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297화
가방을 멘 서준이 교실 안으로 들어갔다.
평소의 떠들썩하던 교실 분위기와는 많이 달랐다.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교과서를 읽고 있는 아이부터 벌써 해탈한 듯한 아이까지.
서준은 새삼 오늘부터 중간고사 기간이라는 것이 실감이 됐다.
‘어제랑 완전히 다르네.’
어제는 바로 다음 날이 시험 기간인 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활기찼는데 하루 사이에 아이들의 모습이 바뀌었다. 잠시 교실을 둘러보던 서준이 기운이 쭉 빠진 친구들과 인사하고 자리에 앉았다.
옆자리에 앉은 한지호는 벌써 현실도피를 하는 듯 책상 위에 늘어져 있었다.
“시험 치기 싫다…… 시험은 왜 치는 걸까?”
“대학에 가야 하니까?”
서준이 정론을 꺼내 들자 아이들의 입에서 커다란 한숨이 흘러나왔다. 이제 아이들은 고등학생이 되었고 3년 뒤면 대학에 가야 한다.
“아직 한참 남은 것 같은데…….”
“3년은 금방 가.”
김주경의 말에 아이들은 괴로워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중학교 3년도 금방 갔다. 1학년 때는 언제 졸업하나 했는데, 벌써 졸업하고 고등학생이 되었다.
교과서를 술술 넘기고 있던 박시영이 입을 열었다.
“거기다 고등학교 입시야 동갑인 애들하고만 경쟁하면 되지만 대학은 다르잖아.”
배우를 목표로 하고 있는 아이들의 제1순위 대학교는 한국예술대학교.
가르치는 교수진이며 출신 배우, 감독할 것 없이 유명한 사람들이 많은, 예술 쪽으로 진로를 잡은 아이들이라면 누구라고 할 것 없이 가고 싶은 학교였다.
“정말로 한국예대에 가고 싶어서 재수하는 사람들도 있을 거고 뒤늦게 꿈을 찾아서 도전하는 사람들도 있겠지.”
서준의 말에 아이들 고개를 끄덕였다.
대학 입학에 나이 제한은 없다. 뒤늦게 도전한 사람에게 어떤 재능이 숨겨져 있는지 모르니까 함께 시험을 볼 경쟁자들의 실력도 가늠할 수 없었다.
“그러고 보니 주희가 그러던데 2, 3학년들도 엄청 열심히 한대. 재수해서 우리랑 같이 시험을 보면 아무래도 어려울 것 같다나?”
“그러네. 어쩌면 2학년, 3학년들이랑 같이 시험 볼 수도 있겠다.”
그렇게 생각하니 실감이 됐다.
“……열심히 해야겠네.”
“그러게.”
정신이 바짝 든 아이들이 책상 위에 오늘 시험 칠 과목의 교과서와 노트를 꺼내고 훑어보기 시작했다. 서준도 오늘 시험 칠 범위를 요약해 놓은 노트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 * *
“뒤에서부터 OMR 카드 걷어와.”
담임선생님의 말에 뒷자리에 앉은 아이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OMR 카드를 걷으며 앞으로 걸어 나왔다. 아이들의 번호순으로 OMR 카드를 정리한 담임선생님이 입을 열었다.
“3일 동안 시험치느라 고생했어. 다음 주에 각 과목 선생님들이 시험지 해설하신다니까 시험지 챙겨오고 오늘 너무 놀지 말고 집에 일찍 들어가.”
“네!!”
우렁찬 아이들의 대답에 담임선생님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벌써 싱글벙글 웃는 얼굴들을 보니 실컷 놀고 집에 갈 게 뻔했다. 담임선생님이 교실을 나가고 아이들이 활짝 웃으며 떠들거나 시험지를 서로 맞춰보았다.
“내일부터 피규어 판다며?”
“응. 아침 10시부터 판대.”
한지호의 물음에 서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한국은 내일 10시부터였고 다른 나라들도 이틀 안으로 판매를 시작할 계획이었다.
‘많이 팔렸으면 좋겠네.’
마린사와 미러팀. 그리고 아빠와 희상이 삼촌, 몬스터사 직원들.
모두 퀄리티를 유지하면서도 물량을 늘리느라 다들 열심히 일했다.
‘다들 고생했으니 그만큼 성공했으면 좋겠다.’
한지호가 실실 웃었다.
