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320화
“어? 서준이 있었네?”
“안녕. 이든아. 은성아. 안녕하세요. 형들.”
댄스 연습으로 지친 연습생들이 1층으로 올라왔다가 로비 한구석에 앉아 있는 서준을 발견했다. 피곤해 보이던 얼굴들이 서준을 보고 활짝 피었다. 그 모습에 서준이 하하 웃었다.
“많이 힘들어?”
“엉. 그래도 내년에 데뷔 일정이 잡혀서 마음은 편해.”
스포츠음료를 뽑은 미리내 예고 음악과 1학년, 박이든이 웃으며 말했다.
박이든과 또 다른 음악과 1학년 정은성이 자리를 잡고 앉자 다른 연습생들도 서준을 둘러싸듯 앉았다. 휴식 시간 1초 1초를 아까워하던 모습들은 사라지고 소파에 파묻히듯 드러누운 연습생들의 얼굴은 편안해 보였다.
‘많이 보던 풍경이네.’
옛날, 브라운블랙이 코코아엔터에 온 서준과 놀면서 연습 시간을 때우던 것이 이어져 오고 있었다. 화이트도 데뷔 후 연습이 빡셀 때 가끔 회사에 들르는 서준과 놀아준다는 핑계를 댔고, 레드크라운은 아예 연습생 때부터 서준을 방패막이 삼아 숨을 돌리고는 했다.
‘서준이가 매일매일 왔으면 좋겠다!’
레드크라운 누나들의 말이 떠오른 서준이 키득키득 웃고 말았다.
그렇다고 1시간 2시간씩 노는 것도 아니고 겨우 10분, 20분.
지금 하는 연습이 피가 되고 살이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정말로 숨을 돌릴 때만 ‘이서준’이라는 비장의 카드를 사용하고 있었다. 그걸 알고 있는 직원들도 넘어주는 때가 많았다.
“차기작 할리우드 영화라며?”
“네.”
연습생 형의 물음에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베어라운드의 영화 캐스팅에 관한 기사가 떴다.
겨우 배우 두 명이 캐스팅된 극 초반의 상황이었지만 오히려 대중들은 더 궁금해하는 것 같았다.
“마린사 반응은 어때?”
정은성의 물음에 다른 연습생들도 귀를 쫑긋 세웠다. 바다 건너 일이라 더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모이는 시선에 서준이 말했다.
“건너건너 듣기로는 어셈블4 마무리랑 새 히어로 영화 때문에 바쁘대.”
서준의 말대로 마린사는 어셈블4을 완벽하게 마무리하고 새로운 시즌의 막을 열기 위해서 쉴 새 없이 바빴다. 오로지 흥행을 위해 다른 곳에는 신경 쓸 겨를이 없어 보였다.
서준의 말에 박이든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시즌1을 이렇게 멋지게 성공했는데 시즌2도 다들 기대하고 있을걸.”
“웬만해선 만족시키기 어려울 거야.”
“보통 시즌2, 3을 만들어서 시즌 1보다 흥행하는 작품이 별로 없잖아. 거기에 배우들까지 싹 바뀌면 더 그렇지.”
연습생 형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회사에는 어쩐 일이야?”
“손님이 오셔서.”
“손님?”
연습생들이 고개를 갸웃하는데 서준의 고개가 입구 쪽으로 향했다.
기다리던 사람이 나타난 것이었다.
서준이 활짝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서 오세요! 종호 삼촌.”
김종호의 등장에 코코아엔터 로비가 들썩였다.
가끔 회사에 들르는 서준도 신기한데 텔레비전에서만 보던 배우에게 시선이 몰리는 건 당연했다.
서준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연습생들이 잔뜩 긴장해 떨리는 눈으로 김종호를 바라보았다. 어렸을 때부터 드라마나 영화로 접했던 김종호의 모습은 마치 텔레비전 건너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서준은 너무 놀라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연습생들의 옆구리를 툭툭 치고는 김종호에게 소개했다.
“이쪽은 내년에 데뷔할 형들이에요.”
서준의 말에 헛숨을 들이킨 연습생들이 바짝 기합이 들어간 상태로 김종호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김종호가 미소를 지었다. 잠깐 쉬러 간다고 해놓고 이서준을 방패 삼아 놀고 있던 연습생들을 데리러 온 트레이너가 김종호와 서준을 보고 놀라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 * *
연습생들을 보내고 서준과 김종호는 서준의 연습실로 올라왔다.
“여기가 서준이 연습실이라고?”
“네!”
김종호는 서준의 연습실을 둘러보았다.
벽 한쪽 면이 모두 거울로 되어 있었고 그 구석에는 삼각대에 설치된 카메라들이 나란히 세워져 있었다. 거기다 천장에는 레일이 설치되어 있고 그 레일에는 카메라들이 달려 있었다.
여기저기 카메라가 달린 모습이 신기했던 김종호가 사방을 둘러보았다.
‘나 때는 카메라 하나와 대본만 있으면 어디서든 연습했는데 말이야.’
“이거 이렇게도 움직여요.”
