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321화
베어라운드의 캐스팅팀 직원이 본사로 들어오는 동양인 남자를 발견했다. 긴장한 얼굴에 어색한 걸음걸이를 보니 베어라운드 직원은 아닌 것 같았다.
“오디션 보러 오셨나요?”
“아, 네.”
“이쪽으로 오시면 됩니다.”
직원이 남자를 데리고 대기실로 향했다.
“대기실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차례로 오디션장에 들어가시면 됩니다. 1차 오디션 때 썼던 대본을 그대로 연기하시면 되고 감독님과 캐스팅 디렉터의 추가 요청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라고 영어로 말한 직원이 한국어로 번역된 안내문을 남자에게 건네주었다. 영어를 한 번, 안내문으로 한 번. 확실히 이해한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알겠습니다.”
후우, 숨을 내쉬며 긴장을 푸는 남자를 본 직원은 대기실의 문을 두 번 노크하고 문을 열어주었다.
달칵하고 열리는 문에 남자가 한 발 내밀었다.
어떤 배우들이 자신의 경쟁자가 될지. 연기에 꽤 자신이 있는 남자는 긴장감에 조금 굳은 표정이었지만 자신감 있는 눈빛으로 대기실 안으로 들어갔다가,
쾅!
문을 닫았다.
……어라?
눈을 몇 번 깜빡인 남자가 고개를 돌려 직원을 보았다. 한국인과는 다른 피부색이 이곳이 한국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었다.
???
그래서 더 이상했다.
남자는 의아함이 가득한 눈빛으로 베어라운드 직원을 한 번, 문을 한 번 번갈아 보았다. 직원도 들어가지 않고 문을 닫은 남자의 모습에 놀라 눈을 깜빡였다.
삐걱삐걱 돌아가는 뇌가 겨우 생각이란 걸 시작했다.
“저…… 안에…….”
여기 있으시면 안 되는 분이 계신데요?
라는 말이 금방이라도 목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다.
‘……아니야. 내가 잘못 본 거겠지.’
몰랐는데 이서준과 함께 촬영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 꽤 부담이 됐나 보다. 그래. 그런 모양이다. 애써 방금 본 사람을 잊으려고 노력하는 남자에게 직원이 말했다.
하도 어이가 없어서 저도 모르게 튀어나온 남자의 말이 질문이라고 느낀 모양이었다.
“네. 먼저 오신 분이 계시는데…… 한국에서 배우 활동을 하시고 있는 분이시라고 들었습니다.”
아아아.
잘못 본 게 아닌 모양이다.
직원의 결정적인 말에 남자가 눈을 질끈 감았다.
대기실에 마련된 의자에 앉아, 십중팔구 자신과 같은 대본을 읽고 있는 중년 배우.
스쳐 지나가면서 보기만 해도 알아볼 정도의 유명한 배우.
“……왜 김종호 배우가 여기 있는 거야?”
그날 캐스팅팀 직원은 오디션에 참가하는 배우들이 남자와 똑같이 대기실에 있는 배우를 보고 반사적으로 문을 닫아버리는 이상한 모습을 계속 봐야 했다.
* * *
오디션 심사를 위해 신청서를 팔랑팔랑 넘겨보고 있던 캐스팅 디렉터가 한 신청서 앞에서 눈썹 근처를 긁적거렸다.
[Jongho Kim]
“킴은 한국에서 유명한 배우인데 대기실을 따로 써야 하지 않겠습니까? 한국계 배우라면 꽤 알아볼 것 같습니다만.”
한국계뿐만 아니라 캐스팅 디렉터도 오디션 영상을 보고 김종호를 알아보았다. 이스케이프도 내의원도 인상 깊게 봤다. 작품 중 비슷한 나이대의 한국인 역할이 나올 때면 한 번쯤 떠올려봤던 배우기도 했다.
‘할리우드에 관심이 있는지는 몰랐지만.’
아무래도 나이가 있으니 젊은 배우들보다 새로운 곳에서 활동하는 게 어렵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휴대폰 수거도 하지 않아서 금방 소식이 퍼질 겁니다.”
캐스팅 디렉터의 우려에 기획팀장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대기실을 함께 쓰는 건 미리 알려줬는데 본인이 괜찮다고 하니까. 거기다 다들 이미 반쯤 결정 내린 것 같은데? 불합격이 아니라면 소식이 퍼져도 문제 될 건 없지.”
“뭐, 그건 그렇지만요.”
캐스팅 디렉터가 고개를 끄덕였다.
많은 오디션 영상 중 압도적인 관심을 받았던 김종호의 영상.
오늘은 그 연기를 다시 한번 보여줄 수 있는지, 오디션용 대본이 아니라 새롭게 받을 대본으로도 그런 연기를 보여줄 수 있는지에 대한 체크나 다름없었다.
‘뭐, 기대 이하라면 자리는 다른 배우에게 넘어가겠지만.’
하지만 그럴 확률은 그렇게 높지 않을 거라는 건 기획팀장도, 캐스팅 디렉터도, 대기실에 있는 배우들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소식이 퍼진다는 건 홍보할 기회라는 뜻이기도 하지.”
