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304화
씨 세이브의 행동은 빨랐다.
“시간이 생명이야! 아직 버티고 있을 때 옮겨야 해!”
“예!”
케이트가 재빨리 고래의 상태를 살폈다.
배를 타고 오는 데 시간이 걸렸다. 큰 성체면 몰라도 새끼 혹등고래에게는 긴 시간이었을 터였다. 그나마 사람들이 도와줘서 시간을 벌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숨이 아주 힘들어 보이지는 않는걸.’
천운이었다.
“배 쪽에 상처가 있는 것 같아요.”
“배 쪽이요?”
갑자기 들리는 목소리에 케이트가 뒤를 돌아보았다. 검은 모자를 쓰고 옷이 흠뻑 젖어 있는 소년이 걱정스러운, 그러나 안심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아까 고래가 움직이는 게 조금 이상했거든요.”
“그렇군요.”
‘그게 본다고 알 수 있는 건 아닐 텐데…….’
특히 고래 같은 일반인이 거의 볼 수 없는 동물의 움직임을 그렇게까지 파악하기란 쉽지 않을 터였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케이트 오하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옮길 때 주의할게요.”
“네. 꼭 구해주세요.”
그렇게 말한 소년은 이내 사람들 사이로 들어갔다. 묘하게 인상이 깊게 남는 소년이었다.
그사이 팀원들은 고래의 위를 덮은 수건들을 사람들에 돌려주었다. 몇몇은 보트에 실린 커다란 특수 천을 꺼내 고래를 덮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고래 위에 물을 뿌렸다. 팀원 중 하나가 사람들에게 부탁했다.
“꼬리 좀 같이 들어주시겠습니까?”
“네.”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큐멘터리 담당 피디는 뜻밖의 좋은 장면에 촬영을 이어나갔다. 바로 ABS방송국으로 보내서 뉴스 화면으로 써도 좋았고 다큐멘터리에 넣어도 좋은 장면이었다.
“하나, 둘!”
사람들이 고래의 꼬리를 드는 동안 씨 세이브 팀원이 몸쪽과 가장 가까운 곳을 밴드로 둘렀다. 밴드의 끝에는 튼튼한 고리가 붙어있었다.
씨 세이브는 사람들의 힘을 빌려 꼬리와 양쪽 지느러미 부분, 그리고 머리 쪽을 밴드로 둘렀다. 그러고는 네 개의 밴드 끝에 달린 쇠고리에 새로운 줄을 연결했다.
고래를 살피고 지시를 내리며 바쁘게 움직이면서도 케이트는 고래를 구하기 위해 지금까지 노력해 준 사람들을 위해 설명했다.
“이제 밴드의 고리에 줄을 걸어서 저기 있는 배와 연결해 물 쪽으로 잡아당길 계획입니다. 고래에게 부담이 많이 가진 않을 겁니다.”
씨 세이브의 완벽한 처치에 사람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 모습에 작게 웃은 케이트가 무전기를 들었다.
“제스! 줄 연결하는 대로 끌 준비해!”
-라져!
“모두 뒤로 물러나 주세요!”
씨 세이브의 지시 아래, 고래와 바다의 일직선 상에는 아무도 서 있지 않았다.
하지만 그 주위는 사람들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너튜브를 보고 온 사람들, 이야기를 전해 듣고 온 사람들. 바다로 돌아가는 고래를 보기 위해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점점 늘어나는 사람들에 서준과 잭이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서준을 바라보는 시선이 미묘해진 사람들도 있었다. 아무래도 고래에게 선기를 흘려보내다가 제법 존재감을 남긴 모양이었다.
서준은 그새 제법 얼굴이 익숙해진, 비치매트를 빌려준 수잔에게 말했다. 잭도 함께 양동이를 나른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매트 고마웠어요.”
“끝까지 안 보고 가려고?”
서준의 말에 처음부터 도와주던 사람들이 서준과 잭을 바라보았다. 서준이 웃으며 말했다.
“네. 시간이 많이 지나서요.”
“그렇구나. 너희도 정말 고생했어.”
“다들 고생하셨어요.”
그 짧은 시간 동안 친해진 듯 사람들과 악수를 하던 사이 배가 움직였다. 배와 고래 사이에 축 늘어져 있던 줄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오오. 움직인다!”
천으로 둘러싸인 고래가 천천히 바다 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서준과 인사한 사람들의 시선도 고래에게로 향했다.
그사이, 서준과 잭은 발걸음을 옮겼다.
