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살부터 슈퍼스타-330화 (330/1,055)

0살부터 슈퍼스타 330화

“안, 안녕하세요! 준!”

얼음 땡!

을 외친 것처럼 굳어있던 앤드류 워커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약간의 주저함과 많은 설렘이 담긴 앤드류 워커의 인사에 서준이 웃으며 옆자리를 툭툭 쳤다.

“여기 앉을래?”

서준의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뜬 앤드류 워커가 활짝 웃으며 얼른 달려가 서준의 옆자리에 앉았다.

“일찍 왔네?”

“그게…… 오늘 촬영이 너무 기대돼서 조금 일찍 일어났어요.”

부끄러운 듯 헤헤 웃으며 대답하는 앤드류의 모습에 서준도 따라 웃다가 어딘가를 바라보았다.

오늘 앤드류 워커와 함께 온 앤드류의 어머니가 조금 떨어진 곳에서 웃으며 손가락으로 5라는 숫자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오전 5시에 일어난 모양이었다.

‘……조금이 아닌데?’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바른 생활 청소년인 서준도 그렇게 일찍 일어나진 않는다.

“그럼 피곤하겠다.”

“아니에요! 오는 길에 푹 자서 괜찮아요! 잘할 수 있어요! 촬영! 열심히 할게요! 대본도 다 외웠어요!”

피곤해 보인다고 촬영을 미룰까 봐 재잘재잘 말하는 앤드류에 서준이 다시 웃고 말았다. 조막만 한 주먹을 꽉 쥐고 온몸으로 촬영할 수 있다고 말하는 모습이 너무 귀여웠다.

“앤디는 이번 크리스마스에 뭐 해?”

[생존자들]의 촬영은 크리스마스와 이브를 포함해 이틀, 그리고 새해에 이틀을 쉴 예정이었다.

그사이의 찍을 장면도 그렇게 중요하거나 시간이 많이 필요한 장면은 아니었다.

서준의 물음에 가장 좋아하는 배우인 서준 리의 옆자리에 앉아 이야기를 나눈다는 생각에 신나게 다리를 달랑달랑 흔들던 앤드류가 대답했다.

“친구들이랑 크리스마스 파티하기로 했어요! 준은요?”

“나도 친구들이랑 파티할 거야.”

새해에는 엄마와 아빠가 미국으로 오기로 했다. 매일 영상통화를 하고 있지만 어쩐지 오랜만인 느낌이 들었다.

서준의 대답에 앤드류가 눈을 반짝였다.

“준의 친구들이면 에반 블록이랑 리첼 힐이요?”

앤드류의 머릿속에는 벌써 영화에서나 봤을 법한 슈퍼스타들의 파티가 떠오르고 있었다. 멋들어진 정장을 입은 준이 와인잔을 들고 있는 장면이 마치 그림처럼 생생하게 떠올랐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반짝이는 앤드류의 눈동자에 서준은 하하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어렸을 때부터 같이 놀았던 친구들이랑 모이기로 했어.”

“저 알아요! 잭 스미스 선수죠!”

앤드류의 입에서 나올 거라고는 생각도 못 한 이름에 서준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 표정에 서준 리의 빅팬, 앤드류 워커가 뿌듯한 듯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저도 봤어요! 우리랑 로키! 다큐멘터리 ‘지금 우리는’이랑 ‘바다에 있다’도요. 씨 세이브 센터에도 갔어요!”

다큐멘터리로 시작한 앤드류 워커의 이야기는 서준의 작품들로까지 이어졌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캐릭터는 그레이 바이니예요! 엄마한테 듣기로는 제가 제일 먼저 본 건 준의 ‘먹방’이라는데 그건 너무 어렸을 때라 기억이 안 나요. 그레이 바이니 다음으로 좋아하는 건 청룡님이에요. 엄마가 인터넷으로 여의주도 사줬어요! 아, 고주원도 좋아해요! 진 나트라도요! 으으. 전부 다 좋아해요!”

