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살부터 슈퍼스타-312화 (312/1,055)

0살부터 슈퍼스타 312화

“안녕하세요.”

환하게 웃으며 나타난 서준 리의 등장에 조용하던 연습장이 들썩였다.

“반갑습니다. 리!”

LA다저스 홍보팀과 오늘 훈련을 함께해 줄 투수 로버트과 타자 헤이든, 스카우트 필립이 서준을 맞았다.

아직 서준의 시구 소식을 알리지 않아 기자들은 없었고 보도자료로 내보낼 서준의 연습 장면을 촬영하는 촬영팀이 있었다.

“오늘 잘 부탁드립니다.”

“저희야말로.”

인사를 나누고 서준과 투수 로버트, 타자 헤이든이 몸풀기에 들어갔다. 능숙하게 스트레칭을 하는 모습이 제법 운동을 해본 모양이라 두 선수는 신기한 눈으로 서준을 보았다.

“준. 운동한 적 있어요?”

“취미로 조금요.”

로버트의 물음에 서준이 웃으며 대답했다. 무언가를 떠올린 헤이든이 말했다.

“친구가 야구선수라고 들었는데. 타격 자세는 알고 있겠네?”

“네. 어제 자세히 가르쳐 줬어요.”

“그럼 시타보다는 시구가 오래 걸릴 것 같으니까 시구 먼저 할까?”

헤이든의 말에 서준과 로버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스트레칭을 끝내고 헤이든은 포수석에 자리를 잡았고 서준과 로버트는 마운드보다 조금 앞에 자리를 잡았다.

“일단 여기서부터 천천히 거리를 늘려보죠.”

“네. 알겠습니다.”

투수 로버트가 먼저 시범을 보였다.

로버트는 야구공을 잡고 있는 자신의 손을 서준에게 보여주었다. 검지와 중지가 야구공의 실밥을 가로질러 잡고 있었다. 서준도 들고 있던 야구공으로 그대로 잡아보았다.

“포수의 글로브에 제대로 들어가기 위해선 패스트볼이 나을 겁니다. 홈플레이트까지 직선으로 날아가서 제구도 그다지 어렵지는 않을 거고요.”

“네.”

“와인드업, 킥킹, 스트라이드, 릴리즈 순입니다.”

투구 준비 자세 와인드업.

축이 되는 발로 중심을 잡고 디딤발을 들어 올리는 킥킹.

디딤발을 땅을 내딛는 스트라이드.

공을 손에서 놓는 릴리즈.

천천히 하나하나의 자세를 서준에게 보여준 로버트가 이번에는 빠르게 움직였다.

로버트의 손에서 날아간 야구공이 헤이든의 글러브에 박혔다. 서준이 짝짝 박수를 치자 로버트가 웃으며 말했다.

“속도는 많이 내지 않아도 됩니다. 속도보다는 제구를 중심으로 연습하죠. 포수의 글로브 근처에만 가도 포수가 알아서 잘 잡아줄 거니까 걱정하지 마시고요.”

“네. 알겠습니다.”

“그럼 가볍게 던져볼까요?”

로버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서준이 자세를 취했다. 일단 한번 던진 다음 자세를 고치자고 생각하며 로버트가 몇 걸음 물러섰다.

먼저 와인드업.

처음 해보는 동작이면 어색하게 마련인데 서준에게서는 전혀 그런 기미가 보이지 않아 로버트도 포수 마스크를 쓰고 있던 헤이든도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다음 동작들은 빠르게 이어졌다.

킥킹,

스트라이드,

그리고 릴리즈!

서준은 들어 올렸던 디딤발을 땅으로 내디디고 무게중심을 앞으로 이동시킨 다음 팔을 휘둘러 공을 던졌다.

감탄할 새도 없이 서준의 손에서 날아간 야구공이 그대로 헤이든의 글로브에 박혔다. 연습 삼아 해본 투구라 그렇게 공이 빠르진 않았지만 다들 놀란 얼굴로 서준과 포수의 글로브를 번갈아 보았다.

“준. 더 힘껏 가능해요?”

서준의 근처에 서 있던 로버트가 눈을 빛내며 서준에게 말했다. 공을 던지고 나서도 여유로운 서준의 모습은 아직 전력을 다하지 않듯 보였다. 로버트의 물음에 서준이 웃으며 대답했다.

“네.”

“그럼 마운드 위에서 해볼까요? 속도도 조금 올려보죠. 제구는…… 포수 근처까지만 가도 헤이든이 잘 잡아줄 거예요.”

로버트의 말에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는 거리를 조금 더 멀게, 마운드 위에서 던지기로 했다.

서준이 다시 공을 던지려고 하자 홍보팀 팀장이 팀원을 불러 스피드건을 가지고 오라고 지시했다. 이런 기록 하나하나가 다 보도자료가 되고 화제가 된다.

‘그게 뛰어난 기록이라면 더할 나위 없지.’

로버트의 조언에 자세를 가다듬은 서준이 다시 한번 공을 던졌다.