“생각보다 속도가 느린데?”
잭이 바다를 바라보며 뒤로 걸었다. 서준도 간간이 뒤로 시선을 주었다. 고래의 배에 상처가 있다는 서준의 말을 씨 세이브 구조팀 팀장이 잊지 않은 모양인지 고래의 움직임은 그렇게 빠르지 않았다.
“차 어디에 댔어?”
“저쪽 주차장. 오. 물에 들어간다.”
모래사장을 나와 도롯가로 올라가니 여기서도 고래의 모습이 보였다.
몇몇 구경꾼들과 함께 서준과 잭이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고래가 천천히 물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케이트와 씨 세이브 팀원들, 사람들도 함께 바다 쪽으로 움직였다.
“잘 가! 고래야!”
“조심해서 가!”
활기찬 아이들의 목소리가 드문드문 들렸다. 몇몇 어른들도 인사를 전하고 마지막으로 기념사진을 찍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마침내 고래의 몸이 완전히 물에 잠겼다.
와아아아!!
사람들의 기쁨이 가득 담긴 환호성이 터져 나왔지만 곧 잦아들었다.
물속으로 들어간 고래는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다. 그저 천천히 줄에 이끌려 가고 있었다. 그 모습에 모두 숨을 죽이고 걱정스러운 시선을 보냈다. 아이들 몇몇은 눈물을 글썽거렸다.
“저거 괜찮은 거야?”
아까 쓰지 못한 마른 수건으로 머리카락을 닦아내고 있던 잭의 말에 티셔츠의 물기를 힘껏 짜내던 서준이 웃었다.
“이제 슬슬 정신을 차리고 있을 거야.”
서준의 말이 들린 듯, 잠잠하던 고래의 몸이 꿈틀거렸다.
“와……!”
물속에 완전히 잠겨 있던, 천으로 뒤덮이지 않았던 꼬리가 수면 위로 부드럽게 올라왔다. 아직 작지만 고래는 고래.
첨벙!
꼬리가 커다란 소리를 내며 물 위를 내려쳤다.
고래의 꼬리가 만들어내는 물보라가 내리쬐는 햇살과 부딪혀 허공에서 반짝였다.
와아아아!!
그 감사 인사 같은 물보라에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환호성을 내질렀다. 그 모습을 도롯가에서 지켜보던 잭과 서준이 서로를 보며 활짝 웃었다.
* * *
“그럼 지금 출발할게,”
-네! 그럼 센터로 가실 거죠?
“그래. 아직 새끼라 체력 좀 붙인 다음에 방생해야겠더라. 배 쪽에 상처 입었다는 의견이 있어서 그것도 살펴봐야 하고.”
무전기를 내려놓은 케이트 오하스가 뒤를 돌아보았다. 씨 세이브를 보며 사람들이 박수를 보냈다. 케이트가 웃으며 말했다.
“저희보다는 저희가 올 때까지 고래를 보살펴 주신 여러분 덕분입니다. 여러분의 도움이 없었다면 저 새끼 혹등고래는 구하지 못했을 거예요.”
“저게 혹등고래였구나.”
“그러고 보니 무슨 고래인지도 몰랐네.”
톰과 친구의 말에 다들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다큐멘터리 카메라가 그 모습을 그대로 촬영했다. 휴가를 보내기 위한 해변과는 어울리지 않는 지친 모습이었지만 오히려 그런 모습이 감동을 줬다.
“앞으로 고래는 어떻게 됩니까?”
“아직 새끼라 씨 세이브 센터에서 며칠 쉬면서 체력을 붙일 예정입니다. 상처가 있으면 상처도 치료하겠죠. 그다음에는 다시 바다로 돌아갈 겁니다. 혹등고래에게 가장 알맞은 곳을 찾아서요.”
“씨 세이브 센터라…… 거기 일반인도 갈 수 있나요?”
누군가의 물음에 케이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씨 세이브 센터는 해양동물 보호를 장려하기 위해 일반인에게도 활짝 문을 열어두었다.
“네. 씨 세이브 센터는 견학이 가능하니 견학 시간에 오시면 보실 수 있을 겁니다.”
“엄마! 우리 가자!”
“그럴까?”
자신들의 손으로 구해낸 고래를 볼 수 있다니 안 갈 수가 없었다. 그렇게 사람들이 떠들고 있을 때, 톰의 친구가 말을 꺼냈다.
“어라? 그 애들은 어디 갔지?”
그 말에 나뭇가지와 비치매트를 묶은 끈을 풀고 있던 수잔이 웃으며 말했다.
