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살부터 슈퍼스타-309화 (309/1,055)

0살부터 슈퍼스타 309화

다큐멘터리 촬영 마지막 날.

서준과 안다호는 이른 새벽부터 집을 나섰다.

“너무 일찍 가는 거 아니야?”

안다호의 물음에 서준이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오늘이 우리랑 로키를 마지막으로 보는 날일지도 모르니까요. 일찍 가면 좀 더 오래 볼 수 있을 것 같아서요.”

그렇게 말한 서준은 아직 해가 뜨지 않아 새까만 새벽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 보였다.

‘하긴.’

지나가던 길고양이에게 먹이를 한 번 주어도 때때로 잘 지낼까 생각나는데, 생명을 구해주고 이름까지 지어준 고래가 아니었던가.

길고양이야 무사히 있다면 그 길을 오고 다니다 만날 수도 있겠지만, 드넓은 바다를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고래를 땅을 밟고 사는 서준이 다시 만나기란 쉽지 않을 터였다.

“원래 씨 세이브분들은 저보다 더 일찍 오는 분들도 있대요.”

“야간근무하시는 분들이랑 교대하는가 보네.”

깜깜한 밤하늘이 서준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 같았다. 어쩐지 싱숭생숭하다.

“다호 형. 우리, 잘 지낼까요?”

아직 새끼인 데다가 돌봐줄 어른 혹등고래들도 없었다. 홀로 이 거친 바다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렇다고 계속 데리고 있을 수는 없겠지.’

바다에 보내야 하는가, 아니면 계속 보호해야 하는가.

씨 세이브도 언제나 하고 있는 고민이라고 했다.

“씨 세이브 분들이 혹등고래들이 자주 다니는 곳까지 데려다주겠다고 했으니까. 시기만 잘 맞으면 무리에 합류할 수 있을 거야.”

“꼭 그랬으면 좋겠어요.”

안다호의 말에 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 * *

씨 세이브 센터에 도착한 서준은 팀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곧바로 물고기가 든 양동이를 챙겨 바다관으로 향했다.

“안녕. 우리. 로키.”

오늘 바다로 돌아갈 새끼 혹등고래 우리와 돌고래 로키는 새하얀 길 가장 끝쪽, 바다와 가장 가까운 이 구역은 곧 바다로 돌아갈 동물들이 머무는 곳이었다. 어제 서준이 돌아간 후 자리를 바꿨다고 한다.

서준을 뒤따라 온 로키의 담당자가 말했다.

“그물 하나만 넘으면 바다라서 로키가 마음대로 나갈 줄 알았는데 잘 있더라고요.”

그 말에 서준도 제작진도 웃고 말았다.

솔직히 서준도 자유분방한 로키가 말도 없이 바다로 떠났을까 봐 조금 걱정했었다.

“로키도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걸 알았나 봐요.”

서준의 말에 로키의 담당자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로키가 똑똑하긴 하죠.”

뿌듯해 보이는 담당자의 표정이 마치 자식을 자랑하는 부모 같아서 서준과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리자 우리와 로키도 따라 웃었다. 그렇게 느껴졌다.

로키의 담당자와 서준이 물고기를 던져주자 서준의 앞에서 알짱거리던 우리가 우우웅! 울며 물고기를 받아먹었다. 로키는 언제나 그렇듯 화려하게 수면 위로 뛰어오르며 물고기를 먹었다.

“이렇게 재주 많은 돌고래도 없을 거예요.”

담당자도 다가오는 이별에 조금 먹먹한 말투로 말했다.

“언제나 겪는 이별이지만 좋기도 하면서도 슬픈 이별이에요.”

마지막으로 먹이를 주고 마지막 건강 체크를 했다.

담당자가 로키의 지느러미를 보기 위해 노력했지만, 로키는 장난으로 받아들인 듯 보여줄 듯 말 듯하면서 삐이이 웃었다.

“우리.”

우리를 부르자 우리가 서준에게 집중했다. 서준이 손바닥을 뒤집자 우리가 따라 몸을 뒤집어 새하얀 배를 보여주었다.

“우리도 엄청 똑똑하지 않아요?”

팔불출 같은 슈퍼스타의 모습에 다들 소리를 죽여 웃었다.

어쩐지 쑥스러우면서도 뿌듯해진 서준이 우리의 배에 남은 상처를 보았다. 센터에 새겨놓은 능력 덕분인지 빠른 속도로 치유된 상처는 이제 희미하게 자국만 남았다.

“혹등고래의 배 무늬는 사람의 지문 같은 거라는데.”

서준이 우리의 등을 토닥이며 말했다.

“다음에 만나도 알아볼 수 있을까?”

우우우웅!

우리가 울었다. 어쩐지 무슨 의미인지 알 것 같아 서준은 작게 미소를 지었다.

* * *

센터로 올 때까지만 해도 깜깜했던 하늘이 조금씩 밝아지기 시작했다.

