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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289화 (289/1,055)

0살부터 슈퍼스타 289화

서준과 정보람이 촬영을 하고 있을 때, 멀리서 촬영장을 바라보고 있던 미술 스태프 하나가 옆에 있던 동료에게 말했다.

“근데 가끔 그런 애가 있지 않아?”

“그런 애?”

“연기에 너무 몰입해서 진짜로 착각하는 애.”

스태프의 말을 이해한 동료가 고개를 끄덕였다.

“가끔 있지. 그런 배우가.”

누가 언제 부를까, 귀를 쫑긋 세우고 있던 막내 스태프가 두 스태프를 바라보았다.

“연기를 진짜로 착각한다고요?”

“상대 배우가 너무 연기를 잘할 때나 본인이 배역에 너무 몰입했을 때, 그 감정에 물드는 거야. 착각해 버리는 거지.”

“연기인데요?”

경력 많은 스태프들의 잔심부름을 맡기기 위해 데려온 순진한 막내 스태프의 말에 이 바닥에서 오래 일한 두 스태프가 웃었다.

“음. 예를 들면 김종호 배우가 악역을 맡으면 왠지 촬영이 끝나도 무서워 보이잖아.”

“네. 텔레비전으로 봐도 무섭던데요.”

진짜로 만난다면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칠지도 모르겠다. 연신 고개를 끄덕이는 막내 스태프의 모습에 미술 스태프가 말을 이었다.

“그렇게 나쁜 감정도 남는데 좋은 감정은 얼마나 많이 남아 있겠어.”

“아. 작품 속에서 연인으로 나온 배우들이 진짜 연인이 되는 것도 그런 이유예요?”

“그렇지.”

미술 스태프가 고개를 끄덕였다. 동료가 고개를 갸웃했다.

“근데 갑자기 그건 왜?”

“음. 이서준 배우가 연기를 잘하잖아. 그것도 너무.”

세 사람의 고개가 촬영장으로 향했다.

커다란 카메라 렌즈가 바로 앞에 있는데도 서준과 정보람의 풋풋한 사랑 연기가 너무 대단해서 오히려 연기답지 않게 보였다. 꽁냥꽁냥대는 모습이 저절로 흐뭇해졌다. 히죽 웃던 막내 스태프가 갑자기 입을 틀어막았다.

“……그럼 연애설이 날 수도 있다는 거예요?”

이서준의 연애설이라니.

잠깐 생각해도 그 여파가 어마어마할 것 같았다.

거의 들릴 듯 말 듯한 막내 스태프의 목소리를 용케 알아들은 미술 스태프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반대야.”

공희찬 피디에게서 오케이 사인이 떨어졌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분홍빛 가득하던 두 배우의 분위기가 한순간 바뀌었다. 몇 번을 봐도 신기한 광경이었다.

“저렇게 연기를 잘하는데 어떻게 컷소리만 나면 감정이 하나도 남는 건지 모르겠다니까. 진짜 신기해.”

“그건 그러네. 이서준 배우야 워낙 온오프 잘하기로 유명하지만…….”

사심 하나 없는 얼굴로 서준과 공희찬 피디와 함께 모니터링하고 있는 정보람을 바라보는 스태프들의 시선이 묘했다.

“……쟤도 연기 천재인가?”

* * *

“잘 가. 보람아.”

“서준이 너도.”

오늘 촬영이 끝났다.

서준에게 인사한 정보람이 차에 올랐다. 운전석에 앉아 있던 매니저가 뒤를 돌아보고 말했다.

“수고했어. 내일은 스케줄 없으니까 푹 쉬면 돼.”

“네.”

안전벨트를 맨 정보람이 웃으며 말했다.

매니저의 눈에 이서준이 탄 차량이 주차장을 빠져 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손가락으로 운전대를 몇 번 치던 매니저가 조금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이서준 배우랑 연기하는데 괜찮아?”

“? 뭐가요?”

“아니, 저. 그게 뭐냐.”

눈알을 데굴데굴 굴리던 매니저가 어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연애 감정 같은 게 안 생기냐는 거지.”

매니저의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뜬 정보람이 풉,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아하하하. 웃음소리가 차 안을 울렸다. 매니저가 이마를 짚었다.

“이래서 내가 물어보기 싫었다니까.”

거의 눈물이 나올 정도로 웃던 정보람이 말했다.

“회사에서 물어봐요?”

“그래. 촬영하는 거 직접 보면 그런 감정은 하나도 못 느낀다고 말했는데도 사람 마음은 모른다면서 너한테 물어보라더라.”

“없어요. 하나도. 0.001퍼센트도.”

“그럴 줄 알았어. 보람아. 팀장님한테 전화해서 말해줘. 내 말은 하나도 안 믿는 눈치더라.”

우렁찬 팀장의 목소리를 떠올린 매니저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시동을 걸었다. 정보람이 휴대폰을 들어 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니! 어떻게 호감이 0.001퍼센트도 없을 수가 있어?!

