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310화
씨 세이브 센터 위에 떠 있던 커다란 고래 구름이 바람을 따라 서쪽으로 흘러갔다. 느린 듯하면서도 빠른 속도가 마치 정말로 바닷속을 유영하는 고래 같았다.
씨 세이브 센터에 있던 사람들은 물론이고 근처에 있는 사람들까지 모두 고개를 들고 그 고래 구름을 바라보았다.
사람들은 놀란 얼굴 그대로 휴대폰을 들어 사진을 찍었다.
쩌억 벌려졌던 입은 거대한 구름 고래가 다른 깃털 같은 구름들을 뚫고 사라지고 나서야 다물어졌다.
“와…… 저 저런 거 처음 봤어요.”
“나도. 왠지 오늘 운이 좋을 것 같네!”
“잠깐! 촬영했어?”
“넵! 당연히 찍었죠!”
피디의 말에 직업 정신이 투철한 카메라맨이 히죽 웃으며 카메라를 들어 보였다.
“바로 방송국에…… 아니야. 저렇게 큰 구름이니까 다른 사람들도 다 찍었겠지. 그 영상은 그냥 다큐에 넣는 게 낫겠어.”
피디가 찍힌 영상을 확인하는 사이, 서준은 두 손을 꼭 쥐었다가 폈다. 서준의 앞에 있던 우리와 로키의 시선이 하늘 저편으로 사라진 대륙고래의 잔재에서 떠나지 않았다.
사람들의 떠들썩한 반응에 서준이 볼을 긁적였다.
‘……조금 스케일이 큰가.’
하지만 이 능력이 제일 좋을 것 같았다.
날씨를 걱정하는 씨 세이브를 위해서도, 앞으로 바다에서 살아가야 하는 우리와 로키를 위해서도.
대륙고래의 능력으로 지구의 대기 환경은 몇 년 전으로 돌아간다.
과거보다 높았던 기온은 다시 원래의 기온으로 돌아갈 터였고 사라지고 있었던 봄과 가을이 다시 찾아올 터였다.
기적적으로 복구된 대기 환경에 기뻐하며 보존할 것인지 아니면 그저 신기해하면서 계속 오염시킬 것인지. 이제 다시 사람들의 손에 달렸다.
서준이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내쉬었다.
상쾌한 아침 공기였다.
* * *
한바탕 시끌벅적한 시간이 지나고 아침 식사를 한 서준과 씨 세이브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제 우리와 로키를 바다로 돌려보낼 시간이었다.
씨 세이브의 배, 씨 세이버가 바다관 앞에 나타났다. 씨 세이버의 옆에는 처음 보는 배가 있었는데 배라기보다는 네모난 수조 같았다.
“저건 수송선이에요.”
“수송선요?”
“해양동물들을 먼바다에 풀어줄 때, 수송선을 실어서 데려다주거든요. 저기 씨 세이버와 연결된 줄 보이죠? 우리를 구할 때 사용했던 줄이에요. 저걸 수송선에 연결해서 씨 세이버가 끄는 방식이죠.”
“그렇군요.”
“수송선은 사람은 못 타고 장치를 작동시키면 네 개의 벽이 활짝 열려서 동물들을 더욱 편하게 바다로 돌아가게 하죠.”
두 손을 모아 오므렸다가 활짝 펴는 케이트의 모습에 이해한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꽃이 피는 것처럼 열리는 모양이었다.
“근데 원래 두 마리를 한배에 태우나요?”
하나밖에 없는 수송선에 서준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 질문에 케이트가 작게 웃었다.
“로키는 왠지 혼자 수송선에 태워 이동하면 탈출할 것 같아서 좀 더 큰 배에 우리와 함께 실을 예정이에요.”
케이트의 말에 서준이 웃고 말았다. 로키라면 정말로 그럴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이제 우리와 로키를 수송선으로 옮겨야 하는데…… 도와줄래요, 준?”
“네!”
서준이 우리와 로키에게로 향했다.
“우리! 로키! 이쪽으로 와!”
