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306화
촬영 하루 전.
세상은 아직도 서준 리의 고래 구출에 대해 떠들썩했다.
그중에서도 특히 ABS방송국은 다큐멘터리 촬영까지 엮였기 때문인지 서준의 과거 영상들을 방송으로 내보내며 서준의 팬들이 씨 세이브에 기부한 사실도 알렸다.
“ABS방송국의 모기업이 마린사야.”
“정말?”
나라 킴의 말에 서은혜와 이민준이 놀란 얼굴로 텔레비전을 바라보았다. 화면에는 검은 모자를 쓴 서준을 중심으로 편집된 영상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래서 이렇게 많이 내보내는 건가? 자기네 회사 영화에 나왔던 배우니까?”
“뭐. 조금은 영향이 있지 않을까, 하는 거지. 나쁜 뉴스도 아니고 좋은 뉴스니까 말이야.”
오호.
서은혜와 이민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사이, ABS 채널에서는 새로운 영상이 나오고 있었다. 조금 전, 멀리서 고래를 찍었던 영상과는 다른 시점의, 좀 더 고래와 가까운 곳에서 찍은 고래 구출 영상이었다.
“근데 진짜 영상 찍은 사람 많구나.”
서은혜가 감탄했다.
이것 말고도 너튜브는 ‘마이드만 고래 구출 영상(Feat. 서준 리)’이라는 느낌의 제목이 달린 동영상이 엄청 많이 업로드됐다. 각 방송국에선 그런 영상들을 모아서 편집해서 내보내고 있었다.
“하긴 해변에서 고래를 보는 게 희귀한 일이기는 하지. 오. 이번 건 서준이가 잘 보이는데?”
“응? 나 불렀어?”
소파에 몸을 파묻고 휴대폰을 두드리고 있던 서준이 이민준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그 모습에 부부와 나라가 웃었다.
“아니. 안 불렀어.”
“서준아. 뭐 하고 있었어?”
“다호 형이랑 이야기 중이었어. 지금 비행기 탔대.”
“그래? 지금 출발하면…… 도착하면 새벽이겠는데?”
서은혜의 말에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촬영은 아침 일찍 가니까 아무래도 다호 형이랑은 못 갈 것 같아.”
오늘 씨 세이브 센터에 사람들이 몰렸다.
평소와 다른 인파에 놀란 제작진은 촬영시간을 변경할 수밖에 없었다. 왠지 내일도 모레도 이 정도의 인파가 몰릴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정해진 시간이 이른 아침이었다.
‘다호 형, 시차 적응도 해야 하니까.’
안다호도 아쉽지만, 내일 하루는 따라가지 않기로 했다. 완벽한 상태에서도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데 피곤한 상태라면 실수하기 쉽게 마련이니까 말이다.
“그럼 오랜만에 아빠랑 갈까?”
이민준의 말에 서준이 활짝 웃었다.
“좋아!”
* * *
다큐멘터리 촬영 날.
새벽같이 집에서 나온 서준과 이민준이 씨 세이브 센터에 도착했다.
[SEA SAVE CENTER]
씨 세이브 센터라는 간판이 달린 3층 건물에는 주차장이 두 군데 있었는데 하나는 견학하러 온 일반인들을 위한 넓은 주차장이었고 하나는 직원들이나 응급차가 드나드는 관계자용 주차장이었다.
서준과 이민준이 탄 차가 관계자용 주차장으로 들어가자 미리 연락을 받고 대기하고 있던 카메라가 차를 비추었다.
스태프가 건물 안에 있는 피디에게 서준 리의 도착 소식을 알렸다.
곧 카메라 여러 대와 사람들이 우르르 나타났다.
“반갑습니다. 다큐멘터리 담당 피디입니다.”
“안녕하세요. 서준 리입니다.”
피디와 서준이 인사를 나누고 이민준도 인사를 했다. 서준의 시선이 피디의 옆에 있는 사람에게로 향했다. 서로 스치듯 봤지만 잊지 못한 얼굴이었다.
케이트가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반가워요. 또 보네요. 씨 세이브 구조팀 팀장 케이트 오하스라고 합니다.”
“서준 리예요. 준이라고 불러주세요.”
마주 잡은 손을 가볍게 흔들며 서준도 웃었다.
그 모습을 카메라가 그대로 담아냈다. 고래 구출에 빠질 수 없는 두 히어로가 다시 만난 자리였다.
“저도 케이트라고 불러주세요. 촬영하는 동안 제가 함께할 예정이니까요.”
“네. 촬영 잘 부탁드릴게요.”
“저야말로 잘 부탁해요.”
작게 웃은 케이트가 서준과 이민준을 데리고 씨 세이브 센터 안으로 들어갔다.
첫 인사를 제외하고, 피디는 그대로 앵글 안에서 빠져나갔다.
* * *
케이트는 가장 먼저 관계자 출입구와 가까운 사무실로 서준을 데려갔다. 그리고 서준의 앞에 카드 목걸이 하나와 옷 하나를 내밀었다.
