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290화
여울 예중 실기번호, 275번
미리내 예고 실기번호, 541번.
그리고,
미리내 예고 1학년 2반, 김하운.
바라던 학교에 입학하게 된 김하운이 들뜬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쭉 뻗은 길, 오른쪽에는 미리내홀이 있었고 왼쪽에는 미르홀이 있었다.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헤어지는 모습이 보였다.
“김하운! 엄마랑 아빠도 가 볼게!”
“이서준이랑 같은 반 됐으면 좋겠네!”
미리내홀로 들어가는 엄마 아빠를 배웅한 김하운이 쭉 뻗은 길을 따라 걸어갔다. 신입생으로 보이는 아이들이 드문드문 보였다. 그렇게 걷다 보니 길 끝에 넓은 운동장과 커다란 학교가 보였다.
“여기가 미리내 예고……!”
김하운은 다시 두근두근 뛰는 심장을 부여잡고 교문 앞에 모여 있는 아이들 쪽으로 향했다.
“아자! 이서준이랑 같은 반!”
“에이. 2반이네.”
“서준이 1반이야.”
“지호랑 주경이도 1반이고.”
들려오는 대화만 들어도 누가 여울 예중 출신인지 다른 중학교 출신인지 알 수 있었다.
김하운도 임시게시판을 바라보았다.
‘연기과, 1반…….’
가나다 순서로 이름이 적혀 있었는데 김하운의 이름은 보이지 않았다.
“……아, 2반이다.”
이서준이랑 같은 반이 못 돼서 아쉽긴 했지만, 김하운은 이내 즐거운 마음으로 1학년 2반으로 향했다.
같은 반 아이들과 인사를 나눈 후, 김하운은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미리내홀로 향했다. 1반으로 보이는 아이들이 보여 그 속에서 이서준을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서준이 또 신입생 대표인가 보네.”
“그러게.”
연극 거울에서 형사, 전성민과 여주인공 역을 맡았던 양주희, 이스케이프에 출연했던 강재한이 이야기를 나누는 소리가 들려왔다.
신입생 대표.
그러고 보니 인터넷에서 후기를 읽은 것 같았다. 김하운이 기억을 떠올리고 있을 때, 입학식의 시작을 알리는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지금부터 미리내 예술 고등학교, 제14회 입학식을 시작하겠습니다.]
신입생들, 2, 3학년 학생들, 학부모들이 박수를 쳤다.
미리내 예고 교장 선생님의 개식사를 시작으로 ATR 재단의 이사장 등 내빈 소개, 국민의례, 입학 허가 선언이 이어졌다.
[다음은 신입생 대표의 선서가 있겠습니다.]
[신입생 대표. 연기과 이서준.]
그저 이름이 불린 것만으로도 커다란 미리내홀 안의 공기가 달라졌다. 조금 전까지도 조용했지만, 더욱 집중한 듯한, 기대감 가득한 침묵이었다.
뚜벅뚜벅 무대 옆에서 빛나는 아우라를 지닌 학생이 걸어 나왔다.
상급 도서관의 문이 열리면서 한층 늘어난 선기가 서준의 몸을 감싸며 반짝반짝한 아우라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런 서준의 등장에 박수가 쏟아졌다.
교장 선생님에게 꾸벅 인사한 이서준은 뒤를 돌아 관객석을 마주 보고 섰다. 이서준은 손에 들고 있던 입학선서문을 펼쳤다.
“선서.”
김하운은 멍하니 무대 위에선 이서준을 바라보았다.
스쳐 지나가기만 했던 두 번의 만남과는 차원이 달랐다.
“저희 신입생 120명은 교칙을 성실히 준수하고 열심히 공부하며, 꿈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을 엄숙히 선서합니다.”
이서준의 목소리가 미리내홀을 울렸다.
분명 무대 위는 어둠 한 점 없이 밝았는데 관객석을 마주 보고 있는 이서준의 모습만 강조되듯 보이는 것 같았다. 시선을 빼앗기고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신입생 대표, 이서준.”
짧은 선서를 마친 서준이 인사를 하자 아쉬움 가득한 탄성과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고개를 들고 빙그레 웃는 모습이 바로 앞에서 보였다. 텔레비전이나 스크린을 통해 보는 모습과 달랐다.
