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살부터 슈퍼스타-303화 (303/1,055)

0살부터 슈퍼스타 303화

바다에 놀러 왔다가 고래를 만날 확률은 얼마나 될까.

그것도 바다 위가 아니라 모래사장 위에서.

상상도 못 한 고래의 등장에 사람들은 멍하니 고래를 바라보았다. 몇몇은 휴대폰을 들고 촬영을 했다.

밀물과 함께 밀려 들어온 것 같은 고래는 썰물과 함께 바다로 돌아가지 못하고 모래밭 위에 남아버린 것 같았다. 고래의 주위에는 물웅덩이 몇 개만이 남아 있었다.

서준이 천천히 걸어가 고래를 살폈다.

정신을 잃은 듯 눈을 감은 고래는 힘겹게 숨만 쉬고 있었다. 고래를 살피던 서준의 눈에 뜨거운 햇볕에 말라가는 고래의 피부가 들어왔다. 자세히 살펴보기 전에 이것부터 어떻게 해야 할 것 같았다.

서준이 자신의 뒤에 서 있는 잭에게 말했다.

“잭. 차에 수건 있다고 했지?”

“어. 근데 훈련 끝나고 쓰는 거라 많아 봤자 네 장이야.”

잭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네 장. 차만 한 고래를 뒤덮기엔 모자라는 수였다. 서준이 그늘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쩔 수 없지. 있는 것만이라도 가져와. 고래 피부가 마르면 안 돼. 그리고 햇빛을 가릴 천막 같은 건…… 없겠지?”

서준의 말에 잠시 생각하던 잭이 고개를 저었다.

“없는 것 같긴 한데…… 일단 수건부터 가져올게.”

“고마워.”

생각지도 못한 고래의 등장에 작게 떠들고 있던 사람들에게도 서준과 잭의 대화가 들렸다. 재빨리 주차장 쪽으로 뛰어가는 잭과 신중한 모습으로 고래를 살피고 있는 서준의 모습에 하나둘 입을 열기 시작했다.

“저기…… 우리한테 좀 큰 비치매트가 있거든. 그걸 써서 가리면 어떨까?”

“나한테 수건 있어요.”

“형! 이거 써요!”

사람들의 말에 서준이 작게 웃으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그럼 조금만 도와주실래요?”

“조금은 무슨! 다 같이 고래를 살려야지!”

커다란 중년 남자의 목소리에 다들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수건을 물에 적셔서 고래 위에 올려둘 거예요. 가림막으로 쓸 수 있는 것들은 고래 위를 가려주시고요.”

서준의 말에 따라 사람들이 움직였다. 바닷가라 수건은 많았다. 누구나 할 것 없이 바다로 달려가 수건을 적셔 가지고 왔다. 고래의 등 위가 물에 흠뻑 젖은 수건으로 빠짐없이 덮였다.

그사이 수건을 가지러 갔던 잭이 도착했다.

급하게 달려갔다 온 터라 숨을 가쁘게 몰아쉬던 잭이 고래를 뒤덮은 젖은 수건들과 자신의 손에 들린 네 장의 수건을 번갈아보다 입을 열었다.

“……안 갔어도 됐을 것 같은데?”

“하하. 그러게.”

끈으로 비치매트와 나뭇가지를 묶던 서준이 잭의 말에 웃고 말았다. 어깨를 으쓱한 잭도 얼른 그늘막 제작에 합류했다.

“하나, 둘!”

각자 들고 있던 기둥을 일제히 바로 세웠다. 모래사장 위에 깔기 위해 들고온 비치매트들이 나뭇가지와 텐트 폴대에 묶어 고래의 그늘막이 되었다. 순식간에 만들어진 그늘과 젖은 수건으로 덮인 고래의 모습에 서준과 사람들이 한숨을 돌렸다.

“그늘은 이 정도면 될 것 같은데?”

“이젠 수건이 안 마르게 계속 물만 뿌리면 될 것 같아요.”

비치매트를 흔쾌히 내준 여자의 말에 서준과 사람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양동이 가지고 왔습니다!”

“여기도요!”

서준이 말하지 않아도 다들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있었다. 사람들은 근처 가게에 말하거나 사람들에게 부탁해 모래 놀이를 위해 가져온 양동이를 모아왔다.

촤아악!

고래를 덮은 수건 위로 양동이에 담긴 바닷물이 쏟아졌다.

“여기!”

“한 번 더 가요!”

썰물로 바닷물이 있는 곳과 고래가 있던 곳이 조금 멀었다. 바다부터 고래까지, 인간 띠를 만든 사람들이 양동이를 옆으로 옆으로 전달했다. 가장 고래와 가까운 곳에서 물을 뿌리던 잭이 한숨을 삼키며 서준에게 말했다.

“이대로는 안 되겠는데? 관리자한테 연락했어?”

“응. 너 가자마자 연락했어. 관리자분이 구조대에 연락했대. 언제 올진 모르겠지만 말이야.”

그렇게 대화를 나누면서도 서준과 잭의 손은 멈추지 않았다. 가려진 햇빛과 뿌려지는 물에 고래는 조금씩 정신을 차리는 듯 보였다.