조금 전보다 묵직하게 디딤발을 내디디고 팔에 좀 더 힘을 주었다. 아까보다 빠른 속도로 날아간 공은 다른 곳으로 빠지지 않고 정확히 포수의 글로브 안으로 들어갔다.

거리는 멀어졌는데 속도는 더 빨라졌고 제구도 완벽했다.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던 로버트가 고개를 돌려 서준을 보고 물었다.

“준. 한국에서 야구 한 적 있습니까?”

“아뇨. 친구랑 놀아본 게 다예요.”

“야구 해도 될 것 같은데…… 관심 없어요?”

“아하하하.”

서준이 웃는 사이 로버트는 서준을 위아래로 살펴보았다.

투구 자세는 더 뭐라고 할 것 없이 자연스러웠고 제구도 완벽했다. 속도도 로버트의 예상보다 빨랐다.

‘게다가…… 아직 여유로워 보인다는 말이지.’

로버트는 서준에게 더 세게 던져보라고 하고 싶지만, 선수가 아닌 배우에게 무리한 요구를 할 수는 없어 그저 말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서준은 마운드 위에서 몇 번 공을 던졌다.

와인드업, 킥킹, 스트라이드, 릴리즈.

서준의 자연스러운 투구 모습은 배우의 시구 연습이 아니라 선수의 투구 연습으로 보일 정도였다.

서준이 던진 야구공이 빠른 속도로 날아가 글로브 안에 박히는 모습에 로버트는 볼을 긁적이며 말했다.

“시구는 더 연습 안 해도 될 것 같습니다.”

100마일을 던져야 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정확한 자세로 포수의 글로브에 들어갈 정도로 던지기만 하면 됐다. 로버트의 말에 홍보팀도 동의했다. 몇 시간은 걸릴 줄 알았는데 너무 일찍 끝나 버렸다.

로버트의 말에 포수 마스크를 쓰고 있던 헤이든이 마스크를 벗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이제 타격을 해볼까?”

“네.”

“조금 전에 들었는데 스카우트에게 들었는데 배팅장에서 좀 쳤다며?”

헤이든의 말에 서준의 시선이 필립에게로 향했다. 지레 놀란 필립이 어색하게 웃는 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에 작게 웃은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친구랑 가끔 같이 가요.”

“그럼 일단 준의 방식대로 쳐보고 그다음에 살펴보자.”

“알겠습니다.”

마운드에는 로버트가 섰다.

“속도는 140 정도. 위치는 정중앙이야.”

“네!”

피칭머신이나 친구들이 던지는 공만 쳐봤지 진짜 프로 선수의 공을 쳐보는 것은 처음이라 서준도 조금 떨렸다. 하지만 기분 좋은 떨림이었다.

야구 배트를 잡은 두 손을 두어 번 쥐었다 펴고 후우, 숨을 내쉰 서준이 마운드 위의 로버트를 바라보았다.

“……분위기만 봐선 경기인데?”

조금 떨어져 구경하던 사람들이 마운드에선 로버트와 타석에선 서준을 번갈아 보았다.

타석에 선 서준의 진지한 표정은 이해가 가지만 마운드에선 로버트의 굳은 표정은 조금 의아했다. 정말로 경기를 치르는 듯한 표정이었다.

연습장에 알 수 없는 긴장감이 돌았다.

곧 로버트가 와인드업 자세를 취했다.

‘가장 중요한 건 야구공에서 눈을 떼지 않는 거야.’

잭의 말을 되새기는 서준의 눈동자가 야구공을 쥐고 있는 로버트의 손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로버트는 왼쪽 다리를 내디디며 오른팔을 휘둘렀다. 야구공이 날아와 포수의 글로브에 박히기도 전에 먼저 배트와 맞닿아 버렸다. 서준은 그대로 배트를 밀어 올렸다.

타앙!

서준의 운동신경을 익히 알고 있는 매니저 안다호와 두 선수를 빼고는 거기에 있던 그 누구도 첫 연습부터 서준이 공을 쳐낼 줄은 몰라 멍하니 허공으로 날아가는 새하얀 공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마운드에 선 로버트의 시선도 공을 따라 향했다.

“……이럴 줄 알았어.”

로버트가 어이없다는 듯 웃고 말았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타석에 서 있는 서준을 보았다.

“실수할 뻔했네.”

타석에 선 타자가 칠 생각이 가득하다면 그 생각을 파악하고 타자가 칠 수 없는 곳으로 던져야 하는 게 투수였다.

처음부터 끝까지 공에서 떼지 않는 서준의 눈과 어쩐지 칠 것 같다는 예감이 로버트를 잠시 착각하게 만들었다.

할리우드 배우를 보며 잠시 ‘타자’라고 생각한 것도 어이가 없는데 무의식중에 타격을 피하려고 약속했던 정중앙이 아니라 몸 바깥쪽으로, 그것도 더 빠른 속도로 던질 뻔했던 로버트였다.

그리고 또 한 사람.

서준이 자세를 잡을 때부터 속으로 감탄하던 헤이든이 서준에게 물었다.

“한국에서 야구 한 적 있어?”

“아뇨. 친구랑 논 게 다예요.”

“지금부터 야구해도 늦지 않은 것 같은데? 어때?”

