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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318화 (318/1,055)

0살부터 슈퍼스타 318화

서준 리가 소속된 킹즈에이전시에서 영화 출연 의사를 표했다. 킹즈 에이전시에 연락해 미팅 날을 잡은 기획팀장이 말했다.

“서준 리 측에서도 꽤 흔쾌히 받아들였네.”

데이비스 가렛의 출연으로 기존의 대본을 수정할 가능성이 있다는 말에 거절한 배우도 있었는데 서준 리는 대본을 보낸 지 얼마 되지 않아 긍정적인 답을 보냈다.

“아무것도 몰라서 가능한 건가?”

데이비스 가렛의 연기 스타일을 모르는 거라면 쉽게 결정 내렸을 수도 있었다.

기획팀장이 볼을 긁적이며 킹즈에이전시에 대본을 보낼 때 대본의 수정이 가능하다는 내용을 알리지 않았나, 기억을 되새겼다.

“에반 블록이나 리첼 힐에게 이야기를 들은 거 아닐까요? 두 배우는 데이비스랑 같이 어셈블도 출연해서 스타일을 알 테니까요.”

직원의 말에 기획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도 있겠네. 부디 좋은 이야기였으면 좋겠는데…….”

계약서에 사인할 때까지는 언제고 엎어질 수 있는 캐스팅이었다. 미팅 날을 최대한 빠르게 잡고 그날까지 마음의 변화가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뭐, 계약서 쓰고 나서도 엎어질 때도 있지만.’

부디 그런 일은 없길 바라며 기획팀장이 캐스팅 현황을 살폈다.

현재 계약서에 사인까지 끝낸, 캐스팅이 확정된 배우, 데이비스 가렛.

아직 계약서는 작성하지 않았지만, 출연 의사를 밝힌 배우, 서준 리.

마린사의 영원한 히어로와 마린사의 악당 중 가장 사랑받는 빌런의 이름에 베어라운드 기획팀장이 기분 좋게 웃었다.

“마린사에서 꽤 배 아파하겠는걸.”

* * *

검은색 모자를 푹 눌러쓴 서준이 직원의 안내에 따라 개인실로 이동했다. 단골 고깃집이라 안내하는 직원도 다른 손님들처럼 평범하게 서준을 대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들뜬 발걸음을 완전히 숨기지는 못했다.

“안녕. 서준아!”

“왔어?”

서준이 방 안으로 들어가자 반가운 사람들이 서준을 반겼다.

요즘 영화를 찍고 있는 이지석과 휴식기를 가지고 있는 박도훈, 김종호, 그리고 드라마에 출연 중인 이다진이었다.

“안녕하세요!”

“자자. 여기 앉아.”

“고래 구한다고 고생했어.”

박도훈의 말에 서준이 헤헤 웃으며 이지석의 맞은편에 자리를 잡았다.

“홈런도 쳤지! 그런 장면을 생중계로 볼 줄이야!”

“나 유니폼도 샀어! 오늘 가져왔으니까 사인 좀 해줘, 서준아!”

김종호의 말에 가방에서 유니폼을 꺼내려는 이다진의 모습에 서준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럼 고기부터 구울까? 오늘은 돼지갈비가 맛있대.”

이지석이 집게를 들어 숯불 위의 불판에 돼지갈비를 올렸다. 치지직. 양념이 잘 밴 돼지갈비가 뜨거운 숯불에 노릇노릇하게 구워져 갔다.

“올해는 연말공연 안 해?”

이다진의 물음에 서준을 빼고 모두 눈을 반짝였다.

영상화된 서준의 작품을 보는 것도 좋았지만, 배우의 호흡과 현장감을 느낄 수 있는 연극이 그보다 더 매력적이었기 때문이었다.

연말 공연을 한다고 하면 당장에라도 미리내 예고에 특별 강사로 올 것 같은 배우들의 모습에 서준이 웃으며 말했다.

“못 할 것 같아요. 차기작을 찍을 예정이라서요.”

베어라운드 기획팀장의 걱정과는 달리 아직 계약서는커녕 미팅도 하지 않았지만 서준은 벌써 찍을 생각이 가득했다.

대본을 받고 승낙한 이틀 전부터 대본을 분석하고 자신이 맡을 배역을 만들어나가고 있었다. 데이비스 가렛의 연기 스타일 때문에 다른 때보다 캐릭터 조성에 신중을 기하고 있었다.

“차기작?”

상추쌈을 싸고 있던 박도훈이 손을 멈추었다.

“요즘 재미있는 대본이 있었던가?”

