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313화
주차장 같았던 도로가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톰과 친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조금 뚫린 길을 따라 LA스타디움으로 운전하기 시작했다.
“일찍 나오길 잘했네.”
“그러게.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올 줄이야. 엄청 중요한 경기 때만 이러는데…….”
더 늦게 나왔으면 자리가 없어서 못 들어올 뻔했다. 겨우 자리를 잡은 톰이 신기한 얼굴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은 푸르렀고 날씨는 적당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엄청 더웠는데 말이야.”
“그러게. 어느 순간부터 날씨가 좋아졌어.”
역대급 더위니, 폭염이니 하던 말들도 쏙 들어갔다.
일주일 전과는 완전히 다르게 나온 기후 예측 때문에 기상청도, 기후 관련 과학자들도 다들 영문을 몰라 당황한다는 사실이 알음알음 알려졌다.
누구도 날씨 변화의 원인을 알지는 못했지만 나아진 날씨는 야구 관람을 더욱 편하게 해주었다.
“근데 리, 시타 잘하려나? LA다저스에서 올린 영상 보면 잘하긴 하던데…….”
아마 그 연습 영상을 보고 관심을 가진 사람들도 많을 터였다. 시구도 시타도 제법 잘하던 서준 리. 하지만 짤막한 영상이라 편집 덕분이라는 댓글도 많았다.
친구의 말에 톰이 어깨를 으쓱였다.
“잘할걸.”
“네가 어떻게 알아?”
친구의 물음에 서준 리의 팬 톰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준은 못하는 운동이 없거든. 쉐도우맨3 액션도 진짜 어려운 거 아니면 준이 직접 찍었고 이스케이프 때도 그랬지. 축구도 잘하고 양궁도 수준급이야.”
“그래도 야구는 조금 다르지 않나?”
“두고 봐.”
준은 아주 멋진 모습을 보여줄 터였다.
* * *
중계석에 앉은 두 해설자가 LA다저스 측에서 준 종이를 훑었다.
시타할 서준 리에 대한 소개 글과 시타 순서에 관한 내용이었다. 시구할 때도 유명인사의 직업이나 나이에 따라 어느 정도 스토리를 넣기도 했다. 정치 쪽 인사라면 좀 더 근엄하게, 예능 쪽 인사라면 좀 더 웃기게.
종이를 훑던 두 해설자가 고개를 갸웃했다.
“내용은 괜찮은데…… 서준 리가 이 정도 실력이 되려나?”
“그러게.”
오늘 시타 이벤트의 성공 유무는 서준 리에게 달린 것 같았다.
* * *
>잭 : 사람 진짜 많아!
>잭 : 초대석 아니면 못 왔을 듯.
<ㅋㅋ타석 잘 보여?
>잭 : ㅇㅇ 잘 보여.
LA다저스 측에서 준 초대석의 티켓으로 잭의 가족과 부부, 나라 킴이 LA스타디움에 왔다. 간단한 연습 때문에 따로 왔지만 돌아갈 때는 같이 갈 예정이었다.
LA다저스 유니폼을 입은 서준이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 대기실에 앉아 있었지만, 경기장 전체의 들썩거림을 알 수 있었다. SNS에도 LA스타디움의 상황을 알리는 글들이 많이 올라왔다.
5만 6,000석 모두 매진.
전부 자신을 보러온 사람들은 아니겠지만 처음 마주하는 대규모의 관중들에 조금 떨리기도 하는 서준이었다.
등받이에 등을 기댄 서준이 씨익 웃었다.
당연히 기분 좋은 떨림이었다.
“서준아. 시간 다 됐어.”
“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시타할 시간이 다가왔다.
안다호와 직원의 안내에 따라 서준이 타석으로 향했다.
