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292화
[‘쉐도우맨 시리즈’ 피규어 5월 판매 예정!]
[윌리엄&진 나트라! 전 시리즈 피규어!]
[마린사×몬스터사×미러팀, 완벽한 시너지!]
-장난 아니네. 다 사고 싶음ㅎ
-사진으로만 봐도 분위기 잘 느껴지더라. 미러팀이 일 잘한 것 같음.
=몬스터사도. 잘도 저런 퀄리티로 만들었네.
-이런 퀄리티로 서준이 다른 작품 피규어도 만들어줬으면.
=22 진짜 쉐도우맨1도 나왔으니 순서대로 다 모으고 싶다.
-5월 무슨 일이래. 피규어에 서준이 팬미팅에.
=5월이면 아직 봄돌 하고 있을 때니…… 진짜 무슨 일이래.
=어린이도 아닌데 어린이날 선물 받은 기분ㅎ
-ㅠㅠ 5월이면 가뜩이나 돈 나갈 일이 많은데…… 어쩔 수 없지. 지금부터라도 돈 모으는 수밖에!
=222 지금 못 사면 나중에 후회함ㅎ
-서준이 팬으로서 서준이 첫 작품 피규어는 꼭 사야 함.
=거기에 3 윌리엄은 너무 감동적이라 사야 하고, 흑화 전 진 나트라는 그런 상황에서 바르게 자란 모습을 보니 눈물이 앞을 가려 안 살 수가 없고, 흑화 후 진 나트라는 분위기가 압도적이라 사야 함ㅎ
=ㅋㅋ 전부 다 산다는 말이네ㅋㅋ
* * *
오늘은 봄이 돌아왔다의 현대 부분 촬영 날.
여느 때처럼 서준과 정보람이 촬영장에 나타났다.
“역시 화제성 하면 서준이를 따라갈 수가 없네.”
박도훈의 말에 서준이 쑥스러운 듯 웃었다.
팬미팅과 피규어에 대한 정보가 알려진 지 벌써 일주일이나 지났는데 아직도 인터넷이 들썩거렸다.
“아무래도 며칠 전에 너튜브에 올린 언박싱 영상 때문인 것 같아요. 다들 그렇게 피규어를 좋아하는지 몰랐어요.”
판매하지 않는, 영화 속 장면을 그대로 재현해 낸 고퀄리티 피규어들은 쉐도우맨 팬들의 소유욕을 끌어냈다.
“나도 갖고 싶어……!”
서준이 보내준 피규어 사진을 보며 끙끙 앓는 강태영이 입을 열었다.
“……서준아. 진짜 판매 안 한대?”
강태영의 말에 서준이 볼을 긁적였다.
선물 언박싱 영상이 공개되고 몬스터사로 오는 전화와 문의가 얼마나 많은지 희상이 삼촌과 아빠가 꽤 힘들어하고 있었다. 다호 형에게 전해 듣기로는 마린사도 장난 아니라고.
“만약에 판매하게 되면 아무래도 만들기가 어려워서 수량은 적을 것 같아요. 수량 한정 예약제로 판매하지 않을까, 싶어요.”
“……난 운이 없어서 안 될 거야.”
“그래도 나중에 다른 버전도 판다니까 힘내요. 태영이 형.”
“서준아.”
“네?”
“서준이 집에 구경하러 가도 돼?”
조심스러운 강태영의 물음에 서준이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그럼요. 언제든지 오세요.”
서준의 말에 기운을 차리다 못해 신이 난 강태영이 환하게 웃었다.
“그럼 다음 주에 갈까? 첫 방송 같이 보자!”
“바보야. 부모님도 계시는데 밤늦게까지 있으려고?”
윤혜인의 말에 강태영이 아차 싶었다.
“그리고 첫 방송은 공 피디님이 음식점 예약해 놓으셨어.”
“나는 못 들었는데?!”
강태영의 시선이 매니저 주용진에게로 향했다. 주용진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자신은 분명히 말했다. 피규어와 팬미팅으로 들떠서 한 귀로 흘린 건 강태영이었다.
* * *
4월 첫째 주 월요일.