점점 푸르게 변하는 하늘에, 겨우겨우 로키의 상처를 확인한 담당자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얼마나 물을 맞았는지 축축했지만, 여전히 해탈한 듯한 모습이었다.

“준. 이제 들어가요.”

“음. 전 조금만 더 있을게요.”

우리와 로키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는 서준의 모습에 담당자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먼저 자리를 떴다. 아무래도 이런 이별은 처음이라 시간이 좀 더 필요한 것 같았다.

“이거 입고 있어.”

“고마워요. 다호 형.”

서준이 오래 머무를 것 같아 안다호는 챙겨온 겉옷을 서준에게 건네주었다.

겉옷을 입은 서준이 새하얀 길 끝에 걸터앉았다. 마지막 인사를 하나 보다 싶어 안다호와 카메라가 뒤로 조금 물러섰다.

우리와 로키는 서준을 보며 마냥 즐거운 듯 이리저리 헤엄치고 있었고 그걸 바라보는 서준의 옆모습이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았다. 밝아진 새벽하늘과 반짝이는 별들이 더욱 그렇게 보이게 만들었다.

* * *

서준은 다른 혹등고래를 만날 때까지 홀로 살아남아야 하는 우리와, 우리와 함께 바다로 돌아가는 로키에게 선물을 주고 싶었다.

서준은 자신의 두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두 손바닥을 가득 채운 바다 빛의 거대한 고래 문양이 서준의 시야에 들어왔다. 서준이 어젯밤 생의 도서관에서 가져온 능력이었다.

‘이 능력을 몸에 넣는다고 다른 능력들이 모두 튕겨 나갔지.’

마기를 처음 받아들였을 때처럼 사방으로 튕겨 나갔던 능력들에 조금 놀라긴 했다. 아마 상급 능력이라서 그런 것 같았다.

‘다른 상급 능력을 쓸 때도 이렇겠지.’

상급 능력을 사용한다면 하나밖에 사용할 수 없으니 잘 생각하고 써야 할 것 같았다.

서준은 천천히 근원에 있던 선기를 거대한 고래 문양으로 흘려보냈다.

너무 오래오래 살아서 그만큼 장편이었던 삶의 책.

행성의 하늘을 헤엄쳐 다니면서 온갖 종족들을 드넓은 등 위에 머물게 해주었던 아주 거대한 존재.

서준은 이 삶의 책을 읽고 고래에 대해 흥미가 생겼었다.

우우우웅.

서준의 근원에 있던 선기의 대부분이 거대한 고래 문양으로 흘러들어 갔다. 아마 이 한 번의 발동으로 근원에 있던 대부분의 선기가 사용될 것 같았다.

‘상급 바로 아래인 중상급의 능력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그만큼 중상급과 상급 사이에는 격의 차이가 있는 모양이었다.

선기를 끊임없이 받아들이던 고래 문양이 마침내 반짝였다.

[(선)대륙고래의 유영-상급이 발동됩니다.]

반짝이는 고래 문양에서 빠져나온 거대한 자연의 기운이 서준을 감싸 안았다.

대륙고래의 행성은 뜨거운 불로 이루어져 있었다. 대륙고래의 바깥으로 벗어나면 바로 행성의 핵인 뜨거운 불덩이로 떨어진다. 대륙고래의 등 위가 아니면 아무도 살 수 없는 세계였다.

또한, 대륙고래는 행성의 핵에서 흘러나오는 뜨거운 불길을 들이마시고 등의 숨구멍으로 맑은 공기로 내쉬었다.

발을 디딜 수 있는 땅이 되어주고 깨끗한 공기를 공급해 주는 대륙고래는 신과 같은 존재였다.

모든 존재가 발을 딛고 살아가는 곳이고 대륙고래가 죽으면 그 위에 살고 있던 존재들도 살 곳을 잃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종족은 부디 대륙고래가 오래오래 살길 바라며 제사를 지내고 기도를 올렸다.

[(선)대륙고래의 유영-상급]

오염된 환경을 가장 적당한 환경으로 되돌립니다.

고래목의 존재들에게 축복을 내립니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고래목의 존재들에게 축복을.’

서준은 우리와 로키를 바라보았다.

대륙고래의 세계에선 대륙고래의 축복을 받은 고래목의 동물들은 섬만 하게 자라고 튼튼하게 자랐다. 더 오래, 더 많은 축복을 받으면 또 다른 거대한 대륙고래가 될 수도 있었다.

‘이 세계에선 그 정도까지는 아니겠지만.’

서준은 우리와 로키가 깨끗하고 좋은 환경에서 튼튼하고 건강하게 자라길 빌었다.

* * *

한 폭의 그림 같은 슈퍼스타와 두 고래의 모습을 촬영하고 있던 카메라 감독과 안다호, 그리고 몇몇 스태프들이 저도 모르게 숨을 죽였다.