LA다저스 유니폼을 입고 안전을 위해 장비까지 갖춘 서준 리의 등장에 박수가 쏟아져 내렸다. 연신 서준 리와 진 나트라를 부르는 환호성에 서준이 답하듯 헬멧을 벗고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카메라가 그런 서준을 가까이에서 찍자, 양쪽의 전광판에 서준의 모습이 나타났다. 서준이 뿜어내는 아우라에 저절로 탄성이 나왔다. 그런 서준의 모습이 그대로 너튜브와 중계권을 가진 방송국을 통해 시청자들에게도 전해졌다.
-ㅠㅠ서준이ㅠㅠ
-내가 한국에서도 못 본 서준이를 미국에서 보다니ㅠㅠ
-유니폼 입으니까 야구 선수 같네.
-서준이가 야구선수였으면 매번 경기 직관 갔음 ㅎ
-222진심ㅎㅎ
“그럼 잘해보자.”
“네.”
서준과 주먹을 맞댄 로버트가 마운드로 올라갔다. 서준도 타석에 섰다.
해설자가 로버트와 서준 리를 소개했다.
[로버트 선수가 상대할 선수가 지금 타석에 들어섭니다. 17번 서준 리 선수. 오늘이 데뷔 무대죠. 리 선수의 본업은 할리우드 배우고 본업에서는 뛰어난 성적을 보이고 있는 선수입니다.]
해설자의 말에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며칠 전 고래를 구하고 이번엔 LA스타디움을 구하러 왔습니다. 기대대로 오늘 LA스타디움은 시작부터 만석입니다. 역시 할리우드 배우의 인기는 무시무시하군요.]
[그냥 할리우드 배우가 아니죠. 슈퍼스타입니다. 서준 리 배우가 앞으로도 멋진 작품을 보여주길 바라며, 경기 시작합니다!]
서준은 배트를 양손으로 감싸고 자세를 잡았다. 연습을 통해 익혔던 자세가 자연스럽게 나오자 포수 헤이든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포수 뒤 주심은 오호, 감탄했다.
준! 진 나트라! 이서준! 서준아!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등골이 오싹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을 직접 만나는 것은 처음이라 더욱 그랬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좋은데?
앞뒤 양옆. LA스타디움을 꽈악 채우고 있는 이 많은 사람들이 자신만 바라보고 있는 상황이 서준은 참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조금 더 기합이 들어갔다.
여기서 얼마나 자신의 팬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배우라는 직업으로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 서는 건 드문 일이니까.’
[(선)엘프의 기초호흡이 발동됩니다.]
서준 리의 아우라가 더욱 반짝이고 사람들의 관심이 쏠렸을 때, 주심이 외쳤다.
[플레이볼!]
수많은 사람들이 숨을 죽였다.
로버트가 양팔을 가볍게 위로 들어 올렸다.
[로버트 선수 와인드업!]
그리고 디딤발을 내딛고 포수를 향해 공을 던졌다.
[첫 구! 빠릅니다!]
[설마 이걸 치나요?]
해설자도 관중들도 생각보다 빠른 공에 모두 엉덩이를 들썩거렸다. 이걸 친다고? 생각하기도 전에 콰악! 포수의 글로브에 야구공이 박혔다.
[아아. 역시 너무 빨랐습니다.]
[로버트 선수, 이게 시타인 걸 잠시 잊은 모양이군요.]
아아.
아쉬움 가득한 소리가 관중석을 울렸다. 그 모습 그대로 카메라를 통해 시청자들에게 전해졌다.
-이건 너무 빨랐음.
-22 그냥 휙 지나가는 데 어떻게 치냐?
-타석에서 보면 더 빠를 거 아냐?
“어때?”
그런 관중석의 반응이 훤히 느껴지는 곳.
타석에선 서준에게 헤이든이 물었다. 걱정이 담긴 헤이든의 물음에 서준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제가 기획한 거잖아요. 오히려 기대했던 반응이라 좋은걸요.”
“그래? 알았어.”
서준의 말에 헤이든이 킬킬 웃으며 로버트에게 수신호를 보냈다.