“눈 떴어요!”

열심히 응원하고 있던 꼬마 아이의 말대로 고래의 검은 눈이 힘들게 끔벅였다. 그 모습에 사람들이 들썩였다. 몸은 힘들었지만, 기분은 좋았다. 서준과 잭의 얼굴도 밝아졌다.

서준의 눈동자가 새하얗게 빛났다.

[(선)마을 의원의 백사의 눈이 발동됩니다.]

서준의 얼굴이 흐려졌다. 정신은 차린 것 같았지만, 고래의 움직임은 처음 발견했을 때보다 약해졌다. 특히, 폐 쪽의 움직임이 더뎌간다.

‘거기다 상처도 입은 것 같은데?’

모래와 맞닿은 배 쪽의 근육이 정상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심해 보이지는 않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작은 상처도 위험했다.

고래와 가까이 서 있던 잭도 고래의 상태를 알아차렸다.

“숨을 제대로 못 쉬는 것 같은데?”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중력 때문이야. 물속에선 중력의 영향을 덜 받거든. 근데 고래는 물속에서 계속 지내서 중력의 힘을 거의 안 받아.”

대화를 나누는 중에도 서준과 잭의 두 손은 멈추지 않았다. 이미 양동이를 여러 번 날라 지쳐서 다른 사람들과 교대한 것과 달리 두 소년은 아직도 팔팔했다.

고래를 발견하고 가장 앞장서서 움직인 두 소년.

그래서 사람들의 시선이 모였다.

‘어디서 본 것 같기도 하고?’

능력을 발동해 고래를 살피며, 가장 필요한 곳에 촤아악 물을 뿌리던 서준이 말했다.

“근데 지금은 지상으로 올라와서 중력을 제대로 받고 있어. 몸의 무게를 그대로 받고 있는 거지.”

서준과 잭의 옷이 물에 젖어갔다. 조금 비뚤어진 모자를 고쳐 쓸 시간도 없이 물을 뿌렸다.

커다란 고래를 둘러싼 사람들의 모습에 또 다른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임시로 만들어진 천막과 수건으로 뒤덮인 고래를 발견하고 놀란 표정을 짓다가 양동이를 옮기다 지친 사람들과 교대했다.

아이들부터 어른들까지.

축 늘어진 고래를 보고 안타까움에 자리를 뜨지 못했다.

“그렇게 되면 고래의 지방 때문에 장기가 눌려. 특히 폐가 눌려서 숨을 쉬기 힘든 상태야.”

바다 위로 나와 호흡을 하는 고래가 지상 위에서 질식으로 죽어가는 이유였다.

“그렇구나.”

잭의 얼굴에 그늘이 생겼다.

“완전히 호흡이 멈추기 전에 구조대가 와야 할 텐데…….”

서준이 바다 저편을 바라보았다가 다시 고래를 보았다. 천천히 감았다 뜨는 새까만 눈동자가 안쓰러워 보였다. 잭이 물었다.

“새끼이려나?”

“응. 아직 어미 곁에 붙어 다녀야 하는데…….”

촤아악!

고래 위로 또 한 번 양동이의 물이 쏟아졌다.

서준의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도 제각기 이야기를 나누었다.

“차로 잡아당길까?”

“글쎄. 크기로 봐선 한 대로 될 것 같지도 않고…….”

“고래가 움직일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한 깊이까지 들어가려면 차로는 부족할 것 같아.”

역시 답은 구조대였다.

사람들이 구조대를 기다리는 사이, 서준은 선기를 흘려보내 고래의 숨을 이어주었다. 강제적으로 숨을 쉬게 만들고 피가 돌게 만들었지만 이것도 응급조치에 지나지 않았다. 어서 빨리 구조대가 와야 했다.

순해 보이는 커다란 눈이 힘겹게 깜박거렸다.

최근에 읽었던 삶의 책 때문에 더욱 마음이 쓰이는 서준이었다.

* * *

“이렇게 주에 2번씩 순찰을 하고는 합니다.”

씨 세이버(SEA SAVER)라는 이름이 적힌 배가 물살을 가르며 움직였다. 주황색 구명조끼를 입은 여자가 멀리서 보이는 돌고래 떼를 보며 웃었다.

커다란 카메라 렌즈가 씨 세이브의 팀장, 케이트 오하스에게로 향했다. 다큐멘터리의 피디가 질문을 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요즘 해변…….”

-팀장님. 신고가 들어왔어요!

갑작스러운 목소리에 케이트는 반사적으로 지지직 울리는 무전기를 들었고 피디는 얼른 입을 다물었다.

“어디야?”

-마이드만 비치에서 고래를 발견했대요. 모래사장 위에 올라와 있고 크기는 중형차만 한. 돌고래는 아니랍니다!

“제스! 마이드만 비치로 가!”

