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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317화 (317/1,055)

0살부터 슈퍼스타 317화

잠시 서준을 바라보던 안다호가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서준이 네가 하고 싶다면 해야지. 그럼 독립 영화는 뒤로 미뤄둘게. 근데 어떤 작품이야?”

서준에게 건네주는 대본들은 전부 읽어본 안다호라 상자에 들어 있던 3개의 대본 중 어떤 작품인지 궁금해졌다.

“이거요.”

서준이 헤헤 웃으며 안고 있던 대본을 탁자 위에 올려두었다. 안다호가 대본 표지의 제목을 보았다.

[Survivors]

[생존자들]

안다호의 머릿속에서 그동안 읽었던 대본의 문장들이 잠시 뭉쳐졌다 흩어졌다. 그중에서 줄거리, 제작사, 감독 등 ‘생존자들’과 관련된 기억을 더듬은 안다호가 입을 열었다.

“제작사가 베어라운드지?”

“네.”

서준이 대본의 표지를 내려다보았다.

포효하는 곰 모양의 베어라운드 로고와 이름이 적혀 있었고 그 아래 캐스팅 완료된 배우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음. 마린사 이외의 다른 제작사 작품들은 킹즈 에이전시에서 조사해서 넘겨주거든. 아무래도 한국보다는 현지에서 조사하는 게 좀 더 정확하고 자세히 알 수 있으니까.”

안다호의 말에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제작사들은 몇 번이고 촬영했던 마린사와는 달리 어떤 곳인지 잘 몰랐다.

서준이 촬영했던 작품 중 쉐도우맨 시리즈 이외의 할리우드 영화 촬영은 오버 더 레인보우 하나뿐이었는데, 오버 더 레인보우가 웨일스튜디오 작품이긴 하지만 웨일스튜디오는 마린사의 자회사였다.

‘아예 관련이 없다고는 할 수 없겠지.’

오버 더 레인보우를 촬영할 때 마린사 쪽에서 영향을 끼쳤을 수도 있었다.

“2팀에서 킹즈에이전시에 고려할 부분들에 대해서 확실히 물어봤는데…….”

제작사의 간섭이라든가, 촬영을 이끌어나갈 감독의 성향, 아역 배우들을 대하는 태도, 촬영 환경과 스케줄. 그리고 기타 등등의 평가.

처음 작품에 대한 조사를 요청받았을 때, 길다란 목록으로 도착한 코코아엔터 2팀의 조사 목록에 킹즈에이전시는 질린 표정을 지었지만, 지금은 익숙하게 답변을 보내고 있었다. 한번 조사를 해두고 조금씩 갱신하고 있어서 지금은 조금 편했다.

안다호가 미간을 조금 찌푸렸다.

“주연 배우가 조금 걸린다고 하던데…….”

“주연 배우요?”

서준이 눈을 깜빡였다.

“데이비스가요?”

[데이비스 가렛]

대본 앞에 적힌 캐스팅이 확정된 배우의 이름을 다시 한번 내려다본 서준이 고개를 갸웃했다. 촬영은 한 번도 같이 해본 적이 없지만, 데이비스 가렛은 좋은 사람이었다.

‘연기도 잘하고.’

오히려 같이 연기하게 돼서 마음이 들떠 있는 서준에게는 안다호의 말이 의아하기만 했다.

“으음.”

잠시 침음성을 내뱉던 안다호가 입을 열었다.

“데이비스 가렛 배우가 즉흥적인 연기를 자주 한다더라고.”

“즉흥적인 연기요? 애드리브요?”

‘애드리브는 괜찮지 않나?’

잘만 하면 인상 깊은 장면이 만들어지는 게 애드리브였다.

서준이야 움직임이면 몰라도 대사만큼은 대본을 완벽하게 따라가기 때문에 해본 적은 없지만 말이다.

“애드리브라고 할지…… 할리우드 쪽에선 꽤 유명한 이야기인 것 같더라. 레드본1은 아예 대본을 갈아엎을 정도였고 레드본2도 반쯤 수정했고. 게다가 즉흥적인 연기인 만큼 상대 배역이 어렵다더라고. 네가 맡을 배역이랑도 부딪히니까 걱정이야.”

“와…… 그럼 데이비스는 즉흥 연기로 레드본 1을 연기한 거네요. 대단하다……!”

대본 그대로 연기하는 서준에게는 데이비스 가렛의 이야기는 딴 세상 이야기 같았다. 어쩐지 이야기를 듣고도 눈을 더욱 반짝이는 서준에 안다호는 쓰게 웃다가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배우와 매니저가 바라보는 관점은 다른 것 같았다.

“나보다는 에반 블록 배우나 리첼 힐 배우에게 묻는 편이 빠를 것 같아. 촬영장 바깥에서 보는 것과 함께 촬영했던 배우들의 평가는 다를 수 있으니까.”

서준이 얼른 휴대폰을 꺼냈다.

“지금 물어볼게요!”

<에반! 리첼!

<데이비스랑 연기하면 어때요?

