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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284화 (284/1,055)

0살부터 슈퍼스타 284화

“안녕하세요!”

막 ‘봄이 돌아왔다’의 대본 리딩을 준비하기 위해 회의실의 문을 열던 조연출 최현우가 누군가의 인사에 뒤를 돌아보았다.

“……?”

지금 이 시각에 여기 있을 리가 없는 배우의 모습에 놀란 최현우는 시계를 봤다가 다시 배우를 봤다가 시계를 바라보았다.

“어…… 강태영 배우?”

최현우가 약속된 시간보다 1시간이나 일찍 온, 만면에 미소를 짓고 있는 강태영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 뒤에 서 있던 주용진이 끄응 앓는 소리를 내며 이마를 짚었다.

“벌써 오셨어요?”

“네. 오늘은 스케줄이 없어서요. 아, 도와드릴까요? 하나씩 놓으면 되죠?”

어느새 최현우가 들고 있던 대본들을 나눠 들고 자리마다 올려놓는 강태영의 모습에 최현우가 놀라 강태영의 뒤를 쫓았다.

“괜찮습니다! 제가 할게요!”

“에이. 같이하면 빨리하고 좋죠. 물병도 하나씩 놓으면 되죠?”

“아니, 이러면 안 되는데…….”

어느새 물병까지 자리마다 하나씩 놓아두고 있는 강태영의 모습에 최현우가 초조한 눈빛으로 강태영의 매니저, 주용진을 바라보았다.

강태영이 조연출의 일을 돕는 건 별로 상관없지만, 이 모습을 상사들이 본다면 난처해지는 건 조연출이었다. 주용진이 입을 열었다.

“태영아. 곤란해하시잖아.”

“……죄송해요. 이것만 도와드릴게요!”

재빨리 들고 있던 나머지 물병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는 강태영의 모습에 최현우가 작게 웃었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같이 촬영할 배우가 좋은 사람인 것 같아 마음이 놓였다. 이미지는 좋아도 실제로는 다른 배우들을 많이 봐온 탓이었다.

강태영의 도움으로 대본과 물병 배치가 끝났으니 이제 자리마다 이름표를 붙여야 했다. 최현우는 A4용지에 프린트된 이름이 앞으로 오게 삼각형으로 접어 자리마다 올려놓았다.

[피디 공희찬]

[작가 유청아]

두 사람의 이름이 상석에 놓이자 강태영의 눈이 반짝였다. 이번엔 강태영이 최현우의 뒤를 쫓았다. 박도훈과 윤혜인의 이름표가 마주 보고 놓였다.

“제 자리는 어디에요?”

“이쪽입니다. 박도훈 배우 옆자리요.”

마침 강태영의 이름표를 놓던 중이었다.

강태영의 이름표 아래에 서준의 이름이 적힌 종이가 있었다. 강태영은 들뜬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이서준의 이름표를 삼각형 모양으로 접는 최현우를 바라보았다.

막 강태영의 옆자리에 서준의 이름표를 놓으려는 최현우의 모습을 본 강태영이 환하게 웃었다. 최현우는 이름표를 놓느라 보지 못했지만, 주용진은 똑똑히 봤다.

성공한 덕후의 표정이 저런 것일까.

진짜 이서준이 나타났을 때 울지나 않았으면 좋겠다고 주용진이 생각하고 있을 때, 회의실의 문이 열렸다.

조연출 김단비가 벌써 도착한 강태영 배우와 매니저의 모습에 깜짝 놀라 눈을 깜빡였다.

“어, 강태영 배우? 일찍 오셨네요!”

“아, 네.”

강태영이 볼을 긁적였다.

어젯밤에는 소풍 가는 아이처럼 기대가 돼서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거의 뜬눈으로 밤을 새운 것 같았다. 거기에 아침부터 이것저것 준비를 하고 기다렸는데도 시간이 별로 흐르지 않아 그냥 빨리 와버렸다.

제가 생각해도 참, 들뜬 게 그대로 느껴졌다.

최현우가 고개를 갸웃하며 김단비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야?”