방향을 바꾸는 씨 세이버에 구명조끼를 입은 다큐멘터리 피디와 카메라 감독과 스태프들이 익숙하게 자리를 잡았다. 해양생물을 구조하는 씨 세이브의 다큐멘터리를 찍는 나흘 동안 이러한 출동을 몇 번 겪어봤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게 얼마나 시청률이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지구의 70.8%를 차지하는 바다.

그리고 바다에 사는 생물들.

생물들을 지키는 씨 세이브.

하지만 날이 가면 갈수록 사람들의 관심은 멀어졌다.

그 때문에 씨 세이브는 사람들의 도움을 이끌어내기 위해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기로 했고 ABS방송사와 함께 만들어나가는 중이었다.

“신고자한테 전해!”

책임자, 케이트가 씨 세이버에 실린 보트를 향해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햇빛을 가리고 물을 계속 뿌려주라고!”

“음…… 벌써 그렇게 하고 있는 것 같은데요?”

“……뭐?”

케이트의 옆을 따라 걷던 팀원의 말에 케이트가 고개를 갸웃했다. 팀원이 휴대폰을 케이트에게 내밀었다.

“지금 너튜브에서 라이브 중이에요.”

* * *

[마이드만 해변에서 고래를 구하는 중입니다! 라이브 방송 중!]

-저렇게 해서 구할 수 있음?

-못 구할 것 같은데?

-저번 주에도 발견된 돌고래 2마리 죽음.

-크기가 더 커서 힘들 듯.

바닷물이 가득 든 무거운 양동이를 옆으로 넘겨주던 남자, 톰이 손을 들자,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사람이 빠져나온 톰 대신 그 자리에 서서 양동이를 옆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톰이 모래밭 위에 주저앉았다. 그 옆에는 5분 전까지 함께 양동이를 옮기던 친구가 앉아 있었다. 저릿저릿한 두 팔을 주무르던 톰이 입을 열었다.

“구조대는 언제 온대?”

“몇 명이 같이 신고했으니까 오긴 올 거야. 저렇게 너튜브에 올리고 있는데 안 오면 큰일이지.”

“이런 것도 찍다니…… 대단하다고 해야 할지…….”

톰이 못마땅한 듯 쯧, 혀를 찼다. 옆에 앉아 있던 친구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래도 저 영상들보고 근처 사람들이 오니까.”

친구의 말대로 아까보다 많아진 사람들 덕분에 먼저 도와주던 사람들도 쉴 수 있게 되었다.

“그보다 쟤들 진짜 대단한 것 같지 않아?”

“그러게.”

가장 앞자리에 서서 고래에게 물을 뿌려주는 두 소년.

총 여섯 방향에서 물을 뿌려주고 있는데 나머지 네 방향은 사람이 바뀌고 있었지만 두 소년은 아직도 그 자리에 굳건히 서서 고래의 상태를 살피고 물을 뿌렸다.

티셔츠도 바지도 흠뻑 젖었지만,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모습에 감탄만 나왔다.

“대단한 체력이야. 운동선수인가?”

“그러게. 왼쪽은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잭 스미스의 얼굴을 본 톰이 턱을 매만졌다. 그리고 왠지 오른쪽 소년도 어디서 본 것 같았다.

‘근데 되게 반짝거리네.’

고래와 부딪혀 튕겨 나가는 물방울 탓인지, 아니면 소년의 행동에 마음 깊이 감동받은 모양인지 두 소년, 특히 오른쪽의 소년에게서 빛이 나는 것 같았다. 그렇게 느끼는 사람이 톰뿐만은 아니었다.

어쩐지 시선을 잡아끄는 소년이었다. 하지만 깊이 생각해 보기도 전에 톰과 친구의 관심은 다른 곳으로 향했다. 한쪽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온 것이었다.

“오! 배다!”

“씨 세이버가 왔어!”

“엄마! 배 왔어!”

사람들의 환호성에 마이드만 해변이 들썩거렸다. 그 환호성에 서준과 잭도 잠시 고개를 돌려 바다 쪽을 바라보았다. 넓고 푸르른 바다 위에 커다란 배가 보였다.

[SEA SAVER]

배에 적힌 새하얀 글씨가 보였다.

“드디어 왔네!”

“그러게. 시간은 맞을 것 같아.”

눈이 마주친 서준과 잭이 활짝 웃었다.

씨 세이버가 해변 가까이 다가왔다. 일정 거리에서 멈춘 씨 세이버에서 작은 보트가 나타났다. 새하얀 보트는 새하얀 물보라를 일으키며 빠른 속도로 달려왔다.

영화 속 한 장면 같은 극적인 모습에 여기저기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왔구나!!

-완전 멋있다!

-크. 영화 보는 줄 알았어!

해변에 도착한 보트에서 케이트와 씨 세이브 팀원들이 내렸다. 뒤따라 내린 카메라든 사람의 모습에 몇몇 사람들이 움찔했지만 양동이를 옮기던 손을 멈추지 않았다.

케이트가 큰 목소리로 외쳤다.

“씨 세이브 구조팀 팀장, 케이트 오하스입니다. 여러분의 도움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지금부터는 저희 씨 세이브에게 맡겨주세요!”

다시 한번 환호성과 박수가 터져 나왔다.

#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