‘……저 애가 슈퍼스타 이서준,’
정말로,
스포트라이트에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 * *
새로운 학교생활에 익숙해지는 3월 중순.
수능 며칠 전 서준의 실기 영상을 보고 입덕해 버려 아주 아슬아슬하게 원하던 대학, 원하던 과에 합격한 송유정과 그런 송유정의 모습을 보고 수능 날까지 실기 영상을 봉인해놓은 임예나가 카페에서 만났다.
“아직도 그때만 생각하면 식은땀이 흘러.”
그렇게 아주 힘들게 수능을 친 송유나는 아주 빨리 배우 이서준의 덕질을 하기 시작했다. 아이돌팬 경력이 있었던 터라 뭐든지 자신 있었다.
누군가 그랬다.
수능 끝난 고3은 무적이라고.
두 팔을 걷어붙이고 시작한 배우 이서준 덕질. 하지만 송유정은 곧 울상을 지어야 했다.
“도대체 배우 팬들은 뭘 보고 사는 거야!?”
송유정과 함께 카페에 온 임예나가 하하 웃으며 말했다.
“본 거 보고 또 보는 거지. 그래도 서준이는 공백기가 짧은 데다가 너튜브 영상도 조금씩 올라와서 다른 배우들보다는 덕질할 게 많아.”
“L앱도 안 하고 SNS도 안 하는데? 아이돌은 일주일에 몇 번씩 음방에 나오는 배우는 그런 프로도 없고 나오는 떡밥도 없어.”
아이돌 팬으로서 화면으로나마 충분히 아이돌을 봤던 송유정은 작품 이외에는 나타날 생각조차 없는 듯한 떡밥에 애가 탔다.
“배우 팬. 대단하다.”
“너도 이제 배우 팬. 히히.”
“그러게. 몇 번이고 돌려봐서 이젠 대사도 외울 지경이야.”
“음. 음. 아주 좋아.”
바람직한 배우 팬의 모습에 임예나가 만족해하며 웃었다.
“그래도 2주 뒤면 봄이 돌아왔다 방송하잖아. 조금만 기다려 봐.”
“그래 그거. 왜 홍보를 안 하는 거야?”
“이제 슬슬 하겠지.”
프로 배우 팬, 임예나의 말대로 다음날부터 MBS 특별기획 드라마 ‘봄이 돌아왔다’와 ‘내일’의 홍보가 시작되었다.
[MBS 특별기획 드라마 예고편, 내일 오후 9시 55분!]
[봄이 돌아왔다 예고편, 내일 방송 예정!]
[봄이 돌아왔다&내일. 드디어 예고편 방송!]
-……원래 예고도 이렇게 기사를 내나?
=보통은 아니지.
=이게 이서준의 힘인가.
-이거를 기다리면서까지 볼 일인가?
=?? 난 볼 거임.
=222 나도.
-근데 내의원 때는 예고편에도 서준이 1도 안 보였는데.
=……불안하다…….
-내일도 재미있을 것 같음.
=스릴러인데 4부작이라 질질 끌지도 않을 것 같고.
=심장이 쫄깃쫄깃하겟네ㅎㅎ
-이거 광고 엄청 붙겠네.
=그런 듯. 두 달 전부터 생각해 놨으면ㅋㅋ
-예고편에 붙는 광고라니…… 신박하다ㅋㅋ
=근데 뭐, 드라마는 몰라도 예고편은 순식간에 지나가니까. 몇 분 전부터 기다려야 함.
=22 그러면 자연스럽게 앞에 광고도 볼 거고.
=효과는 많겠네.
그리고 목요일 저녁, 9시 55분.
송유정과 임예나는 각자의 집에서 텔레비전을 바라보았다. 눈은 텔레비전으로 향해야 하니 전화 통화를 하고 있었다.
-자취하고 2주도 안 돼서 집에 올 줄은 몰랐어.
“자췻집보다 텔레비전이 크니까 어쩔 수 없긴 해.”
-그건 그래! 큰 화면으로 봐야 좋지!
송유정도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드라마 시간이 아니라서 리모컨을 사수할 수 있었다. 그런 딸을 보는 엄마의 표정이 미묘했다. 무슨 광고를 본다고 텔레비전 앞에서 저러는지…… 대학을 가도 변함없는 딸의 모습에 엄마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하긴, 쟤가 아이돌이 나오는 광고를 보는 게 한두 번도 아니고.’
