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301화
도로를 달리던 차가 야구 경기장의 주차장 안으로 들어갔다. 주차장은 반쯤 차 있었다.
차에서 내린 서준이 경기장 주위를 둘러보고 잭 스미스에게 물었다.
“어디랑 경기하는 거야?”
“옆 동네 야구클럽. 연습경기야.”
“학교 시합은 5월에 끝났거든.”
에릭 스미스의 말에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결승전에서 졌다고 잭이 하도 찡찡거려서 알고 있어요.”
“야!”
트렁크에서 가방을 내리던 잭의 외침에 서준과 에릭 스미스가 웃음을 터뜨렸다.
실컷 웃은 에릭 스미스가 시간을 확인했다. 원래는 클럽 버스로 다른 선수들과 함께 와야 했지만, 잭은 서준을 데리러 가기 위해 따로 왔다. 클럽 버스가 주차되어 있는 걸 보니 잭의 팀도 벌써 온 모양이었다.
“잭. 이제 슬슬 들어가서 몸 풀어야 해.”
“그래요? 잭. 얼른 가 봐.”
에반 스미스의 말에 서준이 쉭쉭, 손을 내저었다.
“준.”
“응?”
고개를 갸웃거리는 서준의 모습에 뒷목을 긁적거리던 잭이 입을 열었다.
“자세 한번 봐주지 않을래?”
* * *
모자를 쓴 서준이 관객석에 앉았다. 확실히 미국의 야구장은 시설이 좋은 것 같았다. 그리고 고등학생들의 친선경기인데도 관중도 꽤 있었다.
‘메이저리그가 있는 나라라서 그런가.’
서준의 옆자리에 앉은 에릭 스미스가 가방에서 차가운 물을 꺼내 서준에게 건네주었다. 지붕이 없는 관중석이라 조금만 앉아 있어도 더워질 게 뻔했다.
‘그래도 한국보다야 덜 덥겠지만.’
서준이 차가운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잭은 준이 오면 철이 없어진다니까. 평소에는 얼마나 어른스러운 척을 하는지 몰라.”
“그래요? 제 옆에 바짝 붙어 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오. 준도 기억하나 봐. 그땐 잭이 겁이 많긴 했지. 그래도 상의 인형은 좋아하는 건 특이했지만.”
에릭 스미스의 말에 서준이 웃음을 터뜨렸다. 묘하게 실감 나는 김희상의 인형을 다른 아이들은 싫어했지만, 잭 스미스는 떼를 쓸 정도로 좋아했다.
“그런 잭이 4번 타자라니…….”
“우리도 처음엔 엄청 놀랐어. 그렇게 잘할지 몰랐거든.”
그렇게 말하는 에릭 스미스의 얼굴에 자랑스러움이 가득했다. 친구의 성장에 서준도 흐뭇하게 웃었다. 그렇게 경기가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에릭 스미스의 시선에 무언가 들어왔다.
“스카우트들도 왔네.”
“스카우트요?”
“그래. 저쪽에 선글라스 끼고 폼 잡고 있는 사람들 있지?”
에릭 스미스가 손가락으로 관중석 한쪽을 가리켰다. 에릭 스미스의 말대로 선글라스를 낀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몇몇은 카메라를 들고 있기도 했다.
서준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오. 신기하다. 저 스카우트는 처음 봐요.”
“꽤 많이 왔네? 아마 오늘은 볼 만한 선수가 많이 있는 모양이야.”
“잭을 포함해서요?”
서준이 웃으며 말하자 에릭 스미스도 웃고 말았다.
“그래. 잭을 포함해서 말이야.”
-플레이볼!
주심의 목소리가 경기장에 울려 퍼졌다.
그 소리에 잠시 스카우트들을 살펴보던 서준의 시선이 경기장으로 향했다. 스카우트들이 신기하긴 했지만, 더 중요한 건 잭의 시합이었다.
-스트라이크!
잭이 소속된 야구클럽의 수비로 경기가 시작했다.
* * *
“음?”
