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311화
촬영이 끝나고 이틀 후.
안다호가 나라 킴의 저택에 들렀다.
“다큐멘터리를 두 개로 나누어서 방송하기로 했대.”
“두 개요?”
안다호의 말에 서준이 고개를 갸웃했다.
“응. 서준이 네가 나오는, 조금 예능 느낌이 섞인 1부하고 네가 나오지 않는 다큐멘터리인 2부로. 1부는 조금 가벼운 분위기로 편집할 예정이고 2부는 조금 깊게 들어갈 예정이래.”
오호.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다큐멘터리를 보지 않던 사람들도, 진지한 다큐멘터리를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도 만족하게 할 수 있을 터였다.
“좋은 방법이네요.”
“ABS 방송국 쪽에서도 한 번의 촬영에 두 개의 프로그램을 얻게 되서 좋아하고 있대. 아무래도 엄청 화제가 되다 보니 벌써부터 광고를 하고 싶다는 제안이 줄을 서고 있다더라.”
“그렇구나.”
“그리고 방송은 2주 후에 방송하지 않을까 싶어. 그리고 플러스에도 업로드될 예정이고.”
안다호의 말에 서준이 반색했다.
“한국에서는 어떻게 보나 걱정했는데. 플러스에 업로드된다면 한국에서도 편하게 볼 수 있겠네요!”
지금 한국에 있는 방송국들이 배우 이서준의 다큐멘터리를 사 오기 위해 얼마나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는지는 꿈에도 모르는 서준이었다.
안다호도 건너건너 그 소식을 들었다. 광고를 넣을 기업들도 서준의 다큐멘터리가 어느 방송국으로 갈지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피디님이 1부와 2부의 내레이션을 너한테 부탁하고 싶다더라.”
서준이 고개를 갸웃했다.
“저 다음 주에 한국으로 돌아가잖아요. 다큐멘터리 영상도 편집해야 할 거고 영상에 맞는 대본도 적어야 할 텐데…… 시간이 될까요?”
하나면 몰라도 1부, 2부 나누어서 방송한다면 편집도 꽤 시간이 걸릴 터였다.
‘좋은 대본도 뚝딱 나오지는 않을 거고.’
서준의 물음에 안다호가 웃으며 대답했다.
“그렇게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래.”
안다호는 어제저녁, 피디와의 통화를 떠올렸다. 다음 주에 한국으로 돌아갈 예정이라는 안다호의 말에 아주 잠시 고민한 피디가 외쳤다.
‘그렇게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겁니다!’
촬영이 끝나고 조금 쉰 다음 편집에 들어갈 생각이었지만 피디는 금세 스케줄을 바꿨다. 서준 리의 내레이션으로 올라갈 시청률이며 화제성, 그 덕분에 얻는 여러 가지 이익을 놓칠 수는 없었다.
‘그래. 잠은 나중에 자도 돼.’
그때, 휴대폰 건너에서 희미하게 들렸던 피디의 말을 떠올린 안다호가 작게 웃었다.
잠시 생각하던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저는 괜찮아요.”
내레이션이라.
해본 적 없는 거라 해보고 싶긴 했다.
서준의 승낙에 안다호가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제안이 하나 들어왔는데.”
“제안이요?”
“응. 서준아. 시구해 보지 않을래?”
시구?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이야기에 서준이 눈을 깜빡였다.
* * *
하루 전.
인터넷을 가득 채운 서준 리의 이름에 LA다저스 홍보팀 팀장이 손가락을 꼽았다.
“히어로 어셈블에 고래 구출에 다큐멘터리 촬영, 그리고 고래 구름 등장까지. 거의 일주일이나 서준 리로 화제네? 근데 고래 구름이랑 서준 리랑 무슨 상관이야?”
홍보팀장의 물음에 직원 하나가 웃으며 말했다.
“아무래도 지금 제일 고래하면 생각나는 유명인이 서준 리잖아요. 이래저래 화제의 중심인 데다가 저런 구름까지 생겼으니 화제가 될 만하죠.”
