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300화
7월.
팬미팅으로 떠들썩했던 5월이 지나고 어느새 여름방학이 되었다.
“서준이 친구들은 여름방학 때 뭐 한대?”
서은혜의 물음에 캐리어를 끌던 서준이 대답했다.
미리내 예고 학생들이 방학을 보내는 방법은 내부 레슨과 외부 레슨으로 나뉜다. 학교 강의만으로 충분한 아이들은 학교로, 방학 동안 과외를 받은 아이들은 학원으로 향했다.
“우리 학교는 강사 섭외력이 좋아서 내부 레슨으로도 충분하대. 부족하다 싶으면 내부 레슨, 외부 레슨 병행하는 애들도 있고. 근데 오디션도 봐야 하고 촬영이 있으면 촬영도 해야 하니까 다들 엄청 바쁠 것 같아.”
특강에 오디션에 촬영에. 학기 중보다 더 바쁠 것 같다며 단톡에는 벌써 우는 친구들이 가득했다.
“그렇구나.”
“나랑 같이 연극했던, 음악팀 팀장 말로는 음악과나 미술과는 짧게 해외캠프 다녀오는 애들도 있대.”
콩쿨이나 대회도 많아 미술과, 음악과 아이들도 바빴다.
그 말에 이민준이 말했다.
“그럼 서준이도 해외캠프 가는 건가?”
이민준의 말에 서준과 서은혜가 웃었다.
여름방학을 맞이한 서준은 팬들에게 말했던 것처럼 엄마아빠와 함께 미국에 왔다.
“근데 연기과는 해외 별로 안 간대.”
“그래?”
나가는 문을 찾던 서은혜가 서준의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다른 과는 몰라도 연기과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계속 한국에서 활동하니까. 게다가 외국에서 활동하려면 대사 연기도 잘하지 않으면 힘들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공항을 나오니 반가운 얼굴이 있었다.
“어서 와!”
“나라 이모!”
여전히 유쾌한 나라 킴이 서준과 부부를 반겼다.
이번 휴가 동안 나라 킴에게 신세를 지기로 했다. 통화는 많이 했지만 직접 보는 건 일 년 만이라 서준과 부부도 활짝 웃었다.
* * *
나라 킴의 저택에 도착한 서준과 부부는 올 때마다 쓰는 방에 짐을 풀었다.
“여긴 그대로네.”
자신의 방에 들어온 서준이 방 안을 둘러보았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바뀌지 않았지만 세세한 소품들이나 이불은 올 때마다 바뀌었다. 나라 이모의 섬세함이 보여 옷을 정리하던 서준은 웃고 말았다.
짐을 정리하고 식당으로 내려오니 이미 식탁 가득 음식들이 차려져 있었다. 곧바로 부부도 식당으로 내려왔다.
나라 킴과 서준, 부부가 익숙하게 자리를 잡았다.
“여기 LA에서 유명한 순두부집이야.”
“맛있어!”
“그러네. 작년까지는 없었는데 새로 생겼나 봐.”
네 사람은 저녁을 먹으며 그동안 전화나 메시지로는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부부도 나라도 서준도 웃으며 즐겁게 저녁 식사를 했다.
* * *
다음 날.
시차 적응을 끝낸 서준과 부부는 한국에서 미리 약속한 대로 친구들을 만나러 다녔다.
서준도 리첼 힐과 에반 블록을 만나기 위해 리첼 힐의 저택으로 왔다.
“짜잔!”
리첼 힐이 보여주는 포토카드에 서준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에반 블록이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나도 신청했지! 여기 사인도 있어.”
확실히 서준의 사인이었다. 자랑하듯 포토카드를 흔들던 리첼 힐이 키득키득 웃었다.
“에반도 같이 신청했는데 떨어졌어.”
“자. 준. 사인해 줘.”
“에반 블록!”
태평하게 포토카드를 내미는 에반 블록과 꼼수를 쓰는 에반 블록의 모습에 소리를 지르는 리첼 힐에 서준이 웃음을 터뜨렸다.
“사인이 안 들어간 버전이네요.”
에반 블록이 내민 포토카드는 사인이 없는 버전으로, 차라리 돈 주고 팔라는 새싹들의 의견에 판매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제작비랑 배송비만 받고 [새싹부터]에서 상시판매하고 있었다.
“근데 너무 싼 거 아닌가?”
“딱 적당해요. 처음에는 무료로 줄까 했거든요. 근데 무료로 주면 꼭 가지고 싶지 않은 사람도 많이 살 것 같다는 의견이 나와서요.”
서준의 말에 에반 블록과 리첼 힐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샀어. 8개 전부.”
“오랜만에 쉐도우맨2 때 진 나트라를 보니까 좋던걸.”
에반 블록이 들고 있던 포토카드는 쉐도우맨2를 촬영할 당시, 서준이 눈표범 우리 앞에서 찍은 사진이었다. 촬영이 끝나고 잠깐 거기서 놀았던 기억이 떠올라 서준이 웃었다.