“왜 그래?”
스카우트의 고개가 갸웃했다. 옆에서 경기를 촬영하고 있던 동료가 물었다.
“저 남자. 잭 스미스의 아버지지?”
“그러네?”
또래보다 훌륭한 실력을 갖춘 잭 스미스는 스카우트들 사이에서도 미래가 기대되는 선수였다. 그 때문에 경기도 챙겨보고 가족에 대해서도 알아보았다.
‘5월 결승전 이후로는 슬럼프인 것 같지만.’
슬럼프만 이겨내면 좋은 선수가 될 터였다. 못 이겨내면 여기서 끝이지만 말이다.
냉정한 스카우트의 눈이 에릭 스미스의 옆으로 향했다.
“옆에 앉은 소년은 누구지?”
“모자를 쓰고 있어서 잘 보이진 않는데…… 동양인 같은데?”
“잭 스미스의 어머니가 한국인이었지?”
“어. 친척인가?”
따악!
호쾌한 소리와 함께 스카우트들의 시선이 경기장으로 향했다. 2루에 서 있던 선수와 배트를 휘두른 잭 스미스가 신나게 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재액!!!”
“스미스!!”
잭 스미스의 투런 홈런이었다.
“잭! 멋지다!!”
“우리 아들 잘한다!!”
1회 말부터 터진 홈런에 서준과 에릭 스미스도 벌떡 일어나 잭의 이름을 불러댔다.
두 사람의 목소리를 들은 듯 벤치로 들어가던 잭이 걸음을 멈추고 돌아보았다. 관중석에서 두 팔을 흔들고 있는 아버지와 소꿉친구의 모습에 잭 스미스도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 * *
따앙!
깔끔하게 날아가는 야구공에 스카우트들이 감탄했다.
“오늘 잭 스미스 컨디션 좋은데?”
잭 스미스의 솔로 홈런이었다.
그렇게 오늘 경기가 끝났다.
“3-0이라니. 처음 투런에, 솔로에…… 스미스 혼자서 점수 다 냈잖아.”
“슬럼프는 완전히 빠져나왔나 봐.”
“그러게. 멘탈도 괜찮은 것 같고.”
스카우트들의 시선이 관중석을 보며 열심히 팔을 휘두르고 있는 잭 스미스에게로 향했다.
* * *
짠!
허공에서 여섯 개의 잔이 부딪쳤다.
“슬럼프 탈출 축하한다!”
“축하해!”
무사히 슬럼프에서 빠져나온 잭의 축하 파티가 열렸다.
맛있는 요리가 식탁을 가득 채우고 서준의 가족과 스미스의 가족이 자리에 앉았다. 아기 때부터 자주 모였던 터라 다들 익숙한 저녁 모임이었다.
“1회 말부터 따악! 치니까 난리가 났지!”
경기가 끝나고 온 서은혜와 이민준, 마리아가 흥미진진한 얼굴로 시합 이야기를 들었다. 기분도 좋고 시합도 해서 배가 많이 고팠던 잭이 실실 웃으며 요리들을 흡입했다.
“마무리로 솔로 홈런!”
에릭 스미스가 스윙을 하는 시늉을 하자 웃음소리가 커졌다. 서준이 웃으며 말했다.
“스카우트들도 잭만 보던데요.”
“오늘 MVP는 우리 잭이었으니까!”
기분 좋은 웃음소리가 집 안을 가득 채웠다.
즐거운 저녁 식사가 끝나고 부부가 사 온 디저트를 먹던 마리아가 입을 열었다.
“준. 오늘 우리 집에서 자고 가는 건 어때? 내일 잭도 쉬는 날이니까 같이 놀러 가면 좋지 않아?”
잭도 내심 기대하는 얼굴이었다.
서준의 시선이 서은혜와 이민준에게로 향했다. 부부가 웃자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올라가자. 준!”
“그래!”
들뜬 얼굴로 2층으로 향하는 서준과 잭을 보던 서은혜가 외쳤다.
“둘 다 늦게 자면 안 된다!”