서준과 로키의 담당자가 한쪽 벽이 열린 수송선에 우리와 로키가 오르게 유도했다.
두 보호자의 손짓에 우리와 로키는 순순히 수송선 쪽으로 헤엄쳤다. 잘 들어간 것을 확인한 담당자가 신호를 보내자 열려있던 수송선의 한쪽 벽이 천천히 올라가기 시작했다.
“좁아도 조금만 참아.”
우우웅!
서준의 말에 우리가 걱정 말라는 듯 울었다.
* * *
우리와 로키가 수송선에 실리고 서준과 씨 세이브도 배에 올랐다.
곧 씨 세이버가 목적지를 향해 출발했다. 씨 세어버와 수송선이 연결된 줄들이 팽팽하게 당겨지면서 수송선이 천천히 끌려왔다. 조금 당황한 것처럼 보이던 우리와 로키도 이내 익숙해졌다.
서준은 시 세이버의 위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울적해 보이는 서준의 뒷모습에 케이트가 쓰게 웃으며 말했다.
“여기 이 구역이 가장 가까운 시기에 혹등고래들이 지나가는 길목이에요. 씨 세이브 센터와 근접한 곳이죠. 날씨가 좋아서 시간은 별로 안 걸릴 거예요.”
“그렇군요.”
케이트가 보여주는 지도를 살펴보던 서준은 이내 지도에서 시선을 뗐다. 지금 우리를 풀어주는 곳을 기억한다고 해도 다음에 다시 만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지금 많이 봐두자.’
서준은 다시 잘 놀고 있는 우리와 로키를 바라보았다.
케이트의 말대로 목적지엔 금방 도착했다.
-팀장님! 도착했습니다.
무전이 울리고 씨 세이버가 바다 한가운데 멈춰 섰다. 씨 세이버에 연결되어 끌려오던 수송선도 움직임을 멈추었다.
이제 스위치만 누르면 수송선의 네 벽이 활짝 열리고 우리와 로키는 바다로 돌아갈 터였다. 아쉬움 가득한 서준의 눈빛에 케이트가 웃으며 말했다.
“준. 내려가 볼래요?”
“……그래도 돼요?”
“구명조끼는 잘 매고 있으니까……안전 규칙만 잘 지키면 돼요. 지킬 수 있죠?”
보트 밖으로 몸을 내밀면 안 되고 물에 빠져도 당황하지 않기, 물속으로 들어간다면 온몸의 힘을 쭉 빼고 있기 등. 씨 세이버에 오르기 전 케이트가 알려주었던 규칙들을 떠올린 서준이 감사함을 담아 활짝 웃었다.
“네! 당연하죠!”
반짝반짝 빛나는 서준의 얼굴에 안다호도 씨 세이브 팀원들을 믿고 고개를 끄덕였다.
씨 세이버에서 작은 보트가 수면 위로 내려왔다. 우리를 구하러 왔던 그 배였다. 보트에는 케이트와 서준, 로키의 담당자와 카메라를 든 제작진, 그리고 팀원 몇 명이 타고 있었다.
보트가 수송선 가까이 다가가자 수송선의 네 벽이 천천히 열렸다.
우우웅!
삐이이!
갑자기 넓어진 시야에 우리와 로키가 어리둥절해하는 게 보였다. 수송선에서 벗어난 건 역시 호기심 많은 로키였다. 로키가 수송선을 벗어나자 우리도 바다 쪽으로 살며시 움직였다.
그러곤 얼마 안 가 익숙해진 듯 잠수하고 수면 위로 올라오는 우리와 로키가 보였다. 수면 위로 빼꼼 고개를 내민 우리와 로키가 서준을 발견하고는 보트 앞으로 다가왔다.
수송선이 열릴 때부터 눈도 깜빡하지 않고 보고 있던 서준은 우리와 로키에게 남아 있는 대륙고래의 축복을 살피고는 미소를 지었다.
“우리. 로키. 튼튼하고 건강하게 자라야 해.”
우우웅.
