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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287화 (287/1,055)

0살부터 슈퍼스타 287화

촬영이 시작되기 전.

모니터가 있는 공희찬 피디의 뒤로 배우들이 모여들었다. 유청아 작가도 들뜬 얼굴로 자리를 잡았다.

“서준이 연기 직접 보는 건 처음인데! 형. 서준이 잘하죠?”

강태영의 물음에 정보람도, 공희찬 피디와 유청아 작가도 귀를 쫑긋 세웠다. 그런 사람들의 반응에 박도훈이 부드럽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대본 리딩 때보다 훨씬. 기대해도 좋을걸.”

박도훈의 호언장담에 기대감이 몇 배로 부풀었다.

다들 눈을 반짝이며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조연출 김단비와 최현우, 그리고 일부 스태프들도 어떻게든 모니터 화면을 보려고 고개를 빼 들었다.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하는 스태프들만이 아쉬운 표정으로 모여있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레디, 액션!”

공희찬 피디의 목소리가 들리고 모두 화면을 바라보았다.

비가 내렸다.

서준이 우산을 드는 속도를 조금 늦추긴 했지만 보고 있던 사람들은 더욱더 느리게 느꼈다. 천천히 올라가는 노란 우산과 한 방울 한 방울 보이는 것 같은 빗방울, 천천히 드러나는 모습. 숨이 막힐 정도로 답답했지만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끝내 얼굴을 드러낸 서준이 환하게 웃자, 아까와 달라진 게 없는 조명과 촬영장인데도 서준의 주위만 화사하게 꽃이 핀 것 같았다.

침묵이 흘렀다.

유리창 건너, 버스 안에서 서준의 얼굴을 본 윤혜인과 촬영감독.

그리고 촬영감독이 찍고 있는 카메라를 통해 모니터로 보고 있던 공희찬 피디와 유청아 작가, 배우들. 서준의 첫 연기를 보기 위해 고개를 빼 들고 있던 스태프들.

작은 모니터에 달라붙어 있던 사람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숨 쉬는 것마저 멈추었다. 특히 여자 스태프들이 눈도 깜빡이지 않았다. 눈 깜빡이는 시간도 아까웠다.

세상의 모든 소리가 사라진 것처럼 빗방울들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소리만 들렸다.

모니터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서준의 연기를 보지 못한 스태프들이 갑작스러운 침묵에 당황했다. 살수차에서는 계속 물이 뿜어져 나왔다. 슬슬 컷 소리가 들려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소리를 내기엔 지금의 침묵도 공희찬 피디의 연출일지도 몰라 소리를 죽이고 있었다.

촬영장에 감도는 미묘한 분위기에 서준에게 건네줄 수건을 들고 있던 안다호는 웃고 말았다.

서준의 연기에 가장 익숙한 박도훈이 제일 먼저 정신을 차렸다.

‘도대체 서준이는 못하는 장르가 뭔지…….’

속으로 감탄하며 공희찬 피디의 어깨를 툭툭 쳤다.

“!! 커, 컷!!”

넋 놓고 보고 있다가 갑작스러운 두드림에 화들짝 놀란 공희찬 피디는 반사적으로 컷을 외쳤다. 솔직히 말하면서도 뭐라고 외치고 있는지 모르겠다. 제 목소리에 정신을 차린 공희찬 피디가 얼른 뒷말을 이었다.

“오케이!”

오케이 사인에 활짝 웃고 있던 유성진이 눈을 몇 번 깜빡이더니 이서준으로 변했다. 그러고는 버스 창문 건너 함께 촬영했던 윤혜인과 촬영감독을 보며 웃으며 고갯짓을 했다.

“세상에…….”

그런 서준의 모습에 넋 놓고 있던 윤혜인과 촬영감독은 다시 한번 감탄했다. ‘유성진’에서 ‘이서준’으로 변하는 서준의 얼굴이 확연하게 보였기 때문이었다.

조금 전까지는 윤혜인이 나이도 잊고 두근두근 가슴을 뛰게 만들었던 사랑이 가득했던 소년이었는데 진짜 1초도 안 돼 그 소년이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린 것이었다. 그 변화가 대단하다 못해 충격적이기까지 했다.

진짜 첫사랑의 환상이라도 본 것 같았다.

윤혜인과 촬영 감독의 시선이 매니저에게 수건을 받아, 우산을 써도 튀었던 물방울을 수건으로 닦아내고 있는 서준을 따라 움직였다.

“……서준이의 온오프에 대해선 충분히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같은 웃는 얼굴인데도 이렇게 느낌이 다르네요.”

“요즘 배우들은 다 저런가? 촬영하다가 충격받는 건 처음인 것 같은데.”

촬영감독의 말에 윤혜인이 얼른 고개를 저었다.

“이서준이잖아요. 이서준.”

오케이 소리에 다시 시간이 흐르기 시작했다. 모니터를 보고 있던 사람들도 하나둘 정신을 차렸다. 유청아 작가가 입을 틀어막았다.