“응!”
“그럴게요!”
이민준이 웃고 말았다.
“저걸 믿어야 해? 말아야 해?”
* * *
의자에 앉아 있는 서준의 눈동자가 순간 하얗게 빛났다.
[(선)마을 의원의 백사의 눈-중하급이 발동합니다.]
방 가운데서 배트를 들고 스윙 자세를 취하는 잭 스미스의 근육 움직임을 볼 수 있었다.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무게중심이 이동하면서 움직이는 근육 중 어디에 무리가 가는지, 배트를 잡고 휘두르는 어깨나 팔꿈치, 손목 등이 무리 없이 부드럽게 움직이고 있는지.
[(선)마을 의원의 백사의 눈-중하급]
생명체의 몸(근육)을 들여다봅니다.
불균형한 곳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마을 의원 하나가 죽어가던 새끼 뱀을 구해 살려냈다. 새끼 뱀을 치료하는 건 처음이었던 탓에 검었던 비늘이 새하얗게 변해버리긴 했지만 그게 천운이었다.
‘덕분에 이런 감각도 얻었지.’
백사의 시야에는 사람의 뼈와 근육, 핏줄 등이 훤히 보였다.
평범했던 마을 의원이 유명해진 것도 사람의 신체를 들여다보고 상처 입을 곳을 발견할 수 있었던 백사 덕분이었다.
‘지금으로는 그 정도까진 못하지만.’
아무래도 백사의 많은 감각 중 겨우 눈만 전해지다 보니 백사처럼 세세하게 보진 못했지만, 능력은 쓸 만했다.
몇 번 눈을 깜빡인 서준이 스윙 자세를 취하는 잭을 보며 말했다.
“괜찮은 것 같은데?”
“괜찮은 것 같은데, 가 아니라 제대로 좀 봐봐. 균형 맞아? 아까 경기 때보다 좀 처지는 것 같은 느낌인데?”
“균형 맞아. 괜찮아.”
잭 스미스의 물음에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서준의 말에 잭은 후우 숨을 내쉬고 지금 이 자세를 잊지 않기 위해 몇 번이고 반복했다.
서준은 야구 배트를 휘두르는 잭 스미스를 보았다.
서준은 야구에 대해서 자세히는 몰랐지만, 사람의 몸이나 움직임, 균형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다. [(선)황보세가 막내아들의 애완견-하급], [(선)마을 의원의 백사의 눈-중하급], [(선)사천당가 약당 삼색고양이의 수염-중하급] 등. 무공과 관련된 능력 덕분이었다.
서준이 잭의 훈련에 참여하게 된 것은 미국에 오면 잭 스미스와 야구를 하며 놀던 때부터였다.
‘야구라기보다는 그냥 던지고 치는 게 다였지만.’
꼬마들이 뭘 제대로 하겠나.
야구 배트를 든 잭의 자세가 너무 어설퍼서 보고 있는 서준이 괴로웠던 탓에 하나둘 가르쳐 주던 게 지금까지 이어졌다.
‘영상통화도 있었고.’
한국에 있던 서준은 영상통화나 동영상으로 미국에 있던 잭 스미스의 자세를 체크하고 수정해 주었다. 잭 스미스가 자신보다 어린 서준의 말을 믿어주었다는 것도 대단한 일이었다.
‘오늘 주차장에서도 조금 기울여졌던 무게중심을 고쳐줬고.’
가끔 힘이 과하게 들어가는 부분들을 말해주던 서준이 잭에게 물었다.
“근데 어릴 때면 몰라도 왜 요즘도 내가 하는 말대로 하는 거야?”
“뭐. 너도 알잖아. 학교 감독님이나 코치님들은 선수들 자세에 그렇게 참견하지 않는다는 거.”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교과서적으로 자세를 가르치는 한국 고교 선수들과는 달리, 미국 고교 선수들의 자세는 선수들의 자율에 맡긴다. 그래서 선수들마다 타격 자세가 다양했다.