0.001퍼센트도 없다는 말이 오히려 불신만 일으킨 것 같았다.

-대본 보니까 실기 영상 급이던데! 그걸 바로 눈앞에서 보는데 감정이 안 생긴다고? 그 실기 영상으로 이서준 팬이 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휴대폰을 귀에서 멀찍이 떨어뜨린 정보람과 운전석에서 듣던 매니저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뭐, 나도 직접 안 봤으면 그렇게 생각했겠지만.”

“그건 그래요.”

-이유가 뭔데? 이서준 실제로 보면 이미지랑 달라?

팀장의 물음에 정보람이 웃으며 대답했다.

“아뇨. 이미지랑 똑같아요. 착하고 연기 좋아하는 잘생긴 애예요. 그러니까…… 안 떨릴 때가 있다고 하면 거짓말인데 그건 촬영 동안만이라서요.”

-……뭐?

“서준이가 너무 연기를 잘해서 배역이랑 배우가 너무! 확실하게! 완벽하게! 구별이 되거든요.”

유난히 강조된 정보람의 말에 운전하고 있던 매니저도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유성진이 김서연을 보는 눈빛이 있어요. 막 반짝반짝 빛나고 되게 기분 좋은. 팀장님도 드라마로 보시면 아실 거예요. 감독님이 엄청 잘 찍혔다고 하셨거든요.”

솔직히 노란 우산 장면을 보고 난 후 두근거리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었다.

‘그걸 보고 안 좋아할 애가 어디 있어.’

그러나 바로 다음 날 이어진 촬영에서 정보람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착각하고 싶어도 바로 앞에서 바뀌는 눈빛에 착각할 수가 없었다.

사랑을 하는 눈빛과 하지 않는 눈빛.

검은색과 흰색처럼 구분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확연한 차이였다.

“그러니까 그 눈빛을 알고 있으면 연기가 끝난 서준이 눈빛이랑 차이점을 확실히 알 수 있어요. 웃고 있는 건 똑같은데 완전히 다르거든요.”

1초 만에 바뀌는 서준의 눈빛은 충격적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유성진’과 ‘이서준’이 아예 다른 사람처럼 느껴지기까지 했다. 자신이 호감을 느끼게 된다면 그건 ‘이서준’이 아니라 ‘유성진’일 터였다.

* * *

“그래?”

“얼마나 신신당부를 하는지 몰라.”

정보람의 말에 서준이 웃음을 터뜨렸다.

어쩐지 엄마 아빠도 뭔가 궁금한 표정이었는데 이런 이유이지 않을까 싶었다. 또래 여자아이랑, 그것도 로맨스를 연기하니 호기심이 생길 법도 했다.

‘다호 형이야 촬영장에서 보고 있으니까 그런 기미가 하나도 없다는 걸 알고 있지만 엄마 아빠는 모르니까.’

오늘 가면 그런 일 없다고 말해줘야겠다.

재미없어할 엄마아빠의 모습을 떠올린 서준이 웃고 말았다.

“우리도 연애설도 걱정할 때가 됐네. 어릴 때는 그런 건 신경도 안 썼는데.”

“그러게. 이제 고등학교만 다니면 성인이니까.”

“그러고 보니 다음 주가 입학식이네. 시간 참 빠르다.”

서준의 말에 정보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미리내 예고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조연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촬영 시작하겠습니다!”

조연출, 최현우의 외침에 앉아 있던 서준과 정보람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봄이 돌아왔다’의 촬영이 순조롭게 이어지고,

꽃피는 3월이 되었다.

3월 2일.

전국 초, 중, 고등학교의 입학식이 열렸다.

서준이 입학할 미리내 예고도 마찬가지로 오늘 입학식이 열릴 예정이었다.

미리내 예고 교직원들은 학교 입구에서 학부모들을 바로 입학식이 열릴 미리내홀로 안내하고 학생들만 학교 안으로 들어올 수 있게 했다.

“그럼 엄마랑 아빠는 먼저 가 있을게.”

미리내홀로 향하는 부모님에게 손을 흔든 서준이 정문 앞에 있는 게시판에 붙여진 종이를 살폈다.

‘미술과, 음악과, 연기과…….’

게시판에서 연기과를 찾은 서준이 아래로 시선을 내리려고 할 때, 어깨에 팔을 두르는 움직임이 느껴졌다.

“너 나랑 같은 반임. 1학년 1반.”

한지호였다.

“그래?”

“주경이랑 시영이도 같은 반.”

그 이후로도 아는 이름이 줄줄줄 나왔다.

하긴 40명 중의 21명이 여울 예중을 나온 친구들인데 단순히 계산해도 10명은 아는 사이였다.

“게시판에 있던 이름 살펴보니까 딱 10명, 9명 나눈 것 같더라고.”

한지호의 말에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여울 예중 출신들이 한쪽에 몰리지 않도록 선생님들이 적절히 나눈 듯했다.

“새로운 애들이 있어서 재밌을 것 같아.”

“그러게. 오는데 반응이 신선하더라.”

