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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331화 (331/1,055)

0살부터 슈퍼스타 331화

새하얀 눈이 내렸던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연말이 가까워져 갔다.

한국은 시상식으로 들썩이고 있었다.

[MBS, 6부작 ‘봄이 돌아왔다.’ 수상 가능?]

[MBS, 새로운 수상 부문 궁리 중?]

[올해 가장 화제가 된 드라마, ‘봄이 돌아왔다’]

[새로운 배우들의 발견? 4부작 ‘내일’]

[할리우드 영화 ‘생존자들’ 촬영 중인 배우 이서준 참석 가능?]

-MBS 연기대상 기대 중ㅎㅎ

=22 올해 MBS가 드라마판을 다 싹쓸이하긴 했지.

=봄돌 다음에 방송된 드라마도 꽤 잘 나왔고.

-일단 시청자 투표 수상부문은 서준이가 싹쓸이ㅎㅎ

-MBS에서 만든다는 수상 부문. 올해로 끝날 것 같다.

=22 올해 초부터 시청률 높여준 봄돌이랑 내일 상주고 내년부터는 없어질 듯.

=근데 둘 다 상 받을 만하지. 어지간한 16부작 20부작 드라마보다 화제성 높고 시청률도 높았으니까.

-ㅋㅋ 내일도 원래라면 이 정도 언급되진 않을 텐데ㅋㅋ 봄돌이랑 같이 방송했으니까 그런 거지.

=뭐, 조금은 동의하지만. 내일도 재미있었음. 배우들도 연기 잘했고.

-근데 서준이 못 오겠지?

=촬영 스케줄이 있어서 못 올 듯. 비행 시간만 해도 열 시간이 넘으니까.

=ㅠㅠㅠ

* * *

12월 30일.

MBS 연기대상이 시작되었다. 레드카펫 위로 멋진 배우들이 하나둘 등장했다.

혹시나 서준이 깜짝 등장할까 싶어서 레드카펫의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고 있던 새싹들이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역시 서준이는 안 오나 보네요.

-서준아ㅠㅠ촬영 열심히 해ㅠㅠ

[MBS 연기대상 1부 끝!]

[신인상을 받은 배우들의 수상소감!]

[월화, 수목 시리즈 우수연기상을 받은 배우들!]

-……내일이랑 봄돌 시상 안 함?

=2부에서 줄 것 같다더라.

=하긴 화제성으로 보면 그게 나을 것 같네. 우리도 계속 보고 있고ㅎㅎ

=22서준이 상 받는 거만 보고 자려고 했더니…… MBS……!

-예상했지만 광고도 많네ㅎㅎ

아이돌의 축하공연으로 MBS 연기대상 2부가 시작되었다.

“안녕하세요. 시청자 여러분. 배우 박도훈,”

“윤혜인입니다.”

특별 MC로 나온 박도훈과 윤혜인이 웃으며 인사했다. 그리고 화면에 앉아 있던 강태영이 비쳤다. ‘봄이 돌아왔다’의 주연 배우들의 등장에 환호가 터져 나왔다.

[스페셜 드라마 부문. 우수연기상.]

4부작, 내일과 6부작 봄이 돌아왔다를 합쳐 ‘스페셜 드라마 부문’으로 묶였다.

‘내일’에서 남자 신인상이 나왔고 ‘봄이 돌아왔다’에서 정보람이 여자 신인상을 받았다. 활짝 웃는 정보람에게 모두 축하의 박수를 보냈다.

“스페셜 드라마 부문. 우수연기상.”

박도훈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유성진 역의 이서준 배우. 축하드립니다!”

폭죽이 터지고 대리 수상자로 부탁받은 이지석이 무대 위로 올랐다. 서준 대신 트로피를 받고 마이크 앞에선 이지석이 웃으며 말했다.

“상은 제가 대신 받아 전할 예정이지만 수상자 소감을 안 들어볼 수는 없죠.”

이지석의 말에 연기대상을 총괄하는 피디가 두 손을 마주 잡았다. 이 시간을 위해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점검했다.

“제발 아무 사고 없어라……!”

시청자들이 어리둥절해하는 사이 이지석이 서 있던 무대 뒤, [스페셜 드라마 부문, 우수연기상]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던 화면이 새까맣게 변했다.

[안녕하세요. 시청자 여러분. 배우 이서준입니다.]

