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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325화 (325/1,055)

0살부터 슈퍼스타 325화

잠시 후, 주문한 음식들이 테이블 위를 가득 채웠다.

조금 들뜬 걸음으로 프라이빗룸 밖으로 나가는 웨이터를 보며 밀란 첼런이 작게 웃었다.

“레스토랑에 우리가 왔다는 소식이 파다하겠는걸.”

“그러게요.”

미소를 지은 배우들과 감독은 식사를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의젓하게 포크와 나이프를 다루는 앤드류의 모습에 감탄하기도 했고(아빠는 뿌듯해했다) 서준에게 한국에서의 촬영은 어떤지 물어보기도 했다. 한국에서도, 미국에서도 매번 받는 질문이라 서준은 익숙하게 대답했다.

레드와인을 한 모금 마신 데이비스 가렛이 말했다.

“에반하고 리첼이 카메오로 촬영했었지? 다음에 좋은 대본 있으면 나도 알려줄 수 있어? 외국에서 촬영하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으니까.”

“하하. 그럴게요.”

한국의 감독들이 들었다면 경악할 이야기가 오갔다.

예전에 봤던 작품이나 최근에 찍었던 작품들에 대해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니 금세 시간이 흘러갔다.

“후식은 뭘 먹을래?”

아빠의 물음에 초콜릿과 아이스크림 사이에서 고민하는 앤드류를 눈치챈 서준이 웃으며 말했다.

“앤디, 나랑 반반씩 나눠 먹을까?”

“그래도 돼요?”

“그럼.”

앤드류가 환하게 웃으며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앤드류의 아빠는 끼어들 틈도 보이지 않는 아들과 준의 사이에 미소를 지었다.

후식이 나오고 서준과 앤드류가 초콜릿과 아이스크림을 반씩 나눠 먹고 있을 때 데이비스 가렛이 입을 열었다.

“모두 알고 있겠지만 내가 촬영할 때 애드리브가 좀 많을 거야.”

함께 촬영해 본 적이 있는 밀란 첼런는 그저 웃고 있었고 서준과 바네사는 조금 긴장한 얼굴로 데이비스 가렛을 바라보았다. 앤드류는 무슨 의미인지 몰라 눈을 깜빡였다.

“감독님도 허락하셨으니까 다들 편하게 상대해 줬으면 해.”

제프리 감독이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궁금하기도 했다.

데이비스 가렛이 말하는 즉흥 연기가 무엇인지.

“음. 그 말은 저희도 대본에 없는 대사를 해도 된다는 건가요?”

서준의 물음에 데이비스 가렛이 조금의 지체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나는 애드리브를 하는데 다른 배역이 대본 그대로 말하면 말의 앞뒤가 안 맞잖아. 물론 막무가내로 연기할 생각은 없어. 힘들면 내가 커버할게.”

데이비스 가렛이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본인이 할 수 있는 한 자유롭게 ‘캐릭터’를 연기해 봐. 대본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게 어떤 건지 알 수 있을 테니까. 제작사가 허락하고 감독님까지 허락하는 이런 기회는 거의 없으니까 말이야.”

자유롭게.

서준을 비롯해 그 자리에 있던 모두의 심장이 두근두근 뛰는 것 같았다.

* * *

서준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돌아온 숙소에는 김종호와 매니저 김상우가 도착해 있었다.

“잘 다녀왔어?”

김종호의 물음에 서준이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삼촌도 잘 구경하셨어요?”

“너무 많이 돌아다닌 것 같아. 상우는 이미 기절했어. 그러게 평소에 운동 좀 하라니까. 나보다 젊은 놈이…….”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김종호의 모습에 피식 웃은 서준이 김종호의 맞은편에 앉았다.

김종호는 낮에는 LA를 여행하고 숙소로 돌아오면 [생존자들]의 대본을 보며 연습하고 있었다. 그렇게 많지 않은 대사와 장면이라 이미 확실하다 못해 질릴 정도로 알고 있을 터임에도 대본이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읽고 있었다.

“삼촌도 쉬엄쉬엄하세요.”

“쉬엄쉬엄하고 있어. 낮에는 여행하고 밤에만 보고 있는데, 뭘.”

팔랑 대본을 한 장 넘긴 김종호가 입을 열었다.

“옛날에 처음 대사 있는 역을 맡았을 때는 진짜 하루종일 그것만 보고 있었거든. 아직도 그 대사가 생각날 정도로 말이야. 그때가 생각나니까 좀 싱숭생숭하네. 그땐 진짜 여기 오는 게 꿈이었는데…….”