[자, 두 번째 공입니다. 로버트 선수 와인드업!]
[이번엔 좀 느려야 할 텐데 말이죠.]
[네! 던졌습니다!]
공이 빠르게 날아갔다.
서준 리는 배트를 휘두르지도 못한 채 야구공은 포수의 글러브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전광판에 찍힌 숫자에 관중들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네. 첫 구보다 빠르군요.]
[로버트 선수 실제 경기로 착각하는 게 아닌지 모르겠어요.]
-??우리 서준이를 시타로 불러놓고 이러기냐?
-22 이렇게 할 거면 부르지를 말든가.
-? 6피트 아래에 묻히고 싶냐??
인터넷에서 살벌한 대화들이 오가는 것도 모르는 로버트는 야구모자의 챙을 내리누르며 가라앉은 분위기를 살폈다.
‘이런 압박감은 오랜만인데…….’
관중석의 모든 사람들이 적이 된 것만 같은 느낌. 그래서 더욱 입꼬리가 올라갔다. 평범한 시타 이벤트마저도 하나의 드라마로 만든 슈퍼스타의 계획이 로버트도 참 마음에 들었다.
[투 스트라이크 상황에서 로버트 선수 와인드업!]
LA스타디움에 적막감이 내려앉았다.
모두 숨도 쉬지 않고 보는 듯했다. 비록 관중석은 멀었지만, 연극처럼 모든 사람들의 시선과 움직임과 숨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던졌습니다!]
로버트가 오른팔을 휘둘러 공을 내던졌다.
[더 빨라졌어?!]
이미 어떤 내용의 이벤트인지 알고 있던 해설자들도, 아무것도 모르는 관중들도 저도 모르게 상체를 앞으로 내밀었다.
그리고,
히어로의 공격은 마지막에 통하는 법.
서준은 가볍게 들어 올렸던 왼쪽 다리를 힘껏 내딛고, 중심축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옮기며 두 손으로 잡고 있던 배트를 있는 힘껏 내둘렀다. 새하얀 공이 포수의 글로브에 들어가기 전 빠르게 휘둘러진 야구 배트와 맞닿았다.
타앙!!
호쾌한 소리가 LA스타디움을 울렸다.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짜릿해지고 머리카락이 한 올 한 올이 쭈뼛 서는 이 소리.
뭔가를 생각하기도 전에 배트를 맞고 허공으로 떠오른 야구공을 따라 사람들의 고개가 둥글게 움직였다. 저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선 사람들이 3루 쪽으로 날아가는 야구공을 보았다. 그 모습이 마치 슬로우 영상처럼 보였다.
입이 쩌억 벌어지고 눈이 더 이상 커질 수 없이 커졌다.
빠른 속도에 미처 치지 못했던 두 번의 공이 안타까워, 서준 리가 안타만이라도 친다면 기쁘게 박수를 보낼 생각이었건만.
[넘어갑니다아아!!]
[홈런!! 홈러언!!]
흥분한 해설자들의 고함 소리가 스피커를 타고 경기장을 울렸다.
홈런! 홈런이었다.
그 소리에 정신이 든 사람들이 있는 힘껏 소리를 질렀다.
새하얀 공이 담장을 넘어 관중석에 앉아 있던 한 소년의 글로브 속으로 쏙 들어갔다. 공이 날아와서 무의식중에 들어 올렸던 글로브에 묵직한 감각이 느껴졌다. 얼떨떨한 표정의 소년과 헬멧을 벗고 활짝 웃고 있는 서준의 모습이 전광판에 보이자 다시 한번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서준 리 선수!! 데뷔 무대, 첫 홈런입니다!]
[속도는 이전보다 빨랐는데 홈런이라뇨!? 대단하네요!]
[어찌 됐든 시타 홈런입니다!!]
[시타에서 홈런이 나온 건 처음 아닌가요?!]
상상하지도 못한 할리우드 스타의 홈런에 LA스타디움이 폭발했다.
