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337화
베어라운드의 [생존자들]은 촬영이 모두 끝나고 편집 작업이 한창이었다.
계획에 없었던 감독판 촬영 때문에 여유 시간이 더 필요한가 싶었지만, 세트장 2개의 효과 덕분인지 거의 NG 없이 촬영해 준 배우들 덕분인지 일정은 얼추 맞춰졌다.
베어라운드의 기획팀장은 오늘도 편집실에 붙어 있을 제프리 감독에게 찾아갔다.
예상대로 [생존자들]의 편집실 안에는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고 있는 제프리 감독이 보였다. 슬쩍 봐서는 감독판이 아니라 개봉판인 것 같았다.
‘감독판을 먼저 하실 줄 알았는데…….’
[생존자들]의 개봉판을 기다리고 있는 베어라운드에겐 다행인 일이었다.
방해되지 않게 조용히 서 있던 기획팀장이 잠시 모니터에서 눈을 떼고 굳은 몸을 풀기 위해 등을 뒤로 젖히는 제프리 감독에게 말을 걸었다.
“감독님. 잠시 쉬었다가 하시는 건 어떠십니까?”
“아. 그럴까요?”
익숙한 상황에 제프리 감독도 놀라지 않고 뻐근한 어깨를 돌렸다. 기획팀장이 근처 의자를 끌고 와 앉았다.
“편집은 잘 돼 가십니까?”
“네. 이렇게 재미있게 편집하는 것도 오랜만인 것 같습니다.”
“감독판 편집은 언제 하실 생각이십니까?”
“개봉판을 먼저 완성한 다음 감독판을 편집할 예정입니다. 내부 시사회 일정이 있긴 하지만 감독판은 그 이후에도 재편집할 수 있으니까요.”
기획팀장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말했다.
“감독판 음악은 새로 의뢰해야겠네요.”
그 말에 제프리 감독이 잠시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개봉판의 음악을 편곡해서 쓰는 건 어떻습니까?”
기획팀장이 눈을 데굴데굴 굴렸다.
다른 영화들의 감독판들도 개봉판의 음악을 쓰고는 하지만 [생존자들 감독판_수정7_8_최종_마무리_마무리2_최최종_끝_진짜 끝_완성본]을 읽어보면 따로 영화 음악을 만들어야 되지 않나 싶었다.
“새로 의뢰하는 편이 좋지 않겠습니까?”
“아뇨. 편곡이 좋을 것 같습니다.”
제프리 감독의 번들거리는 눈이 이제는 익숙해졌다.
새삼 사람은 이렇게 작은 계기로 바뀌나 싶다.
“알겠습니다. 그럼 음악감독님에게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음악감독님께 감독판 대본을 넘겨드릴까요?”
영화 음악 작업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는 첫 번째 방법은 시나리오를 읽고 감독의 연출 방향에 따라 음악 작업을 한 뒤 영상에 삽입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편집이 끝난 영화를 보고 감독의 의도를 참고해 음악을 만드는 것이었다.
[생존자들] 개봉판은 벌써 수정이 끝난 대본이 음악감독에게 넘어갔다.
잠시 턱을 매만지던 제프리 감독이 입을 열었다.
“감독판은 영상을 넘기도록 하죠.”
“네. 알겠습니다.”
기획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저런 사고가 터지던 촬영과는 달리 후반 작업은 순조로워 마음이 편안했다.
다시 편집에 집중하려던 제프리 감독이 아, 하고 고개를 돌려 편집실을 나가려는 기획팀장을 바라보았다.
“아. 그러고 보니 이번 주 개봉이죠?”
“네? 아. 네.”
제프리 감독의 말에 잠시 멈칫한 기획팀장이 대답했다.
이번 주에 개봉하는 영화라면 하나밖에 없었다.
“어셈블4 말씀이시죠. 네. 이번 주 토요일 개봉한답니다.”
4월 초.
마린사 히어로 영화 시즌1의 대장정을 마무리할 [어셈블4]가 개봉했다.
* * *
사람이 북적거리는 영화관 앞.
“이게 끝나네.”
어제까지도 축구부 연습 때문에 밖에서 열심히 뛰어다닌 쌍둥이 동생 박지오가 영화관을 도배한 어셈블4의 포스터를 올려다보았다. 옆에 앉은 쌍둥이 형 박지후는 영어단어를 외우는 중이었다.
“끝날 때도 됐지.”
“근데 난 서준이가 어셈블에 한 번은 나올 줄 알았어.”
“히어로가 아니라서 못 나올걸. 어셈블4에 쉐도우맨도 안 나온다던데.”
“아쉽다는 거지.”
[어셈블4] 포스터에서 눈을 뗀 지오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셈블4]가 개봉하고 2주가 흘렀다. 마린사의 영화라서 그런지 관객들은 여전히 많았다.
“우리가 처음 마린사 영화 본 게 쉐도우맨1이었지?”
지오의 말에 지후가 고개를 끄덕였다.