마지막임을 아는지 우리의 눈동자가 서준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로키. 넌 너무 장난치지 말고. 또 사람들이랑 놀다가 배랑 부딪혀서 다치면 큰일이니까.”
담당자에게 또 물을 뿌리며 장난치는 로키에 담당자의 잔소리가 쏟아졌다. 이제 듣게 된 원인에 서준은 키득키득 웃고 말았다. 어쩐지 로키다운 원인이었다.
삐이이!
알았다는 걸까. 로키가 큰 소리로 울었다.
우우웅!
마지막 인사처럼 우리가 울었다. 어쩐지 기쁜데도 마음이 울적해 서준은 애써 미소를 지었다.
이번 생에 만남을 약속하지 못하는 이별은 처음이었다.
서준은 가까이 다가온 우리의 등을 손으로 살며시 밀었다.
우우웅.
우리는 이별을 예감한 듯 울면서 서준이 타고 있던 보트와 조금씩 멀어졌다.
“저 자식은 진짜 뒤도 안 돌아보고 가네.”
담당자의 말에 우리만 바라보던 서준이 담당자의 시선을 따라갔다. 로키는 수면 위로 점프하며 벌써 저만치 가고 있었다.
우우웅!
그 뒤를 우리가 따라갔다.
“친하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많이 친해졌나 봐요.”
“같은 고래목이긴 한데…… 돌고래와 혹등고래라니. 신기한 일이네요.”
우리와 로키의 두 보호자가 울적한 눈빛으로 멀어지는 두 고래를 바라보았다. 잠시 바라보고 있으려니 바닷속으로 잠수한 듯 우리도 로키도 보이지 않았다.
“그럼 우리도 올라가 볼까요?”
케이트의 말에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였다.
서준은 바다 아래에서부터 빠른 속도로 올라오는 무언가를 알아차렸다.
“모두 보트 잡으세요!”
서준의 목소리에 다들 반사적으로 보트를 잡았다.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바다 위에선 무엇이든 조심해야 했다.
그리고,
촤아아악!
새하얀 물방울이 하늘 위로 떠올랐다.
모두 눈을 깜빡이는 것도 잊고 허공을 바라보았다. 그 커다란 물보라 중앙에 검고 흰 무언가가 있었다. 그것이 아름다운 곡선을 그리며 바다에서 허공으로 떠올랐다. 머리부터 꼬리까지, 아주 선명하게 보였다.
아직 작지만, 곧 누구보다 거대해질,
“우리!”
혹등고래 우리였다.
서준이 환하게 웃으며 외쳤다.
우리가 바다 위로 다시 떨어졌다. 새끼 혹등고래와 수면이 부딪히며 커다란 소리를 만들어냈다. 그 반동에 작은 보트가 흔들렸다. 보트 안에 있던 사람들이 힘껏 보트를 붙잡았다.
“브리칭이에요!”
물보라에 흠뻑 젖은 담당자가 한껏 상기된 얼굴로 외쳤다. 흥분한 건 다른 사람들도 다르지 않았다. 카메라 감독은 한순간도 놓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브리칭.
고래가 수면 위로 높이 솟구쳐 오르는 행위.
인터넷에서 쉽게 고래가 수면 위로 솟구치는 사진을 볼 수 있었지만 이렇게 가까이에서 보는 건 처음이었다.
“고래들이 브리칭을 하는 이유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는데!”
케이트가 보트를 꽈악 잡고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건 분명 감사의 인사일 거예요!”
케이트의 말에 서준도 동의했다.
“또 한 번 와요!”
서준의 목소리에 모두 보트를 꽉 잡았다.
씨 세이버에 타고 있던 사람들도 모두 보트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여러 대의 카메라가 우리의 모습을 찍고 있었다.
다시 한번.
물속에서 솟구쳐 올라온 새끼 혹등고래가 마치 높이 뛰기를 하는 것처럼 새하얀 배 쪽을 위로 향한 상태로 회전했다. 새하얀 물방울들이 보트 위까지 쏟아져 내렸다.