새까맣게 변했던 화면이 밝아지고 이서준의 모습이 나타났다.

깔끔하게 머리를 넘긴 모습의 서준과 창밖으로 보이는 밝은 하늘에 시청자들이 눈을 깜빡였다.

-영상임?!

-헐. 라이브야? 녹화야?

-라이브 같은데?! LA 지금 새벽일 텐데……!

아침 햇살에 반짝이는 서준의 모습을 화면으로 보던 몇몇 새싹들은 비명을 질렀다. 송유정도 단번에 걸려온 임예나의 전화를 받고 열심히 서준의 빛나는 외모에 대해 떠들어댔다.

아침이라서 그런지 더 청량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이렇게 영상으로 뵙게 돼서 아쉽습니다. 여기는 LA고 아직 아침이에요. 그래도 일찍 일어나서 MBS 연기대상을 보고 있었습니다. 모두 수상 축하드려요.]

한쪽 귀에 이어폰을 낀 서준이 웃으며 말했다.

[6부작이라는 아주 짧은 드라마가 이렇게 화제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시청자 여러분의 관심과 사랑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출연이 너무 짧아서 상은 기대하지 않았는데 시청자 여러분 덕분에 받게 되었습니다. 정말 기쁩니다.]

서준의 진심이 영상 너머로 느껴졌다.

[하하. 감사드리고 싶은 분들이 너무 많아서 큰일이네요. 공희찬 피디님, 유청아 작가님. 좋은 작품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함께 촬영했던 스태프분들, 함께 연기했던 배우분들 모두 감사드립니다. 봄이 돌아왔다를 사랑해 주신 시청자 여러분 정말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더 멋진 연기를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화면 속 서준이 활짝 웃었다.

[배우 이서준, 베스트 커플상, 우수연기상 수상!]

[배우 이서준, 네티즌 선정, 인기상 수상!]

* * *

새해가 되고 다시 ‘생존자들’의 촬영이 시작되었다.

“안녕하세요.”

서준이 촬영장 안으로 들어갔다.

오늘따라 세트장에 평소보다 많은 스태프들이 달라붙어 있는 것 같았다. 고개를 갸웃하던 서준과 안다호가 세트장 가까이 다가갔다가 허, 감탄했다.

“오늘따라 세트장이 크네요.”

“그러게.”

오늘의 세트장은 평소와는 달랐다. 평소의 세트장이 옆으로 넓다고 한다면 오늘은 옆으로 넓고 위로 높았다. 1M 정도 높아진 세트장은 계단으로 올라가 연기해야 할 것 같았다. 둘러보니 계단도 있었다.

“카메라랑 조명도 전부 위에 있어요.”

서준의 말에 안다호의 고개가 위로 들렸다.

세트장의 높이가 높아지니, 그 위에 서 있을 배우들을 찍어야 하는 카메라는 물론이고 적당한 빛을 비추어야 하는 조명이나 배우들의 목소리를 녹음해야 하는 마이크도 평소보다 높게 설치해야 했다. 특히, 카메라는 카메라를 조작하는 촬영감독이 함께 올라가야 하기 때문에 리프트같이 생긴 기계도 보였다.

“엄청 준비했네.”

새로운 목소리에 서준이 뒤를 돌아보았다.

“아, 데이비스.”

“안녕. 준. 일찍 왔네?”

“촬영장 좋아하거든요.”

쑥스러운 듯 웃으며 말하는 서준에 데이비스 가렛도 마주 웃었다.

“안녕하세요!”

마무리 확인 작업이 한창인 세트장을 보며 오늘 촬영하는 장면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서준과 데이비스 가렛은 씩씩한 인사 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다. 목소리만으로도 누군지 알 것 같아 두 배우 모두 이미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안녕. 앤디.”

웃으며 반겨주는 서준 리와 데이비스 가렛의 모습에 앤드류 워커가 환하게 웃었다.

* * *

“레디, 액션!”

콰아아앙!!

또다시 들려오는 폭탄 소리에 욕설을 내뱉기도 전에 사람들은 바닥에 주저앉았다. 바닥의 진동이 심상치 않았다.

“……왜 여기서 소리가 들려?!”

폭발음이 다른 곳에서 들려왔다.

이미 폭탄이 터진 남쪽 상점가도, 서쪽 식당가도, 동쪽 영화관도 아니었다. 마지막 탈출구라고 여겼던 북쪽 놀이공원도 아니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

지하였다.