“서준이가 나온대서 봤지. 그게 8살 때였나, 7살 때였나.”
“쉐도우맨 2가 나올 때였지.”
개봉 당시에는 아직 나이가 어려 영화를 봐도 이해 못 할 것 같아서 못 보고 나중에 집에서 봤다.
“엉. 서준이 집에서 봤는데…….”
소꿉친구들과 서준이 집에 모여 봤다가 엉엉 울었던 기억이 있었다.
그 이후로 아이들은 마린사 영화를 챙겨보고 있었다.
“우리 왔어!”
멀리서 뛰어오는 미나 오웬과 김지윤이 보였다.
지오와 지후가 있어서 다 온 줄 알고 뛰어왔는데 서준이 보이질 않았다.
“서준이는 아직 안 왔나 봐.”
지윤이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그 모습에 지후와 미나가 작게 웃었다.
“응. 아직 안 왔어.”
“여기서 서준이라고 말해도 동명이인이라고 생각할걸.”
“그래도 혹시 모르잖아.”
아차 싶었던 지오가 눈을 데굴데굴 굴렸다. 이미 다른 사람들 귀는 하나도 신경 쓰지 않고 신나게 서준이 이야기를 했기 때문이었다.
“들렸으려나?”
“아무도 신경 안 쓰니까 쫄지 마, 바보야.”
지후의 말에 지오가 입을 삐죽였다. 오랜만에 봐도 변함없는 쌍둥이에 지윤과 미나가 키득키득 웃었다.
“지후는 영어 단어 외워?”
“응. 학원에서 시험 친다고 해서.”
“으. 진짜 싫어.”
“너도 시혁이 형 따라서 유럽 가려면 영어는 아니더라도 외국어는 배워야 할걸.”
“……그렇겠지?”
한창 유럽에서 활동 중인 축구선수, 정시혁을 떠올린 지오가 잔뜩 찌푸린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아이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서준이 보고 영어로 대화하자고 해.”
“확실히 책으로 배우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긴 해. 나도 도와줄게.”
지윤과 미나의 말에 지오가 팔짱을 끼고 고심하다 고개를 모로 꼬았다.
“……한마디도 못 할 것 같은데?”
확실히 영어로 대화하자고 하면 잠시 침묵하다가 몸짓 손짓으로 대화할 지오의 모습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근데 서준이는 잘 이해할 것 같지 않아?”
“그러게.”
지오가 개떡같이 바디랭귀지를 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을 서준의 모습을 떠올린 아이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미나도 웃으며 휴대폰을 두드렸다.
<서준아. 어디야?
>지후 : 너 빼고 다 왔음ㅎㅎ
>서준 : ;;;다들 왜 이렇게 일찍 왔어?
>서준 : 다 왔어! 조금만 기다려!
“서준이 다 왔대.”
“표는 샀지?”
“엉. 여기 뽑아놨어.”
의자에 나란히 앉아 영화 보고 뭐 하고 놀까, 이야기를 하는 사이 멀리서 눈에 띄는 사람이 보였다. 슬라임 배지가 달린 검은 모자를 푹 눌러쓴 학생1.
“어. 서준이다.”
친구들의 감이랄까.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존재감을 감춘 서준을 네 아이는 금세 발견했다.
아이들과 눈이 마주친 서준이 활짝 웃었다. 아이들의 얼굴도 밝아졌다.
“이럴 땐 되게 신기해.”
“그러게. 아무도 못 알아보네.”
모자를 푹 눌러 쓰고 있어서 얼굴을 가리고 있다고 하지만 사람들이 못 알아보는 건 볼 때마다 신기했다.
“근데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서준이는 좀 다른 사람 같긴 해.”
“그건 그래.”
“역시 이서준. 연기 진짜 잘한다니까.”
이유는 의외로 단순했다.
소꿉친구들은 슈퍼스타가 아닌 이서준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안녕!”
검은색 모자를 쓴 서준이 마지막으로 도착했다.
아주 아기 때부터 쭈욱 친구인 네 아이가 환하게 웃으며 서준을 반겼다.
* * *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금세 [어셈블4]가 시작할 시간이 되었다.
“시간 다 됐어. 영화 보러 가자.”
“점심 먹을 거지?”
“어. 근데 팝콘도 먹을 거야.”
점심도 먹을 거지만 팝콘도 놓칠 수는 없었다.
지오의 말에 다들 웃음을 터뜨리며 각자 취향에 맞는 간식을 사서 영화관 안으로 들어갔다.
어렸을 때부터 그랬던 것처럼 다른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도록 다섯 자리 중 가운데에 앉은 서준이 캐러멜 팝콘을 한 입 냠 먹으며 [어셈블4]가 시작하길 기다렸다.
“광고 길다.”
“그러게. 지후야. 나초 먹을래?”
“그래.”
“나도 하나만.”
길고 긴 영화 광고가 지나가고 드디어 스크린에 마린사의 로고가 나타났다.