“이번 주에 판매해서 다행이지. 저번 주였으면 엄마가 못 사러 가게 했을걸.”
“인터넷으로 안 사고 직접 사러 가려고?”
서준이 고개를 갸웃하자 한지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 인터넷은 배송이 좀 걸리니까. 내가 이런 건 못 기다리는 성격이라.”
“나도 갈 건데. 같이 갈래?”
“그래.”
김주경의 말에 한지호가 흔쾌히 승낙했다.
두 친구의 대화에 피규어의 모델인 서준이 볼을 긁적였다.
“어! 나도 갈래!”
거기에 다른 애들까지 참가했다.
“야! 2반 애들도 간대!”
어느새 옆 교실까지 알려진 모양이었다.
“미술과 애들도 간다던데?”
점점 많아지는 인원에 서준은 동그랗게 뜬 눈을 깜빡였다. 피규어가 많이 팔리는 건 좋지만, 쉐도우맨 시리즈를 좋아해 주는 건 좋지만.
‘……애들이 이러니까 왠지 민망한데?’
그렇다고 서준을 놀리는 것 같지는 않았다.
많아지는 인원에 김주경이 미간을 찌푸렸다.
“너무 한 곳에 몰려가면 피규어 못사는 거 아니야?”
“그럼 집 가까운 애들끼리만 모이자.”
“그게 좋겠다.”
쉐도우맨 시리즈 피규어를 사기 위해 진지한 얼굴로 이야기를 나누는 친구들의 모습에 서준은 웃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했다.
“서준아. 너도 갈래?”
“음.”
‘희상이 삼촌이 종류별로 몇 개씩 주기로 했지만…….’
“그래!”
직접 사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았다.
* * *
토요일.
쉐도우맨 시리즈 피규어 판매 날.
“안녕하세요. 영화객입니다!”
-오. 피규어 사러 가셨어요?
-그러게. 이제 문 열 시간인 듯.
-꽤 앞에 줄 선 거 보면 일찍 나오셨나 봐요!
“네. 새벽부터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제가 제일 처음일 줄 알았는데 앞에 오신 분이 계시더라고요.”
영화객이 웃으며 자신의 뒤를 찍었다.
사람들의 얼굴은 보이지 않게, 하지만 많은 사람이 있다는 것은 알 수 있도록.
“제가 오고 난 후에도 많은 분들이 오셨습니다. 친구들하고 온 학생들도 있고 커플인 분들도 있더라고요. 물론 혼자 오신 분들도 많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사이에도 늘어나고 있네요.”
친구들끼리 온 듯 발랄한 학생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몬스터사의 인기상품, 슬라임 배지를 검은 모자에 단 학생도 보였다.
-나도 슬슬 나가야 할 것 같음.
-물량이 충분하다고 했지만…… 생각보다 줄이 긴데?
-왠지 불안해진다;;; 얼른 나가야지!
“시청자 수가 줄어드네요. 이제 나오시는 분들도 계시나 봅니다. 아직 남아 있으신 분들은 벌써 줄 서고 있으신 거예요?”
-ㅇㅇ 이미 줄서고 있음ㅎㅎV
-ㅋㅋ나도ㅋㅋ
-혼자 와서 오픈 때까지 뭐 하나 했는데 라이브 해줘서 ㄱㅅ
“그럼 오픈 때까지 시간이나 때워 볼까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니 금세 시간이 흘렀다. 그사이에도 줄이 늘어났다.
“오전 10시가 되었습니다. 드디어 실물로 보겠네요!”
-안에도 찍어줌?
-난 인터넷으로 사서 궁금함ㅎ
-안도 보여줘요!!
“네. 직원분께 물어보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소리가 꺼지고 화면이 밑으로 내려갔다. 영화객이 밖으로 나와 줄을 선 인원을 체크하고 있던 직원에게 물었다. 직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카메라가 위로 올라오고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촬영 괜찮답니다. 손님들을 찍는 건 안 되고요. 당연하죠! 그럼 들어가겠습니다!”
가게 안이 복잡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몬스터사 직원은 일정 수의 손님을 먼저 들여보냈다. 첫 그룹의 손님들이 오오 감탄하며 가게 내부를 둘러보았다.
몬스터사 오프라인 매장은 아예 쉐도우맨으로 꾸며져 있었다.
쉐도우맨 1부터 3까지 영화 진행의 순서대로 꾸며진 장식장에 피규어가 놓여 있었고 피규어 이외의 공식 상품들도 진열되어 있었다.