엘에이에 있는지, 아니면 다른 곳에 있는지 두 배우의 답장이 늦어졌다.

서준은 [생존자들]의 대본 속, 데이비스 가렛이 맡을 배역의 대사들을 살펴보면서도 잠깐잠깐 휴대폰으로 시선을 주었다.

잠시 후 휴대폰이 울렸다.

도착한 메시지에 서준이 눈을 반짝였다.

>에반 : 데이비스? 어렵지.

>에반 : 나랑은 안 맞아.

에반 블록의 평가에 붕붕 움직이고 있던 서준의 꼬리가 축 늘어졌다. 그 모습만 보고도 뭐라고 메시지가 왔는지 알 것 같아 안다호는 웃고 말았다.

>리첼 : 난 재밌던데!

>리첼 : 어디로 튈지 몰라서 좀 더 배역에 집중하게 된달까?

>리첼 : 아, 어디로 튈지 모르는 건 아니네!

>리첼 : 데이비스는 철저히 배역대로 움직이는 거니까. 그걸 파악하면 좀 쉬워.

리첼 힐과 에반 블록의 평가가 갈렸다.

>에반 : 그래도 대사가 짐작하기 어려운 건 마찬가지라, 나 같은 연기 스타일하고는 안 맞아.

>에반 : 그리고 데이비스니까 넘어가는 거지 조금만 연기력이 부족했어도 난리 났어.

>리첼 : 근데 이쪽은 흥행만 하면 /장땡/이랑 느낌이라서, 데이비스 좋아하는 사람도 많아!

>에반 : /장땡/이라니…… 잘도 그런 단어를 알아오네.

>리첼 : /ㅎㅎ 한국드라마 재밌어./

>리첼 : 근데 갑자기 데이비스는 왜?

<어쩌면 같이 촬영할지도 모르거든요. 데이비스가 어떤 연기를 하는지 궁금해서요. 다호 형도 걱정하고요.

>리첼 : 아ㅋㅋㅋ 레드본1 이야기이지?

>에반 : ……그건 대본이 너무했어.

>리첼 : 에반이 이렇게 말할 정도니까 어느 정도인지 알겠지?

대본을 중시하는 에반 블록이 이렇게 말하는 정도라니. 데이비스 가렛이 갈아엎기 전의 대본이 궁금해진 서준이었다.

>에반 : 한번 해봐도 괜찮을 것 같아.

그 메시지에 기뻐하던 서준이 메시지를 보낸 사람의 이름을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리첼 힐이 아니라 에반 블록의 메시지였다.

<에반은 데이비스랑 안 맞는다고 하지 않았어요?

>에반 : 그건 내 연기 스타일이랑 안 맞는다는 이야기지.

>에반 : 준은 어떨지 안 해보면 모르는 거니까.

>리첼 : 그래! 왠지 준이라면 데이비스랑 재미있게 촬영할 것 같아.

<그럴까요?

>에반 : 촬영하고 싶은 거 아니야?

>에반 : 그럼 해야지.

에반 블록의 메시지에 서준이 고개를 들어 안다호를 바라보았다.

별처럼 반짝이는 배우의 눈빛에 안다호가 두 손을 들고 말았다.

“알았어. 베어라운드에 바로 연락할게.”

“네!”

신이 난 서준이 다시 [생존자들]을 읽고 있는 동안 안다호는 바로 2팀에 연락해 독립영화를 찾는 것을 중지시켰다. 서준이 할리우드 영화를 마음에 들어 한다는 소식에 2팀 직원들은 테이블 위 잔뜩 쌓아놓은 독립영화에 대한 자료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 * *

“안녕하세요.”

“반가워요. 이서준 학생.”

미리내 예고 지정 병원의 정신건강센터의 담당 의사가 웃으며 서준을 반겼다.

십여 년 전, 미리내 예고가 설립되고 이 병원의 정신건강센터에 의뢰를 맡길 때부터 수많은 학생을 담당해왔던 의사였다. 그 학생들이 연예계로 나가 활발히 활동한 덕분인지 다른 연예인도 많이 이용하는 곳이었다.

“오늘은 테스트만 하고 분석 결과는 다음 주에 나올 거예요. 혼자 할 수 있는 테스트 몇 개는 옆방에서 진행될 거고 편하게, 그리고 솔직하게 해주면 됩니다. 검사 결과는 보호자 이외에는 알려드리지 않으니 걱정 마시고요.”

“네. 감사합니다.”

의사와 이야기를 나눈 서준은 의사가 시키는 대로 검사를 시작했다. 지능 테스트가 아니라 현재의 심리에 대한 테스트라서 그렇게 어려운 건 없었다.

단지.

“……그림도 잘 그리네요.”

집, 나무, 가족, 사람 등 그림을 그려 현재의 심리 상태를 확인하는 테스트에서 벽에 걸어도 될 정도로 멋들어진 그림들이 나왔을 뿐이었다.

“학교에서 미술 수업도 듣거든요.”

의사의 감탄에 서준이 헤헤 웃었다.

고개를 끄덕인 의사가 종이를 정리하고 다음 테스트를 시작했다.