이제 그 꿈을 이루게 될 중년의 배우가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그 계기가 된 어린 배우를 바라보았다. 무슨 복이 있어서 이렇게 좋은 배우를 만나게 된 걸까.

내의원을 찍을 때 바로 옆자리에서 꼼지락 꼼지락대던 아이가 떠올랐다.

‘역시 그때 자리를 바꾸길 잘했어.’

서준을 보며 부드럽게 웃은 김종호가 입을 열었다.

“서준아. 내일 씨 세이브 센터 갈 건데 같이 갈래?”

“네. 좋아요.”

김종호의 말에 서준이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씨 세이브 센터와 씨 세이버에 새겨둔 문양에 마나를 불어넣으러 언제든 갈 생각이었다.

‘미국에 들르면 한번 간다고 했는데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네.’

모두들 잘 지내고 있었으면 좋겠다.

* * *

12월이 되고 [생존자들]이 촬영을 시작했다.

하지만 서준과 김종호가 바로 촬영에 들어간 것은 아니었다.

주연 배우가 다섯이나 되는 만큼 배우들의 이야기를 찍어야 했다.

가장 먼저.

데이비스 가렛이 맡은 역할인 ‘레이먼드 위시’의 서사를 촬영한다.

“위시 가족, 촬영 시작하겠습니다!”

조감독의 외침에 제프리 감독과 [생존자들]의 첫 촬영 겸 데이비스 가렛의 첫 촬영을 보러온 기획팀장이 침을 꿀꺽 삼켰다. 계약서를 작성하고 며칠 전 식사 자리에서도 말했던 데이비스 가렛의 즉흥 연기가 언제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레디…… 액션!”

어쩐지 쿵쾅쿵쾅 뛰는 것 같은 심장을 부여잡고 제프리 로덕스 감독이 액션을 외쳤다.

그리고 다행히 몇몇 대사는 달랐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는 대본과 비슷하게 촬영할 수 있었다.

그다음은 밀란 첼런이 맡은 역인 ‘잭슨 밀러’의 서사가 촬영되었다.

“밀러 가족, 촬영 준비하겠습니다!”

북적거리는 쇼핑몰에 밀란 첼런과 그의 가족으로 분할 배우들이 나타났다.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던 데이비스 가렛의 촬영과는 달리 밀란 첼런의 파트는 대본 그대로여서 제프리 감독과 기획팀장은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음?”

“왜 그러십니까?”

“아뇨. 아무것도 아닙니다.”

깔끔한 촬영이었지만 어쩐지 이상한 감정이 들어 제프리 감독이 고개를 갸웃했다.

다음 촬영은 바네사 올슨이 맡은 ‘신시아 린드버그’의 이야기.

“쇼핑몰 안내 직원들! 모여주세요!”

영화의 배경이 될 [갤러리아 몰]에서 안내 직원으로 일하는 ‘신시아 린드버그’의 촬영이 진행되고 앤드류 워커가 맡을 역인 ‘이안 위버’의 촬영이 이어졌다.

“위버 가족! 리허설 시작하겠습니다!”

스태프의 부름에 엄마 아빠와 함께 자리에 앉아 있던 앤드류 워커가 벌떡 의자에서 일어났다. 손에 들고 있던 구깃구깃한 대본을 의자 위에 올려두고 등을 돌렸다.

“갔다 올게!”

처음 온 촬영장이 무섭지도 않은지 뒤도 안 돌아보고 쌩하니 달려가는 앤드류 워커의 모습에 워커 부부가 한숨을 쉬었다가 허탈하게 웃고 말았다.

“우리 아들 너무 씩씩한 거 아니야?”

“저러다가 준 앞에 가면 쭈그러지는 게 참 귀여워.”

“나도 보고 싶었는데……!”

언젠가 서은혜와 이민준이 그랬던 것처럼 리허설을 진행하는 앤드류 워커의 사진을 열심히 찍는 워커 부부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서준 리가 분하는 ‘이현우’의 이야기가 촬영될 예정이었다.

‘이현우의 아버지’ 역인 김종호는 이때 촬영하는 ‘이현우’의 이야기에만 짧게 출연한다.

그다음부터는 온전히 주연 배우 다섯의 무대였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

서준이 촬영하는 날이 다가왔다.

[생존자들]의 배경은 실제의 캘리포니아에는 없는, 영화관, 레스토랑, 작은 놀이시설에 수백 개의 가게가 입점한 지하 2층부터 지상 5층까지의 쇼핑몰, ‘갤러리아 몰’이었다.

차에서 내린 서준이 촬영장을 둘러보았다.

