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322화
베어라운드 본사.
1차 영상 오디션으로 뽑은 배우들이 대기실에 모였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봤던 경력 있는 배우들부터 아직 어느 작품에서도 보지 못한 신인들이 있었다. 낯익은 배우들의 모습에 근처에 있던 신인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하지만 그 눈빛 안에는 며칠 전 오디션을 봤던 배우들이 ‘김종호’를 봤을 때 느꼈던 놀람과 경악은 없었다.
“나 저 애 텔레비전에서 봤어.”
“엄마. 나 사인받고 싶어.”
평균 연령 10세.
오늘은 [생존자들]에 등장할 아역 배우의 오디션이었다.
오디션 대기실은 조용했던 다른 때와는 달리 조금 들뜬 분위기였다.
1차로 뽑은 아역 배우들과 아역 배우들의 보호자들이 뒤섞여 있는 데다가 지루함을 견디지 못하고 또래 친구들과 떠들고 있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렇게 떠드는 아이들 사이로 몇몇 아이들은 오디션용 대본을 읽고 있었다. 한눈에 봐도 오디션에 임하는 자세부터 차이가 있는 터라 보호자들은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지금부터 오디션 시작하겠습니다.”
베어라운드 직원이 대기실로 들어와 그렇게 말하고 나서야 조용해졌다.
낯선 어른의 등장에 대기실에 긴장감이 흘렀다.
“오디션장에 들어가시면 감독님과 심사위원분들이 계시고 그 앞에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촬영할 때 사용하는 카메라와 같은 기종이고 아역 배우분들은 그 카메라를 보고 지정된 연기를 해주시면 됩니다. 오디션 내용은 그대로 촬영될 예정입니다.”
“보호자도 같이 들어갈 수 있습니까?”
한 보호자의 질문에 베어그라운드 직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하지만 말은 하시면 안 됩니다.”
오디션장에 아이만 보내기엔 걱정됐던 보호자 몇몇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1번.”
직원의 호명에 아역 배우들 중 가장 나이가 많은 1번 아이와 보호자가 오디션장으로 향하고 2차 오디션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 * *
“5번 들어오세요.”
알록달록한 펜으로 잔뜩 필기되어있는 대본을 읽고 있던 앤드류 워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얼마나 봤는지 손에 들고 있는 오디션용 대본이 꾸깃꾸깃했다.
“내 차례래. 아빠.”
“그, 그래.”
정작 연기를 보여줘야 하는 앤드류 워커는 침착한 표정이었는데 옆에 있던 앤드류의 아빠가 더 안절부절못한 표정이었다.
“갔다 올게!”
앤드류가 씩씩하게 대기실 밖으로 향하자 놀란 아빠가 얼른 그 뒤를 따랐다.
“아니, 앤디! 아빠랑 같이 가야지!”
어찌나 씩씩한지 벌써 오디션장 앞에 서 있는 앤드류의 모습에 아빠가 허허 웃고 말았다.
앤드류 워커와 아빠가 문 앞에 도착하자 직원이 문을 열어주었다.
침착한 앤드류 워커와는 달리 아빠는 긴장감에 침을 꼴깍 삼켰다.
보기만 해도 위협적인 커다란 카메라가 중앙에 설치되어 있었고 그 뒤에 심사위원들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 심각한 어른들의 얼굴과 카메라의 커다란 렌즈는 아이들은 물론이고 어른들도 겁먹게 만들 정도였다.
“보호자분은 이쪽에 앉으시면 됩니다.”
직원이 문 가까이에 있는 의자를 가리키자 고개를 끄덕인 아빠가 그 자리에 앉았다.
‘말하지 말라고 했지.’
앤드류의 아빠는 연기의 ‘ㅇ’도 몰라서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그저 카메라 앞으로 향하는 아들을 보며 마음속으로 응원할 수밖에 없었다. 아빠는 입을 꾸욱 다물고 아들만 바라보았다.
심사위원석에 앉아 있던 기획팀장이 그런 보호자를 보며 [no.5. 앤드류 워커]의 신청서에 무언가를 써 내려갔다.
아역 배우와 함께 촬영할 때 아역 배우만큼 중요한 것이 보호자였다. 왜냐하면, 보호자의 성향에 따라 아역 배우의 컨디션도 달라지기 때문이었다.
일일이 간섭하는 보호자라면 촬영에 지장을 줄 수도 있고 감독의 연출에 불만을 품을 수도 있었다. 그런 보호자의 눈치를 보느라 아역 배우가 제 실력을 보이지 못할 수도 있었다.
조금 전 4번도 그랬다.
사전에 ‘말하면 안 된다’고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4번 보호자는 커다란 카메라에 겁을 먹은 아역 배우가 엉거주춤 서 있자 이런저런 지시를 내렸다. 보호자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아역 배우의 모습에 기획팀장은 고개를 저었다.
