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302화
“자! 타!”
“……뭐?”
여기저기 흠집이 나 있는 차를 퉁퉁 두드리며 함박웃음을 짓는 잭의 모습에 서준은 눈만 끔벅거렸다.
처음 보는 차.
실실 웃는 잭 스미스.
보이지 않는 에릭과 마리아.
‘분위기로 봐선…….’
서준의 눈이 가늘게 변했다.
“……잭 너 운전해?”
“하하하!”
호쾌하게 웃음을 터뜨린 잭 스미스가 운전면허증을 꺼냈다.
“생일 되자마자 땄지!”
서준이 잭에게서 운전면허증을 받아 요리조리 살폈다.
햇빛에 반사해 보기도 하고 옆으로 기울여보기도 했다. 운전면허증을 충분히 살펴본 서준이 이번에는 잭과 운전면허증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위조는 아니겠지?’
의심 가득한 서준의 눈초리에 잭 스미스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위조 아니거든!”
“어떻게 알았어?”
“눈빛! 배우라서 그런지 아주 잘 보이네!”
그러고 보니 캘리포니아 주에서는 만 16살부터 운전을 할 수 있었다. 서준은 다시 한번 잭의 운전면허증을 보았다.
‘잭은 작년에 16살이 됐으니 딸 수 있겠지만…….’
그럼에도 서준은 잭 스미스가 운전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이제 초등학생 1학년이 된 수빈이나 아직 유치원에 다니고 있는 은수가 훌쩍 자라 운전을 한다고 말하는 느낌이랄까.’
“내 뒤에 숨어 있던 우리 잭이……!”
“우리 잭…… 너보다 1살 많거든! 아, 얼른 타기나 해.”
잭의 성화에 서준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조수석에 올랐다. 큼직한 덩치의 잭 스미스가 운전석에 앉았다.
서준은 안전벨트를 매고 두 손으로 꽉 쥐었다. 이거…… 위험한 거 아닌가. 서준의 시선이 차 키를 꽂아넣고 있는 잭 스미스에게로 향했다.
‘그냥 애를 여기서 기절시키는 게 나으려나.’
둥그런 잭 스미스의 뒤통수가 보였다. [(선)황보세가 막내아들의 애완견]이면 단 일격이면 해결될 거다.
‘잭의 훈련을 위해서 꺼내 놓은 능력이긴 하지만…… 다른 능력들도 있으니 후유증 없이 깔끔하게 잠들게 할 수 있을 텐데.’
점점 살벌해지는 서준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잭은 콧노래를 부르며 차에 시동을 걸었다. 서준의 불안한 마음과는 달리 시원하게 시동이 걸렸다.
‘괜찮나? 괜찮은 건가?’
익숙하게 핸들을 잡는 잭 스미스의 모습에 안전벨트를 잡고 있는 서준의 두 손이 조금 풀렸다. 잭의 실력을 믿는 건 아니었다.
‘정 위험해지면 잭을 데리고 탈출해야겠다.’
이미 해탈한 서준의 머릿속에선 탈출방법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그때 에릭 스미스가 밖으로 나왔다.
“너희 오늘 어디 갈 거야?”
“배팅장 갔다가 해변에 가려고.”
“그래? 잘 놀다가 와.”
“에릭!”
서준이 집으로 들어가려던 에릭 스미스를 불렀다. 에릭 스미스가 뒤를 돌아 조수석에 앉아 있는 서준을 보았다.
“잭, 운전 잘해요?”
“뭐, 죽진 않을 거야.”
“하핫!”
에릭 스미스와 잭 스미스가 유쾌하게 웃었다.
에릭의 농담은 오히려 서준을 안심시켰다. 에릭의 태평한 모습을 보니 운전을 잘하는 모양이었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갔다 올게.”
스미스 집을 나온 자동차가 도로 위를 달렸다.
느긋하게 운전하는 잭 스미스의 모습을 서준이 신기한 듯 바라보았다. 그런 서준의 눈빛에 잭이 웃으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 타고 다닌 지 벌써 1년이나 됐어. 나도 슈퍼스타를 초보자 차에 태울 생각은 없다고.”
‘준이 오면 태워주려고 열심히 연습했더니 차가 이렇게 되어버렸지만.’