“이서준 배우 자리, 박도훈 배우랑 강태영 배우 맞은편으로 해달래.”

김단비의 대답에 최현우가 고개를 갸웃했다.

“자리를? 왜?”

“그게 연기에 도움이 될 것 같다나? 하여튼 그렇게 해달래. 공 선배도 괜찮다고 했어.”

“그래. 알았어.”

책임자인 피디가 괜찮다고 했으니, 최현우가 고개를 끄덕이고 서준의 이름표 쪽으로 손을 뻗었다. 강태영의 옆자리에 놓여 있던 서준의 이름표가 최현우의 손에 들려 다시 위로 떠올랐다.

청천벽력 같은 김단비의 말에 놀라서 멍하니 있던 강태영은 멀어지는 서준의 이름표에 입만 벙긋거렸다. 넋이 나간 배우의 모습에 주용진이 쓰게 웃었다.

‘이서준 배우가 직접 태영이 반대편에 놓아달라고 했으니, 바꾸기도 힘들겠네.’

여주인공 아역 정보람의 옆자리에 놓인 서준의 이름표가 놓였다. 최현우는 투명 테이프로 이름표를 고정했다.

그 모습에 강태영이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서준의 옆자리에 앉아 대본 리딩이 시작할 때까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는데 모두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영혼이 빠져나간 듯, 좌절한 강태영의 모습에 주용진이 고개를 저었다.

* * *

강태영이 문이 열리는 소리에 대본을 보고 있던 고개를 번쩍 들었다. 격한 배우의 반응에 들어오던 스태프가 두어 걸음 물러섰다.

“에, 에어컨 온도 괜찮으세요?”

“……네.”

아쉬움을 금세 지운 강태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스태프가 떠나고 또다시 문이 열렸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든 강태영이 협찬 음료를 들고 들어오는 스태프들의 모습에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그러길 여러 번.

회의실을 드나드는 스태프들에 강태영의 기분도 축축 처졌다. 그 모습을 쭉 보고 있던 주용진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기다린다고 해도 이서준 배우가 나타날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게. 너무 빨리 왔다니까.”

“그런가…….”

또다시 문이 열리는 소리에, 강태영은 처음처럼 빠르게 반응하지 않지만 그래도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이서준이었다.

“서준이다!!”

강태영이 벌떡 일어나며 외쳤다. 주용진이 이마를 짚었다.

눈을 동그랗게 뜨는 서준의 모습에 강태영이 눈알을 굴려 주용진을 바라보았다.

설마…… 나 방금 입 밖으로 말했어?

“……안녕하세요?”

강태영의 격렬한 반응에 놀란 서준이 한 박자 늦게 인사했다.

“어, 어. 반가워요……. 이서준 배우…….”

서준의 작품들을 보고 덕질도 하느라, 하도 ‘서준이’라고 불러대서 입에 붙어버렸다. 당황해 뒤늦게 말을 높이는 강태영의 모습에 서준이 웃음을 터뜨렸다.

“말 편하게 하세요.”

“……그럴까?”

진심으로 기뻐 보이는 강태영의 모습에 서준과 안다호는 웃고 말았다. 얼굴만 봐도 강태영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서준이도 형이라고 불러줘!”

“네. 태영이 형.”

“……!”

서준에게 형이라고 불린 강태영의 얼굴이 그 어느 때보다 밝아졌다. 잔뜩 들뜬 강태영이 마치 자신의 집인 양 서준을 자리로 안내했다.

“여기 앉아. 물은 이걸로 줄까? 내가 유자차 가져왔는데 먹을래? 온도는? 춥지 않아?”

쏟아지는 질문에 몇 번 눈을 깜박인 서준이 빙그레 웃었다.

“감사합니다. 그럼 잘 마실게요. 온도는 딱 좋아요. 태영이 형.”

“그래? 유자차 얼른 갖다 줄게. 우리 집에서 직접 담그는 건데 되게 맛있어.”

강태영은 얼른 주용진의 옆에 놓인 가방에서 보온병을 꺼내와 서준과 두 매니저에게 유자차를 나누어 주었다.