[어셈블4]
마지막 이야기의 시작이었다.
* * *
“진짜 재미있었어!”
“마지막이라서 엄청 힘줬나 봐. CG 장난 아니더라.”
지윤의 말에 서준이 동의했다.
[어셈블4]는 정말 재미있었다.
[생존자들]에서의 연기를 보다가 레드본의 데이비스 가렛을 보니 새삼 신선했다. 한편으로는 [어셈블 4]에선 어떤 즉흥연기를 보여줬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그래도 생존자들처럼 후반부를 전부 바꾸진 않았겠지.’
다시 생각해도 참.
웃음만 나오는 촬영이었다.
앞으로는 그런 촬영은 다시 없을 것 같기도 했다.
“4D로 봐도 재미있을 것 같아.”
“그러게. 나중에 보러 갈까?”
서준과 아이들은 물론이고 어셈블4를 보러 온 사람들도 만족한 듯 상기된 얼굴로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거기엔 N차를 뛴 사람들도 있었다.
“점심 먹으러 가자. 친구들한테 추천받은 곳이 있어.”
“조리고 학생의 추천이라면 꼭 가봐야지!”
미나의 말에 아이들이 눈을 반짝였다.
미나의 친구가 추천한 음식점은 스테이크와 파스타를 파는 곳이었는데 영화관에서 그렇게 멀지는 않았다. 골목 안 건물의 3층에 있고 개업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아직 유명하진 않은 것 같았다.
직원의 안내로 자리에 앉은 서준과 아이들이 가게 내부를 둘러보았다. 테이블 간의 간격도 꽤 널찍한 데다가 내부도 깨끗했다.
“잘도 이런 데를 찾아냈네.”
“친구들 취미가 맛집 지도 만드는 거라서. 새로 개업하는 가게가 있으면 제일 먼저 가 보거든.”
미나의 말에 오, 하고 아이들이 감탄했다.
메뉴판을 보며 여러 가지 메뉴를 주문한 아이들이 다시 재잘재잘 이야기를 나누었다.
“시즌 2 첫 영화가 언제 나온다고 했지?”
“올해 하반기라고는 들었는데……정확한 날짜는 아직 안 나왔지.”
지후의 대답에 지오가 몸을 앞으로 숙이며 속삭이듯 말했다.
“서준이 넌 알아?”
“난 계약 끝났음. 아무것도 몰라.”
서준의 말에 아이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곧 음식이 나왔다. 따끈따끈한 스테이크와 파스타, 파릇파릇한 샐러드가 테이블 위를 가득 채웠다. 서준과 아이들은 앞 접시에 스테이크와 파스타를 가져와 먹기 시작했다.
“맛있어!”
“오. 그러게. 진짜 맛있다.”
파스타를 먹은 지윤과 스테이크를 먹은 지오가 눈을 반짝였다.
“별 세 개 반이라더니. 맛있네.”
미나의 말에 서준과 지후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게 별 세 개 반이라고?”
“그 맛집 지도 갖고 싶다. 별 몇 개가 만점이야?”
지후의 물음에 샐러드를 한 입 먹은 미나가 다섯 손가락을 쫙 폈다.
“다섯 개. 근데 다섯 개는 아직 없고 네 개 반이 한 군데 있어.”
“별 네 개 반…….”
서준이 스테이크 한 조각을 입안에 넣고 꼭꼭 씹었다. 두툼한 고기에서 나온 육즙이 입안을 가득 채웠다.
‘이게 별 세 개 반인데 별 네 개 반은 얼마나 맛있을까?’
입을 꼭 다문 채 열심히 씹으면서 눈을 반짝이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친구들을 보며 미나가 웃음을 터뜨렸다.
“알았어. 알려줄게. 근데 거긴 좀 비싸서 친구들도 두 번밖에 못 가 봤대.”
“부모님이랑 가면 되니까 괜찮아!”
“다른 곳도 괜찮으면 알려줘.”
“별 두 개도 맛있을 것 같음.”
지오의 말에 다들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만족스럽게 점심을 먹은 서준과 아이들은 근처 보드게임 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아. 나 그거 왔어.”
성공적으로 나무 하나를 빼 위에 올려놓은 서준이 말했다.
다음 차례인 지오가 심각한 얼굴로 고민했다. 다들 밥만 먹고 젠가를 하는 모양인지 가운데 놓인 젠가는 이제 뼈밖에 남지 않은 상태였다.
“그거?”
고민 중인 지오를 뺀 아이들이 고개를 갸웃했다.
서준이 활짝 웃었다.
“주민등록증 발급통지서.”
오.
아이들이 눈을 빛냈다.
이서준.
만 17세.
3월 10일생.
주민등록증을 만들 시기가 다가왔다.
* * *
와르르.
“으악!”
“좋아. 박지오 당첨.”
“벌칙은 뭐로 할까?”
“으음……인디언밥?”
“쟨 맞아도 안 아파해. 영어단어 외우기로 하자.”
“야! 박지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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