“특히, 한국에서 말이죠.”
서준 리와 김종호의 등장으로 한국 흥행은 이미 약속받은 것과 다름없었다.
기획팀장과 캐스팅 디렉터가 후후후 웃는 사이.
그 가운데 조용히 앉아 있던 제프리 감독이 어제 봤던 ‘내의원’을 떠올려보았다. 다정한 아버지, 태종과 귀여운 아들 성녕대군.
‘잘 어울릴 것 같네.’
그만큼 어울리는 부자(父子)도 없으리라.
“그럼 오디션 시작하지.”
기획팀장의 말에 오디션장의 문이 열렸다.
* * *
띠링.
새벽부터 울리는 휴대폰 알림에 자고 있던 박성원이 손을 뻗어 휴대폰을 찾았다.
‘……알람은 아니고.’
알람음으로는 ‘오버 더 레인보우’의 버스킹 버전을 사용하고 있었는데 그레이 바이니의 거친 연주가 정신을 번쩍 들게 만들어 일어나기 딱 좋았다.
아마 서준이 [생존자들]이라는 영화를 찍는다고 해서 [새싹부터]에 설정해 놓은 키워드 알림인 것 같았다.
보통 잡다한 이야기는 ‘생/존/자들’, ‘生존자들’ 등 서치 방지 단어로 올라오기 때문에 정말 중요한 이야기가 아니면 알림은 울리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울린 게 ‘밀란 첼런’의 캐스팅 소식이었다.
“무슨 소식이려나?”
박성원이 휴대폰을 들려던 찰나,
띠링!
띠링!
띠링!
진동하듯 울리는 알림에 잠깐 몸을 멈칫한 박성원이 급히 휴대폰을 켰다. 그리고 화면을 보았다.
[제목 : 헐. 생존자들 미친!]
[제목 : 생존자들에……!]
[제목 : 생존자들 오디션에 갔다고?]
수십 개의 게시글이 올라오고 있었다.
“중요한 내용은 다 빠졌네.”
어느새 잠에서 깬 박성원이 [새싹부터] 카페에 들어가 가장 위에 떠 있는 공지를 보았다. 기사를 그대로 가져온 공지글이었다.
“……헐?”
[공지 : (단독)배우 김종호! ‘생존자들’ 오디션 중!]
* * *
[(단독)배우 김종호! ‘생존자들’ 오디션 중!]
<베어라운드의 영화 ‘생존자들’이 데이비스 가렛과 이서준, 그리고 밀란 첼런의 캐스팅 확정으로 연일 화제가 되고 있는 지금. LA에서 뜻밖의 소식이 날아왔다.
베어라운드의 본사가 있는 LA에서는 [생존자들]에 등장하는 배역들의 오디션이 진행되고 있는 중으로 오늘은 이서준 배우가 분할 역할의 부모역 오디션이 진행되는 날이다.
그리고 그 자리에 뜻밖의 얼굴이 있었다.
(중략)
김종호 배우의 소속사에는 ‘첫 할리우드 도전이다. 전혀 새로운 곳에서 오디션부터 참여하는 김종호 배우를 많이 응원해 달라’는 말을 전했다.>
새벽에 뜬 단독 기사를 시작으로 기사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데이비스 가렛×이서준×밀란 첼런, 그리고…… 김종호?]
[합격?! 불합격?! 김종호 할리우드 오디션 중!]
-와…… 생존자들 기다리면서 더 놀랄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22 단독 기사 뜨자마자 소름 돋음.
=33 김종호를 할리우드 영화에서 보게 될 줄이야.
=444 근데 조금 아쉽. 이스케이프 때처럼 깜짝 등장하면 재미있었을 텐데.
-근데 아직 합격한 건 아니지 않음?
=김종호 배우 정도면 합격하겠지.
=너무 쉽게 생각하는 거 같은데? 우리나라에서 잘하다가 할리우드 진출해서 정착하는 배우는 적지 않음?
=ㅇㅇ 이서준이 잘나간다고 해서 다 잘나가는 건 아니니까.
=이러다 불합격하면 어그로 기사 엄청 뜨겠네.
-그래도 도전하는 것만으로도 대단함.
=22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어디 있음.
-김종호 배우! 꼭 합격하세요!
=합격!!기원!!
-내 생각엔 합격할 확률이 높을 것 같음.
=22 이스케이프랑 내의원으로 홍보하긴 좋아서.
=333 이서준이랑 김종호면 한국 흥행은 이미 확정 아니냐?
-근데 김종호가 오디션이라니……내가 배우라면 그냥 오디션장 나왔을 듯.
=동감. 뒤도 안 돌아보고 나왔다ㅎㅎ
=??? : ……왜 여기서 최종보스가 나와?
=??? : 중간보스가 너무 약해서 내가 나왔다!!
=??? : 저기여? 게임밸런스 좀???
* * *
이른 아침부터 바나나톡 단톡창에 메시지가 가득했다.
평일이라 학교에 가야 하는 서준은 얼른 씻고 나와 휴대폰을 잡았다. 아침 식사 시간은 멀어서 아직 시간 여유가 있었다.