아래쪽에서 들려오는 폭발음에 사색이 된 사람들이 비명이 들려왔다. 바닥에서 느껴지는 진동이 심상치 않았다. 후두둑 후두둑, 천장에서 모래 같은 것이 떨어지고 바닥과 천장에 금이 생기기 시작했다.

“오, 하느님……!”

쩌억쩌억 갈라지는 틈 사이, 새하얀 타일 아래로 회색의 시멘트가 드러나자, 누군가 신을 찾았다. 지상의 건물과 달리 지하의 기둥이 부서지면 그 여파가 만만치 않을 터였다.

흔들림에 주저앉아 있던 사람들이 주춤주춤 일어났다. 가만히 앉아 있으면 안 된다는 걸 깨달은 얼굴들이었다. 사색이 된 얼굴로 주위를 살피며 탈출구를 찾았다.

지금까지의 폭발이 그저 입구를 막기 위한 폭발이었다면 이제부터의 폭발은,

“……건물이 무너질 거야……!”

붕괴를 위한 폭발이었다.

살 길이 생겼다고 안도하고 있던 사람들이 호흡이 가빠졌다.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비명이 들렸다. 레이먼드 위시에게 무어라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당장에라도 레이먼드가 발견한 길로 가자는 의견도 있었다.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사람들 사이,

웅크려 있던 이현우는 손을 들어 자신의 두 귀를 막았다.

지옥이었다.

* * *

콰아아앙!!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안 되는 충격이 다시 한번 건물을 강타했다.

남쪽, 동쪽, 서쪽 군데군데 고립되어 있던 생존자들의 비명이 건물 안을 맴돌았지만, 꽉 막힌 곳에선 들리지 않았다.

사람들이 서 있던 발밑이 갈라졌다.

심상치 않은 속도에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나려고 했지만, 그 움직임보다 바닥이 꺼지는 게 더 빨랐다.

으아아아!!

비명을 지르며 사라지는 사람들에 남아 있던 사람들이 사색이 된 얼굴로 벽에 몸을 기댔다.

하지만 벽이라고 안전하진 않았다.

폭발로 인한 흔들림에 밀린 커다란 벽 하나가 기대고 있던 사람을 그대로 짓눌렀다. 그 끔찍한 모습을 그대로 보고 있던 사람들이 비명을 질렀다.

“이안!”

신시아 린드버그가 이안을 불렀다. 잭슨 밀러도 구석에서 웅크려 있는 이현우를 주시했다.

하지만 그 이상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어느 곳의 바닥이 꺼질지 몰랐고 어느 곳의 벽이 쓰러질지 몰랐다. 불안함에 거칠어진 사람들의 숨소리는 무너지는 건물의 소리에 묻혔다.

거대한 재난에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상황을 살펴보던 레이먼드 위시가 무어라 외치려던 순간,

바닥이 꺼졌다.

그 위에 서 있던 사람들이 반응하기도 전에,

시꺼먼 어둠이 사람들을 삼켰다.

* * *

“컷, 오케이!”

제프리 감독의 외침에 세트장 아래에서 숨을 죽이고 숨어 있던 배우들이 하나둘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벽에 짓눌리는 역할을 맡은 배우가 그 아래에 준비된 틈새에서 기어 나왔다.

하나둘 ‘생환’하는 배우들의 모습에 스태프들이 킬킬 웃었다.

평소보다 높아진 세트장은 모두 이 장면을 위해 마련된 것이었다.

세트장 아래에 크로마키 색의 매트들을 깔아놓고 타이밍 좋게 바닥을 꺼지게 만들었다. 그렇게 하면 배우들이 진짜로 바닥으로 사라지는 것처럼 보일 터였다. 나머지는 CG로 처리할 예정이었다.

세트장 구멍에서 나온 바네사 올슨이 두근두근 뛰는 심장 위를 손으로 가볍게 눌렀다.

“리허설 했는데도 조금 놀랐네. 앤디 넌 괜찮아?”

“전 재미있었어요!”

바네사 올슨의 걱정에 앤드류가 씩씩하게 대답했다. 앤드류의 붉게 상기된 뺨과 반짝이는 눈이 진심을 말하는 것 같았다.

“준은?”

서준이 웃으며 말했다.