“이 장식장엔 쉐도우맨1의 쉐도우맨과 이번에 판매하는 윌리엄 피규어가 함께 놓여 있네요. 직접 보니까 눈물이 날 것 같습니다. 우리 윌리엄……!”
-곰 인형ㅠㅠ
-윌리엄ㅠ 엄청 귀여워ㅠㅠ
-볼이 분홍색ㅠ 채색도 엄청 잘했네.
거기에 벽에 붙은 포스터나 그림들은 이번 피규어 판매행사를 위해 완전히 새로 만든 것이라 사람들의 소유욕을 자극했다.
“이 포스터는 처음 보는데 가지고 싶네요! 앗. 이것도 처음 보는 건데?! 익숙한 걸 찾는 게 빠르겠습니다.”
-포스터는 안 파나?
-22 포스터도 팔아라ㅠㅠ
-어? 중앙에 있는 피규어는 뭐예요?
“중앙요?”
댓글에 영화객의 시선이 중앙의 장식장으로 향했다. 어째서 이제 발견했는지 모르겠다. 함께 들어온 사람들이 눈을 반짝이며 장식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건!!”
영화객의 카메라가 피규어를 찍었다.
“이거 서준이가 선물로 받은 거 아니에요? 너튜브에 언박싱 영상으로 올라왔던.”
손님의 질문에 몬스터사의 직원이 웃으며 대답했다.
“네. 맞습니다. 이서준 배우님께 잠시 빌렸습니다. 1호점부터 6호점까지, 총 6개의 피규어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그렇구나.”
직원의 안내에 영화객이 다시 중앙 장식장의 피규어를 보았다. 크기며 퀄리티며 만들 때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는지 느껴졌다.
쓰러진 진 나트라와 그 위의 돌들, 경복궁의 담장과 바닥까지 구현되어 있었다.
가장 눈이 가는 건 그 모든 것을 뒤덮는 그림자. 그 압도적인 표현에 다들 감탄만 했다. 검은 그림자는 금방이라도 장식장을 뚫고 나올 것 같았다.
“……이건 판매 안 하죠?”
“네. 아쉽게도 판매 예정은 없습니다.”
직원의 말에 손님들은 아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피규어를 사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이서준 배우가 몬스터사의 대주주라서 이렇게 빌릴 수 있었던 것 같네요. 너튜브 영상으로 봤을 때보다 실제로 보는 게 더 멋진 것 같습니다.”
-역시 몬스터사의 대주주.
-ㅋㅋ몬스터사도 일 잘하네ㅋㅋ
-다 구경하고 싶어도 3호점은 부산에 있고 4호점은 대전에 있어ㅋㅋ
-5호점하고 6호점도ㅋㅋ 서울 밖ㅋㅋ
“으음. 어쩔 수 없죠.”
1초나 걸렸을까. 아주 잠시 고민한 영화객이 환하게 웃었다.
“전국여행이나 해볼까요?”
-이럴 줄 알았다ㅋㅋ
-고민도 안 했어ㅋㅋ
-해외여행보다는 덜 당황스럽네ㅋㅋ
“마침 오늘내일 스케줄이 없거든요. 피규어만 얼른 사서 집에 놔두고 출발하겠습니다! 라이브로 방송할 테니까 각 지역 맛집 알려주세요!”
-부산은 맡겨둬요! 현지인 맛집 알려줌!
-맛집 가면 영화객 만나는 거임?
-갑자기 팬미팅?ㅋㅋㅋ
“하핫. 그러네요. 그럼 이제 피규어를 살까요.”
방해되지 않는 선에서 내부를 촬영하던 영화객이 피규어를 구매하기 위해 판매대로 향했다. 피규어 하나당 벽에 걸려 있던 포스터를 하나 선택할 수 있었다. 영화객이 환하게 웃으며 피규어 전부와 포스터 전부를 사, 몬스터사의 마크가 그려진 종이가방에 조심스럽게 넣었다.
“그럼 피규어 리뷰는 며칠 후에 하겠습니다. 얼른 전국투어 해보죠!”
두 손 가득 피규어가 든 종이봉투를 들고 매장을 나가는 영화객의 옆으로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는 학생들이 지나갔다.
“이제 들어가네.”
“사람 진짜 많아! 전부 쉐도우맨 팬인가 봐.”
