필 사진과 너무 다르면 안 될 겁니다.”

알고 있던 사실이지만 2팀 직원들은 안타까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천천히 화보 제안서를 정리해 상자 안에 넣었다.

“그래도 이번 사진 촬영으로 서준이가 재미를 느끼면 화보 촬영에도 흥미를 느낄지도 모르겠네요.”

안다호의 말에 2팀 직원들이 탄성을 내뱉었다.

“오. 그러네요.”

“어…… 사진작가가 나오는 대본들을 찾아놓을까요?”

“찍히는 쪽이니까 사진작가보다는 모델 쪽이 낫지 않습니까?”

“근데 모델이 나오는 대본들은 별로 없어서…….”

대본을 미끼로 내걸 만큼 2팀 직원들도 서준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것보다는 사진 촬영도 ‘연기’의 일종이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직원 하나의 말에 안다호는 물론이고 다른 직원들도 감탄을 내뱉었다.

“확실히 그게 더 효과가 있겠네요.”

“그러면 사진작가를 잘 골라야 할 것 같아요.”

자신이 생각하는 이미지에 모델을 맞추는 사진작가나 강박적으로 손끝부터 발끝의 움직임까지 정하는 사진작가 등. 저마다 스타일이 다른 감독들처럼 사진작가도 모델을 다루는 방법이 달랐다.

“모델에게 자유를 많이 주는 스타일이 좋겠죠?”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서준이 사진 촬영도 연기의 일종이라는 것을 느끼기 위해선 그런 스타일이 훨씬 좋을 것 같았다.

“아. 이번엔 유명한 스튜디오는 빼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네?”

“일정이 급하잖습니까. 미리내 예고 개교기념일 전까지는 증명사진을 찍어야 하니까요.”

“……아. 그렇네요.”

4월도 벌써 반이나 지났다.

인기 있는 스튜디오들은 대부분 이번 달 일정이 벌써 다 차 있을 것이었다.

서준의 이름이면 어느 스튜디오에서든 사진을 찍을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된다면 취소되는 예약이나 일정도 있을 터. 피해받는 사람이 생길 수도 있으니 그렇게 할 생각은 없었다.

그런 일들이 하나하나 쌓여 서준의 이미지가 되니까 말이다.

안다호의 말에 2팀 직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유명 스튜디오를 제외해서 조금 어렵긴 하겠지만 ‘언젠가 서준이도 사진 찍겠지’, 생각하며 모아놓은 사진작가와 스튜디오에 대한 자료들이 있었다.

물론 수박 겉핥기 정도라 후보가 정해지면 집중적으로 조사해야겠지만 말이다.

“일단 사진을 보고 한번 거르고 사진작가 스타일도 알아봅시다. 이번 달 일정이 비어 있는지도 알아보고요.”

목표가 정해지자 배우 이서준 전담팀인 2팀이 움직였다.

* * *

-내 동생이 이서준이랑 같은 나이라서 본의 아니게 이서준 일정에 대해 잘 알게 되는 것 같음ㅎㅎ

=?? 그게 무슨 소리?

=중학교 입학이나 고등학교 입학 같은 거 말이야. 한국인이면 대학 입학까지는 비슷한 경로로 자라잖아ㅋㅋ

=아아. 무슨 소리인지 알겠다. [동생=수능]이면 [이서준=수능]이라는 소리지?

=ㅇㅇㅇ 그래서 또 본의 아니게 알게 돼버렸다. 일부러 찾아본 건 아님ㅎㅎ

=뭘?

=내 동생 민증 만든다.

=……?? ……오!!

* * *

“슬슬 나오네.”

안다호의 말에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던 서준이 웃고 말았다.

“그럴 거라고 생각했어요. 프로필에 생년월일이 적혀 있으니까요.”

포털 사이트에 ‘이서준’을 치면 수많은 동명이인 중 서준의 프로필과 소속, 사진이 가장 먼저 나왔다. 서준의 하나하나가 화제가 되니 관심을 안 갖는 게 이상한 일이었다.

-우리 서준이가 벌써 민증을 만들다니……!

-이러다가 면허증도 따겠다.

-진짜 남의 애는 너무 빨리 자라는 듯.

=22 민증 만든다니까 되게 훌쩍 큰 것 같음.

그래도 기사까진 나지 않은 모양이었다.

“이것까지 기사 나면 진짜 할 일 없는 거지.”