서준의 마음에 든 작품이라면 박도훈도 꽤 흥미를 느꼈을 수도 있지만, 회사로 들어오는 대본 중에 그런 작품은 없었다.

“서준이가 출연하면 난리일 텐데…… 들리는 소문은 전혀 없던데?”

앞뒤로 잘 익은 돼지갈비를 가위로 자르던 이지석이 기억을 되새기며 말했다. 여전히 사람들은 서준의 다큐멘터리로 떠들썩했다. 차기작의 ‘ㅊ’ 자도 들리지 않았다.

“이스케이프 때처럼 최대한 끝까지 숨기려는 거 아닐까요?”

“그러게. 처음에 숨긴 만큼 폭발력이 대단했지.”

콜라를 마시던 이다진의 말에 소주를 마시던 김종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어느새 다들 식사를 멈추고 서준에게 관심이 쏠렸다. 서준의 대본 보는 눈이야 여기 있는 사람들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상추쌈을 야무지게 싸서 먹고 있던 서준은 미래를 예상하고 열심히 우물거렸다. 자신도 그렇지만 다들 연기에 대한 열정이 대단한 것 같았다.

“서준아. 우리한테만 살짝 가르쳐 줘봐.”

“대본은 있어? 읽어봐도 돼?”

“감독은 누구야? 장르는 뭐고?”

“누구랑 같이 연기해?”

예상대로 쏟아지는 배우들의 질문에 서준이 웃으며 말했다.

“데이비스 가렛이랑 같이 연기해요.”

“……응?”

뜬금없는 외국 배우의 등장에 네 배우가 눈을 끔벅였다.

그리고 몇 초 후.

이다진과 박도훈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지석과 김종호도 허어, 입을 벌리고 탄식했다.

“설마 차기작이…… 할리우드 영화야?!”

저도 모르게 소리를 지를 뻔한 이다진이 두 손으로 입을 막았다. 사방이 막힌 방이라고 해도 누가 들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 것이었다.

“네.”

서준의 대답에 다시 한번 감탄이 흘러나왔다.

“그 뭐냐. 서준아. 데이비스 가렛이면 레드본이지? 그럼 히어로 영화 찍는 거야?”

“형. 데이비스 가렛은 어셈블4로 계약 끝나서 이제 안 나올걸.”

김종호의 물음에 이지석이 대답했다.

“서준이도 쉐도우맨3로 계약 끝나지 않았어?”

“계약이야 새로 하면 되긴 하지만요.”

박도훈과 이다진도 도통 짐작이 되지 않는 듯한 얼굴이었다. 다들 불판 위에서 익어가는 고기보다 서준의 차기작에 대해 관심이 쏠린 것 같았다.

서준이 웃으며 말했다.

“히어로 영화는 아니고 재난 영화예요. 제목은 생존자들이고요.”

“제목부터 재난물 느낌이 팍팍 나네.”

김종호의 말에 세 배우도 고개를 끄덕였다.

“생존자들이라…… 이스케이프같은 느낌이려나?”

“할리우드 영화니까 스케일이 더 클 수도 있어요. 형.”

“운석 충돌 같은 거요?”

이다진의 말에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그건 너무 갔다.”

이지석이 웃으며 집게로 익은 고기들을 불판 옆으로 옮겼다. 다행히 타진 않았다.

“그래도 0퍼센트는 아니지.”

김종호의 말에 이다진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우주를 배경으로 하는 할리우드 영화는 꽤 있으니까 의외로 맞을지도 몰라요. 어때, 서준아? 내 말 맞지?”

눈을 반짝이는 이다진의 모습에 서준이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니에요.”

“에이. 아니구나.”

서준의 차기작 소식에 잠시 멈췄던 식사가 다시 시작되었다. 다 익은 고기를 냠냠 먹으며 서준이 차기작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 주었다.

고개를 끄덕이며 듣고 있던 박도훈이 물었다.

“감독님은 어떤 분이야?”

“이번이 두 번째 상업 영화시래요. 독립영화는 많이 찍어보셨고요. 제작사는 베어라운드예요.”

“마린사가 아니네.”

박도훈의 말에 다들 저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서준이 처음 데뷔하고 경력을 쌓아온 쉐도우맨 시리즈가 마린사의 영화라 저도 모르게 마린사의 영화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배경이 쇼핑몰이면 엑스트라들이 많이 필요하겠네.”

이지석의 말에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오디션도 볼 예정이래요. 배경으로 나올 엑스트라들은 주변에서 구할 예정이라는데 제가 맡을 배역의 가족도 구하거든요. 아버지랑 어머니 역이요.”

“그럼 동양인 배우를 쓰겠네.”