MBS 특별기획 드라마, 4부작 ‘내일’이 방송되었다.
[MBS특별기획 드라마, ‘내일’ 시청률 10%!]
[쾌조의 출발! 4부작 드라마 중 최고 시청률!]
[‘봄이 돌아왔다’의 반사이익?!]
[흥미진진한 전개! 다음 주엔 ‘내일’이 올까?]
-재미있었음ㅎ
-다들 연기도 잘하고 재미있던데.
=22 배우도 찰떡같음. 연출도 좋고.
[오늘밤 10시, MBS ‘봄이 돌아왔다’ 첫 방송!]
[이서준의 7년 만의 드라마 복귀작! 과연 시청률은?]
[진짜 첫사랑은 누구? 박도훈인가? 강태영인가?]
[‘봄돌’ 예고편, 노란 우산 다음 장면은 언제?]
-크. 드디어 하네.
=2월 기사 나고 이것만 기다렸어!
-7년 만의 복귀작이라니…… 벌써 그렇게 됐네.
=영화는 많이 찍었지. 드라마는 이게 두 번째.
-오. 이제 8시다!
-9시임!
-와. 광고 많네.
=다 팔렸을걸. 그것도 다 대기업으로.
=1,000% 다 팔림. 내의원 때도 이랬는데ㅎ
-예고편 다음 장면 오늘 보여줄까?
=ㄴㄴ 아닐 듯. 화제성 때문에 마지막 편에야 나오지 않을까?
=그렇게 안 해도 다 볼 것 같은데ㅎㅎ
-드디어 광고 끝났다!
=시작한다!
* * *
모두 숨을 죽이고 있는 사무실.
버럭 화를 내는 기획3팀 팀장과 그 앞에 고개를 숙이고 있는 여자가 보였다.
“이게 벌써 몇 번째야!”
팀장이 김서연을 보며 무어라 화를 냈고 김서연은 말없이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그 광고 기획은 한물간 거다.
인터넷 광고와는 맞지 않는다.
그 연예인은 몸값만 비싸고 타깃층과 전혀 다르다.
할 말은 많았지만 말해봤자 무슨 소용일까.
김서연은 퇴짜맞은 기획이 제 기획인가 싶었다.
그것보다는 이게 낫다, 광고주 취향이 이렇다, 이런 걸 기획이라고 만들었냐, 글씨체부터 내용까지. 눈앞에서 화를 내고 있는 팀장이 관여한 것이 아닌가.
실적이 될 것 같은 일에는 귀신같이 끼어들어 참견하다가 망하니 발 빼는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주말인 내일도 출근하라는 팀장의 말에도 김서연은 그저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는 수밖에 없었다.
“가 봐!”
“네. 죄송합니다…….”
왜 사과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저 너무 익숙해져서 이젠 별생각도 들지 않았다.
김서연은 다시 꾸벅 허리를 숙이고 자신의 자리로 왔다. 주위에서 안쓰럽게 보는 시선들이 많았지만, 김서연은 하나도 의식하지 못했다.
김서연은 팀장의 말대로 주말까지 출근해 평일에 해도 충분한 일을 하고 퇴근했다. 집으로 향하는 버스에 오른 김서연은 주말까지 나와서 일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익숙해 화나지도 않았다.
그저.
그저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나 싶을 뿐이었다.
김서연은 멍한 표정으로 버스 밖을 바라보았다.
‘차라리…… 사고라도 나지 않으려나. 그럼 회사에 가지 않아도 될 텐데…….’
집으로 향하던 버스가 정류장에서 멈추었다. 추적추적 비가 내렸다. 여학생이 버스에 오르고 남학생이 버스 밖에서 그 모습을 보며 웃었다.
행복한 두 사람의 모습과 생기 하나 없는 김서연의 모습이 대비되었다.
비바람이 불었다. 남학생의 우산이 기울어졌다.
김서연의 눈앞이 노랗게 물들었다. 봄이 돌아왔다의 OST가 흘러나왔다. 노란 우산이 천천히 위로 올라갔다.
미끈한 턱이. 부드럽게 올라간 입술이.
상기된 뺨이. 오뚝한 코가.
그리고 햇살보다 따스한 눈동자가 보였다.