“아하하하.”

눈을 번뜩이는 헤이든의 말에 서준은 하하 웃기만 했다.

“어째서 타격을 봐야 한다고 했는지 알 것 같군.”

홍보팀 팀장이 침음성을 삼켰다.

오랜 시간 동안 야구를 봐왔기 때문에 보는 눈은 누구 못지않았다. 시구를 했을 때도 놀라웠는데 시타도 그 못지않았다.

‘둘 다 잘한다면 좀 더 화려하고 비하인드가 있는 시타 쪽이 낫겠지.’

시구 쪽으로 향해 있던 홍보팀장의 마음이, 어떤 자리에서도 볼 수 있을 정도로 멋지게 공이 날아가는 시타 쪽으로 확 기울었다.

모두 감탄하는, 정말로 할리우드 배우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호쾌한 서준의 타격은 계속 이어졌다. 로버트가 던지는 공의 속도가 점점 빨라졌지만 서준 리는 단 하나도 놓치지 않고 쳐내고 있었다.

“본업은 배우고 부업은 야구선수 아니야?”

호쾌하게 하늘 저편으로 날아가는 새하얀 공에 저도 모르게 그런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날아가는 공을 보며 잠시 생각하던 로버트가 서준에게 말했다.

“준. 다른 코스도 괜찮겠어요?”

“음. 몸 안쪽만 피해주시면 괜찮을 것 같아요.”

어느 공이든 쳐낼 수는 있지만, 촬영 중이니만큼 여러모로 논란이 될 일은 안 만드는 게 나았다.

“제구는 걱정하지 마세요.”

타자를 잡아야 하는 경기도 아니고.

로버트는 웃으며 재능 있는 어린 선수…… 가 아니구나. 저도 모르게 재능 많은 후배를 바라보듯 흐뭇하게 웃고 있던 로버트가 볼을 긁적였다. 헤이든도 비슷한 생각이었는지 서준의 자세에 조금씩 조언을 붙였다.

서준 리의 시구, 시타 연습은 어째서인지 두 선수와 서준의 훈련 아닌 훈련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서준이 공을 던지면 헤이든이 받아쳤고, 로버트가 공을 던지면 서준이 받아쳤다.

로버트가 던지는 공의 속도가 빨라질수록 서준의 쳐낸 공의 거리도 늘어만 갔다.

타앙!!

그 소리에 모두 직감했다.

이건 넘어간다.

로버트와 서준, 헤이든의 시선이 위로 향했다. 카메라와 사람들의 고개도 하늘로 향했다.

“와아……!”

결국, 담장을 넘고만 야구공에 다들 한숨이 섞인 감탄을 내뱉었다.

그런 사람들의 모습에 자신의 눈이 틀리지는 않은 것 같아 통쾌하기도 하면서도 역시 서준 리의 재능이 아까워 스카우트 필립은 아쉬움 가득한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잠시 휴식 시간을 가진 서준과 두 선수가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사람들의 눈에 들어왔다.

“준은 야구 선수 안 하겠죠?”

“제가 팬이라서 아는데 안 할 겁니다. 준이 연기를 얼마나 좋아하는데요.”

어쩐지 뿌듯하면서도 아쉬움 가득한 어투였다. 서준 리의 팬과 야구팬의 마음이 오락가락하는 중이었다.

안다호가 준 스포츠음료로 목을 축인 서준이 로버트와 헤이든에게 물었다.

“조금 전처럼 하면 시타할 때도 홈런 칠 수 있을까요?”

“오. 홈런 치려고?”

헤이든의 물음에 서준이 웃으며 말했다.

“칠 수 있을지 없을지는 몰라도 한번 해보려고요.”

환하게 웃는 서준의 모습에 로버트와 헤이든은 어쩌면 정말로 준이 홈런을 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 * *

[배우 이서준, LA스타디움에서 시타!]

[내일 LA스타디움에서 이서준 시타 예정!]

[시구가 아니라 시타? 친구의 영향?]

-? 이렇게 갑자기요?

-근데 요새 떠들썩한 거 보면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님.

=22 고래 관련 상품도 많은데 이서준이 나와야지.

=나 고래 모양 케이크 봤어ㅋ 맛있더라ㅋ

-다큐 나올 때까지는 계속 화제일 것 같네.

=다큐나와도 화제일 듯ㅎ

-우리 서준이가 시타라니…… 홈런 날리고 오는 거 아니야?

=왠지 그럴 것 같다.

=서준이 운동신경이면 뭐ㅋㅋ

-LA라니! 꼭 보러 가야지!

=22 우리 동네에서 서준이를 볼 줄이야!

* * *

LA스타디움 홈경기 당일.

서준 리의 시타 소식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보였고 그 관심은 곧바로 LA스타디움으로 향했다.

운전석에 앉은 흑인 남자가 창밖으로 고개를 빼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여기가 주차장이야, 도로야?”

“오늘 내에 스타디움에 갈 수 있긴 한 거야?”

서준 리와 함께 고래를 구출했던 톰과 톰의 친구가 도로를 가득 채운 차들을 질린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