의상이나 소품을 들고 달려가는 스태프들과 조명 기계 같은 촬영을 위한 장비들을 들고 바쁘게 움직이는 스태프들은 비슷비슷한 것 같은데 마린사가 아니라 베어라운드의 촬영장이라는 것만으로도 낯설고 새로운 느낌이 들었다.

“이쪽입니다.”

김종호와 매니저 김상우는 물론 서준도 새로운 느낌으로 구경하고 있을 때, 안다호의 연락으로 스태프가 나와서 네 사람을 안으로 안내했다.

문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은 제프리 감독과 기획팀장, 그리고 카메라 렌즈가 서준과 김종호를 반겼다.

카메라를 발견한 두 배우가 미소를 지었다. 이 카메라가 숙소에서 들었던 ‘한국 홍보용’ 메이킹 필름을 찍는 카메라인가 보다.

‘다들 머리가 좋다니까.’

‘그러게요.’

눈빛으로 주고받은 두 배우가 제프리 감독과 악수를 나누었다.

“오늘 촬영 잘 부탁합니다. 준. 킴.”

“저야말로 잘 부탁합니다.”

“열심히 할게요!”

제프리 감독과 기획팀장과 인사를 한 서준과 김종호가 세트장을 구경했다. 매니저 김상우도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두 배우의 뒤를 따라갔다. 그 뒤를 카메라가 쫓았다.

스튜디오 안쪽에도 놀랄 곳밖에 없었다. 입을 쩌억 벌린 김상우가 감탄했다.

“/형. 여기 진짜 장난 아니네요./”

“/그러게./”

거대한 쇼핑몰 전부를 만들지는 못했지만, 그중 한 부분을 칼로 잘라놓은 듯한 세트장에 김종호와 매니저 김상우가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것도 매장 한두 개가 아니라 꽤 넓은 크기의 세트장이었다.

“/여기 진열된 상품도 진짜인 거 아니야?/”

“/그건 아니겠지./”

“/근데 진짜 상품 같긴 해요./”

세트장의 배경뿐만이 아니라 그 안의 제품들도 번쩍번쩍 빛이 나는 것 같았다. 어디로 봐도 가장 최신의 상품들이 진열되어 있는 것 같아 진짜 쇼핑몰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니까 여길 무너뜨린다는 거지?/”

“/할리우드 스케일 장난 아니네요./”

서준도 김종호와 김상우의 말대로 이렇게 멋진 세트장을 부순다는 것에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정말 열심히 만든 것 같은데.’

“/삼촌. 이걸 진짜로 부술까요? CG로 처리할 수도 있잖아요./”

“/아니면 다른 세트장을 준비해 놨겠지./”

김종호의 의견에 서준과 김상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쪽이 더 가능성이 컸다.

“킴. 잠시만 괜찮을까요?”

“아, 예.”

세트장을 둘러보고 있는데 스태프 하나가 김종호를 불렀다.

“의상팀인데 한번 입어 주시겠어요? 알려주신 크기로 구하긴 했는데 다른 분들 의견으로는 좀 작다고 하셔서요. 예비용 의상 중에 맞는 게 없으면 바로 구해야 해서요.”

“알겠습니다.”

공부한 보람이 있었는지 드문드문 알아들은 김종호가 고개를 끄덕이자 서준이 물었다.

“/삼촌. 저도 같이 갈까요?/”

“/괜찮아. 옷 크기만 맞다 안 맞다 말하면 되는걸. 상우 너도 여기 있어./”

“/네./”

김종호가 의상팀 스태프와 함께 탈의실 쪽으로 향했다. 세트장 구경도 다 했겠다 서준과 두 매니저는 준비된 의자에 앉아 김종호를 기다렸다.

“/근데 무슨 옷일까요?/”

“/음. 내가 보고 올까?/”

자신의 배우를 홀로 놔둔다는 사실이 조금 불안했던 매니저 김상우가 얼른 탈의실 쪽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얼마 지나지 않아 킬킬 웃으며 돌아왔다.

예상치 못한 김상우의 반응에 서준과 안다호가 고개를 갸웃했다.

“/상우 삼촌. 무슨 옷이길래 그래요?/”

“/아니, 여기 촬영진이 되게 고증 잘했다 싶어서./”

서준과 안다호가 눈을 깜빡였다.

진짜 중요한 소품이 아닌 이상 대본에 언급되는 부분이 적다 보니 서준도 김종호가 입고 나올 옷을 예상하지 못했다.

좀 더 기다리고 있으니 옷을 갈아입은 김종호가 나타났다.

“/서준아! 이거 봐라!/”

으하하하 웃으며 등장한 김종호를 본 서준과 안다호는 할 말을 잃었다.

부모님 세대의 교복 같은, 형광주황색의 등산복을 입은 김종호가 거기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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