그래도 겉만 이렇지 차는 튼튼했다. 게다가 며칠 전엔 안전점검도 받았다.
“그래도 믿음이 안 가. 우리 꼬꼬마 잭이 벌써 운전을 하다니……!”
“꼬꼬마…….”
지금의 덩치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호칭이었다. 콧등을 찡긋거린 잭이 서준에게 물었다.
“한국은 몇 살부터 면허증 딸 수 있어?”
“18살. 2년 뒤에 생일만 지나면 나도 딸 수 있어.”
“대답이 바로 나오네?”
“작품에 가끔 운전하는 장면이 있잖아. 미리미리 준비해 놔야지.”
서준의 대답에 잭이 웃고 말았다.
“그럴 줄 알았다.”
불안해했던 것과는 달리 잭 스미스는 제법 운전을 잘했다. 그제야 마음이 놓인 서준이 의자에 등을 기댔다. 조금 긴장했더니 몸이 굳은 것 같았다.
“배팅장은 어디야?”
“좀만 더 가면 돼. 새로 생긴 가게가 피칭머신이 좋거든. 코스도 많고 속도도 100마일까지 올릴 수 있어.”
그 말에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 * *
따앙!
“좋았어!”
10구를 연달아 친 잭 스미스가 활짝 웃으며 멈춤 버튼을 누르고 밖으로 나왔다. 밖에 서 있던 서준이 흐뭇하게 웃었다.
“오랜만에 준도 해봐.”
“그럴까?”
잭의 말에 서준이 웃으며 야구 배트를 잡았다.
야구 배트를 가볍게 두어 번 휘두른 서준이 시작 버튼을 누르고 자세를 잡았다. 피칭머신에서 빠른 속도로 공이 날아왔다. 야구선수인 잭이 치던 속도였지만 서준도 잭도 걱정하지 않았다.
서준은 끝까지 공을 보고 무게중심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옮기며, 야구 배트를 휘둘렀다. 야구 배트가 원을 그리며 부드럽게 움직였다.
따앙!
시원한 타격음에 서준도 잭도 함박웃음을 지었다.
“오랜만에 하니까 재밌네!”
“한국에서 안 했다더니 실력은 더 좋아진 것 같은데?”
“그래?”
“한 구 더 온다.”
잭의 말에 서준이 자세를 잡았다.
다시 한번, 왼쪽 다리로 무게중심을 옮기면서 배트를 휘둘렀다. 끝까지 공을 미는 배트의 힘에 공이 빠르게 날아갔다.
따앙!
서준은 그렇게 10구를 연달아 쳐냈다.
저 끝으로 날아가는 공을 보고 잭 스미스가 입을 열었다.
“이제 좀 익숙해진 것 같은데? 준. 속도 더 올릴까?”
“그래.”
“이렇게 100마일까지 가 보자.”
킬킬 웃는 잭의 모습에 배트 손잡이를 매만지던 서준도 씨익 웃었다.
“좋아.”
* * *
“잭 스미스?”
스카우트가 익숙한 얼굴에 몸을 멈칫했다. 오늘은 간만의 휴가였지만 배팅장으로 들어가는 타자의 모습에 발이 저절로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연습하는지 좀 볼까?”
시합 때와는 다른 모습을 볼 수도 있었다. 잭 스미스의 뒤를 따르던 스카우트가 어제 봤던 동양인 소년을 발견했다. 어제 오늘 같이 있는 걸 보니 친척인 것 같았다.
두 사람을 따라 배팅장 안으로 들어간 스카우트는 한쪽에 자리를 잡았다. 초록색 그물망으로 나뉘어있어 잭 스미스와 소년의 모습이 잘 보였다.
처음엔 잭 스미스가 배트를 휘둘렀다.
“오늘 컨디션 좋은데?”
자세도 안정적이다.
보통 미국 중고교에선 타격 자세를 선수들의 자율에 맡겨 선수마다 자세가 달랐다.
그중에는 잘못된 자세로 타격하는 선수도, 자신의 몸에 알맞은 자세로 타격하는 선수들도 있었다.
‘하지만 잭 스미스는 다르지.’
고등학생임에도 불구하고 프로가 관리해 준 듯 잭 스미스의 상체와 하체의 밸런스는 완벽했다. 타격 자세도 그랬다. 잭 스미스만의, 잭 스미스에게 맞춘 것 같은 자세.