정말 좋아서 참을 수 없다는 마음이 뿜뿜 뿜어져 나오는 팬의 모습에 서준은 괜스레 얼굴이 붉어지는 것 같기도 했고 어깨가 으쓱거리는 것 같기도 해 그냥 웃고 말았다.

‘태영이 형이랑 잘 맞을 것 같네.’

어쩐지 한국에 있을 강태영이 떠올랐다.

앤드류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니 금세 시간이 흘렀다.

서준과 앤드류가 촬영장에 준비된 간식을 먹고 있을 때 밀란 첼런과 바네사 올슨이 도착했다. 그리고 얼마 안 가 데이비스 가렛도 촬영장에 도착했다.

“같이 연기하는 건 처음이지? 촬영하는 동안 잘 부탁해.”

“저도 잘 부탁드려요.”

데이비스 가렛의 즉흥 연기를 기대하는 서준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그런 서준 리를 보는 앤드류의 눈도 반짝 빛났다.

* * *

모든 배우가 도착하자 촬영 준비에 들어갔다.

실력 있는 특수분장팀이 배우들의 얼굴에 희미한 생채기를 만들고 어둡게 꾸몄다.

자리에 앉은 서준이 두 손을 내밀었다.

‘이현우’의 가장 큰 분장은 깨진 손톱들과 그 밑에 바짝 마른 검붉은 피였다. 슥슥 붓이 몇 번 지나가는 것만으로도 실감 나게 만들어지는 모습은 몇 번을 봐도 신기했다.

특히, 오른쪽 검지 손가락의 손톱은 빠질 듯 말듯 인조 손톱을 이용해 덜렁거리게 만들어 보는 사람마저 식겁하게 하였다.

“으으. 아플 것 같아요.”

서준의 분장을 처음 보는 앤드류 워커가 잔뜩 인상을 쓰며 말했다.

분장이라는 걸 알지만 가장 좋아하는 배우의 손이 이러니 괜스레 슬퍼졌다. 서준의 손을 보며 안절부절못하는 앤드류의 모습에 분장이 끝난 배우들이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 * *

“제발 오늘도 얌전히 넘어갑시다.”

데이비스 가렛의 촬영에 기획팀장이 기도하듯 두 손을 모았다. 이전의 촬영에서는 대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연기를 보여준 데이비스 가렛이었지만 앞으로는 어떨지 몰랐다.

“제발 야근만은……!”

걱정 많은 기획팀장과는 달리 제프리 감독은 속도 좋은지 편안한 표정으로 촬영을 준비했다. 세트장을 확인하고 스태프들과 동선을 확인했다.

“분장 끝났습니다!”

분장은 물론이고 흙먼지가 잔뜩 묻은 옷을 입은 배우들이 촬영장에 나타났다. 혈색 좋은 얼굴에 밝은 표정만 아니라면 금방이라도 재난 구역에서 탈출한 듯 후줄근한 모습이었다.

기획팀장과 제프리 감독의 눈에 서준 리의 옆에 바짝 붙어 총총총 걸어오는 앤드류 워커가 보였다. 밝은 얼굴로 이야기를 나누는 서준과 앤드류 워커의 모습에 기획팀장이 입을 열었다.

“오디션부터 그렇게 말하더니, 진짜 준의 팬인가 봅니다. 준에게 신경이 팔려서 연기를 못하지 않겠습니까?”

앤드류 워커가 서준과 함께 연기한 적이 없다 보니 그런 걱정도 들었다.

성인 배우라면 그 정도의 분별력은 있겠지만, 아직 어린 배우에게 그런 걸 기대하긴 힘들었다. 오디션 때도 고민이 되긴 했지만, 오디션을 봤던 아역 배우 중에서 연기력이 가장 뛰어나니 안 뽑을 수도 없었다.

“글쎄요. 저 같으면 좋아하는 배우에게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을 겁니다.”

제프리 감독의 눈이 마주 보며 웃고 있는 서준과 앤드류에게로 향했다.

* * *

“레디, 액션!”

정신을 잃은 이현우를 업은 잭슨 밀러는 불빛이 들어오는 길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바닥으로 떨어진 천장의 파편을 피하고 금이 간 바닥에 조심하면서 주위를 살폈다.