전생의 던전이 생각나는 세트장이라 그립기도 했고 재미있기도 했다. 던전을 막 만들었을 때는 이런 허접한 함정도 꽤 유용했었다. 하지만 생각해 보니 반대로 허접한 함정에 빠진 적도 많았다. 약자로서도 강자로서도 살아봤기 때문이었다.

“저도 꽤 재미있었어요.”

“……요즘 애들은 대담하네.”

고개를 절레절레 바네사 올슨에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사람들을 따라 웃고 있던 베어라운드의 기획팀장이 제프리 감독에게 속삭였다.

“이제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습니다.”

갑작스러운 기획팀장의 말에 제프리 감독이 고개를 갸웃하자 기획팀장이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데이비스 가렛 배우 말입니다. 지금까지 수정한 게 없잖습니까. 아마 감독님이 수정한 대본이 마음에 든 거겠죠. 하하. 이제 마음 놓아도 될 것 같습니다!”

“그럴까요?”

제프리 감독의 시선이 데이비스 가렛에게로 향했다.

확실히 대본을 마음대로 수정하겠다고 계약서에 써넣은 것치고는 조용하긴 했다. 조금 수정한 부분이 있긴 하지만 그다지 큰 부분을 아니었다.

“그럼요!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시고 대본대로 촬영해 주십시오!”

순조로운 촬영에 기획팀장이 만족스럽게 웃으며 단언했다.

하지만 며칠 후.

그게 너무 빠른 판단이었다는 걸 기획팀장은 깨닫고 말았다.

* * *

“조용히 못 해!”

레이먼드 위시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 고함소리에 밀란 첼런과 바네사 올슨, 앤드류 워커가 화들짝 놀라 데이비스 가렛, 아니, 레이먼드 위시를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얼굴이 잔뜩 일그러진 레이먼드 위시가 서 있었다.

그 얼굴을 본 배우들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대본과 다르다!

“오. 이런……!”

제프리 감독에게 단언하자마자 터진 사고에 기획팀장이 절규했다.

원래 시나리오의 레이먼드 위시는 냉정하면서 차분한, 그러면서도 온기가 깃든 목소리로 폐소공포증으로 괴로워하는 이현우를 달랜다. 그리고 정신을 차리게 만들어 삶의 의지를 갖게 만든다.

즉, 데이비스 가렛이 맡은 ‘레이먼드 위시’는 ‘재난물’에 나오는 전형적인 ‘영웅’이었다.

그런데 그 성격이 이 한 대사로 완전히 달라져 버렸다.

‘조용히 못 해!’

‘재난물의 영웅’이 ‘약자’에게 절대 보이면 안 되는 짜증과 분노였다.

이렇게 캐릭터의 성격이 바뀌면 앞서 촬영했던 분량은 물론이고 이후 촬영할 내용들까지 싹 바꿔야 했다.

그 모든 생각들이 한순간 벼락처럼 기획팀장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아직 컷을 외치지 않는 제프리 감독 때문에 기획팀장을 입을 틀어막고 속으로 비명을 질러야 했다.

‘방심했다. 방심했어!’

데이비스 가렛의 명성을 너무 얕봤다.

방심하지 말고 계속 주시해야 했다.

다시 대본을 수정하고 촬영 스케줄을 맞추고 세트장을 만들고 배우들을 구하고…… 야근할 생각에 기획팀장의 머릿속이 아득해졌다.

‘……근데 왜 컷을 안 외치지?’

갑작스러운 데이비스 가렛의 즉흥연기에 배우들도 깜짝 놀랐을 게 분명했다. 그 놀람에 제대로 촬영을 이어나가지도 못할 텐데 촬영장에는 제프리 로덕스 감독의 컷소리는커녕 비명 소리만 들렸다.

‘……비명 소리?’

고통이 가득한 비명 소리에 흠칫 몸을 떤 기획팀장이 천천히 고개를 들어 세트장을 바라보았다. 이미 다른 스태프들과 제프리 감독은 넋을 놓고 세트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으…… 으…… 아아아……!”

오직 단 한 사람.

갑작스러운 데이비스 가렛의 즉흥 연기에 맞춰 연기를 이어나가는 배우가 있었다.

진심으로 놀란 배우들 사이로,

‘레이먼드 위시의 신경질적인 고함소리에 더욱 상태가 나빠진’ 이현우가 있었다.

서준 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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