“네. 대사도 있어요.”

서준의 말에 김종호의 눈빛이 진해졌다.

그런 김종호의 모습을 알아차리지 못한 서준과 세 배우는 식사를 하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야기의 주제는 서준의 차기작 이야기에서 현재 촬영 중인 이지석과 이다진에게로 향했다.

“나도 한번 해볼까?”

뜬금없는 말에 서준과 세 배우의 시선이 한곳으로 쏠렸다. 소주잔을 들고 무언가를 고민하는 듯한 김종호가 보였다.

“응? 형이 뭘 한다고?”

고개를 갸웃하는 이지석의 모습에 김종호가 짧게 내뱉었다.

“오디션.”

“오디션…… 아, 오디션 심사요? 삼촌. 차기작 들어가세요?”

박도훈의 물음에 김종호가 볼을 긁적이며 말했다.

“아니. 서준이 차기작 오디션 말이야.”

“서준이 차기작이라면…….”

할리우드 영화고.

“오디션이라면…….”

서준이 가족으로 나오는……?

서준과 세 배우가 멍한 눈빛으로 김종호를 바라보았다.

“아니, 동양인 배우를 구한다잖아. 한국어로 연기하는지 영어로 연기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도 영어 좀 하고. 나이대로 보면 어색한 영어가 더 어울릴 수도 있고. 정 안 되면 서준이한테 발음 배워서 그대로 뱉어낼 수도 있고. 내가 배우면 사투리도 찰떡같이 한다고. 거기다 서준이 아버지 역에 나이도 어울리지 않나 싶고.”

네 사람의 시선에 민망한 듯 주절주절 김종호의 말이 길어졌다.

그제야 김종호가 진심이라는 걸 알아챈 서준과 세 사람이 입을 쩌억 벌렸다. 그 반응에 김종호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으음. 이 나이에 할리우드라니…… 주책인가?”

김종호의 말에 서준이 얼른 고개를 저었다.

주책이라니!

“아니에요!”

절대로 아니다.

오히려 정말로 멋있어 보였다.

김종호라면 이미 한국에서 손에 꼽히는 배우지 않나.

할리우드라는 새로운 장소에서 다른 신인 배우들처럼 오디션부터 보겠다는 건 어지간한 용기로는 부족한 일이었다.

서준의 출연이 알려진다면 사람들의 관심이 쏠릴 터였고 많은 관심이 쏠릴 만큼 철저히 비밀로 해도 김종호의 오디션 도전에 대해 알려질 가능성이 있었다.

‘그리고…….’

생각하긴 싫지만, 오디션에 탈락할 수도 있었다.

‘그럼 분명 안 좋은 기사들이 뜨겠지.’

서준이 생각하는 걸 김종호가 생각하지 못했을 리가 없었다.

서준의 활동으로 옛날보다 가깝게 느껴지는 할리우드로 가는 길.

하지만 여전히 성공보다는 실패할 확률이 더 큰, 험난한 길이었다. 지금도 매년 도전하는 배우들이 나오고 실패하길 반복하고 있었다.

게다가 그 누구도 아닌 연기파 배우, 김종호였다.

실패의 여파는 그다지 작지 않을 터였다. 연기파 배우라는 이미지에도 타격이 갈 수도 있었다. 그런데도 김종호는 도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 자리에 그게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를 모르는 배우는 없었다.

“전혀.”

김종호와 관련된, 다른 일이라면 장난삼아 어깃장을 놓았을 이지석이었지만 김종호의 도전을 무시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서준아. 형 역은 없어? 없다고? 그럼 삼촌은?”

오히려 김종호의 도전이 이지석의 도전 욕구를 끌어올린 것 같았다.

한국 작품으로 전 세계의 영화관에 걸리는 것도 꿈같은 일이지만 할리우드 영화에 출연해 세계적인 배우들과 함께 연기하고 싶은 것도 배우들의 꿈이 아닐까.

“멋진데요!”

“정말로요!”

박도훈과 이다진이 붉게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 생각만 하고 있던 자신들과는 달리 진짜로 도전하는 김종호가 정말로 대단해 보였다.

진심이 가득한 서준과 세 배우의 반응에 김종호가 크흠 헛기침을 하고 말했다.

“그럼 한번 도전해 볼까.”

쑥스러운 듯 시선을 피하며 말하는 김종호의 모습에 서준과 박도훈, 이다진이 활짝 웃었다. 우리 삼촌 멋있다!

이지석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종호 형. 오디션 붙어도 울지는 마.”

“야!”

애정이 담긴 이지석의 농담에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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