천장에 붙어 달랑거리는 안내판이 눈에 들어왔다.

‘여기서 가장 가까운 출입구는…….’

후우, 숨을 내쉰 잭슨 밀러가 다시 걸음을 옮겼다. 목적지는 여기서 가장 가까운 동쪽 영화관이었다.

그렇게 발걸음을 옮기던 잭슨 밀러는 모여있는 사람들을 발견했다. 피곤한 얼굴로 주저앉아 있는 사람들의 모습에 잭슨 밀러가 숨을 내쉬며 상황을 살폈다. 잭슨 밀러의 등장에도 사람들은 힐긋 쳐다보고만 말았다.

“왜 여기 모여 있는 겁니까?”

잭슨 밀러는 가장 가까이에 있던 사람에게 말을 걸었다.

상의는 갤러리아 몰의 안내 직원의 복장인데 치마가 아니라 트레이닝 바지를 입고 있는 여자였다. 여자의 옆에 남자아이가 있어서 말을 걸기가 수월했다.

신시아 린드버그는 잭슨 밀러를 한 번, 그 등에 업힌 이현우를 한 번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그 아이부터 여기 내려놓으세요. 여기서 나가려면 체력이 있어야 하니까요.”

신시아 린드버그의 말에 잭슨 밀러가 고개를 끄덕이며 발로 큰 돌멩이들을 치웠다. 신시아 린드버그도 손바닥으로 바닥을 쓸었다. 신시아의 옆에 있던 남자아이, 이안 위버도 꼼지락꼼지락거리며 도왔다.

잭슨 밀러는 깨끗해진 바닥에 이현우를 내려놓고 주저앉아 숨을 골랐다. 물을 마시고 싶었지만, 주위를 둘러보니 구하기 힘들 것 같았다. 침만 꼴깍꼴깍 삼키는 잭슨 밀러에게 신시아 린드버그가 말했다.

“남쪽 상점가에 폭탄이 터지고 곧바로 방송실이 있는 동쪽 게이트에도 폭탄이 터졌어요.”

잭슨 밀러가 숨을 들이마셨다.

그래서 처음의 안내 방송 말고는 다른 방송은 들려오지 않은 모양이었다.

“동쪽 게이트도 말입니까?”

신시아 린드버그의 시선이 이현우의 옆에 앉아 있는 아이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네. 그리고 그다음엔 서쪽 식당가에서도 폭발이 일어났대요. 남은 출입구는 북쪽 게이트뿐이에요.”

4개의 입구 중 3개가 터졌다는 말에 머리가 아파져 왔다.

“그럼 왜 북쪽으로 가지 않는 겁니까?”

“북쪽으로 향하는 길이 막혀 버려서 지금 길을 찾는 중이에요. 그나마 건물이 튼튼해서 큰 붕괴는 없으니 다행이죠.”

하지만 여기처럼 길이 막혀 오도 가도 못하게 된 무리가 쇼핑몰 내에 한둘이 아닐 터였다. 신시아 린드버그의 설명을 듣고 있는 듯 구석에 있던 남자가 투덜댔다.

“이렇게 큰 쇼핑몰에 출입구가 4개뿐이라니……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만든 거야?”

신시아 린드버그가 한숨을 내쉬었다.

“사람들이 더 오래 쇼핑몰에 머물게 하기 위해서죠.”

갤러리아 몰은 다이아몬드 모양처럼 생겼는데 출입구는 꼭짓점 한군데씩, 총 4곳뿐이었고 넓은 곳은 다른 구역들과 이어져 있었다.

북쪽의 놀이공원.

서쪽의 식당가. 동쪽의 영화관.

남쪽의 상점가.

물론 동쪽과 서쪽은 영화관과 식당가에도 상점들이 섞여 있었다.

“통화는 안 되는 겁니까?”

“통화량이 많아서 통화가 안 되는 건지…… 아니면…….”

신시아 린드버그가 말끝을 흐렸다. 그 무언의 말을 이해한 잭슨 밀러가 팔짱을 끼고 한숨을 내쉬었다.

