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308화
서준과 케이트는 일반인에게는 공개되지 않는 2층으로 올라갔다. 그에 맞추어 씨 세이브 센터의 문이 열렸다. 동물들의 스트레스 때문에 일정 인원만 입장할 수 있었다.
“이쪽은 해변에서 구해온 바다거북이들이에요.”
케이트가 가리키는 곳에는 작은 새끼 바다거북들이 유유자적 헤엄치고 있었다. 한쪽에는 모래도 깔려 있었다.
“어미 거북이 쓰레기더미에 알을 낳았다고 신고가 들어왔었거든요.”
“그렇군요. 어미 거북이는요?”
어디를 둘러보아도 새끼 거북을 돌보고 있을 어미 거북은 보이지 않았다. 서준의 물음에 케이트가 쓰게 웃으며 말했다.
“구해보려고 했는데…… 배 속에 플라스틱이 많아서 수술로도 힘들었습니다.”
그 말에 서준의 얼굴로 흐려졌다. 안타까운 일이었다.
* * *
그날 밤. 생의 도서관.
서준은 읽던 책을 놔두고 책장을 뒤졌다.
“여기 있었던 것 같은데?”
읽은 책이 너무 많아서 어디에 뒀는지 모르겠다.
자주 쓰는 능력들이 있는 책장과 왠지 촬영 때 쓸 것 같은 능력들을 모아놓은 책장은 있지만 서준이 지금 필요로 하는 능력은 따로 놓아두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구조팀이 바다로 나갔을 때 유용한 능력이면 좋을 것 같은데…….”
씨 세이브 센터에 새길 치유력이 향상되는 능력은 벌써 찾았다. 서준은 책의 제목을 살피며 빠르게 넘어갔다. 책의 제목만 봐도 대충 능력이 떠올랐다.
“물과 관련된 종족이면 인어인가?”
서준은 ‘인어’를 연신 중얼거리며 책들을 뒤졌다.
* * *
다큐멘터리 촬영 셋째 날.
서준은 이른 아침부터 씨 세이브 센터로 향했다. 어제부터 함께 다니게 된 안다호가 운전대를 잡았다. 첫날과 다르게 오늘은 마중 나온 사람이 없었다.
‘아니.’
서준이 어느새 제 뒤에 자리 잡은 카메라 감독을 보며 작게 웃고는 자신에게 배정받은 캐비닛 앞에 섰다.
씨 세이브의 모자를 쓰고 티셔츠로 갈아입고 출입증까지 목에 걸면 씨 세이브 팀원1이 완성된다.
“안녕하세요!”
“안녕…… 준?!”
지나가는 씨 세이브 팀원들과 인사를 나눈 서준은 물고기가 가득 든 양동이를 들고 바다관으로 향했다.
이틀밖에 되지 않았지만, 센터에 동화된 서준의 모습에 다들 평소처럼 지나가다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안녕. 우리, 로키.”
삐이이-!
우우웅!
먹이 담당이 된 서준이 웃으며 양동이에서 펄떡펄떡 뛰는 물고기를 꺼내 로키가 있는 곳으로 하나, 우리가 있는 곳으로 하나씩 던졌다. 로키와 로키를 보고 따라 하는 듯한 우리가 착착 받아먹는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로키 한 번, 우리 한 번 쓰다듬은 서준은 센터 안으로 향했다. 새끼 거북이들에게도 먹이를 주고 다른 동물들도 둘러보면서 어제 센터에 새겨둔 능력을 확인했다.
‘잘 작동되고 있네.’
서준이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카메라에는 찍히지 않을, 센터의 바닥을 가득 채운 조개 문양이 반짝이고 있었다.
* * *
사무실 안으로 들어오는 서준에 기다리고 있던 케이트가 웃으며 말했다.
“그럼 오늘은 구조팀 활동을 해볼까요?”
“네. 잘 부탁드립니다.”
서준과 씨 세이브 구조팀이 배를 타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센터의 옆문으로 나와 얼마간 걸어가니 마이드만 비치에서 봤던 배가 거기에 서 있었다.