서준이 리모컨으로 천장에 있는 카메라를 조종했다. 지이잉 위아래로 높이를 조절하며 움직이는 카메라에 김종호가 다시 감탄했다.
“앞뒤 양옆까지 다 찍을 수 있구요. 레일을 따라서 움직이게 할 수도 있어요.”
“대단한데?”
잠시 천장에 달린 카메라를 살펴보던 김종호가 고개를 모로 꼬았다.
“이 카메라…… 이번에 방송국에 새로 들어온 카메라 아니야?”
“네! 최민성 피디님이 이 카메라가 좋다고 하셔서 바꿨어요.”
영상미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내의원 피디의 등장에 김종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또 다른 카메라가 김종호의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이건 영화용이고?”
“그건 라이언 감독님이 추천해 주셨어요.”
기술이 발달하면서 카메라도 발달하고 있었다. 카메라에 따라, 사용하는 렌즈에 따라 화면에 나오는 배우의 느낌은 다르다.
‘물론 마지막 편집에 따라 분위기가 정해지겠지만.’
그건 감독의 손에 달린 일이라 서준도 어쩔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자신의 손이 닿지 않는 편집 전까지 노력으로 가능한 연습을 하기로 했다.
“그래서 카메라가 나오면 바꾸고 있어요. 카메라에 어떻게 찍힐지 알면 좀 더 잘 연기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안 쓰는 카메라는 카메라를 필요로 하는 곳에 기부하고 있었다.
서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김종호의 시야에 익숙한 카메라가 들어왔다.
“이건 많이 본 카메라네?”
김종호의 물음에 서준이 웃으며 대답했다.
“항상 좋은 카메라로 촬영할 것 같지는 않아서요. 가장 대중적으로 사용하는 카메라로도 찍히는 연습을 하고 있어요.”
“……엄청 철저하구나.”
헤헤 웃는 서준에 김종호가 진심으로 감탄했다.
* * *
드라마용, 영화용 많은 카메라가 있었지만, 김종호는 가장 대중적으로 사용하는 카메라 한 대를 선택했다.
“오디션 영상에는 정면 카메라밖에 못 쓴다더라고.”
“그래요?”
김종호의 말에 서준이 아쉬운 얼굴로 정면 카메라를 설치했다.
그 익숙한 모습에 김종호는 서준이 카메라를 움직이며 연습한 게 한두 번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카메라 설치를 끝낸 서준이 김종호에게 물었다.
“삼촌. 대본은 뽑으셨어요? 아니면 여기서 뽑을 수도 있어요.”
서준이 휴식 장소 옆에 준비되어 있는 프린트를 가리키며 말했다.
김종호가 고개를 저으며 손에 들고 있던 종이 몇 장을 보여주었다. 슬쩍 보이는 안쪽이 여러 색의 펜으로 짧은 글들이 적힌 게 보였다.
“여기. 가져왔지.”
“아, 그렇구나. 그럼 물은 안 필요하세요? 주스도 있어요. 배는 안 고프세요? 쿠키랑 빵도 있는데 드릴까요?”
한쪽에 세워진 냉장고를 향하려던 발걸음을 돌려 쿠키와 빵을 가져오려는 서준을 보며 김종호가 하하 웃고 말았다. 서준이 안절부절못하는 게 아주 잘 느껴졌다.
“왜 서준이 네가 더 긴장해?”
“으. 그러게요. 왜 이렇게 떨리는지 모르겠어요.”
“내가 떨어질까 봐 걱정돼?”
솔직히 말하면 그렇다.
종호 삼촌의 연기는 대단하지만, 할리우드에서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겠다.
‘마린사라면 마음이 편하겠지만 말이야.’
제프리 감독님은 괜찮을 것 같은데 베어라운드는 잘 모르겠다.
우물쭈물하던 서준이 입을 열었다.
“……조금요?”
그런 서준의 모습에 서준의 나이보다 오래 연기하면서 이런저런 일들을 겪어본 배우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뭐, 나도 붙을 거라는 확신은 없지만…… 무슨 오디션이든지 배우는 맡은 역할에 최선을 다하면 돼.”
쉽진 않겠지만, 감독이든 제작사든 ‘이 배우는 꼭 합격시켜야겠다’고 저도 모르게 생각할 만한 연기를 보여주면 된다.
“후우.”
김종호가 숨을 가볍게 내쉬었다.
가벼운 긴장이 온몸을 맴돌았다. 이런 느낌은 오랜만이었다. 어쩐지 이곳저곳 오디션을 보러 다녔던 풋풋한 신인 때로 돌아간 기분이 들었다.
“그럼 시작하자.”
“네.”
카메라에 붉은 불이 들어왔다.
배우 김종호의 고개가 카메라 렌즈로 향했다.
* * *
김종호가 1차 오디션 영상을 제출하고 며칠 후.
[생존자들]에 새롭게 캐스팅이 확정된 배우의 이름이 떴다.
“……밀란 첼런?”
떠오른 기사에 어쩐지 익숙한 이름이라고 박성원은 생각했다.
“어디서 들어봤는데…… 누구더라.”