“테러리스트들이 기지국을 내버려 둘 리가 없겠네요.”

“네.”

어른들이 심각한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남자아이, 이안 위버는 이현우를 바라보았다. 정신을 잃고 누워 있어도 창백한 얼굴과 슬픈 표정에 이안 위버, 아니, 앤드류 워커까지 슬퍼졌다.

‘아냐. 연기해야지.’

앤드류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준에게 자신의 연기를 보여주고 싶었다.

이안 위버는 시뻘건 피와 덜렁거리는 손톱이 무섭지도 않은 듯 작은 손으로 이현우의 상처 입은 손을 꼬옥 잡아주었다.

“길을 찾았습니다.”

전직 군인, 레이먼드 위시가 머리에 묻은 흙먼지를 털며 구석에서 나타났다. 사람들이 밝은 얼굴로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죠?!”

“제, 제가 먼저……!”

“이봐! 내가 여기 제일 먼저 도착했어!”

소리치는 사람들을 둘러보던 레이먼드 위시가 무거운 한숨을 내쉬며 머리를 쓸어 올렸다.

사람들의 목소리에 이현우의 정신이 조금씩 돌아왔다.

등에 닿는 것이 차가웠다. 공기도 무거웠다. 천천히 머리가 돌아가고 이곳에서 탈출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말이 들려왔다.

밖에서 어린 아들이, 딸이, 가족이 기다리고 있다는 외침이 들려왔다.

그 목소리들을 들으니 일어나기가 싫었다.

‘그냥…… 그냥…….’

그때, 자신의 차가운 손을 꼬옥 잡는 손이 느껴졌다.

따뜻하고 여린 체온이었다.

흠칫 몸을 떤 이현우가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말간 눈동자의 어린아이가 이현우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현우와 눈이 마주친 아이가 활짝 웃자,

탁!

이현우는 저도 모르게 아이의 손을 쳐버리고 말았다.

* * *

“진짜 싫은 거 아니야.”

“……알아요.”

시무룩한 앤드류 워커의 모습에 서준이 곤란한 듯 볼을 긁적였다.

배우들은 물론이고 스태프들마저 꽁냥대는 두 아이의 모습에 어깨를 떨며 웃음을 참았다.

서준의 연기가 너무 실감 났던 모양인지, 오케이 사인이 떨어지고 앤드류는 잔뜩 기가 죽어버렸다. 오늘 하루종일 반짝이던 눈으로 보던 아이가 축 처져 시선을 피하는 모습에 서준은 괜스레 죄책감이 들었다.

“앤디. 그건 이현우가 이안을 보고 그러는 거야. 이현우가 너무 마음이 아프니까 다 싫은 거지.”

“저도 아는데…….”

하루 종일 팔랑거리며 움직이던 앤드류의 축 처진 귀와 꼬리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는데…….”

앤드류 워커도 그게 연기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다른 배우가 그랬다면 충분히 이해하고 하하 웃으며 넘어갔을 터였다.

근데 서준 리였다.

자신이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배우.

머리로는 이해해도 마음이 아팠다. 앤드류 자신도 모르게 눈동자가 그렁그렁해졌다.

울면 안 돼.

그건 연기야. 울면 안 돼.

하고 되뇌어도 저도 모르게 입술이 삐죽 튀어나와 버렸다. 자신의 못난 모습에 괜히 자신이 더욱 싫어져 눈물이 나왔다.

악순환이었다.

“……난 준을 정말로 좋아하는데…….”

“나도 앤디 정말 좋아해!”

아이고.

서준이 앤드류를 안아 둥기둥기 얼렀다.

‘이러면 반칙 같지만…….’

동시에 반짝반짝한 아우라를 내뿜었다.

조금씩 마음이 풀어지던 앤드류 워커는 반짝이는 스타의 모습에 코를 훌쩍이다 결국 헤헤 웃고 말았다. 다시 돌아온 앤드류 워커의 모습에 서준도 활짝 웃었다.

“요즘 애들 정말 귀엽네요!”

그 모습을 숨을 죽이고 바라보고 있던 사람들이 바네사 올슨의 말에 결국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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