[SEOJUN LEE]라고 쓰인 출입증과 바다색에 오른쪽에 씨 세이브의 마크인 지구를 뜻하는 원과 고래의 꼬리가 하얀색으로 그려진 티셔츠였다.
“오늘부터 촬영이 끝날 때까지 준도 씨 세이브의 팀원이에요. 센터에 있는 동물들을 돌보는 일도 맡게 될 겁니다. 여기 출입증하고 유니폼이에요. 탈의실은 이쪽에 있어요.”
“네. 얼른 갈아입고 올게요.”
탈의실에서 상의를 갈아입고 나온 서준은 케이트가 건네주는 팀원용 출입증을 목에 걸었다.
케이트가 말을 이었다.
“잘 어울리네요. 그럼 먼저 센터를 소개하고 팀원들을 소개할게요. 다들 일 때문에 여기저기 흩어져 있거든요. 돌아다니다 보면 다 만날 수 있을 거예요.”
“네. 알겠습니다.”
센터 입구로 걸음을 옮기던 케이트가 서준을 보며 물었다.
“준의 팬분들이 저희 센터에 기부해 주시는 건 알고 있어요?”
“네. 그래서 다큐멘터리 촬영 제안이 반갑기도 했어요. 아무래도 팬분들이 기부했던 곳을 영상으로나마 볼 수 있는 기회잖아요.”
케이트가 걸음을 멈추었다. 옆에서 걷고 있던 서준이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갸웃했다. 케이트가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팬분들에게도 준에게도 꼭 전하고 싶었어요. 지금까지 보내주신 기부가 저희 씨 세이브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정말 고마워요.”
케이트의 진심 어린 감사에 서준이 쑥스러우면서도 뿌듯한 얼굴로 웃었다.
역시 내 팬분들이 최고다.
* * *
서준과 케이트가 센터 입구에 도착했다.
일반인들의 견학을 제일 먼저 시작하는 곳이라 여러 디자인의 팸플릿들이 놓여 있었다.
“씨 세이브 센터를 소개할게요.”
케이트는 팸플릿을 하나 뽑아 서준에게 건넸다.
서준은 케이트의 설명을 들으며 팸플릿을 읽었다.
씨 세이브가 만들어지게 된 이야기부터 씨 세이브 센터의 건립, 이후 활동들에 대해 나와 있었다. 씨 세이브가 구해낸 해양동물의 숫자에 저절로 감탄이 나왔다.
“씨 세이브 센터는 만(bay)을 막아서 만든 해양동물 보호 센터입니다. 언제든 복원할 수 있도록 그물로 막았죠.”
만(bay).
해변이 초승달처럼 둥그렇게 움푹 파인 곳을 말한다. 두 끝 부분을 이어서 막는 방법으로 넓은 바다를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해양동물을 치료하고 보살피고 방생하기 때문에 아무래도 지상에 있는 건물보다 바다 쪽이 훨씬 크죠.”
오호.
팸플릿에 나온 지도를 본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서 있는 건물을 센터, 바다 쪽을 바다관이라고 합니다.”
씨 세이브 센터는 지하 1층과 지상 3층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센터의 지하 1층과 지상 1층은 씨 세이브의 사무실과 제법 회복된 해양동물들이 있는 곳입니다. 2층, 3층은 좀 더 심각한 상처를 입은 해양동물들이 입원하는 곳이죠. 아무래도 상처가 심할 때는 작은 소음에도 스트레스를 받을 수가 있어서 일반인들에게는 지상 1층, 지하 1층과 바다관만 공개됩니다.”
케이트가 발걸음을 옮기며 설명을 이어나갔다. 서준과 카메라가 그 뒤를 따랐다. 센터 1층은 크기가 작은 해양동물들이 수조 안을 헤엄치고 있었다.
“다친 동물들만 센터에 오나요?”
서준의 물음에 케이트가 고개를 저었다.
“아뇨. 동물원이나 수족관에 있는 동물들도 이곳에 와요. 경제 사정 때문에 망한 곳이나 더는 동물들을 데리고 있을 수 없는 곳에서 보내오죠. 여기 이 아이도 그중 하나고요.”
케이트가 유리 벽 너머 유유히 헤엄치고 있는 돌고래를 가리켰다.
“이름은 몰리. 동물원에서 센터로 온 아이예요.”
돌고래, 몰리가 케이트와 서준을 발견하고 유리 벽 앞으로 왔다.
어쩐지 활짝 웃는 것처럼 보였다. 아무래도 상급 삶의 책을 읽은 영향인가 보다. 몰리는 유리 벽 앞을 빙글빙글 돌면서 온몸으로 반가움을 뽐내고 있었다.
그 귀여운 모습에 서준도 케이트도 제작진들도 미소를 지었다.
“귀엽네요. 몰리는 언제 바다로 돌아가나요?”
서준의 물음에 답한 건 몰리의 상태를 체크하러 온 씨 세이브 팀원이었다.
“몰리는 좀 더 살을 찌우고 바다로 갈 예정입니다.”
“살이요?”