유자차가 든 종이컵을 받아든 주용진이 고개를 모로 꼬았다. 온 신경이 서준에게 향한 줄 알았는데 그래도 매니저들을 챙길 정신은 남아 있는 모양이었다.

강태영의 말대로 유자차는 맛있었다.

입에 맞는 따뜻한 유자차를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마시고 있는 서준의 앞에 과자 봉지가 나타났다.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강태영이 눈을 반짝이며 과자 봉지를 서준의 앞으로 조심스럽게 밀었다.

“서준아, 이것도 먹을래? 이거 맛있어.”

싫어하면 어쩌지?

긴장한 모습이 그대로 보여 서준은 웃을 수밖에 없었다.

“네. 잘 먹을게요.”

서준의 말에 함박웃음을 지은 강태영이 가방에서 계속 무언가를 꺼내왔다. 과자며 빵이며 음료수며. 끊임없이 나오는 먹을 것에 서준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차에 더 있는데 더 줄까?”

더 달라고 말한다면 당장에라도 주차장까지 달려가서 가져올 기세인 강태영의 모습에 서준이 웃음을 터뜨렸다. 이지석이 말했던 ‘개 같은’ 성격이 어떤 건지 알 것 같았다.

“이걸로 충분해요. 태영이 형도 같이 먹어요.”

“그럴까? 이거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건데 맛있어. 집에 다른 맛도 있거든? 촬영할 때 들고 올게. 아, 나 촬영 때 구경하러 가도 돼?”

서준과 안다호가 강태영에게 천천히 적응하고 있을 때, 주용진은 생각보다 멀쩡한 강태영의 모습에 만족했다.

며칠 전, 서준에 대해 줄줄 늘어놓던 모습보다는 훨씬 진정된 모습이었다.

강태영이 주용진의 생각을 알았다면 본인 앞에서 어떻게 그런 말을 하냐며, 창피해 죽을 일 있냐고 했을 테지만 말이다.

* * *

한참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서준과 강태영이 문이 열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여자주인공 아역인 정보람 배우였는데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잔뜩 지친 얼굴이었다. 뒤따라 들어오는 매니저로 보이는 남자도 진이 빠진 듯 보였다.

“후우…….”

기자들이 있다는 말은 들었지만, 할리우드 스타 이서준이나 한창 인기몰이 중인 강태영이 아니라 자신까지 인터뷰하게 될 줄은 몰랐다.

눈을 번뜩이던 기자들을 떠올린 정보람과 매니저가 한숨을 내쉬며 회의실 안으로 들어오려다 앉아 있는 두 배우를 보고 화들짝 놀라 뒷걸음질 쳤다. 일찍 온다고 일찍 왔는데 먼저 와 있는 배우들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것도 이서준과 강태영이!

“아, 안녕하세요. 여주인공 아역을 맡은 정보람입니다!”

씩씩한 인사에 서준과 강태영도 웃으며 인사했다.

정보람을 시작으로 ‘봄이 돌아왔다’의 배우들이 하나둘 도착했다.

다들 방송국에 들어오면서 기자들에게 시달려 지친 것처럼 보였지만 기쁜 표정이었다. 화제가 될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상상 이상이었다.

“이게 다 이서준 배우 덕분이죠.”

“그러게. 우리까지 인터뷰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어? 기사 벌써 떴네.”

연예뉴스는 ‘봄이 돌아왔다’의 대본 리딩에 대한 기사로 가득했다.

이서준과 윤혜인, 정보람은 물론이고 오늘 대본 리딩에 참여하는 모든 배우들에 대한 인터뷰가 가득했다.

“우리 기사도 조회수도 꽤 나오나 봐요!”

“강태영 배우랑 박도훈 배우는 아직 안 왔나 봐. 으. 회의실 안에 이서준 배우 있겠지? 나 진짜 팬인데……!”

그 말에 내심 동의한 배우들이 잔뜩 기대한 얼굴로 회의실 문을 열었다. 대부분 온 모양인지 회의실이 시끌벅적했다. 막 회의실에 들어온 배우들의 시선이 앞쪽으로 향했다.