“그럼 클럽에 물어봐도 되는 거 아니야? 나보다 전문적으로 가르쳐 줄 텐데?”
“음. 내가 봐도 넌 스포츠를 잘하거든. 축구, 농구, 야구 가리지 않고 말이야. 진짜 야구선수로서 너무 아깝긴 한데 넌 연기를 더 좋아하니까 어쩔 수 없지.”
배트를 내려놓은 잭이 침대에 걸터앉았다.
어떤 놀이를 하던 가장 먼저 습득하고 가장 잘하는 아이가 바로 서준 리였다.
“그래서 왜 이렇게 잘할까 생각해 봤는데 그게 스포츠를 잘한다기보다는 몸을 잘 쓴다는 느낌이더라. 어떤 근육을, 어떻게 쓰면 좀 더 효율적으로 부상 없이 자연스럽게 쓰는지 잘 아는 것 같았어.”
잭의 말에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프로 선수들 영상 보면서 연구를 안 해본 건 아닌데…… 확실히 네가 말한 대로 하는 게 몸도 편하고 효과도 좋더라. 감독님도 그렇게 말하고.”
잭이 킬킬 웃으며 말했다.
“‘잭! 스미스! 도대체 뭘 보고 온 거야!?’ 하고 경악하시더라. 예전 폼이 낫다고.”
잭의 감독 흉내에 서준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서 앞으로도 네 말 잘 들으려고. 그러니까 내일 배팅장 가자. 실제로 쳐봐야겠어.”
“그래. 나도 배팅장은 오랜만이라 재밌을 것 같아.”
“한국에서 안 가 봤어?”
서준의 말에 잭이 고개를 갸웃했다.
“야구를 주제로 하는 작품은 드무니까 그것보다 다른 걸 배우느라 바빴지. 촬영도 했고. 그게 더 재미있어.”
그 말에 잭이 픽 웃고 말았다.
여전히 연기 빼고는 무슨 재미로 살아가는지 모르겠는 녀석이다.
서준이 알았다면 똑같은 말을 잭에게 해줬을 터였다. 야구 빼면 무슨 재미로 살아가는지 모르겠는 건 너라고.
“그러고 보니 같이 연습하는 애들이 트레이너 소개해 달라더라고. 그래서 트레이너가 아니라 나보다 잘하는 애가 있어서 걔가 해주는 거라고 하니까 안 믿어.”
“그걸 믿겠어?”
서준의 말에 잭 스미스가 씨익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럼 내일도 잘 부탁해. 트레이너.”
“그래.”
“그럼 게임이나 할까? 이거 재밌겠더라. 외계인이 나오는 건데 외계인을 움직이는 게 AI라 플레이어가 숨어도 매번 학습하면서 쫓아온대. 아빠랑 엄마는 말만 들어도 무섭다고 같이 안 해줘서 너만 기다리고 있었어.”
“그거 재미있겠는데?”
아기였을 때부터 김희상의 몬스터 인형을 좋아하던 서준과 잭이 서로를 보며 히죽 웃었다.
* * *
다음 날.
서준과 잭은 밤늦게까지 게임을 하다가 잠든 탓인지 아침 식사도 조금 늦게 먹고 말았다.
마리아와 에릭의 그것 보라는 눈빛에 눈알만 데굴데굴 굴리던 서준과 잭은 서로를 보고 그것마저 재미있어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킬킬대는 두 아이의 모습에 마리아와 에릭도 웃고 말았다.
조금 늦은 아침 식사를 마치고 서준은 집 밖으로 나왔다.
‘배팅장까지 가려면 버스를 타고 가야 하나? 에릭이 데려다주려나?’
어떻게 가지, 고민하고 있는 서준이 먼저 나온 잭 스미스를 발견했다. 처음 보는 검은색 차 옆에 선 잭 스미스가 만면에 미소를 짓고 있었다.
“자! 타!”
“……뭐?”
여기저기 흠집이 나 있는 차를 퉁퉁 두드리는 함박웃음을 짓는 잭의 모습에 서준은 눈만 끔벅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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