“어. 다호 형. 하나 올라왔어요.”

“……진짜 할 일 없나 본데?”

그러면서도 안다호의 손은 기사로 향했다. 기사를 확인하고 댓글 반응을 확인한 후 휴대폰을 껐다. 이제 우후죽순 올라올지도 모르는 기사들은 2팀이 알아서 해줄 터였다.

안다호가 휴대폰을 넣을 때 타이밍 좋게 띵, 하고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문이 열렸다.

오늘 촬영할 스튜디오의 간판이 보였다.

“서준아. 들어가자.”

“네.”

* * *

[노을 스튜디오]

사진작가, 윤정원이 다리를 달달 떨어댔다. 윤정원을 도울 막내 직원도 상기된 얼굴로 연신 출입구만 바라보고 있었다.

“세상에…… 이서준을 찍다니…… 내가 이서준을 찍다니……!”

“언니. 복 나가요. 다리 떨지 마요.”

윤정원의 후배, 김상미가 잔뜩 긴장하고 있는 윤정원에게 말했다.

“여기서 더 나갈 복이 어딨어. 난 이미 올해 운은 다 썼어. 아냐. 10년 치 운을 다 쓴 게 분명해!”

“그건 그런 것 같지만…….”

윤정원의 말에 김상미는 물론이고 막내까지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정신 사나우니까 다리 떨지 마세요.”

김상미의 말에 윤정원은 덜덜 떨리고 있는 두 다리를 손으로 내리눌렀다. 그러자 이번엔 온몸이 덜덜 떨렸다. 진동하는 휴대폰이 따로 없어 김상미가 이마를 짚었다.

“근데 어떻게 이서준 배우 촬영이 우리한테 온 거예요? 저 그때 야외 촬영 있던 날이라 자세히 못 들었어요.”

배우 이서준이라면 여기저기 찍어줄 사진작가들이 많을 터였다. 슬슬 이름을 알리고 있는 노을 스튜디오도 좋은 곳이라고 자부하는 김상미였지만 객관적으로 보면 더 좋은 스튜디오들이 여기저기 있었다.

김상미의 화제 전환에 조금 진정한 듯한 윤정원이 입을 열었다.

“그날 오전 촬영이 늦게 끝나서 애들이 점심 먹느라고 내가 전화를 받았거든.”

프로필 사진을 찍으러 온 신인 배우가 찍는 사진마다 별로다, 조명이 왜 이러냐, 트집을 잡아서 최대한 맞춰주다가 겨우 찍었던 날이었다. 끝까지 투덜투덜대는 모습에 뒷목을 잡았었다.

“전화가 와서 증명사진이랑 배우 프로필 사진을 찍을 수 있냐고 물어보더라고. 쉬는 날이긴 한데 삼 일 전에 사진이 필요한 거면 얼마나 급한 건가 싶어서 그냥 나 혼자 촬영하려고 된다고 했거든.”

“하긴 좀 유명한 배우들은 일정을 넉넉히 잡으니까요.”

“그래서 신인 배우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배우 이서준이었다.

윤정원은 다시 다리를 달달 떨었다. 그 모습에 한숨을 내쉰 김상미가 쉬는 날임에도 불구하고 이서준을 보기 위해 출근한 막내에게 물었다. 반짝반짝한 눈이 평소에는 볼 수 없는 눈빛이었다.

“코코아엔터에서 옷이랑 스타일리스트는 왔어?”

“네. 대기실에서 준비하는 중이에요. 아까 슬쩍 보니까 풀 세팅 해놓던데요? 간식이랑 음료수도 가져다 놓고. 완전 프로 같았어요. 역시 할리우드 스타……!”

상기된 얼굴로 떠드는 막내를 본 김상미가 한숨을 내쉬었다.

이젠 이서준과 코코아엔터가 무엇을 하든 ‘역시 할리우드 스타!’라는 말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

그때 촬영장의 출입구가 열렸다.

반사적으로 세 사람의 고개가 출입구로 향했다.

로비에서 기다리고 있던 직원과 함께 들어오는 두 사람이 보였다.

포토그래퍼 윤정원과 김상미는 눈도 깜빡이지 않고 들어오는 소년을 보았다. 어쩐지 걸어오는 모습에서 후광이 비치는 것 같았다.

움직이는 모습 하나하나가 화보 같은 소년이 활짝 웃으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할리우드 스타, 이서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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