“어? 로키!”
멋진 우리의 브리칭에 다들 감탄하고 있는데 그 옆으로 비교적 작은 물보라가 솟구쳤다.
돌고래 로키였다.
마치 우리를 따라 하듯 로키도 수면 위로 솟구쳐 올라 새하얀 물보라를 만들어냈다.
촤아악!
“작아서 귀엽네요.”
“크흡.”
케이트의 말에 차마 반박하지 못하는 담당자의 모습에 서준과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게 여러 번, 우리와 로키가 바다 위로 솟구쳐 올라왔다.
서준의 눈은 한시도 우리와 로키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정말 멋진 감사 인사였다.
* * *
씨 세이브 센터로 돌아온 서준은 센터를 한 바퀴 둘러본 후 팀원들과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겨우 3일이었지만 많이 친해진 팀원들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서준과 악수를 하였다.
“잘 지내요! 준!”
“다음 작품도 꼭 볼게요!”
촬영 때문에 숨겨두었던 팬심을 내보이는 팀원들도 있었다. 사인과 사진 부탁에 서준은 흔쾌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촬영이 남아 있는 제작진과도 인사를 나눈 서준이 케이트를 바라보았다. 스쳐 지나갈 줄 알았던 인연이 이렇게 이어질 줄은 몰랐다.
서준이 웃으며 손을 내밀자 케이트도 웃으며 마주 잡았다.
“꼭 한 번 들를게요.”
“기다릴게요.”
서준과 케이트가 가볍게 맞잡은 손을 흔들었다.
그렇게 서준의 다큐멘터리 촬영이 끝났다.
* * *
그날 저녁.
뉴스가 떴다.
“와. 저 구름이 한국까지 갔다고?”
저녁 식사 후 디저트를 먹고 있던 서은혜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민준과 나라 킴도 흥미로운 얼굴로 텔레비전을 보았다. 친구들과 메시지를 주고받던 서준도 고개를 들었다.
<캘리포니아 해변에서 처음 목격된 고래 모양의 구름이 유럽을 거쳐 동아시아까지…….>
아나운서의 뒤로 세계지도가 나타나고 그 위에 붉은 화살표가 그려졌다. 세계각지의 사람들이 찍은 고래 구름의 사진들이 화살표를 따라 붙여지기 시작했다.
“나도 봤는데 진짜 신기하더라.”
나라 킴의 말에 이민준도 고개를 끄덕였다.
“감탄할 수밖에 없는 광경이긴 했어.”
한밤중에 지나가지 않았다면 안 볼 수가 없는 존재감이었다. 몇몇 나라에선 전투기까지 띄었다는 카더라도 인터넷을 떠돌았다.
“이름도 붙었네. 모비딕이래.”
모비딕.
서준이 만족스럽게 웃었다.
대륙고래에게 어울리는 멋진 이름이었다.
* * *
[하늘에 나타난 고래 구름은 무슨 징조?!]
[고래 구름 첫 목격, 캘리포니아 해변!]
[미국부터 유럽을 거쳐 동아시아까지! 고래 구름의 이동 경로!]
[고래 구름 ‘모비딕’이 생긴 이유는?]
-……진짜 지구가 멸망할 삘인가?
=슬슬 불안해진다;;;
-구름 모양이 저렇게 오래 지속되기도 함?
=ㄴㄴ 진작에 바람에 흩어지지.
=태풍도 지구 한 바퀴는 못 돌듯.
-캘리포니아에 뭐가 있나?
=이제 고래 하면 캘리포니아일 듯.
=ㅇㅇ 캘리포니아에 가면 고래를 봐야 할 것 같네ㅋㅋ
-고래 하니까 생각났는데 서준이 다큐는 언제 방송하는 거지?
=22 빨리 방송했으면 좋겠다.
=근데 미국 방송이라서 못 보는 거 아님?
=ㄴㄴ 한국 방송에서도 볼 수 있을 듯
=222 방송국들이 엄청 경쟁하고 있다더라ㅎ
=누가 이기려나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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