“세상에…… 이러니까 소 작가님이 서준이랑 작품하고 싶어 하시지.”

유청아 작가가 생각했던 ‘유성진’보다 더 ‘유성진’ 같은 소년이 저기 있었다.

공희찬 피디도 동의하듯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서준의 출연이 확정되고 서준의 작품을 보면서 이서준이라는 배우의 연기력에 대해서는 충분히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모자랐던 것 같았다.

다시 한번 촬영본을 돌려보던 공희찬 피디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공희찬 피디의 옆에 앉은 유청아 작가도 모니터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뮤즈를 찾은 것처럼 온갖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이번 작품에서 쓰진 못하겠지만, 다음 작품의 시작이 될 수도 있어 수첩에 얼른 적어 내려갔다.

“이거 예고편으로 넣으면 좋을 것 같네요.”

공희찬 피디의 말에 메모하던 유청아 작가의 손이 멈추었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입만 벙긋거리던 유청아 작가가 겨우 한마디를 내뱉었다.

“……첫 방 시청률 장난 아니겠네요.”

* * *

조연출 김단비는 공희찬 피디의 옆에 앉아 모니터 화면으로 촬영본을 보고 있는 서준을 보며 감탄만 이어가다 한마디를 뱉었다.

“내 첫사랑은 초등학생이었는데 왜 갑자기 서준이로 보이는지 모르겠네. 추억 보정이 있어도 그렇게 잘생긴 애는 아니었는데…….”

추억 보정인가, 기억 조작인가.

심각하게 고민하는 김단비의 말에 최현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방금 그건 충격적이었지. 남자인 나도 깜짝 놀랄 비주얼이었어. 게다가 배경음악하고 편집이 없어도 이 정도인데…….”

작정하고 편집하면 어떤 화면이 나올지 몰랐다.

“그러게. 음악에 효과까지 넣으면 장난 아니겠다.”

그렇게 되면 국민 대군마마였던 이서준이 국민 첫사랑이 되는 것도 시간문제일 터였다.

그때 김단비와 최현우의 귀로 예고편 이야기가 들려왔다. 무시무시한 공희찬 피디의 의견에 최현우가 침음성을 흘렸다.

“적어도 2주 전부터는 나올 텐데…… 난리 나겠네. 뭐, 그래도 시청률은 걱정 없겠다.”

2주 동안 같은 화면을 계속 돌려볼 시청자들은 생각도 않는, 앉으나 서나 시청률 생각뿐인 두 조연출이 키득키득 웃었다.

그렇게 서준의 ‘봄이 돌아왔다’ 첫 촬영이 끝났다.

* * *

서준의 다음 촬영은 실내 촬영이었는데 교실 세트장이었다.

안다호와 함께 안으로 들어온 서준이 스태프들과 인사를 나누다가 촬영 준비에 방해되지 않도록 세트장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모인 단역 배우들을 바라보고는 저도 모르게 발걸음을 멈추었다. 몇 번이고 눈만 깜빡이는 서준의 모습에 안다호가 씨익 웃었다.

“이게…….”

서준이 단역 배우들의 모습에 침음성을 뱉었다.

당황한 서준의 모습에 단역 배우들이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인사했다.

“안녕!”

“우리 왔다!”

“안녕, 서준아!”

“……왜 다들 여기 있어?”

김주경, 한지호, 강재한, 양주희에 다른 아이들까지 옹기종기 모여 앉아있었다. 바로 한 달 전까지 같은 중학교에 다녔고 한 달 뒤에는 같은 고등학교에 다닐 친구들이었다.

“여울 예중 동창회!”

한지호의 말에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려던 양주희가 얼른 말을 덧붙였다.

“가 아니라 촬영하러 왔어.”

한지호와 양주희의 말에 아이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황당하다는 듯 바라보던 서준도 이내 웃고 말았다.

서준이 아이들 옆에 자리를 잡았다.

“근데 진짜 어떻게 된 거야?”

서준의 물음에 주경이 대답했다.

“소속사로 단역 있는데 할 거냐고 연락이 왔어. 마침 방학이고 미리내 예고는 여울 예중보다 활동하기 편하니까, 한다고 했지.”

주경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이다 한마디씩 붙였다.

“거기다 4부작이래도 공중파잖아.”

“열심히 얼굴 알려야 다음 작품이 들어오지.”

하긴.

학교가 배경이라면 학생 엑스트라들도 있어야 했다. 그렇다면 당연히 아역 배우들이 필요한데 요즘 아역 배우들 중에서 가장 연기를 잘하는 건 역시 여울 예중 출신의 황금세대.

오히려 아역 배우가 필요한 곳에 친구들이 없다는 게 이상한 상황이었다.

고개를 끄덕이는 서준에 재한이 웃으며 말했다.

“근데 기사를 보니까 서준이 네가 나온다잖아. 그래서 매니저님한테 숨겨달라고 부탁드렸어.”

“너 깜짝 놀라게 해주려고 말이야.”