“그 고래 구름이 지구를 한 바퀴 돈 덕분에 더 난리고요.”
“고래 관련 상품이나 이벤트도 많이 생겼답니다. 고래 투어도 많이 늘었다고 하던데요.”
직원들의 말에 홍보팀장이 턱을 긁적였다.
세상의 관심에 가장 민감해야 하는 게 홍보팀이었다.
여기저기 ‘고래’와 관련된 광고들이 쏙쏙 생겨나고 있는데, 화제의 중심이 지금 머물고 있는 캘리포니아, 그것도 LA에 있으면서 바로 앞에 좋은 기회가 있는데 놓칠 수는 없었다.
“음. 그럼 우리도 거기에 한 발 얹을까?”
“네?”
홍보팀장의 말에 서준 리의 다큐멘터리를 꼭 보자고 이야기를 나누던 직원들이 고개를 갸웃했다.
“며칠 뒤에 홈경기 있잖아.”
“네.”
“그 경기 시구자로 서준 리를 올리는 건 어때?”
오.
오!
홍보팀장의 제안에 홍보팀 직원들의 눈이 번쩍였다.
* * *
점심을 먹고 사무실로 돌아온 두 스카우트가 한쪽 책상을 바라보고 주춤, 뒤로 물러섰다.
“필립, 쟨 왜 저래?”
두 사람의 시선이 책상에 죽은 듯이 쓰러져 있는 스카우트, 필립에게로 향했다. 자는 건지, 기절한 건지. 필립의 자리만 짙은 먹구름이 낀 것 같았다.
“4일 전인가, 5일 전에 동아시아 고교 선수들 명단을 다 뒤지더니 그 후로 저 상태야. 뭐라더라? 잭 스미스의 친구가 서준 리였다니! 할리우드 배우였다니! 하고 아주 절규를 하던데?”
그 말에 커피를 마시고 있던 동료가 탄성을 내뱉었다.
“아. 나도 봤어.”
서준 리의 고래 구출 영상들이 너튜브에 올라오면서 그 영상에 찍혔던 사람들도 관심을 받았다. 뉴스의 인터뷰에 나오는 사람들도 있었고 SNS에 자신임을 밝히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중 가장 관심을 받은 건 검은 모자를 쓴 서준 리의 주위에 있던 덩치 큰 소년이었다.
처음에는 서준 리의 보디가드가 아닌가 의심받다가 하나둘 소년을 아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유명한 고교선수니 알아보는 사람이 꽤 많았다.
스카우트들도 그 소년이 잭 스미스라는 걸 금방 알아차렸다.
“근데 잭 스미스랑 서준 리, 진짜 친구야? 그냥 지나가다 우연히 같이 고래를 구출한 게 아니라?”
스카우트가 고개를 저었다.
“오버 더 레인보우 때 한 인터뷰에 그런 내용이 있었대. 서준 리가 쉐도우맨1 찍을 당시에는 LA에서 살았다더라. 잭 스미스의 옆집에 서준 리가 살아서 어렸을 때부터 친구였대.”
동료가 감탄을 내뱉었다.
“와. 내 옆집에 살던 애가 슈퍼스타라니…… 소설 같네.”
“그러니까 말이야. 뭐, 그때는 그냥 꼬맹이였겠지만.”
“그건 그렇지.”
두 스카우트가 키득키득 웃었다.
“근데 옆집에 살았다는 어떻게 알았어? 그런 이야기가 인터뷰에 나오진 않았을 거 아니야?”
“잭 스미스도 동료 선수들한테 꽤 시달리는 모양이더라. 하긴, 내 친구의 친구가 슈퍼스타라면 궁금할 것 같기도 하지만. 그래도 잭 스미스가 잘 잘라내고 있어서 그 이상은 말 안 한다더라고.”
그 말에 동료가 고개를 끄덕였다.