“아, 걔들은 아까 먼저 갔어요. 시간이 많이 지나서 집에 가야 한대요.”
“그래요? 그 애들이 제일 고생했는데…… 아쉽네요. 견학할 수 있다는 거 말해줘야 할 것 같은데.”
친구의 말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애들요?”
그런 사람들의 반응에 피디와 케이트가 고개를 갸웃했다. 비치매트를 잘 접은 수잔이 뿌듯한 얼굴로 말했다.
“고래를 구할 때 제일 먼저 움직인 애들이에요. 그늘막을 만든 것도, 물을 뿌리자는 것도 그 애들이 말했거든요. 솔선수범한 그 애들이 아니었으면 다들 우왕좌왕했을 거예요.”
“체력도 대단했지. 발견했을 때부터 구조대가 올 때까지 계속 움직였으니까.”
“착한 애들이야. 완전 히어로 같았어.”
피디의 눈이 반짝였다.
고래를 구하기 위해 가장 먼저 움직인 아이들.
어른이 아니라서 더욱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터였다. 그 아이들의 인터뷰를 따서 다큐멘터리에 넣으면 좋은 장면이 될 것 같았다.
“그 애들이 누군지,”
“으아아악!”
누군가 비명을 질렀다.
철수 준비를 하고 있던 씨 세이브와 피디, 사람들의 시선이 비명이 들린 쪽으로 향했다. 양동이를 나르던 톰이었다. 옆에 서 있던 친구가 놀라 톰을 바라보았다.
자신에게 쏠린 사람들의 시선을 인식하지 못한 톰을 친구를 보며 소리를 질렀다. 한낮에 귀신이라도 본 듯한 얼굴이었다.
“서준 리! 서준 리였어!”
“……뭐? 갑자기 무슨 소리야?”
“히어로 하니까 생각났어! 아까 그 애! 검은 모자 쓰고 있던 애!”
이젠 거의 친구의 멱살을 잡을 정도로 톰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소년의 행동에 감동받아서 눈의 착각이라고 생각했던 반짝이는 아우라.
어디서 본 것 같은 잘생긴 얼굴과 귀에 익은 부드러운 목소리.
고래를 살리는 데 신경이 팔린 데다가 할리우드가 아니라 바로 자신의 옆에서, 자신과 함께 고래를 구하고 있을 거라고는 꿈에서도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슈퍼스타.
“서준 리였다고! 진 나트라! 그레이 바이니! 고주원!”
쩌렁쩌렁한 톰의 목소리가 마이드만 비치를 울렸다.
마이드만 비치가 잠시 멈춘 것 같았다.
서준 리라는 이름은 몰라도 뒤따라 나온 이름들은 모를 수가 없었다.
진 나트라, 그레이 바이니, 고주원.
……!!
소리 없는 경악이 마이드만 비치에 내려앉았다.
비치매트를 내준 수잔부터 두 소년의 바로 옆에서 함께 고래를 구하기 위해 움직이던 사람들까지. 검은 모자를 쓴 소년을 보고 이야기를 나눴던 사람들의 입이 더는 커질 수 없을 정도로 쩌억 벌어졌다.
잠시의 침묵 후, 여기저기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세상에……!”
“어째서 못 알아봤지!?”
모자 아래로 보이던 얼굴을 왜 못 알아봤을까!
“서준 리라니……! 나 진짜 팬인데……!”
“아니, LA에 있다는 건 알았지만 이렇게 갑작스럽게 나타나는 거야?!”
“와! 준하고 고래를 구할 줄이야!”
보고 싶었던 스타, 서준 리를 바로 눈앞에서 알아보지 못했다고 탄식하는 팬들부터 슈퍼스타의 깜짝 등장에 진짜 놀란 사람들, 바로 휴대폰을 꺼내 가족과 친구들에게 서준 리를 만난 사실을 알려주는 사람들까지.
마이드만 비치가 시끌벅적해졌다.
한편 그런 사람들과 다른 세상에 있는 듯한 사람들이 있었다.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씨 세이브와 다큐 제작진은 눈만 깜빡였다.
“……서준 리라면 배우 맞죠?”
“그러게요. 갑자기 그 배우는 왜 나오는 거죠?”
그리고 톰의 목소리는 마이드만 해변에만 울려 퍼진 게 아니었다. 마이드만 해변의 상황을 생방송으로 내보내고 있던 너튜브 방송들을 통해 전 세계에 알려졌다.
-이서준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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