고개를 갸웃한 서준이 다시 몰리를 보았다.
그러고 보니 옆 수조에 있는 돌고래보다 가냘파 보이긴 했다.
“지금의 몰리는 너무 가벼워요. 센터에 왔을 때 무게의 두 배로 찌우는 게 제 목표입니다.”
왠지 광기가 어린, 번쩍거리는 몰리 담당자의 눈빛에 서준은 웃고 말았다.
돌고래 확대범이 여기 있었다.
* * *
[몰리/돌고래]
[맥스/물개]
[쿠퍼/거북이]
1층에 마련된 수조를 하나하나 들여다보며 그 안에 있는 동물들의 사연을 듣던 서준이 케이트에게 물었다.
“항상 동물들에게 이름을 지어주나요?”
케이트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다른 분들도 물어보죠. 바다로 보내주면 다시 만날 일도 없는데 왜 이름을 짓냐고.”
케이트가 캘리포니아의 한 해변에서 구해온 어린 바다사자 토비를 바라보았다. 새살이 차오른 토비의 상처들은 이미 아물었는데도 보는 것만으로 아파 보였다.
케이트가 유리벽에 손을 대자 바다사자 토비가 머리를 유리 벽에 댔다.
그 무언의 교감에 주변이 조용해졌다.
“이름을 지어주면서 하나의 생명으로 인지할 수 있어요. 그저 돌고래 하나, 바다사자 하나로 생각하지 않고 몰리, 토비 같은 이름을 부르면서 좀 더 가까워지는 거예요.”
케이트가 부드럽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물론, 이름이 익숙해지기도 전에 건강해져서 돌아가는 아이들도 있지만요. 정말 좋은 일이죠.”
지나가던 팀원들이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카메라가 그들의 모습을 그대로 담아냈다.
서준은 그런 씨 세이브 팀원들을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았다.
‘좋은 곳이네.’
씨 세이브가 정말로 동물들을 사랑하고 돌보고 있다는 게 그대로 느껴졌다.
“그럼 이번엔 그 아이에게 가 볼까요?”
“그 아이라면…… 아…….”
그 애가 누군지 물어보려던 서준은 대답을 듣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케이트가 그런 서준을 보고 웃었다.
“준이 올 거라는 이야기를 듣고 이름은 아직 안 지었어요. 준이 구한 새끼 혹등고래는 상처가 심하지 않아 바다관에 있어요.”
케이트와 서준이 바다관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 고래가 혹등고래였군요.”
“네. 여름에는 차가운 고위도 지방에 가는 아이들인데 왜 새끼만 여기 남아 있는지 모르겠어요. 서식지를 옮길 때 낙오된 아이 같기도 하고.”
“요즘 해변에서 발견되는 고래들이 많다고 들었는데, 팀장님은 원인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서준 리의 고래 구출 소식이 화제가 되면서 뉴스에선 그 이전의 사고들에 대해서 방송했다. 2주 전에는 돌고래 두 마리가 해변에서 죽었고 그전에는 백여 마리의 돌고래가 해변에 나타났다.
그렇게 커다란 고래, 작은 물개 등 종류를 가리지 않고 좌초되는 동물들이 늘어만 가고 있었다.
서준의 물음에 케이트는 한숨을 내쉬었다.
“여러 가지 있겠죠. 낙오된 고래가 길을 잃었다든가 실수로 물을 따라 빠져나가지 못했다든가. 요즘은 아마…… 저는 날씨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날씨요?”
“올해는 유난히 덥잖아요.”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겨울은 일찍 끝났고 봄과 여름은 일찍 시작했죠.”
그래서 2월, 3월에 진행했던 ‘봄은 돌아왔다’의 촬영은 생각 외로 따뜻한 날씨 때문에 수월했고 역대급 더위가 예상되는 여름 촬영은 다들 걱정하고 있었다.
“아마도 앞으로 계속 이렇지 않을까 생각해요. 지구의 온도가 높아지면 바다의 온도도 높아지고, 바다의 온도가 높아지면 필연적으로 해류의 방향도 바뀔 수밖에 없죠.”
케이트가 쓴웃음을 지었다.
“해류는 해양 동물들에게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평생 헤엄치고 살아가야 하는 생물들인데 길을 잃어버리면 큰일이죠. 남쪽으로 가야 할 때 따뜻한 해류를 따라 북쪽으로 가버리면 어떻게 될까요?”
잠시 생각하던 서준이 입을 열었다.
“음. 적응을 못 하게 되나요?”
“네. 날씨가 잠시 더웠다고 북쪽이 계속 따뜻한 건 아니죠. 며칠 동안은 더웠지만, 나머지 나날들이 춥다면 동물들은 적응도 못 하고 죽고 말 겁니다.”
진지한 케이트의 말에 모두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렇지 않게 생각했던 날씨의 변화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커다란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날씨라…….’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서준은 케이트의 밝은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자. 그럼 이제 씨 세이브 센터의 자랑, 바다관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케이트가 웃으며 바다관으로 향하는 입구의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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