“제가 그림을 보여줄 거예요. 보자마자 생각나는 동물을 말해주세요.”

“네.”

의사가 카드를 뒤집자 검은색 물감이 흩뿌려진 듯한 그림이 나타났다. 불타는 나비 같은 그림에 서준은 ‘나비’라고 대답했다.

고개를 끄덕인 의사가 종이 위에 무어라 쓰고 다른 그림들도 뒤집었다. 서준은 처음으로 생각나는 물건이나 감정, 동물들 같은 것을 대답했다.

“이제부터는 옆방에서 혼자 하면 되요. 조용한 곳이니까 마음 편하게, 솔직하게 답하면 됩니다.”

“네. 알겠습니다.”

서준은 의사에게 받은 테스트 용지들을 들고 옆방으로 향했다. 작은 방은 조용하면서도 아늑한 게 사람을 풀어지게 만드는 것 같았다.

서준이 준비된 책상에 앉아 첫 테스트 용지를 펼쳤다. 빈칸이 있는 문장에 말을 채워 넣는 것이었다.

12. 나는 ____를 할 때 행복합니다.

서준이 연필을 들어 ‘연기’라고 적어넣었다.

그렇게 서준은 총 30문항의 문장을 느리지도 않고 빠르지도 않은 속도로 채워 나갔다.

“끝!”

첫 번째 테스트가 끝나고 서준은 다음 테스트 용지를 펼쳤다. 그렇게 삼십 분 정도 시간이 흘렀다. 객관식으로 답하는 테스트까지 모두 끝낸 서준은 이리저리 몸을 돌리며 스트레칭을 하고 밖으로 나왔다.

“선생님. 다 했어요.”

“그래요?”

서준에게서 건네받은 테스트 용지를 탁탁, 정리한 의사가 웃으며 말했다.

“결과는 다음 주에 나올 거예요. 한 번 더 들러주세요.”

“네! 감사합니다.”

서준이 밖으로 나가자 먼저 끝낸 한지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비슷한 시간에 다른 상담실로 들어갔던 지호가 먼저 나와 있자 서준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언제 끝났어?”

“고민하면 안 된다고 해서 진짜 생각나는 대로 말하니까 빨리 끝나더라.”

“진짜 생각나는 대로 말한 거야?”

“응. 넌 안 그랬어?”

지호의 물음에 서준이 미묘한 표정으로 웃고 말았다.

솔직히 불타는 나비같이 생긴 그림을 보고 무슨 동물 같냐고 물을 때는 그림과 완전히 똑같이 생긴 전생의 생물 ‘오스모스’라고 생각했고, 사방으로 뭉개진 진흙 같은 그림에서 어떤 동물이 떠오르냐고 물을 때는 노래 슬라임이 화가 났을 때 높은 소리를 내며 자폭하면 뭉개진 진흙 같은 모습이 된다고 생각했지만.

서준은 애써 그런 생각을 지우고 ‘현실’에 맞추어 그다음으로 생각나는 것들로 대답했다.

“나도 솔직하게 했지. 근데 어떻게 나올지 모르겠네.”

서준의 걱정스러운 말에 한지호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다 끝난 거 어쩔 수 없지. 요 앞에서 뭐 먹고 갈래?”

“그래. 그러자.”

안다호와 부모님께 건강검진이 끝났다고 메시지를 보낸 서준이 지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 * *

의사는 오늘 왔던 미리내 예고 학생들의 테스트지를 분석했다.

컴퓨터로 뽑아낸 결과와 자신의 눈으로 살펴본 모습들을 떠올리며 다음 주 상담에서 말해줄 정보를 하나하나 적어 내려갔다.

그리고 [이서준]의 차례가 되었다.

우려할 점은 없었다. 성격은 밝았고 제 길을 열심히 가고 있는 만큼 다른 아이들보다 걱정은 적었다. 가족과 친구들과의 관계도 좋았고 행복한 현재의 모습이 그대로 나타났다.

그중 한 가지,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연기에 대한 마음이 아주 강하다.

“이건 배우과 애들도 비슷한데…….”

여러 테스트에서 이서준이라는 배우가 지금 하고 있는 일, 그러니까 ‘연기’를 진심으로 좋아한다는 게 느껴졌다.

“……다르네.”

지금까지 의사가 담당했던 미리내 예고 학생들과 비교해 보아도 아주 강렬한.

보통 이름이 알려지고 유명해지면 그만큼 만족도가 높아서 간절함은 사라질 텐데도.

전 세계에 이름을 알리고 아카데미 상까지 받은 배우이건만 오디션 한 번, 단역 한 번 해보고 싶어 하는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 봐도 월등히 높은.

더 잘 연기하고 싶고 더 많이 연기하고 싶은,

이서준의 연기에 대한 집념이 결과지마다 나타나 있었다.

“……연기 못해서 죽은 귀신이 붙었나?”

어쩐지 온몸을 짜릿짜릿하게 하는 연기를 보여주는 이서준이라는 배우의 근원을 들여다본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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