야구선수든 배우든, 슈퍼스타에게 가장 위협이 되는 것은 함께 지내던 지인의 입에서 나오는 이야기였다. 그 정보가 사실인지, 거짓인지 확실한 증거가 없어도 ‘스타의 지인’이라는 사실이 사람들에게 무언의 확신을 주고는 했다.
“그런 정보도 파는 놈들도 있는데…… 좋은 친구네. 아, 그거 알아? 홍보팀에서 서준 리를 시구자로 섭외한다더라.”
“오. 괜찮겠는데? 지금 워낙 화제의 중심인 데다가 LA에는 한인들도 많으니 많이 오겠고. 서준 리 팬들도 많으니까…….”
잠시 생각하던 스카우트가 조금 질린 얼굴로 말했다.
“……생각보다 많이 올 것 같은데?”
* * *
스카우트, 필립은 며칠 전 잭 스미스를 뒤따라간 배팅장에서 아직 세공되지 않은 보석을 발견했다. 그날 바로 사무실로 향해 동아시아 고교 선수들의 자료를 샅샅이 찾아봤지만 아무리 찾아봐도 배팅장에서 봤던 선수는 보이지 않았다.
마지막 장을 내려놓은 필립이 한숨을 내쉬었다.
“……고교 선수가 아닌가?”
프로선수나 2군 선수. 아니면 아예 일반인일 수도 있었다. 필립이 머리를 벅벅 긁었다.
“일반인이면 찾기 힘든데…….”
어디서부터 뒤져야 할지 가늠이 되질 않았다. 그래도 그만한 재능을 보이는 소년을 그저 내버려 두기엔 야구팬으로서 양심에 가책이 들었다.
“걘 분명히 슈퍼스타가 될 자질이 있어.”
스카우트 필립은 제 두 눈을 믿었다.
다시금 힘을 낸 필립은 동아시아 선수들의 목록을 프린트하기 위해 일어났다.
그때, 사무실에 있던 스카우트 하나가 오! 감탄사를 내뱉었다. 사무실 안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그 스카우트에게로 향했다.
“마이드만 비치에 서준 리 떴대!”
“서준 리라고?!”
서준 리의 팬인 직원이 비명을 지르며 벌떡 일어났다. 당장에라도 마이드만 비치로 달려갈 것 같은 모습이었다.
“LA에 있다는 건 알았는데 마이드만 비치에 갔구나.”
다들 흥미로운 얼굴로 휴대폰을 들었다. 인터넷은 이미 난리였다.
필립도 잠시 숨을 돌릴 겸 휴대폰을 들어 이리저리 찾아보았다. 그리고 어느 사진을 보고 숨을 멈추었다. 눈도 깜빡이지 못했다. 온몸이 뻣뻣하게 굳어 그저 멍하니 휴대폰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고래 구출이라니…… 신기한데?”
“근데 옆에 있는 사람.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지 않아?”
“그러게. 우리가 아는 사람이면 야구 선수일 텐데. 아, 잭 스미스 아니야? 필립! 이거 잭 스미…… 필립?”
새하얗게 질린 필립의 시야에 두 소년의 모습이 들어왔다.
오늘 낮에 봤던 옷차림의 잭 스미스와 진흙에 묻혀 있던 보석이라고 생각했던 소년, 이미 멋지게 세공된 보석같은 배우인 서준 리가 말이다.
* * *
그날 이후로 필립은 모든 의욕이 사라진 것 같았다. 아쉬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돌아다니면서도 할 일은 하는 성실함을 보여 스카우트팀 팀장도 말없이 고개만 저었다.
쾅!
오전에 해야 할 일을 모두 끝낸 필립이 책상에 머리를 박았다.
“젠장…… 차라리 일반인인 게 낫지…….”
일반인이라면 찾아내기는 힘들어도 이래저래 설득해서 테스트라도 받아보게 할 수 있었을 터였다. 그런데,
“할리우드 배우라니!”
할리우드 배우, 그것도 그 어린 나이에 아카데미상까지 받아 연기력까지 인정받은 배우일 줄이야……!