케이트가 활짝 웃으며 소개했다.
“씨 세이버예요.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배죠.”
“멋지네요!”
서준과 케이트가 씨 세이버에 올랐다.
구명조끼를 입고 비상용 보트와 씨 세이버의 내부를 안내받았다. 다큐멘터리 제작진은 처음 찍는 것처럼 뒤를 따라다니며 씨 세이버를 찍었다.
서준은 안내를 받으면서 씨 세이버의 내부 이곳저곳에 손도장을 찍듯, 꾸욱 손으로 짚었다. 서준의 손도장이 찍힌 곳에는 인어 모양의 작은 문양이 남아 있었다.
[(선/제작)세이렌족의 사이렌-중상급을 제작 중입니다.]
[14/30]
‘16개만 더 찍으면 되겠네.’
* * *
배 위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넓고 크고 푸르렀다.
주변을 둘러본 서준이 말했다.
“이런 곳에서 구조활동 하긴 쉽지 않겠어요.”
“그렇죠. 보이는 게 있어야 움직일 텐데……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는 이상은 저희가 알긴 힘들거든요.”
케이트의 말에 서준은 작게 웃으며 선기를 흘려보냈다. 서준에게서 퍼져 나간 선기가 씨 세이버에 새겨놓은 문양들에 온전히 스며들었다.
[(선/제작)세이렌족의 사이렌-중상급이 발동됩니다.]
[(선/제작)세이렌족의 사이렌-중상급]
능력 범위 내의 존재에게 일정 범위 내 해양동물의 위험을 알려줍니다.
능력 범위 내의 존재의 능력에 따라 구할 수 있는 범위가 달라집니다.
‘씨 세이버나 씨 세이브가 바다 밑까지 들어갈 수는 없으니까.’
더 좋은 능력도 있었지만 씨 세이브의 능력이 닿는 곳까지만 구해도 충분했다.
‘거기에 먹고 먹히는 자연현상에는 발동하지 않고.’
이틀을 뒤져서 찾아낸 능력에 서준이 만족스럽게 웃었다.
빛나던 문양들이 동그랗게 이어져 씨 세이버를 감쌌다. 그 때문에 씨 세이버를 타고 있던 팀원들도 서준보다는 못하지만, 평소와 다른 느낌을 받고 있었다.
“근데…… 오늘은 날씨가 좋아서 그런지 바다가 잘 느껴지는 것 같네요.”
케이트의 말에 동의하듯 다들 생경한 기분에 바다를 둘러보았다. 많은 경험으로도 막막하게 바라보기만 했던 바다가, 바닷속이 훤히 느껴지는 것 같았다. 마치 외국어를 배울 때 어느 순간 귀가 뻥 뚫리는 느낌처럼 말이다.
“그러니까…….”
바다 한곳을 바라보는 구조팀 팀장 케이트의 눈동자의 색이 짙어졌다.
“……왜 저기에 구조 대상이 있는 것 같지?”
팀원들 중 가장 구조 경력이 오래된 케이트가 느끼는 감각은 남달랐다. 서준보다는 못하지만 팀원들 중 가장 뛰어났다. 케이트는 이상하다,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저도 모르게 움직이는 손을 막지 않았다.
무전기를 꺼낸 케이트가 입을 열었다.
“제스!”
-넵!
“속도 늦춰! 잠수팀! 준비해!”
“예!”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상황이었지만 케이트의 지시에 아무도 반발하지 않았다. 그저 다큐멘터리 제작진만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눈을 깜빡이고 있었다. 서준은 흐뭇한 얼굴로 바쁘게 움직이는 구조팀을 바라보았다.
“팀장님. 저희도 따라가도 되나요?”
피디의 말에 케이트가 고개를 저었다.
“일단 저희가 내려가 보겠습니다.”
잠수팀이 바다로 들어가는 사이, 서준은 새하얀 배, 씨 세이버의 난간을 툭툭 두드렸다.
세이렌의 모습을 한 작은 문양이 반짝였다.
드넓은 바다를 지배하고 바다에 사는 생물들을 수호했던 세이렌 왕족의 능력이었다. 이것보다 더 씨 세이브와 어울리는 능력은 없을 터였다.