어느 순간부터 서준 리의 분위기가 변하고 있었다.

서준과 오랜 시간 함께했던 안다호마저 놀랄 만한 분위기였다.

카메라 감독이 침을 꼴깍 삼켰다.

서준 리에게서 강렬한 존재감이 느껴졌다.

마치 다큐멘터리 첫 촬영 당시, 씨 세이버 아래로 지나가는 거대한 고래를 만났을 때 느꼈던 압도감, 그저 멍하니 바라만 보게 만드는 경외감.

촬영 동안 느껴졌던 슈퍼스타의 아우라와는 조금 다른 느낌의 아우라가 흘러나오는 것 같았다.

‘어쩐지…… 신성해 보인달까.’

우리와 로키에게로 손을 뻗는 서준의 움직임이 무겁고 느리게 느껴졌다.

마치, 아주 거대한 존재가 자신보다 미약한 생물을 만지기 위해 아주 천천히 움직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우리와 로키도 보통 때와는 달리 멍하니 서준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세상의 움직임과 온갖 소리마저 잠시 멈춘 것 같았던 그런 압도적인 분위기가 이어지려던 찰나,

바람이 불었다.

서준의 주변에 압축되어 있던 대륙고래의 힘을 끌어안은 바람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한 스태프의 모자가 바람에 날렸다. 깜짝 놀라 모자를 주우러 간 스태프가 모자를 줍고 일어나다 하늘을 보았다.

“어, 어?”

서준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안다호와 카메라 감독이 그 목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시선을 돌렸다.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는 스태프의 시선을 따라 안다호와 사람들의 고개가 하늘로 들렸다.

안다호와 사람들의 눈이 커지고 입이 쩌억 벌어졌다.

고래였다.

새하얀 구름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고래가 하늘에 떠 있었다.

한눈에 봐도 어마어마한 크기였다. 멀리서 봐도 이 정도 크기인데 가까이서 보면 얼마나 큰 걸까. 모두 넋을 넣고 하늘의 고래 구름을 바라보고 있을 때,

우우우웅-

어디선가 거대한 고래의 대지를 진동시키는 울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 * *

LA.

할리우드 스타의 등장으로 명소가 된 마이드만 비치에 많은 관광객들이 몰렸다. 새끼 혹등고래가 있던 곳은 이미 사진을 찍는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 멍한 얼굴로 하늘을 바라보았다.

“……저게 뭐야?”

경악이 가득한 목소리에 ‘UFO’라도 나타났나 싶어, 다른 사람들도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그리고 모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휴대폰을 꺼내 사진과 영상을 찍어댔다.

* * *

한국.

“으아! 덥다!”

독립영화를 촬영하고 있던 김수한 감독이 물을 벌컥벌컥 들이마셨다. 배우로 출연한 친구들도 지친 얼굴로 공원 벤치에 축 늘어져 있었다.

“와…… 아침인데 왜 이렇게 더워?”

미니 선풍기를 켜봐도 공기가 찐득찐득해서 시원해지질 않았다.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낫지.

“습도가 90%래. 요즘 날씨 맛이 갔다고 하더니 진짜 미쳤나 봐.”

“어이. 감독. 촬영 날짜 바꾸자.”

“안 돼…….”

친구의 말에 김수한 감독이 우울한 얼굴로 말했다.

“영화제에 내야 한다고…….”

두 친구가 어휴 한숨을 내쉬었다.

“영화 찍기 전에 쪄 죽겠다.”

김수한 감독이 촬영하고 있는 공원에는 아침 산책을 나온 사람들도 있었다. 아침이라 그래도 선선한 날씨를 기대했던 것 같지만,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모습들이 기대 이하의 산책인 것 같았다.

몇몇 꼬마들만이 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뛰어다녔다. 친구들과 놀다가 꺄르르 웃던 한 꼬마 아이가 외쳤다.

“엄마! 고래!”

도심 한가운데 무슨 고래?

게다가 꼬마 아이의 손가락은 하늘로 향해 있었다.

생각보다 더운 날씨에 그만 집으로 돌아갈까 하던 사람들도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뛰어다니던 꼬마들도 아이의 손가락을 따라 고개를 들었다.

“헐…… 저게 뭐야?”

머리부터 양쪽 지느러미에 꼬리까지.

어느 한 곳 흐트러짐 없이 뚜렷한 고래 모양의 구름이었다.

거대한 고래 구름이 마치 진짜 고래처럼 넓은 하늘을 날고 있었다.

그 신기하고도 압도적인 모습에 다들 놀란 눈으로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았다.

“와아아…….”

출근하고 있던 사람들도, 버스에 타고 있던 사람들도, 잠시 하늘을 올려다본 사람들도. 모두 넋을 놓고 푸르른 하늘을 유영하고 있는 고래 구름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바람이 불었다.

어쩐지 푹푹 찌던 날씨가 조금 시원해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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