짜게 식은 눈으로 송유정을 보던 엄마도 10시 드라마를 보기 위해 소파에 앉았다.
“딱 10시 되면 7번 틀어.”
“알았어. 어차피 내 건 금방 끝나니까.”
모녀의 대화가 휴대폰 건너까지 흘러 들어갔다.
-아주머니! 안녕하세요! 저 예나예요!
“그래. 오랜만이네. 예나도 TV 보고 있어?”
-어머님도 보세요! 엄청 재미있을 거예요!
“……광고가?”
자연스럽게 엄마와 대화하는 친구의 모습에 송유정은 저도 모르게 감탄했다. 프로 영업러, 임예나는 엄마까지 끌어들이려고 했다.
KBC 10시 드라마를 기다리는 엄마, 처음으로 배우를 덕질하게 된 송유정. 프로 영업러 임예나까지. 세 쌍의 눈이 텔레비전으로 향했다.
-시작함?
=ㄴㄴ 아직!
=살다 살다 예고편을 기다릴 줄이야.
-근데 이러다가 진짜 이서준 안 나오는 거 아님?
=……안 나오면 MBS 홈페이지 테러함ㅎ
=222 기사까지 냈으니 뭐가 있긴 하겠지.
-오 시작한다!
=시작은 내일이네.
스릴러 드라마 ‘내일’의 예고편이 흘러갔다.
-오오. 타임루프물인가 봐?
“타임루프물? 그게 뭔데?”
-하루가 반복되는 거야. 그게 해결될 때까지는 내일이 오지 않는 거지. 그래서 제목이 내일인가 보네!
“이것도 재미있겠네.”
-그러게. 김진명 피디가 이런 걸 잘해. 속도감 있는 거. 같은 하루가 배경이라 지루해질 수도 있는데 김진명 피디 연출이면 괜찮을 거야.
……네? 드라마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피디?
송유정과 엄마가 휴대폰에서 들려오는 임예나의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음. 작가는 완전히 입봉 작가는 아닌가 봐. 작품이 좀 있네. 그래도 용두사미로 끝내지는 않는 모양이야. 작감도 괜찮고 신인이 있긴 하지만 배우들도 조합이 좋은데? 서준이가 이거 촬영했어도 괜찮았을 것 같아!
언제 조사했는지 줄줄줄 설명이 튀어나왔다.
“……너 좀 무섭다.”
-흐흐흐. 원래 배우 팬들은 이런 걸 신경 쓰거든. 게다가 다른 시간대이긴 한데 같은 프로젝트라서 비교당할 것 같잖아. 어떤 작품인지는 조사해놔야지.
임예나가 웃으며 말을 이었다.
-아이돌 팬도 그렇지 않아? 누가 작곡해줬으면 좋겠다던가. 프로듀싱? 아이돌이랑 잘 어울리는 사람이랑 작업했으면 좋겠다던가. 그런 거. 게다가 같이 컴백하는 다른 그룹도 살피고.
“오케이. 이해했어.”
송유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하하 웃는 임예나와 송유정을 엄마가 가늘게 뜬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도통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
-오. 끝났다. 이제 시작하나 봐.
임예나의 말에 송유정과 엄마의 시선이 텔레비전으로 향했다. 내일이라는 타이틀 아래에 방영 날짜와 요일, 시간이 떴다.
[MBS 특별기획 드라마]
[내일]
[월요일 10시 방영예정!]
-봄돌은 화요일에 방영하나 보네.
“그러게.”
곧 내일이라는 글자가 사라지고 화면이 새까맣게 변했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밝게 빛났다.
흑백으로 처리된 화면으로 익숙한 유리창이 나타났다. 유리창 너머로 스쳐 지나가는 건물들과 간판들이 보였다. 비가 내리는 듯 유리창으로 빗방울들이 떨어졌다.
-버스 안인가?
“그런 것 같은데. 화면은 주인공 시선인가 봐.”
-흑백이라니 특이하다.
“근데 이거 소리는 안 나는 거니?”
엄마의 말에 송유정이 리모컨으로 소리를 키웠다.