노란 우산 아래.
사랑을 하고 있는 소년이 방금 피어난 꽃처럼 환하게 웃고 있었다.
김서연은 멍하니 그 소년을 바라보았다.
-와…….
-……세상에.
시청자들도 멍하니 소년을 바라보았다.
화면을 가득 채우는 소년의 미소에 모두 할 말을 잃었다.
눈을 몇 번 감았다가 뜨니 버스가 움직이고 있었다.
김서연이 얼른 창에 달라붙어 밖을 바라보았다. 버스를 기다리는 노란 우산을 쓴 남학생이 보였다. 하지만 그 소년이 아니었다.
“……누구지?”
김서연은 그 소년이 누구인지 생각했다. 넓은 모래밭에서 바늘을 찾는 듯 이리저리 기억을 더듬어 보았지만 떠오르지 않았다.
“……연예인인가. 광고 모델로 쓰면 딱 좋을 것 같은 비주얼이네.”
이런 때에도 광고밖에 생각하지 않는 자신이 미친 것 같아 김서연은 웃고 말았다. 실없는 웃음도 웃음인지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방금 떠오른 소년 때문인지도 몰랐다.
그렇게 좋았던 기분이 일주일이 지나서는 또 바닥을 쳤다.
막막한 기분을 느끼며 출근한 김서연은 사무실에 들어오자마자 팀장이 바뀌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렇게 갑자기?”
“이유는 안 밝혀졌는데 이유가 너무 많아서 그런 걸지도 모르죠.”
김서연과 직원들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외근했다 하면 그대로 퇴근, 남의 기획에 발을 얹고 실적도 빼앗던 팀장이었다. 누가 퇴사할 각오로 찔렀나 보다.
그때 인사팀 팀장이 누군가와 걸어왔다. 처음 보는 남자의 등장에 김서연과 직원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인사팀 팀장이 남자를 소개했다.
“이쪽은 오늘부터 기획3팀 팀장을 맡을 이현성 팀장입니다.”
“반갑습니다. 이현성입니다.”
차가운 목소리에 딱딱하게 굳은 모습에 김서연은 뜬금없이, 정말로 갑작스럽게 어떤 기억을 떠올렸다.
이제는 낯설게만 느껴지는 교실의 기억이었다.
친구들과 떠들고 있는데 담임 선생님과 함께 전학생이 들어왔다. 굳은 얼굴로 잠시 교실 안을 둘러보던 전학생이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유성진입니다. 미국에서 왔습니다.”
헐. 대박.
여기저기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다른 곳에서 전학을 온 건 알았지만 그게 미국이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아이들의 눈이 반짝였다. 잘생긴 데다가 미국에서 왔으니 아이들의 관심을 한 번에 사로잡을 만했다.
“그럼 성진이는…… 서연아.”
“네.”
담임선생님의 부름에 반장 김서연이 손을 들어 올렸다.
미국에서 와서 낯선지 교실 안을 둘러보고 있던 전학생, 유성진의 시선이 창문 옆에 앉아 있는 김서연에게로 향했다.
미국에서 온 전학생 유성진과 반장 김서연의 시선이 마주쳤다.
새로 온 팀장 이현성과 김서연의 눈이 마주쳤다.
그제야, 김서연은 버스에서 본 환상 같은 소년이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스쳐 지나가듯 본 연예인도, 너무 지쳐서 떠올린 상상도 아니었다.
‘유성진.’
김서연의 첫사랑이었다.
* * *
인사팀 동기에게서 이야기를 듣고 온 옆자리 직원이 이현성 팀장의 정보를 줄줄 읊었다.
“이 팀장님, 미국에서 오셨대요. 헤드헌팅요. 해외 광고를 담당할 기획팀을 만들 계획이었는데 일단 우리 팀에서 적응한 다음에 직원들 뽑아서 새 팀으로 만든대요. 어쩐지…… 내부고발이 있어도 이렇게 갑자기 바꾸나 했는데, 새로 올 팀장님이 있어서 그런가 봐요. 나이는 32살인데…… 어? 김 대리님이랑 동갑이네요?”