>이지석 : 단독 기사 종호 형 소속사에서 푼 것 같은데?
>박도훈 : 그죠?
<그런 것 같아요.
이지석의 메시지에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속도가 생명인 단독 기사에 소속사의 말이 붙어 있으니 그럴 것 같았다. 하긴. 처음부터 분위기를 잡아놓는 게 중요했다.
>이다진 : 우리 촬영장도 난리예요.
>이다진 : 다들 당연히 합격할 거래요ㅋㅋ
이다진의 메시지에 서준이 활짝 웃었다.
<다른 기사들 분위기도 좋아요!
>이지석 : 그러게.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네.
>박도훈 : 근데 슬슬 오디션 끝나지 않았을까요?
>이다진 : ㅠㅠ전 촬영하고 올게요.
이다진이 촬영을 하러 떠나고 김종호가 돌아오면 뭘 먹을까 떠들고 있던 그때, 서준과 세 배우가 기다리고 있던 메시지가 도착했다.
>김종호 : 끝났다.
>김종호 : 내일 한국 도착 예정.
김종호의 메시지에 서준이 활짝 웃었다.
* * *
[배우 김종호, 귀국!]
[배우 김종호, 할리우드에 도전하다!]
[김종호, “더 나이가 들기 전에 도전해 보고 싶었다.”]
* * *
김종호의 귀국 후, 서준과 배우들이 김종호의 집에 모였다.
이지석이 포장해온 뜨끈한 삼계탕으로 점심 식사를 끝내고 느긋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종호 삼촌. 할리우드 오디션은 어떠셨어요?”
박도훈의 물음에 이지석과 이다진, 서준도 눈을 반짝였다.
“……서준이 넌 왜 궁금한 얼굴이야?”
“그게…… 제가 참가했던 할리우드 오디션은 쉐도우맨1 때가 마지막이라서요. 평범한 오디션도 아니었구요. 그래서 궁금했어요.”
볼을 긁적이며 말하는 서준에 박도훈이 감탄했다.
“역시 할리우드 스타는 다르네.”
“진짜 멋있다.”
진심이 가득 담긴 이다진의 말에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유쾌하게 웃던 김종호가 턱을 매만지며 입을 열었다.
“오디션은 한국이랑 별로 다르지 않았던 것 같던데. 아무래도 연기를 보여주고 평가받는다는 건 똑같으니까 말이야.”
오디션에 관해 이야기를 하던 김종호가 만족스럽게 웃었다.
오랜만의 오디션은 김종호를 떨리게 만들었다. 그리고 김종호는 그 떨림을 즐겼다. 결과는 모르겠지만, 최선을 다했고.
“재미있었지.”
그 말에 서준과 세 배우도 미소를 지었다.
그때였다.
누군가 도어락을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형. 올 사람 있어?”
“아니. 없는데?”
다들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 문이 열렸다.
“합격! 합격이래요! 종호 형!”
미국까지 김종호를 따라가 케어했던, 모레까지 휴가를 받은 김종호의 매니저가 헐레벌떡 들어왔다. 김종호가 상기된 얼굴로 외치는 매니저의 모습에 눈을 끔벅였다.
“뭐가?”
“오디션요! 생존자들 오디션!”
“……그게 벌써 결과가 나왔다고?”
김종호처럼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던 서준과 세 배우가 매니저의 말을 이해하고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종호 삼촌! 축하해요!”
“형! 축하해!”
“당연히 합격할 줄 알았어요!”
“파티! 축하 파티할까요?”
서준과 세 사람이 떠들썩해지자 김종호도 슬슬 현실감이 든 모양이었다. 의아했던 표정이 점점 놀란 표정으로 변해갔다. 그 표정의 변화에 서준과 박도훈, 이다진이 키득키득 웃었다.
이지석은 진지하게 고민했다.
“종호 형도 할리우드 진출하니까 나도 한번 도전…… 형 울어?”
“……안 울어!”
지레 찔린 김종호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런 김종호의 모습에 이지석의 표정이 심술궂게 변해갔다. 김종호도 이제부터 일어날 일을 예감했다.
언제나처럼 투닥대는 두 배우의 모습에 서준과 박도훈, 이다진이 웃음을 터뜨렸다.
* * *
[배우 김종호! ‘생존자들’ 오디션 합격!]
[데이비스 가렛×이서준×밀란 첼런 그리고 김종호!!]
[한국 배우 김종호를 할리우드 영화에서 만난다!]
[김종호와 이서준! 다시 한번 부자(父子)로!]
[배우 김종호,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와아아아!!!
=내가 다 기쁘네!!
-서준이야 워낙 익숙하지만, 김종호 배우를 할리우드 영화에서 보게 될 줄이야!
-이제 서준이가 선배아냐?
=22할리우드에선 서준이가 선배지ㅋㅋ
=서준아, 모르는 게 있으면 많이 알려드려ㅋㅋ
=우리 배우님 잘 부탁드립니다.
-헐. 그러고 보니 아버지 역이면…… 태종? 태종이 돌아오는 건가!
=대군마마ㅠㅠ
=생존자들…… 왠지 제목부터 불안한데…….
=22 진짜 불안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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