그렇다고 아역 배우에게 너무 신경 쓰지 않는 보호자라도 좋은 건 아니다. 아역 배우 혼자서는 촬영 일정을 제대로 체크하거나 컨디션을 조절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뭐든지 적당한 게 좋지.’
아이를 믿고 아이를 보살펴줄 보호자.
아역 배우들의 수준이 비슷비슷하다면 보호자에 따라 결정될 예정이었다. 그게 이번 오디션에 다른 때보다 많은 후보들을 불러온 이유기도 했다.
‘어떤 보호자든 상관없을 정도로 훌륭한 연기를 보여줄 수 있는 배우는 어디 없으려나?’
웃는 장면 하나로 전 세계를 사로잡았던 서준 리 같은.
제가 생각해도 어이가 없어 기획팀장은 피식 웃고 앞을 바라보았다. 커다란 카메라에도 겁먹지 않은 아역 배우가 반짝이는 눈으로 심사위원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먼저 자기소개 부탁할게요.”
앤드류 워커가 어깨를 활짝 펴고 씩씩하게 말했다.
“5번! 앤드류 워커입니다! 아홉 살입니다!”
앤드류는 앉아 있는 심사위원들을 바라보다 카메라를 보며 말을 이었다.
“가장 좋아하는 배우는 서준 리입니다!”
* * *
중간고사가 끝나고 난 후에도 [생존자들]의 오디션은 계속되었다. 이번에도 틀린 문제 하나 없는 시험지들을 보며 만족스럽게 웃던 서준이 안다호에게 물었다.
“다호 형. 오디션은 언제 끝난대요?”
“이제 막바지래. 오늘 아역 배우 2차 오디션 볼 예정이고. 3차 오디션까지 갈지도 모른대.”
“그렇구나.”
[생존자들]에는 아역이 나온다. 그것도 지나가는 단역이 아니라 꽤 오래. 대본 속 아역 배우가 맡을 역을 떠올리던 서준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저보다 어린 아역은 오랜만이네요.”
소방청의 공익 영상 ‘한 걸음’ 때 함께 촬영했던 김한석도 서준보다 한 살 어리긴 했지만, 이번에는 한참 어린 나이대라고 전해 들었다.
“그러게. 평균 나이가 10살이라고 들었는데…….”
“10살이면…….”
서준이 손을 꼽다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제가 쉐도우맨2 촬영할 때 태어난 거네요?”
“그렇지. 서준이 동생들하고도 비슷한 나이지 않아?”
“수빈이가 8살이고 은수가 6살이니까…… 그러네요.”
수빈이와 비슷한 나이대의 아역배우와 연기를 하게 되다니. 뭔가 신기한 느낌이 들었다.
지금까지는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배우들이 많았는데 앞으로는 자신보다 나이가 적은 배우들이 많아진다는 게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잠시 생각하던 서준은 문뜩 생의 도서관에 들러야겠다고 생각했다. 촬영을 위해 만들어진 가짜 재난 상황이지만 촬영장의 분위기에 아역 배우가 휩쓸려 버려 겁을 먹을 수도 있으니까.
‘아. 아닌가.’
아역 배우를 위해 어떤 능력이 좋을까 생각하고 있던 서준에 눈을 깜빡였다.
생각해보니 할리우드라면 자잘한 소품들은 만들어도 배경 자체는 CG를 이용해서 화면을 만들지도 몰랐다.
곰곰이 고민하는 서준에게 안다호가 물었다.
“김종호 배우는 요즘 뭐 하신대?”
“종호 삼촌이요?”
“2팀에 섭외 요청 연락이 엄청 오거든. 김종호 배우 소속사도 그렇지 않을까 싶어서.”
안다호의 물음에 서준이 키득키득 웃고 말았다.
“장난 아니래요. 매니저 삼촌이 그러던데, 시끄러워서 전화선 뽑은 적은 이번이 처음이래요.”
그 마음을 알 것 같아, 슈퍼스타의 매니저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김종호의 할리우드 오디션 합격 소식이 퍼지자 김종호를 잡기 위해 기업들과 방송국들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이서준이야 할리우드에서 대본을 계속 받고 있었고 많은 섭외 요청을 받고 있다는 것을 예전부터 알고 있었기 때문에 (여전히 신기하긴 하지만) 그나마 익숙하다면 김종호는 처음으로 할리우드 오디션을 도전하고 합격한 배우였기 때문에 더 관심이 쏠리고 있었다.
김종호 정도의 배우라면 한국에서만 활동해도 괜찮건만 지지기반이 전혀 없는 새로운 곳에서 도전한다는 것이 사람들의 감탄을 자아냈다.
>이지석 : 광고도 엄청 들어오지?
>박도훈 : 제가 들은 것만 해도 3개예요.