‘개인 트레이너가 있는 줄 알았지만 결국 아무도 없었지.’
다시 한번 잭 스미스가 친 공이 허공으로 날아갔다.
아, 이번 건 좀.
그렇게 생각하자마자 밖에 서 있던 모자를 쓴 소년이 잭 스미스에게 무어라 말을 했다. 작은 소리라 들리지 않았다. 스카우트가 귀를 기울였다.
“좋아. 그렇게 한번 쳐봐.”
“오케이!”
그새 대화가 끝났나 보다. 한숨을 쉰 스카우트가 잭 스미스를 바라보았다.
잭 스미스가 배트를 휘둘렀다. 날아오던 공이 제대로 맞아 저편으로 날아갔다.
‘아까보다 더 좋은 것 같은데?’
조금 전도 좋았지만, 지금 자세가 더 좋은 것 같았다.
그렇게 10구를 친 잭 스미스가 나오고 모자를 쓴 소년이 안으로 들어가 자세를 잡았다.
“자세는 좋네. 한국 고교 선수인가?”
아시아 스카우트 파트는 따로 있지만, 스카우트는 직업병처럼 소년을 분석했다.
따앙!
바쁘게 움직이던 스카우트의 눈동자가 배팅장을 울리는 큰 소리와 함께 멈추었다. ‘역시 준!’이라고 외치는 잭 스미스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잘하는데?”
조금 전 잭 스미스와 비교될 정도로 잘했다.
‘아니, 잠깐. 잭 스미스와 비교될 정도로 잘한다고?’
스카우트의 눈동자가 요동쳤다.
이 지역의 타자 중 가장 뛰어난 고교 선수가 잭 스미스 아니었던가.
스카우트의 떨리는 시선이 모자를 쓴 소년에게로 향했다.
그렇게 9구.
몸쪽, 바깥쪽, 아래, 위. 다양한 코스로 날아오는 공을, 모자를 쓴 소년은 단 한 번도 놓치지 않고 쳐냈다.
어느새 초록색 그물망을 쥐고 찰싹 달라붙은 스카우트가 침음성을 삼켰다.
‘왜 저런 선수를 이제 발견한 거지?’
물론 배팅장이기 때문에 실제 시합 때와는 다를 수도 있겠지만 지금 본 것만 하더라도 고교 야구에선 제법 이름을 날리지 않을까 싶었다.
스카우트가 알고 있는 동양인 선수들을 떠올리는 사이, 잭 스미스와 소년은 번갈아 타석에 섰다. 공의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코스도 다양하게 바뀌었다.
따앙!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 하나도 빠짐없이 소년의 배트에 맞고 시원하게 날아가는 야구공에 스카우트의 눈은 점점 커졌다.
자신의 촉이 외치고 있었다.
저 소년은 어마어마한 원석이라고. 당장 잡아야 한다고.
따앙!!
그때, 그 어느 때보다 커다란 소리가 들렸다. 언제 공이 날아가고 언제 쳤는지 모르겠다. 아마 평소에 보던, 일반적인 속도는 아닐 터였다.
“100마일! 준이라면 칠 줄 알았어!”
“어쩐지…… 이번엔 좀 빠르더라.”
“좀? 이건 좀 빠른 게 아니지!”
두 사람의 웃음기 가득한 대화에 스카우트가 입을 쩌억 벌렸다.
* * *
“이제 점심 먹으러 갈까?”
“요 앞에 햄버거집 생겼어. 맛있더라.”
“햄버거 좋지.”
서준보다 앞서 걸어가던 잭은 그물망에 찰싹 달라붙어 넋을 놓고 있는 남자를 발견했다. 남자의 시선이 서준에게로 향한 것을 발견한 잭이 발걸음을 옮겼다.
‘준 때문에 일부러 사람이 적은 시간대에 왔는데…… 한 명쯤은 괜찮겠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잭은 서준을 가리듯 옆에 서서 배팅장을 나섰다.
서준과 잭이 나가고 나서야 정신을 차린 스카우트가 허겁지겁 두 사람을 뒤따라 나왔지만 이미 차는 떠나고 없었다. 스카우트가 휴대폰을 꺼내 들며 차 문을 열었다.