버스를 타면 들리는 소음 같은 소리가 그제야 들려왔다. 소리가 안 나는 게 아니라 아주 작게 흘러나오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방송 사고인가, 물어보기도 전에 버스가 끼익 멈췄다.
버스정류장에 서 있는 두 사람이 보였다. 우산을 접은 여학생이 버스 위로 올라오고 남학생이 버스 밖에서 여학생을 따라 카메라 쪽으로 걸어왔다. 밝은 얼굴의 남학생이 바람이 부는 모양인지 우산을 옆으로 내렸다.
화면이 우산으로 가득 찼다.
그리고,
♬
감미로운 선율이 들려왔다. 소리를 키웠던 탓에 선명하게 들려왔다. 동시에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던 우산 끝부터 색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왠지 모르겠지만, 그와 동시에 영상 속 분위기가 달라진 것 같았다.
흑백의 화면의 정중앙부터 노란색이 물감처럼 번지기 시작했다. 송유정도, 엄마도, 휴대폰 건너 임예나도 멍하니 화면을 바라보았다.
노란 우산이 천천히 위로 들렸다.
우산을 잡고 있는 손이 보였다.
단정한 교복이 보였다.
화면을 뒤덮듯 번져나가던 색이 빈틈없이 화면을 꽈악 채웠다.
노란빛 우산이 위로 올라갔다.
가방을 멘 어깨가.
미끈한 턱선이.
부드럽게 올라간 입술이 보였다.
그리고,
그리고 붓글씨로 유려하게 쓰인 타이틀이 나타났다.
[MBS 특별기획 드라마]
[봄이 돌아왔다.]
[화요일 10시 방영예정!]
숨도 쉬지 않고 눈도 깜빡이지 않고 멍하니 보고 있던 송유정은, 화면에 나타난 글씨에 소리를 질렀다.
“아니! 왜 여기서 멈춰!?”
-왜 여기서 끝나는 건데!?
휴대폰 건너 임예나의 목소리가 비명처럼 들려왔다.
* * *
-미쳤나 봐. 왜 거기서 멈춰!? 왜 거기서 끝나!?
=22 보여줄 거면 다 보여주던가!!
=333 숨도 못 쉬고 봤는데!
=4444 진짜 집중해서 보고 있었는데!
-내의원 때는 아예 등장을 안 시키더니 이번엔 반만 보여주기냐…….
=다행이다. 다음 예고편에선 다 나오겠어!
=……진짜 긍정적이다. 너.
=안 나오는 것보단 낫지.
=222 이건 동의. 반이 어디야.
-근데 너무 빨리 지나갔다.
=22 진짜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 버렸음.
=또 예고편 언제 올라옴?
=빨리 너튜브에 올려라. MBS! 일해라 MBS!
=빨리 올려라. 그래야 본방할 때까지 돌려보지!
=22 새로 볼 영상이 생겨서 너무 좋음!
=294207번 봐주겠어!
-원래 예고편이 이런 거야!?
=이서준 잡았다고 기분 내는 거겠지.
=22 이게 다 화제성으로 돌아가서 본방 시청하는 사람들이 많을 테니까.
=MBS 똑똑함ㅋㅋ
-내일도 재미있을 것 같고 봄돌도 재미있을 것 같음.
=MBS 드라마국 간만에 일했나 봄.
-세상에…… 서준이 존재감이란…… ㅋ
=하관만 봐도 뿜뿜 뿜어져 나오는 잘생김ㅎ
=우산으로 가려도 왠지 우산 뒤에 누가 있는지 알 것 같았다ㅋㅋ
-서준이 나오면서부터 화면에 색이 나타나는 게 너무 좋은 것 같음.
=222 눈을 뗄 수가 없더라.
=음악도. 처음에는 소리가 작아서 방송 사고인가 했는데 아니었음. 색이 나타나는 순간부터 소리도 평범하게 나오기 시작함.
-로맨스라더니…… 네가 있어야 내 세상이 움직인다는 건가?
=오오오. 좋은데?
=메모) 네가 있어야 내 세상이 움직여.
=이거 문구, 새싹부터에서 써도 돼요?
=ㅇㅇㅇㅋ
=고마워요!
=헐. 흙흙 님 대문 바꾸셨어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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