동갑이라는 소리에 김서연은 저도 모르게 팀장을 떠올렸다.
첫사랑의 소년과 닮은 이현성 팀장. 어쩐지 미국에서 왔다는 사실이 더욱 신경 쓰이게 만들었다.
“……근데 이름이 다르단 말이지.”
* * *
새 팀장이 오고 새로운 광고 제안이 들어왔다.
바로 얼마 전 퇴짜맞았던 회사의 경쟁사에서 들어온 일이었다. 비슷한 제품의 사진에 김서연이 속으로 한숨을 내쉬고 있을 때, 이현성 팀장이 김서연에게 말했다.
“이번 일. 김서연 대리가 한번 맡아보겠습니까?”
“……네? 아, 네. 알겠습니다.”
김서연은 얼떨결에 맡은 일을 내려다보았다. 전 팀장이 끼어들어 망했던 기획안을 다시 쓸 수는 없어서 다시 처음부터 해야 했다.
“왜 이걸 나한테 주는 거야.”
“그러게요. 경쟁사 광고 까인 거 이 팀장님도 아실 텐데…….”
“아신다고?”
“전 팀장이 인수인계할 시간도 없이 가서 최근 광고 기획안 다 살펴보신대요. 그 안에 대리님 기획안도 있을 거잖아요.”
“그러게. 내 기획안을 봤으면서 왜 나한테 맡겼는지 모르겠네.”
두 번 엿 먹으라는 건가.
김서연의 얼굴에 그늘이 졌다.
* * *
“여기 앉아도 됩니까?”
“아. 네.”
구내식당.
김서연의 앞자리에 이현성 팀장이 자리를 잡았다.
이현성 팀장과 마주 보고 앉아 어색하게 점심을 먹던 김서연의 시야에 젓가락을 쥔 이현성의 손가락이 들어왔다.
예쁜 손가락이다, 하고 생각하다가 또 한 번 옛 기억이 떠올랐다.
* * *
“그래도 이건 맛있으니까 먹어봐.”
김서연이 가리키는 제육볶음에 잠시 말없이 바라만 보던 유성진이 젓가락을 들었다.
미국에서 왔다길래 젓가락질을 못 할 줄 알았는데 11자로 잡고 있는 모습이 익숙해 보였다.
‘손가락도 예쁘네.’
어쩐지 눈이 저절로 가는 손이었다. 자신의 손을 슬쩍 본 김서연이 막 제육볶음을 입에 넣는 유성진에 숨을 죽였다. 오전 내내 신경이 쓰여 계속 봐서 그런가. 무표정한 유성진의 얼굴을 조금은 알아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조금이지만 밝아지는 유성진의 얼굴에 김서연이 씨익 웃었다.
* * *
‘어쩐지 눈이 가는 손가락이다 생각했어.’
이현성 팀장만 보면 유성진이 떠올랐다.
“잘할 것 같아서요.”
“……네?”
들려오는 목소리에 김서연의 시선이 이현성 팀장에게로 향했다. 무뚝뚝한 표정의 이현성 팀장이 말을 이었다.
“왜 김서연 대리를 골랐는지 궁금해할 것 같아서 말입니다. 얼마 전에 이번에 제안이 들어온 제품의 경쟁사에서 광고 제안이 들어왔다고 들었습니다. 기획안들은 아직 남아있더군요. 그중에서 김서연 대리가 만든 수정 전 기획을 봤습니다.”
김서연이 멍하게 이현성 팀장을 바라보았다.
수정 전 기획.
그건 전 팀장이 건드리기 전의, 김서연의 생각이 온전히 담긴 기획안이었다.
“좋았습니다. 물론 회사가 달라서 기획안을 새로 만들어야겠지만, 김서연 대리라면 잘할 것 같더군요.”
김서연은 어쩐지 무표정한 이현성의 얼굴이 미소를 짓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불안한 마음으로 준비한 기획안이 광고주의 마음에 들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쉰 김서연은 광고 촬영을 맡길 CF 감독을 찾아왔다.
“안녕하세요. 이번에 촬영을 맡은 최유원입니다.”
부드럽게 웃는 최유원 감독에 김서연도 웃으며 악수를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