슬라임 배지를 검은 모자에 단 서준이 친구들의 말에 흐뭇하게 웃었다. 쉐도우맨 시리즈가 끝나도 이렇게 많은 사람이 좋아해 준다니 가슴이 뻐근해졌다.
기다린 끝에 매장 안으로 들어온 서준과 아이들이 눈을 반짝였다.
나트라의 우주선 내부처럼 꾸며진 부분도 있었고 센트럴파크처럼 꾸며진 부분도 있었다. 서준도 이렇게 꾸며진 건 처음 봐 신기한 기분이었다.
멋지게 꾸며진 매장 내부를 둘러보던 한지호가 중앙의 피규어를 가리키며 서준의 옆구리를 툭툭 쳤다. 사람들이 눈치챌까 봐 서준의 이름을 꺼내진 않았다.
“이거 선물 받은 그거지?”
“응.”
“근데 이건 왜 안 파는 거야? 가격 좀 높여서 팔면 되지 않아?”
“이건 진 나트라보다 그림자가 중심이라서 탈락했대. 거기다 저기. 하늘을 뒤덮고 있는 그림자 부분 있잖아. 저게 보기보다 약해서 배송 중에 부서질 위험이 크대. 상자를 열면 그림자가 반 토막 나 있으면 큰일이잖아.”
서준의 설명에 한지호와 친구들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엄청 기대했는데 망가진 피규어가 온다면 실망이 클 터였다.
중앙의 피규어를 충분히 감상한 서준과 아이들이 피규어를 사기 위해 판매대로 향했다. 네 명의 직원이 나란히 서 있어 손님들도 빠르게 빠져나갔다.
서준과 친구들도 줄을 섰다. 친구들의 중간에 서 있던 서준이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희상이 삼촌에게 선물로 받기로 했으니까 쉐도우맨1의 윌리엄만 살까…….’
아무래도 자신이 다른 피규어까지 사게 되면 다른 사람이 살 피규어가 줄어들게 될 테니, 서준은 하나만 사기로 했다.
피규어 중 쉐도우맨1의 윌리엄을 선택한 것은 난생처음으로 찍은 장면이라 서준에게도 특별했기 때문이었다.
문뜩 친구들이 어떤 피규어를 살지 궁금해진 서준이 앞에 선 한지호에게 물었다.
“지호 넌 뭐 살 거야?”
“전부.”
머뭇거리지도 않고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하는 한지호의 모습에 서준이 웃음을 터뜨렸다.
* * *
[세계는 지금) 쉐도우맨 시리즈 피규어 절찬리 판매 중!]
[몬스터사 1호점부터 6호점까지, 고퀄리티 피규어 전시 중!]
[몬스터사, “6개 피규어, 해외 전시 예정!”]
[새벽부터 기다렸어요! 피규어는 처음 샀어요! 피규어를 산 사람들!]
[쉐도우맨 시리즈 피규어, 품절 행렬!]
-해외에서도 엄청 팔렸다던데.
=22 나도 줄 서서 삼.
=일찍 매진되는 가게도 많더라;;;
-5월은 진짜 텅장 됨. 근데 포스터 받아서 기분은 좋음ㅎ
=포스터 줄 거라고는 생각 못 했는데ㅎㅎ
-근데 이서준이 선물로 받은 피규어는 진짜 퀄리티 넘사벽이더라.
=22 그거 팔았으면 좋겠음. 예정은 없다던데ㅠㅠ
=팔아도 비싸고 선착순일 것 같아서 나는 못 살듯ㅎ
-영화객 피규어 찍으러 부산 갔음ㅋㅋ
=여전한 실행력;;;
=부산 피규어는 그거더라. 쿠키영상. 진 나트라가 튤 나트라 그림자 강제계승하는 장면.
=언박싱 영상에서도 분위기 장난 아니던데 직접 보니까 더 쩔구요.(부산사람
=그건 크기가 커서 판매를 못 하는 듯. 침대에 벽까지 있잖아ㅎ
-물량 넉넉하다고 해서 느긋하게 갔더니 다 팔렸음ㅠㅠ 인터넷도 다 품절ㅠ
=솔직히 내가 생각해도 사는 사람들이 많았어;; 이번에 피규어 처음 사보는 사람도 꽤 있는 것 같더라.
=22 새로운 구매층이 생겨서 그럼. 보통 때였으면 살 수 있었을걸.
-리셀러도 백퍼 있음.
=22 되팔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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