-팀장님! 그물에 걸린 고래입니다!
잠수팀에서 연락이 왔다. 케이트가 물었다.
“센터로 데려가야 해?”
-아뇨. 조금 지친 듯 보여도 상처는 없으니까 그물만 풀어주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럼 조심해서 움직여.”
-넵!
안절부절못하는 피디의 모습에 케이트가 고개를 끄덕이며 팀원을 붙였다.
서준도 함께 가고 싶었지만 아무래도 전문적인 훈련 없이 바다에 들어가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저 배 위에서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수중촬영 카메라가 바다에 풍덩 뛰어들었다.
모두 조용히 보트와 잠수팀이 있을 듯한 수면 위를 주시하던 그때,
“빠른데? 실패했나?”
케이트가 예상했던 시간보다 이른 시간에 잠수팀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걱정스러운 케이트의 눈에 보트 위에 있던 잠수팀 팀원들이 활기차게 두 팔을 휘젓는 모습이 들어왔다.
무전기가 울렸다.
-임무 완료!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 * *
“보통은 수면 위로 올라올 때까지 모릅니다. 근데 오늘은 꽤 밑에 있는데도 알아차렸어요. 그 덕에 고래의 컨디션도 나쁘지 않았고 말입니다.”
잠수팀 팀원이 카메라 앞에서 인터뷰했다. 잔뜩 상기된 얼굴이 진심으로 기뻐 보여 서준도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평화롭네요.”
“그러게요.”
케이트와 씨 세이브 팀원들은 평소와 다르게 다가오는 바다의 감각을 즐기고 있었다. 세상이 새롭게 보였다.
“오늘 컨디션 진짜 좋은 것 같네요.”
저 멀리 보이는 돌고래 떼를 편안한 마음으로 보던 서준과 케이트.
그때 팀원 하나가 목소리를 높였다.
“마이드만 비치! 돌고래 수십 마리가 좌초됐대요!”
익숙한 지명에 씨 세이브와 서준, 제작진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놀란 것도 아주 잠시. 케이트가 무전기를 들었다.
“제스! 당장 마이드만 비치로 가!”
-라져!
씨 세이버가 부드럽게 커브를 돌았다. 그 위에 타고 있던 씨 세이브 팀원들이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어쩐지 저번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면서 카메라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팀원들을 비췄다.
“돌고래 50여 마리!”
할리우드 배우, 서준 리가 있었던 마이드만 비치다. 아직 그 영향이 남아 있었다. 순식간에 수십 개의 너튜브 영상이 떴고 너튜브 영상으로 살피고 있던 팀원의 외침에 다들 경악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많아!”
“백 마리가 아닌 게 어디야!”
“보트 준비해!”
50여 마리면 팀원들의 수로는 부족했다. 케이트가 뒤를 돌아, 팀원들에게 방해되지 않게 물러서 있던 서준을 바라보았다.
“준! 어려운 일은 없을 거예요!”
“갈게요!”
“고마워요!”
케이트가 다시 구조 준비를 이어나가고 서준이 서 있던 매니저를 바라보았다.
“다호 형…….”
반짝반짝한 눈으로 바라보는 배우의 모습에 어쩔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거린 안다호가 서준의 구명조끼를 단단히 체크하고 자신의 구명조끼도 다시 점검했다.
서준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다호 형도 가게요?”
“한 사람이라도 더 필요하잖아?”
안다호의 말에 서준이 헤헤 웃었다.
-마이드만 비치 바로 앞입니다!
“보트 내릴 준비하고! 준은 저번처럼 존재감 죽여주세요!”
“걱정 마세요! 아무도 못 알아보게 할게요!”
연기하는 건 서준이 가장 잘하는 일이었다.
자신만만하게 웃는 서준 리의 모습에 피디가 입을 쩌억 벌렸다.
어제 촬영 때, 어째서 마이드만 비치에서 서준 리를 알아보지 못했나, 하는 질문에 서준 리의 대답을 듣고 한국의 프로그램 [워킹맨!]을 본 피디가 경악한 얼굴로 외쳤다.