여기까지 걸어오는데도 여울 예중 아이들과 학부모들은 익숙하게 서준과 인사했고 다른 중학교 출신 아이들과 학부모들은 놀란 눈으로 서준을 바라보았다.

서준의 말에 한지호가 웃음을 터뜨렸다. 보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그럼 들어가자.”

“그래.”

서준과 함께 1학년 1반 교실로 발걸음을 옮기던 지호가 입을 열었다.

“너 미리내홀 가 봤어?”

서준이 아쉬운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니. 실기 시험 칠 땐 닫혀 있어서 못 봤어.”

미리내 예고에는 두 개의 공연장이 있었는데 하나는 학생들만 사용할 수 있는 여울홀과 비슷한 크기의 공연장, 미르홀이었고 하나는 가끔 외부인들에게 대관해 주고는 하는 큰 공연장, 미리내홀이었다..

“난 방금 갔다 왔는데 여울홀보다 크더라. 시설도 좋던데?”

“그래?”

미리내 예고에 들렀을 때 외관은 봤지만, 내부는 보지 못한 서준이 눈을 빛냈다. 미리내홀엔 가 보지 못했지만 너튜브에 올라온 미리내 예고 공연들은 봤던 서준이라 얼마나 좋은지는 이미 알고 있었다.

“너튜브에 올라온 영상 봤는데 거기서 연극을 하면 되게 재미있을 것 같더라.”

“미리내홀도 좋지만, 은하수센터도 가 보고 싶지 않아?”

“둘 다 하면 좋지.”

서준의 말에 한지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근데 드라마 홍보는 언제 시작한대? 4월 첫주 방영 아니야?”

“2주 후에 텔레비전 광고 시작한대.”

한지호와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교실로 향하던 서준은 간간이 여울 예중보다 큰 미리내 예고의 모습을 둘러보았다. 입시 실기를 볼 때 여울 예중보다 커서 걱정했는데 올해 초에 상급 도서관의 문이 열려서 더 좋은 능력을 찾을 기회가 생겼다.

‘근데 아는 사람들이 많아서…….’

1학년은 물론이고 2, 3학년들 중에서도 아는 사람들이 많았다. 서준을 봐도 그렇게 놀라지는 않을 테니 중급 능력으로도 충분할 것 같았다.

절대 찾기 힘들 것 같아서 그러는 게 아니다.

“어, 서준아! 안녕!”

“지호도 왔네!”

1학년 1반 교실에 들어가니 김주경과 친구들이 서준과 한지호를 반겼다.

“안녕.”

서준이 웃으며 인사하자 두 가지 반응이 나타났다.

서준은 단번에 누가 여울 예중 출신인지 알 수 있었다. 평범하게 인사하는 아이들과 깜짝 놀라는 아이들이 반반 섞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서준의 아우라를 처음 겪는 아이들이 멍한 표정으로 서준을 바라보았다.

서준이 그런 아이들을 보며 빙그레 웃었다. 통성명도 안 한 아이들이지만, 너튜브에 올라온 영상을 모두 본 서준은 이름과 얼굴을 모두 알고 있었다.

서준이 너튜브 실기 영상에 관해 이야기하며 1학년 1반에서 새로운 친구들과 인사를 하고 있을 때 교실 문이 열렸다. 2학년이나 3학년 학생인 것 같았다. 선배가 긴장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여기…… 이서준 학생 있어요?”

“네.”

서준이 손을 들자 선배가 화들짝 놀랐다.

그 모습을 보던 김주경이 눈을 깜빡였다. 어라. 어디서 본 것 같은 장면인데?

“이서준 학생이 신입생 대표라서…… 지금 가야 하는데…….”

“네. 알겠습니다.”

서준이 선배를 따라나서자 김주경을 비롯한 여울 예중 출신 아이들이 감탄했다.

“중학교랑 고등학교 둘 다 신입생 대표라니, 대단하네.”

그 말에 다른 아이들도 눈을 반짝였다.

후기 글로만 남아 있는 여울 예중 입학식을 직접 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었다.

* * *

“서준이 이번에도 대표이려나.”

“그렇지 않을까?”

미리내홀 학부모석에 앉은 이민준과 서은혜가 카메라를 들고 눈을 빛냈다. 어디에 있어도 서준을 선명하게 잘 찍을 수 있게 가장 좋은 카메라로 들고 왔다.

잠시 기다리고 있으니 미리내홀의 문이 열리고 3학년, 2학년들이 들어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번에 입학한 1학년들이 학과별로 들어와 관객석 앞의 빈 곳에 나란히 섰다.

이민준은 아이들 중 익숙한 얼굴들을 살폈다.

1반에 있는 한지호와 김주경 근처에도, 2반에 있는 강재한과 양주희의 근처에도 서준은 보이지 않았다.

“역시 서준이는 없네.”

“이번에도 서준이가 신입생 대표인가 봐.”

서은혜와 이민준은 흐뭇함을 감추지 못하며 입학식이 시작되길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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