필립이 생각했던 슈퍼스타의 자질이 다른 곳에서 발휘되고 있었다.
그것도 엄청나게! 멋지게!
그렇게 좌절하고 있는 필립의 귀에 동료들의 대화가 들어왔다.
시구자?
재능 넘치는 타자를 할리우드에 빼앗겨 버리고 좌절하고 있던 필립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 움직임에 놀란 두 스카우트가 커피를 조금 쏟았다.
“시구자!?”
“뭐, 뭐야?”
“갑자기 무슨 일이야?”
필립이 외쳤다.
“서준 리는 투수가 아니라 타자를 시켜야 해!”
갑작스러운 필립의 외침에 두 스카우트는 눈만 깜빡였다.
* * *
“그래서 시타를 시키자고?”
홍보팀 팀장의 말에 필립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필립의 이야기는 홍보팀 직원을 거쳐 홍보팀 팀장에게까지 전해졌다. 홍보팀 직원들도 흥미진진한 이야기에 눈을 반짝였다.
세상에.
잭 스미스를 따라갔다가 재능 있는 타자를 봤는데 그게 알고 보니 서준 리였다고?
원래 이런 비하인드 이야기가 잘 먹히는 법이었다.
서준 리 쪽에서 시타를 한다고 하면 이 이야기를 뿌리면 되겠다고 생각하는 직원들과는 달리 홍보팀장은 그다지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말했다.
“근데 투수가 아무리 잘 던져줘도 보통은 잘 못 맞히잖아. 사람들이 구경하고 있는데 못 맞히면 서준 리 이미지에도 안 좋을 것 아니야. 괜히 시타시켰다고 욕 들을 것 같은데?”
“시구를 한다고 해도 연습은 해야 하니까 연습하러 왔을 때 한 번만 시켜보면 안 될까요?”
필립의 말에 홍보팀장이 볼을 긁적였다.
“으음. 스토리까지 넣으면 시타 쪽이 홍보용으로는 딱 좋긴 한데……알았어. 그럼 서준 리한테 시구하고 시타 중에 고르라고 하지, 뭐.”
밝아진 필립의 표정에 홍보팀장이 말을 이었다.
“근데 일단 서준 리쪽에서 승낙해야 하는 건 알지?”
* * *
-해야지이이!!
귀청 떨어지겠다.
서준이 휴대폰을 멀찍이 떨어뜨렸다. 휴대폰 건너 잭 스미스가 날뛰고 있었다.
-너 잘 던지잖아! 제구도 엄청 잘하고!
필립이 들었다면 깜짝 놀랄 소리였다. 타격도 잘하고 투구도 잘한다고!?
“뭐, 직구밖에 못 던지지만.”
-배우면 금방 던질 거면서!
킬킬 웃는 잭에 서준이 볼을 긁적거렸다.
“그쪽에서 시구를 하던지 시타를 하던지 편한 대로 하래.”
-둘 다 잘하니까 하고 싶은 거로 하면 되겠네! 시타도 괜찮겠다. 홈런 한 방 날려버려! 크. 네가 나보다 먼저 LA스타디움에 서다니……!
“너랑은 조금 다르지 않나? 넌 선수고 난 그냥 시구자니까.”
-그래도 기분이 이상한걸. 뭐랄까…… 내가 영화에 특별출연하는 느낌?
잭의 말에 잠시 생각하던 서준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건 진짜 이상할 것 같네.”
-그렇지?
잭도 킬킬 웃었다.
-그래서 시구하는 거야? 안 하는 거야?
“재미있을 것 같아서 한다고 벌써 말해놨어.”
승낙했다고 말하기도 전에 잭이 소리를 질러서 미처 말하지 못했다.
서준의 말에 잭이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꼭 보러 갈게! 어, 잠깐. 너 시구하는 거 기사로 나오지? 와…… 표 못 사는 거 아니야?
진심 어린 잭의 걱정에 서준이 웃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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