“눈표범이 준을 좋아했지.”
능력 덕분에 동족으로 느껴져서 그렇지 않았을까.
“아, 준. 이번에 조나단이 찍은 독립 영화 봤어?”
“아뇨. 플러스나 다른 사이트에도 안 떴더라고요. 조나단한테 달라고 했는데 조나단이 보여주기 부끄럽다면서 안 줬어요.”
서준이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준에게 영화를 안 보여주다니. 조나단 걘 준과 인연을 끊을 생각인가?”
에반 블록의 진지한 농담에 리첼 힐이 하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눈물을 찔끔 흘리며 웃는 리첼 힐과 진지한 에반 블록의 모습에 서준이 입을 열었다.
“아니, 내 이미지가 그래요?”
“응!”
“그래.”
단호박 같은 두 배우의 말에 서준도 결국 웃고 말았다.
실컷 웃던 리첼 힐이 말했다.
“내가 구해놨어. 나중에 같이 보자. 상을 못 받을 수도 있지 왜 그렇게 소심한지 모르겠네.”
“아무래도 지금까지 성적이 꽤 좋았는데 처음으로 이런 결과가 나왔으니까.”
“그건 어쩔 수 없잖아. 라이언 감독님도 독립 영화 만들 때 항상 상 받지도 않았는걸.”
쉐도우맨 시리즈와 라이언 윌 감독을 아는 사람들 중에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팸플릿에 공개돼서 홍보용으로 쓰이기도 했으니까.’
그때든 지금이든 라이언 감독님이야 그런 성적은 하나도 신경 쓰지 않는 듯했지만 조나단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다가 리첼 힐이 눈을 반짝였다.
“그럼 오랜만에 모였으니 파티나 할까!”
“그거 좋지. 어셈블4 촬영도 끝나서 데이비스도 요새 쉬고 있을 테고. 와이엇도 부르고.”
“라이언 감독님이랑 사라 감독님도요!”
“스왈린 선생님도!”
그렇게 급하게 서준의 환영 파티가 열리게 되었다.
* * *
같은 날 오후, 리첼 힐의 저택.
서준 리의 영화계 지인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오버 더 레인보우를 함께 촬영했던 캐서린 밀러는 가족과 해외여행을 갔고, 폴 오든은 뉴욕에 있어서 오지 못했다.
“다음 주에 만날 계획이었거든요.”
이렇게 갑작스럽게 환영 파티가 열릴 줄은 몰랐다. 서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사라 로트 감독이 참석한 사람들을 살펴보았다.
“어쩌다 보니 마린사 히어로들이 모였네.”
“그러게요.”
서준이 오랜만에 만나는 사라 로트 감독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리첼 힐이 밝은 얼굴로 말했다.
“지금부터 조나단 윌 감독님의 독립영화 감상회가 있겠습니다!”
리첼 힐의 옆에 서 있던 조나단 윌이 슬픈 듯, 해탈한 듯 웃었다.
“오. 영화?”
“그 영화제 작품들은 아직 안 풀렸지?”
흥미가 득한 얼굴의 배우들과 감독들이 하나둘 자리를 잡았다.
라이언 삼촌과 이야기를 나누는 스왈린 애넘과 사라 로트 감독을 본 조나단 윌이 이마를 짚었다. 서준은 조나단 윌의 옆에 자리를 잡았다.
“……그냥 준한테 보내줄 걸 그랬나 봐.”
조나단의 말에 서준이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작품을 보여주지 않으면 일이 이렇게 커진다는 것을 알았으니 앞으로는 자신에게 순순히 보여줄 것 같았다.
“근데 리첼이 뭐라고 이야기한 거에요?”
“이런 자리가 아니면 이런 배우들하고 감독들에게 평가받는 일은 힘든 일이라고…… 배우의 관점과 감독의 관점을 잘 알 수 있다고 하더라.”
조나단의 말에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갑작스러운 상영회지만 조나단이 승낙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럼 시작할게요!”
빔프로젝터에서 빛이 나오고 벽에 설치된 스크린에 영상이 나오기 시작했다. 배우들과 감독들이 조나단의 독립영화에 빠져들었다.
영화가 끝나고 감독들과 배우들의 짧은 비평까지 더해지자, 각오하고 있던 조나단 윌 감독은 너덜너덜해졌다. 서준도 그런 비평에 동참했다.
“준…… 너까지……!”
“하핫.”
이런 조언이 거름이 되어 좀 더 멋진 감독이 될 수 있을 터였다.
* * *
“데이비스는 이제 뭐 찍을 거예요?”
서준의 물음에 전직 레드본, 데이비스 가렛이 어깨를 으쓱였다. 어셈블4도 이미 촬영이 끝났으니 이젠 정말 모든 시리즈가 끝났다.
“좀 쉬다가 생각해 보려고. 아무래도 시리즈 영화를 찍고 나면 이미지가 고정되니까 비슷한 거로 이미지를 굳히는 것보다는 아예 색다른 장르에 도전할까 생각 중이야.”