예상한 대로 이서준, 윤혜인, 정보람이 있…… 강태영?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한 배우의 얼굴에 모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에 매니저석에 앉아 있던 주용진이 한숨을 내쉬었다. 너무 일찍 오는 바람에 기자들을 만나지도 못했다.

‘태영이 기사만 없을 것 같은데…… 나갈 때 기자들이 있으려나?’

매니저 주용진이 고민하고 있는 것도 모르는 강태영은 어느새 서준과 전화번호까지 교환하고는 가장 행복한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

* * *

“이런, 제가 제일 마지막이네요. 늦어서 죄송합니다.”

마지막으로 비어 있던 자리의 주인, 배우 박도훈이 웃으며 회의실 안으로 들어왔다. 배우들이 일찍 왔다는 소식에 예정보다 빨리 회의실로 온 공희찬 피디가 고개를 저었다.

“아뇨. 아직 15분이나 남았는데요. 다들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일찍 오셔서 그런 거지, 박 배우가 늦은 건 아닙니다.”

공희찬 피디의 농담에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한두 명 늦거나 정시에 올 수도 있었는데 다들 약속이나 한 듯 약속시간보다 빨리 와버렸다.

서준이 자리에 앉는 박도훈을 보며 손을 흔들었다. 박도훈도 웃으며 마주 인사해 주었다.

“그럼 다들 왔으니 시간은 좀 이르지만 대본 리딩을 시작하겠습니다. 촬영도 지금부터 시작하겠습니다.”

공희찬 피디의 말에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동시에 설치된 카메라들에 불이 들어왔고 몇 대는 배우들을, 한 대는 회의실 전체를, 한 대는 공희찬 피디를 비추었다.

공희찬 피디가 활짝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반갑습니다. 저는 봄이 돌아왔다의 연출을 맡은 공희찬이라고 합니다. 처음으로 촬영하는 작품이지만 제 평생 가장 기억에 남을 드라마가 될 거라고 자신하고 있습니다. 모두 잘 부탁드립니다.”

공희찬 피디가 자리에 앉고 옆자리에 앉아 있던 유청아 작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카메라가 옆으로 움직여 유청아 작가를 비추었다.

“안녕하세요. ‘봄이 돌아왔다’를 쓴 유청아라고 합니다. 첫 작품이지만 대본은 촬영 전까지 완벽하게 써놓을 테니 걱정 마시고 열심히 촬영해 주세요!”

공희찬 피디와 유청아 작가의 인사가 끝나고 배우들도 일어나 짧게 인사했다.

“그럼, 1화 첫 씬부터 가겠습니다.”

드라마의 시작은 커다란 고함으로 시작되었다.

여주인공, 김서연의 상사가 김서연에게 버럭 화를 내고 김서연은 그저 고개를 숙이고 있는 장면이었다. 조용한 회의실에 날카로운 상사의 목소리와 김서연을 연기하는 기죽은 유혜인의 목소리만 맴돌았다.

조연출 김단비가 지문을 읽고 배우들이 대사를 쳤다.

역시, 고르고 고른 배우들이었다. 알아서 잘하는 배우들을 보며 공희찬 피디와 유청아 작가가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대본을 보고 촬영장인 듯 열연하는, 그런 평범하다면 평범한 대본 리딩이었다.

남주A 이현성 역을 맡은 박도훈이 입을 열었다.

“반갑습니다. 이현성이라고 합니다.”

딱딱한 목소리에 굳은 표정의 이현성이 대사를 이어나갔다.

* * *

대본 리딩을, 특히 이서준을 맡아 촬영하고 있던 카메라감독이 고개를 갸웃했다.

대본을 보고 있는 다른 배우들과는 달리 이서준의 시선은 대사를 치고 있는 박도훈에게로 향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근데 지금…….’

카메라 감독의 시선이 서준의 얼굴에서 박도훈의 얼굴로, 박도훈의 얼굴에서 서준의 얼굴로 향했다.

‘따라 하는 건가?’

대본 리딩임에도 열연을 펼치고 있는 박도훈의 표정을, 서준이 따라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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