미리 2번의 공을 거르고 3번째 공에서 안타, 혹은 홈런을 친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해설자들도 너무 흥분해서 맥락 없이 떠들어댔다. 계획대로 되려면 서준 리의 타격 실력이 좋아야 할 터였는데 홈런을 칠 줄은 생각도 못 했기 때문이었다.
본 경기가 시작하기 전이었지만 슈퍼스타의 플레이에 관중들이 유니폼을 흔들며 소리를 질렀다.
[17번 LEE의 유니폼이 있었다면 오늘 매진됐겠죠!!]
[그 유니폼 갖고 싶네요!!]
헬멧을 벗은 서준 리가 1루, 2루, 3루를 돌아 홈으로 돌아오자 다시 한번 환호성이 쏟아져 내렸다. 그 환호성에 볼이 붉게 물든 서준이 환하게 웃으며 양손을 휘휘 휘둘렀다.
* * *
[배우 이서준,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완벽한 시타!]
[LA스타디움에서 홈런!? 본업은 배우인 이서준 선수!]
[배우인가, 야구선수인가? 배우 이서준 홈런!]
[홈런볼에 사인까지! 이서준 홈런볼, 여기저기서 구매 글 올라와!]
-이서준 최고다!!
-근데 배우가 홈런 칠 수도 있는 거야? 일정 보면 연습도 며칠 안 한 것 같던데.
=LA스타디움이 다른 경기장에 비해서 경기장이 작음ㅎ
=+)속도가 빠르긴 했는데 투수가 치라고 잘 던져줬음.
=+)이서준도 잘 침. 친구가 선수라던데 같이 놀다가 실력이 쌓인 모양.
=+)ㅇㅇ타이밍도 잘 맞음ㅎ
-와. 두 번째 공까지는 너무 빠른 거 아니냐고 투수 욕했는데…… 더 빠른 공을 쳐서 홈런 됐구요?
-앞의 두 번은 일부러 안 친 것 같음.
=22 첫 구에 쳤으면 그걸로 끝인데 3구까지 끌고 가서 치니까 사람들 다 놀람. 경악ㅋ
=ㅇㅇ진짜 경기도 아닌데 내 심장이 다 쫄림ㅎ
-끝나고 서준이랑 투수랑 마주 보며 웃을 때 사이좋은 거 알았음ㅎ
=두 번째 공 던졌을 때까지 욕하고 있었다. 미안하다 로버트ㅎㅎ
-휴대폰으로 보고 있다가 홈런 쳤을 때 너무 놀라서 휴대폰 떨굼ㅠㅠ아직 약정 남아 있는데ㅠ
=22 진짜 경기도 아닌데 손에 땀이 찼음ㅋㅋ
-우리 아파트 다 이거 보고 있었는 듯. 홈런 치고 아래위, 옆집 고함 소리 장난 아니었음. 물론 우리집도 그랬다ㅎ
=22 출근했는데 이것만 보고 있었다ㅋ 다들 몰래 보고 있었는지 서준이 홈런 칠 때 다 같이 소리 지름ㅋㅋ 겸사겸사 LA다저스 경기도 봤고.
=근데 명장면은 이서준 홈런ㅋㅋㅋㅋ
=지금 뉴스에서 엄청 틀어주는데…… 몇 번을 봐도 짜릿함!
-역시 이서준 운동신경은 ㅎㄷㄷ
=이제 전 세계가 알았겠지!
=이게 배우기만 하면 국가대표를 제안받는 수준의 운동 실력인가ㅋㅋ
=??? : 이런 운동천재를 할리우드에 빼앗겨 버리다니……!
=ㅋㅋㅋㅋ
-진 팀에서 차라리 준을 데려오라고 난리더라ㅋㅋ
=나도 봤음. 거기서 노히트노런이 나올 줄이야ㅋㅋ
=/준이 너희보다 잘 치겠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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