-응? 너 휴가 아니야? 무슨 일…….
“지금 갈 테니까 한국! 한국 고교 선수 목록 좀 찾아놔!”
-뭐? 갑자기?
차의 시동을 걸던 스카우트가 문뜩 드는 생각에 손을 멈추었다. 한국인이 아니면 어쩌지?
“아니, 잠깐. 한국 먼저. 그다음에 일본, 중국 순으로. 사진하고 이름이…… 준이던가. 하여튼 사진하고 이름은 꼭 넣어서 뽑아놔!”
* * *
햄버거로 두둑이 배를 채운 서준과 잭을 태운 차가 바닷가 도로를 달렸다.
서준이 조수석의 창문을 내리자 시원한 바람이 흘러들어왔다. 서준은 의자에 등을 기댄 체 편안한 자세로 창밖을 바라보았다. 서준의 검은 머리카락이 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렸다.
그런 서준의 모습을 슬쩍 본 잭이 감탄했다.
“역시 배우는 다르네.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화보야.”
“잭. 운전할 땐 앞을 봐야지.”
“보고 있어. 사이드미러가 그쪽에 있는걸.”
잭의 말에 작게 웃은 서준이 다시 창밖을 바라보았다.
넓은 모래밭 끝에 푸른 바다가 보였다. 해변을 반쯤 채운 사람들도 보였다. 다들 여유롭고 행복해 보였다. 서준도 잭도 미소를 지었다.
“사람들이 많네?”
“여름인 데다가 작년보다 더 더워서 그런가 봐.”
잭의 말에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국이 여기보다 더워서 미처 생각 못 했는데 이 날씨도 여기 사는 사람들에게는 충분히 더운 날씨였다.
“하긴. 올해 날씨는 이상하다더라. 봄도 빨리 왔고 여름도 작년보다 더울 예정이라던데.”
“겨울에는 좀 나으려나. 아, 준. 수영할 거야? 수건은 있어.”
“아니. 수영은 다음에 할래. 옷도 안 챙겨왔고.”
오늘은 이렇게 바다를 보는 것만 해도 충분했다.
편안해 보이는 서준의 모습에 잭은 차의 속도를 낮추었다. 한국에서는 얼굴을 드러내놓고 다니기 힘들 테니 지금만이라도 편안하게 있다가 가길 바랐다.
‘날씨 좋다.’
그런 잭의 생각과는 달리 서준은 한국에서도 이리저리 잘도 돌아다녔지만 말이다.
그렇게 해변을 따라가는 길.
해변 쪽으로 바라보고 있던 서준은 무언가를 발견하고 눈을 가늘게 떴다.
‘저게 뭐……!’
무언가의 정체를 알아챈 서준이 놀란 표정으로 급하게 외쳤다.
“잭! 잠시만!”
서준의 목소리에 잭이 빠르게 주위를 살피고 차를 세웠다. 서준이 덜컥 차 문을 열고 내렸다.
“준! 모자!”
잭이 얼른 서준에게 모자를 건네주었다.
“고마워!”
무슨 일인진 몰라도 서준이 아무 이유도 없이 급하게 움직일 리가 없었다. 잭이 모자를 쓰고 달려가려는 서준에게 외쳤다.
“나도 주차하고 바로 갈게!”
“그래!”
대답한 서준이 모자를 꾹 눌러쓰고 해변 쪽으로 달려갔다.
서준 뿐만이 아니라 해변에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 한곳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목적지에 도착한 서준은 가볍게 숨을 몰아쉬며 그것을 살펴보았다. 거친 숨소리가 점점 약해지는 게 들려왔다.
모여든 사람들이 휴대폰을 꺼내 그것을 촬영했다.
얼른 주차하고 달려온 잭이 이리저리 움직이는 서준을 가리듯 섰다. 그리고 시야에 들어온 그것에 감탄인지, 탄식인지 모를 숨을 내뱉었다.
“준…… 이건…….”
사람들이 왜 모여 있는지 궁금해 앞자리까지 비집고 들어온, 장난감 모래삽을 든 꼬마 아이가 눈앞의 거대한 것에 입을 쩌억 벌리고 있다가 크게 외쳤다.
“엄마! 고래!”
잭 스미스의 차만 한 고래가 모래밭 위에 널브러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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