“준! 지금 촬영 중이에요! 시청자분들은 알아봐야 합니다!”
……아! 그랬지!
하는 표정을 짓는 서준 리의 모습에 피디는 불안해졌다.
“그……! 워킹맨 때처럼만 부탁드립니다!”
“네! 걱정 마세요!”
활짝 웃는 서준 리의 모습에 피디는 두 손을 모았다.
* * *
“임무 완료!”
돌고래 57마리를 무사히 바다로 돌려보낸 씨 세이브가 씨 세이버로 복귀하고 있었다. 두 대의 보트가 파도에 넘실거렸다.
한 마리도 빠짐없이 바다로 돌려보낸 씨 세이브는 몸은 지쳤지만 모두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근데 준도 있었는데 아무도 못 알아봤네요.”
“그러게요. 어라? 준 어디 있어요?”
“헉! 놓고 왔어?!”
무게가 나가는 돌고래들을 바다 쪽으로 나르느라 힘이 쭉 빠졌던 피디가 스태프의 말에 벌떡 일어났다.
“? 저 여기 있어요.”
한쪽에서 안다호가 준 수건으로 푹 젖은 머리카락을 닦고 있던 서준이 고개를 갸웃했다.
“……와…….”
바로 옆에 있어도 눈치채지 못한 서준 리에 가까이 앉아 있던 팀원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 모습에 안다호가 웃고 말았다.
그사이, 어디서 그런 힘이 생겨났는지 축 처져 있던 피디가 촬영하느라 구조에서 빠졌던 카메라맨들에게로 향했다. 촬영본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서준 리를 보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피디였다.
* * *
[이게 무슨 일? 캘리포니아 마이드만 비치! 또 고래 좌초!]
[캘리포니아 마이드만 비치! 돌고래 57마리 좌초!]
[씨 세이브 출동! 이서준은 있었나?]
-세상이 망할 징조인가…….
=222 돌고래 57마리라니ㅎㄷㄷ
=그래도 다 구했다니 다행ㅠㅠ
-씨 세이브 출동했는데 서준이는 없었는듯.
=센터에 있겠지. 바다에 나왔겠어?
-근데 서준이라면 저 사이에 있었을 것 같다.
=222 워킹맨 보면 알잖아ㅎㅎ
=333 마이드만 비치 영상 때도 그렇고ㅋㅋ
-일코는 이서준이 제일 잘하는 듯.
=너무 잘해서 목격담도 없어ㅠㅠㅋㅋ
* * *
“오늘 너희 친구들을 58마리나 구했어.”
삐이이-
우우웅!
사람들이 없는 바다관 길 위.
서준이 쭈그려 앉아 로키와 우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오늘도 로키는 우리의 구역에서 헤엄치고 있었다. 느긋한 로키의 모습에 서준이 웃었다.
“로키. 오늘도 여기 있으면 어떻게 해. 팀원들 힘들게 말이야.”
로키에게 말했지만 알아듣는지는 모르겠다. 언제나 그렇듯 활기찬 얼굴로 웃고 있는 로키의 모습에 서준도 웃고 말았다.
장난꾸러기 로키는 첫날 우리를 약 올리는 모습에 씨 세이브에서 몇 구역 떨어뜨려 놓았는데도 그걸 전부 뛰어넘어 우리의 구역에 들어와 있었다고 한다.
새끼 혹등고래, 우리도 이젠 그런 돌고래, 로키에게 익숙해졌는지 제법 친근한 모습이 보였다. 짧은 시간이지만 많이 친해진 것 같았다.
서준이 우리를 쓰다듬었다. 선기를 흘려보내는 것도 잊지 않았다. 따뜻한 선기에 우리가 우우웅! 기쁜 듯 노래를 불렀다. 우리의 상처는 거의 다 아물었고 체력도 충분했다.
“내일부터는 여기보다 훨씬 넓은 바다에서 지낼 수 있을 거야.”
내일.
새끼 혹등고래, 우리와 돌고래, 로키가 드넓은 바다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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