하지만 종호 삼촌은 모든 일은 촬영 후로 미루기로 했다.
>이지석 : 너무 과해도 안 좋을 텐데?
인생 첫 할리우드 영화라서 기쁜 마음은 알겠다만은 감독이 원하는 연기는 잔뜩 힘이 들어간 과한 연기가 아니라 영화에 어울리는 자연스러운 연기일 터였다.
>김종호 : 알고 있어.
>김종호 : 그냥…… 공부 중이다.
처음 읽었던 연기 교본 책을 들여다보고 자신이 처음 연기했던 작품을 보고 가물가물하던 연기의 기본을 다시 다지고. 김종호는 진짜 신인 배우가 된 것처럼 그렇게 행동했다.
“대단하네.”
더 잘하고 싶다는, 연기파 배우의 각오에 안다호는 진심으로 감탄했다.
“그래서 저도 더 열심히 하려고요.”
서준이 휴대폰을 들어 누군가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선생님 언제 시간 되세요?
메시지의 수신자는 건강검진 때 만났던 정신과 의사였다.
* * *
그렇게 배우들이 촬영을 위해 노력하고 있을 때 베어라운드도 열심히 촬영을 준비하고 있었다.
뽑힌 배우들의 이미지를 떠올리며 대본을 검토하고 있던 제프리 감독에게 기획팀장이 종이 하나를 내밀었다.
“이걸 전부……?”
제프리 감독이 눈을 비볐다. 종이에는 상상도 못 했던 금액이 적혀 있었다. 창백한 안색에 조금 생기가 돋았지만, 기획팀장은 눈치채지 못했다.
“네. 예상 이상으로 반응이 좋아서 말입니다. 아직 캐스팅된 배우들밖에 알리지 않았는데 여기저기서 좋은 제안들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기획팀장이 플러스+와 같은 스트리밍 사이트를 언급했다. [생존자들]의 개봉을 원하는 나라들도 계속 늘어나고 있었다.
“물론 플러스에 업로드되는 건 먼 훗날이 되겠지만요.”
일찍 스트리밍 사이트에 업로드할 필요는 없었다. 영화관에서 한 번, VOD로 또 한 번. 그다음 적당한 타이밍을 봐서 플러스+에 업로드할 예정이었다.
‘플러스가 가장 조건이 좋았지.’
몇 개의 스트리밍 사이트 중 플러스+가 가장 열정적이었다.
아무래도 플러스+가 서준 리를 굉장히 좋아한다는 소문이 사실인 것 같았다. 하긴 그 정도로 돈을 벌게 해주면 좋아할 수밖에 없을 것 같기도 했다. 그 행운이 베어그라운드에도 오길 바라며 기획팀장이 입을 열었다.
“특히 한국에서의 반응이 뜨겁습니다.”
베어라운드는 한국인 배우들을 섭외한 다음부터 한국의 반응을 모니터링하고 있었다. 베어라운드와 관련된 대부분 글이 꼭 보겠다는 기대감이 가득한 글이고 SNS 언급량도 만만치 않았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 다른 화제 밀려서 식겠지만 서준 리와 종호 킴의 인지도면 금방 다시 타오를 거다.
기사도 얼마 내지 않았는데 반응이 이렇게 활활 타오르고 있으니 베어라운드에서도 배정되어 있던 제작비를 더 늘렸다. 어쩌면 지금보다 더 늘어날 수도 있었다.
‘아무래도 홍보비가 세이브되니까 말이야.’
하지만 아직 정해지지 않은 일을 감독에게 전할 수는 없었다.
“한국의 영화 시장이 커서 기대 심리로 예산이 더 늘었습니다.”
기획팀장의 말에 제프리 감독이 벅찬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지도 못한 금액이 손이 덜덜 떨렸다. 동시에 이렇게 늘어난 제작비로 할 수 있는 일들이 떠올랐다.
‘……어쩌면.’
충분하다 못해 넘칠 것 같은 제작비가 적힌 종이를 내려다보고 있던 제프리 감독의 눈이 번쩍 빛났다.
“이제 슬슬 세트장을 지어야 합니다. 감독님이 생각하는 모습을 말해주시면 미술팀이 만들 거라서 이번 주에 미술팀과의 회의가 있을 예정입니다. 아. 세트장은 CG로 하실 거죠?”
“……아뇨.”
“네. 알겠…… 네?”
제프리 감독이 ‘네’라고 대답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고개를 끄덕이려던 기획팀장이 뜻밖의 대답에 멈칫했다.
“어…… CG를 안 쓰시겠단 말씀이십니까?”
제프리 감독이 천천히 고개를 들어 기획팀장을 바라보았다. 제프리 감독의 번들거리는 눈동자와 눈이 마주친 기획팀장은 어쩐지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을 느꼈다.
“전부. 만들면 안 될까요?”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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