곰곰이 생각하다가 어떤 투 샷을 떠올렸다.
레드카펫 위에서 악수를 나누던 서준과 흑인 배우.
“……아아!”
모두가 노미네이트 될 거라고 예상했지만 끝내 이름을 올리지 못했던.
서준과 함께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던 흑인 배우, 밀란 첼런!
[‘생존자들’ 데이비스 가렛×이서준×밀란 첼런!]
[어떻게 이 조합?! 세 배우를 홀린 작품이 궁금하다!]
[가장 기대되는 영화, ‘어셈블4’, ‘생존자들’]
-밀란 첼런! 기억하고 있었다!
=딸이 노미네이트 된 거 알려주는 영상 또 봤음ㅠㅠ
=22 몇 번을 봐도 눈물이 나오네ㅠㅠ
=시상식 때 보고 서준이랑 같이 작품하면 좋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만나네!
-베어라운드 미친 것 같다. 어떻게 이렇게 세 배우를 캐스팅하냐?
=22 진짜 작정한 것 같음.
-그래서 이 영화 언제 개봉하는 거야?
=아직 촬영도 안 함;;;
-굉장하네…… 알려진 거라고는 제목하고 배우 세 명밖에 없는데 다들 기대된다고 글 올리고 있어ㅋㅋ
=그 세 배우가 장난 아니니까.
=이 정도면 더 놀랄 일이 없는 것 같은데.
* * *
며칠 후.
대중들의 관심이 데이비스 가렛과 이서준, 밀란 첼런이 캐스팅된 [생존자들]에 쏠려 있을 때, 배우 김종호는 LA행 비행기에 타고 있었다.
<이제 출발한단다.
>이서준 : 종호 삼촌 화이팅!
>이서준 : 공항에 도착하면 킹즈에이전시 직원이 있을 거예요!
>이서준 : 한국어도 잘해요!
<고맙다. 서준아.
>박도훈 : 삼촌! 평소대로만 보여주세요!
>이지석 : 합격하면 한우ㅋㅋ
>이다진 : 오디션장을 뒤집어 놓고 오세요!
>이다진 : (응원하는 곰 이모티콘)
쏟아지는 메시지에 김종호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곧 LA행 비행기가 이륙합니다. 모두 안전벨트를…….]
안전벨트를 착용한 김종호가 창밖을 내려다보았다.
할리우드.
지금의 젊은 배우들은 할리우드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서준’이라는 배우 덕분에 할리우드가 가깝게 느껴질지도 몰랐다.
한국의 작품들이 전 세계에 동시 개봉되고 플러스+라는 스트리밍 서비스로 해외 팬들도 늘고 있으니 더욱 그랬다. 쉽게 할리우드에 도전하는 배우들이 많아진 것도 그 때문일 터였다.
하지만 김종호의 세대는 다르다.
그 당시 할리우드는 동경의 대상이었고 배우라면 할리우드에서 만들어진 영화에 한 번쯤 출연하고 싶었던 때였다. 김종호도 젊은 시절, 스크린을 가득 채우는 할리우드 영화를 보고 그런 꿈을 꾸었다.
“잘해보자.”
오디션을 앞두고 항상 긴장했던 신인 때처럼 그렇게 자신에게 다짐하는 김종호였다.
* * *
“정화수라도 떠 놓고 기도할까?”
이지석의 말에 서준과 두 사람이 웃음을 터뜨렸다.
김종호를 배웅한 네 배우는 점심을 먹기 위해 박도훈의 단골 만두 전골 가게로 향했다. 따로 방이 있어 편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종호 형 정도라면 떨어질 일은 없겠지만…… 운이 없어서 오디션 날 컨디션이 나쁘다든가, 어디 숨어 있던 대단한 배우가 나타날 수도 있잖아.”
‘합격하면 한우ㅋㅋ’라는 가벼운 메시지를 보낸 이지석이 초조한 듯 다리를 덜덜 떨었다. 그 모습에 서준과 박도훈, 이다진이 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이스케이프를 본 사람은 알겠지만…… 외국인들은 동양인 얼굴 잘 구분 못 하지 않나? 우리도 그렇잖아.”
박도훈이 서준과 두 배우의 앞접시에 커다란 고기만두를 하나씩 올려주며 말했다.
“그래도 에반 블록이나 리첼 힐 얼굴은 구분하잖아요. 종호 삼촌도 그럴 거예요. 여기 김치 매일 담근 거라 맛있어.”
“고마워요. 도훈이 형.”
“오빠. 김치 만두도 시킬까요?”
“……나만 초조한 거야?”
느긋한 세 배우의 모습에 이지석이 의아한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종호 삼촌이잖아요. 할리우드에서도 잘하실 거예요.”
“그리고 종호 삼촌이 떨어진다는 건 왠지 상상이 안 되지 않아요?”
박도훈과 이다진이 웃으며 말했다.
“괜찮을 거예요.”
서준까지 그렇게 말하니 달달 떨리던 이지석의 다리도 차츰 잦아들었다.
“그래. 종호 형이라면 잘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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