웃음기 가득한 친구들의 말에 서준이 뒤를 돌아보았다. 장난기 가득한 안다호의 얼굴에 서준은 웃고 말았다.

“그래. 엄청 놀랐어.”

서준이 친구들과 즐겁게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여주인공 아역, 정보람이 도착했다. 막 세트장으로 들어오는 정보람을 발견한 서준이 정보람을 불렀다.

“이쪽은 여주 아역, 정보람이고 우리랑 같이 미리내 예고 입학한대. 그리고 여기는 여울 예중 친구들. 전부 미리내 예고 갈 예정이야.”

서준의 소개에 정보람도 친구들도 웃으며 인사를 나누었다. 다들 좋은 아이들이라 금세 친해졌다.

“그럼 우리는 촬영 준비하러 갈게.”

친구들과 잠시 이야기를 나눈 서준과 정보람은 촬영 준비를 시작했다. 교복으로 갈아입고 분장을 하고 나오자 마침 촬영 준비도 끝나가고 있었다.

“촬영 시작하겠습니다!”

조연출 최현우의 목소리가 세트장을 울렸다. 미리 교복을 입고 있던 아이들이 세트장 안으로 들어가 조연출이 미리 알려준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이러니까 진짜 학교 온 것 같네.”

“옆에 카메라가 잔뜩 있지만 말이야.”

주경의 말에 아이들이 웃었다. 무슨 말만 나와도 웃는 아역 배우들 덕분에 촬영장은 활기로 가득 찼다. 모든 촬영 준비가 끝났다는 김단비의 말에 공희찬 피디가 목소리를 높였다.

“레디, 액션!”

2학년 1반 반장, 김서연은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벌써 겨울이라니…… 고3이라니!”

“수능 싫다아.”

이제 곧 다가올 미래를 떠올리며, 진심이 가득 담긴 대사를 내뱉는 양주희와 김주경에 아이들이 속으로 키득키득댔다. 그 모습에 스태프들과 공희찬 피디, 유청아 작가는 역시 황금세대라며 감탄했다.

그때, 교실 앞문이 열리고 담임선생님이 들어왔다.

담임선생님의 등장에 떠들던 아이들이 입을 다물었다. 조용해진 아이들을 둘러본 담임선생님이 말했다.

“오늘 우리 반에 전학생이 왔어.”

담임선생님의 말에 아이들이 동그랗게 눈을 뜨고 옆자리에 앉은 짝과 속닥거렸다.

“헐? 이제 고3인데?”

“지금 전학 오는 애들도 있구나.”

“하긴, 고3 돼서 전학 오는 애들보다는 낫겠지.”

양주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김서연은 아까부터 자꾸만 눈이 마주치는 담임선생님에 무언가를 직감했다. 아무래도 반장인 만큼 자신이 전학생을 돌보게 될 것 같았다.

‘좋은 애였으면 좋겠네.’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김서연과 아이들이 문 앞을 바라보았다.

김서연을 연기하던 정보람이 같은 교실에 앉아 연기하는 아이들에 감탄했다. 대본에 적힌 대사인데도 다들 자신의 말을 내뱉는 듯 자연스러운 연기였다. 진짜 학교에 온 듯한 기분이었다. 물론 지켜보던 공희찬 피디와 유청아 작가, 스태프들도 같은 마음이었다.

“그럼 성진아. 들어오렴.”

담임선생님의 말에 교실의 앞문이 열렸다.

오오.

학생들의 입에서 감탄이 흘러나왔다.

몸에 딱 맞아떨어지는 교복에 단정히 정돈된 머리카락, 또래보다 큰 키는 감탄이 저절로 나올 만했다. 얼굴도 잘생겼는데…… 표정이 딱딱했다. 차가워 보이는 전학생의 표정에 김서연이 고개를 갸웃했다.

‘긴장했나?’

하긴, 전학이라는 게 여러모로 부담되는 일이기는 했다. 친구도 새로 만들어야 하고 수업 진도도 맞춰야 하고. 게다가 곧 있으면 기말고사였다. 전학생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것 같은 김서연은 잘해줘야겠다고 결심했다.

김서연의 생각은 표정으로 다 드러났고 카메라는 그런 정보람의 연기를 그대로 담아냈다.

굳은 얼굴로 잠시 교실 안을 둘러보던 전학생이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유성진입니다. 미국에서 왔습니다.”

헐. 대박.

여기저기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다른 곳에서 전학을 온 건 알았지만 그게 미국이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아이들의 눈이 반짝였다. 잘생긴 데다가 미국에서 왔으니 아이들의 관심을 한 번에 사로잡을 만했다.

“그럼 성진이는…… 서연아.”

“네.”

담임선생님의 부름에 반장 김서연이 손을 들어 올렸다.

미국에서 와서 낯선지 교실 안을 둘러보고 있던 전학생, 유성진의 시선이 창문 옆에 앉아 있는 김서연에게로 향했다.

미국에서 온 전학생 유성진과 반장 김서연의 시선이 마주쳤다.

첫 만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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