리첼 힐이 물었다.
“로맨스 같은 거?”
“그것도 괜찮지.”
“레드본도 끝났고 어셈블도 내년이면 끝나니 이제 히어로 시리즈는 없는 건가?”
“못 들었어? 마린사에서 새로운 히어로 영화들 만든다는 거.”
에반 블록의 말에 와이엇 카터가 말했다. 큼지막한 맥주잔을 들고 있는 와이엇 카터에게 서준과 배우들의 시선이 쏠렸다.
“어이쿠. 다들 몰랐어?”
“시리즈가 끝났으니 마린사 소식에 관심이 덜하긴 했지.”
에반 블록의 말에 리첼 힐과 데이비스 가렛이 동의했다.
서준은 새로운 히어로 영화라는 말에 눈을 반짝였다.
“하긴, 나도 술자리에서 들었어.”
애주가 와이엇 카터가 킬킬 웃었다.
“레드본1을 만들었을 때처럼 다시 처음부터 히어로 영화들을 기획하고 시리즈로 만들 생각인가 봐. 새로 나오는 히어로들을 모아서 에셈블 같은 것도 만들고. 새로운 히어로 세대가 나오는 거지.”
“그러면 또 지금의 아이들이 커서 새로운 영웅들에게 환호하겠네요. 우리 때처럼요.”
서준의 말에 배우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머리가 좋아. 2세대가 끝나면 3세대를 만들겠지?”
레드본, 그린윙, 쉐도우맨, 어셈블이 1세대라고 하면 다음 히어로들은 2세대가 될 터였다.
“히어로 캐릭터들만 잘 만든다면 꽤 오래가는 방법이겠어.”
“캐릭터도 잘 만들어야 하고 배우도 잘 골라야 하겠죠.”
“하긴. 우리가 아니었으면 이렇게 성공하지도 못했겠지.”
1세대의 중심, 레드본을 연기한 데이비스 가렛의 말에 한자리에 모인 마린사의 히어로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흥행에 한몫한 그린윙의 사라 노트 감독과 쉐도우맨의 라이언 윌 감독도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우리 사진 찍자! 준! 감독님들도 이쪽으로 오세요!”
활기찬 리첼 힐의 말에 서준과 라이언 윌, 사라 로트가 자리를 옮겼다. 와이엇 카터와 데이비스 가렛, 스왈린 애넘과 에반 블록도 카메라 앞에 섰다. 조나단 윌이 서준의 옆에 섰다.
“하나, 둘, 셋!”
* * *
[리첼 힐]
[(사진)히어로 어셈블!]
#벨 나트라#진 나트라#튤 나트라
#쉐도우맨#레드본#그린윙
리첼 힐의 SNS가 한국까지 전해졌다.
-헐. 서준이 미국에 있나 봐.
-와. 이게 이서준 인맥인가ㅎㄷㄷ
-진짜 히어로들 다 모였네.
-라이언 감독도 있네. 사라 로트 감독도!
-왠지 해시태그로 알 수 있는 리첼 힐의 애정순ㅋㅋ
=22 댓글 보고 다시 올라감ㅋㅋ
-다들 이젠 못 보겠지ㅠ
히어로들의 파티에 인터넷이 들썩이고 기사들이 업로드되었다.
한국에 없어도 여전한 서준의 영향력에,
“뭐. 이 정도야.”
코코아엔터 배우 이서준 전담 2팀 직원들은 익숙하게 울리는 전화를 받았다.
* * *
이틀 후.
나라 킴의 저택 앞.
따사로운 햇살에 모자를 쓰고 잠시 기다리고 있으니 낯익은 차가 대문 앞에 섰다.
서준이 차에 다가가자 조수석의 창문이 내려가고 친근한 얼굴이 나타났다. 잭 스미스가 손을 흔들었다.
“얼른 타.”
“그게 인사야? 안녕하세요. 에릭.”
“어서 오렴. 우리 잭이 준의 반만 닮았으면 좋겠네.”
뒷자리에 탄 서준이 잭의 아버지, 에릭 스미스의 말에 웃음을 터뜨렸다. 서준을 태운 스미스의 차가 출발했다. 잭 스미스가 뒤를 돌아보았다.
“리첼 힐 SNS 봤어. 미국 오자마자 난리던데?”
“항상 있는 일이라.”
잭 스미스의 말에 서준이 어깨를 으쓱였다. 인터넷이 들썩여도 여유로운 슈퍼스타의 모습에 잭 스미스가 코웃음을 쳤다.
“오늘 경기나 잘 봐. 홈런 칠 테니까.”
“넌 꼭 그러면 못 치더라.”
“오늘은 칠 거거든!”
유치한 아이들의 싸움에 에릭 스미스가 웃음을 터뜨렸다. 이제 훌쩍 커버린 두 아이지만 에릭 스미스에겐 여전히 씩씩한 꼬마 준과 울보 꼬마 잭으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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