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282화
“형! 당장 계약하자!”
“넌 입 다물고 있어. 지운아. 그거 설명 좀 해봐. 이서준 배우는 무슨 역에 들어가고 태영이는 무슨 역할이야?”
-그게 강 배우님은 남주B 역을 맡을 거랍니다.
“남주…… B?”
매니저, 주용진이 미간을 찌푸렸다. 남주면 남주지, 남주B는 뭔가. 그런 의문을 읽었는지 휴대폰 건너 직원이 말을 이었다.
-남자주인공이 A하고 B가 있어요. 시놉시스에도 진짜 남주는 아직 안 나와 있습니다.
“그럼 그건 넘어가고. 이서준 배우는? 내가 읽어봤는데 이서준 배우가 할 만한 역은 없었거든.”
주용진의 말에 강태영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형도 읽었구나!”
“……그래. 지운아. 뭐라고?”
배우가 하고 싶다니 매니저로서 안 읽어볼 수가 있나.
하지만 강태영이 기뻐하는 모습이 민망했던 주용진은 말을 돌렸다.
-아역이요. 남주 아역.
“……허…….”
“대애박!”
상상도 못 한 역할에 이마를 짚는 주용진과는 달리 강태영은 눈을 빛내며 다시 가제 ‘봄’의 시놉시스를 훑어보고 있었다.
여자주인공의 기억 속 첫사랑인 만큼 ‘봄’의 시놉시스에서 남주 아역은 여자주인공이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행복해할 정도로 아름답고 소중하게 묘사가 되어 있었다.
“누가 할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서준이랑 찰떡이네!”
신이 난 강태영의 모습에 한숨을 내쉰 주용진이 말했다.
“일단 알았다. 시놉시스 보내봐.”
-네!
전화가 끊어지고 좋아서 어쩔 줄 몰라하는 강태영과는 달리 주용진은 심각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겼다.
“왜 그래, 용진이 형? 서준이랑 같이 연기하게 되면 좋은 거 아닌가? 단번에 승낙해야지! 누가 차지하면 어떻게 해?”
“생각 좀 하고 삽시다. 강 배우님.”
“네. 매니저님.”
강태영이 자리에 앉는 사이, 주용진은 소속사에서 보내준 시놉시스를 뽑아왔다. 한 부를 강태영에게 주고 남은 한 부는 자신이 읽었다.
[MBS / 봄이 돌아왔다]
[피디 : 공희찬]
[작가 : 유청아]
시놉시스의 표지를 넘기니, 섭외된 배우들의 이름이 보였다.
[남자주인공A : 박도훈]
[남자주인공B :]
[남자주인공 아역 : 이서준]
“남주A는 박도훈 배우네.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어서 궁금했는데! 그러고 보니 이서준 사단이잖아! 으. 나도 이서준 사단 들어가고 싶다!”
“태영아. 집중하자.”
주용진의 말에 강태영이 눈알을 데굴데굴 굴리며 입을 다물었다.
잠시의 시간이 흐르고 시놉시스를 읽고 내려놓은 주용진이 한숨을 내쉬었다. 강태영이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아까부터 왜 그렇게 심각해? 누군 이런 기회 못 얻어서 난리인데…….
“너 이서준 배우의 성인역으로 연기한다는 게 어떤 건지 몰라?”
“……어떤 건데?”
이 아이를 어쩔꼬.
주용진이 무거운 한숨을 내쉰 후 입을 열었다.
“일단 외모를 보자.”
“외모?”
“이서준 배우 잘생겼지?”
주용진의 질문에 강태영이 눈을 반짝였다.
“서준이야 아기였을 때부터 꽃미모로 유명했지! 그 조그마한 아기가 분유통을 안고 꺄르르 웃을 때는 심장 멎는 줄 알았다니까! 아기보고 충격받은 건 그때가 처음이었어!”
“그…….”
“48시간은 어떻고! 브라운블랙 분들이 그렇게 부럽게 느껴진 적도 없었다니까! 세상에! 토끼귀 모자라니! 볼은 빨갛고 통통해서 눌러보고 싶지, 손은 조막만 해서 나무블록도 두 손으로 들어야 하지. 기어가는 건 왜 그렇게 귀여운지! 내 동생이었으면 엄청 귀여워해 줬을 텐데!”
“태…….”
“첫 연기는 얼마나 잘했어! 그 연기력이 첫 연기였다니…… 웬만한 천재 배우도 그렇게는 못 할 거야! 진짜 천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연기력! 우리 서준이 최고!”
“……내가 잘못했다.”
주용진의 말에 강태영이 으하하하 웃었다.
강태영.
직업 배우. 나이 28세.
엘리펀트 분유 광고를 보고 엄마아빠한테 저런 동생을 낳아달라고 거실 바닥을 뒹굴며 떼를 썼던 그때부터 싹이 파릇파릇했던 새싹부터였다.
“자랑 실컷 했으면 본론으로 들어가자.”
“아직 남았는…… 넵!”
이제 쉐도우맨1을 이야기했으니, 남은 작품에 대해서 할 말이 많이 남았지만 부리부리한 주용진의 눈빛에 강태영은 순순히 입을 다물었다.
“그래. 그런 이서준 배우가 자라서 네가 된다는 거야.”
“헐! 그건 안 되지!”
“…….”
“서준이는 나보다 더 멋지게 자라야 해!”
너…… 진짜…….
주용진이 이마를 짚었다.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도대체 뭐부터 말해야 되는지 모르겠다. 입만 벙긋거리던 주용진은 그냥 무시하기로 했다.
“일단 외모부터 차이가 있어. 그래도 드라마니까, 너도 잘생겼으니까 시청자들도 적당히 넘어갈 거야.”
‘안 넘어가는 사람들도 있을 테지만.’
주용진이 한숨을 삼켰다.
“제작진도 어느 정도 고려해서 너랑 박도훈 배우를 섭외했겠지.”
주용진의 말에 강태영이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은 연기. 아역 배우들은 잘했는데 성인 배우들이 연기를 못한다고, 몰입이 안 된다는 드라마가 몇 개 있거든? 근데 여기선 이서준 배우가 나오잖아. 얼마나 비교가 되겠어.”
주용진은 강태영을 설득했다.
“게다가 네가 원하는 건 이서준 배우 상대역 아니야? 이건 과거 부분, 현실 부분이 따로 있어서 같이 연기하지도 않잖아.”
자신의 말에도 미동도 없는 배우의 표정에 주용진이 한숨을 쉬었다.
“……이거 꼭 해야겠어? 웬만큼 해서는 좋은 반응이 나오긴 힘들 거야.”
주용진의 걱정 어린 말에 강태영이 즐거운 듯 웃었다.
“내 좌우명 알잖아. 남들 눈 신경 쓰다가는 이상한 거 한다. 그러니까 좋아하는 건 좋다고 말하고 싫어하는 건…….”
“입 다물고 있어야지. 너 연예인이야.”
주용진의 말에 강태영이 어깨를 으쓱였다.
“이번 작품도 하고 싶으니까 하는 거야. 공 피디님한테 은혜도 갚아야 하고. 이서준 배우랑 같은 작품에 나가게 됐는데 언제 또 이런 기회가 있겠어.”
“맞는 말이긴 한데…….”
오히려 강태영에게 설득당한 주용진이 머리를 벅벅 긁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욕먹는 건 너니까, 알아서 해.”
“아, 형!”
“뭐, 왜, 뭐.”
퉁명스러운 것 같아도 결국은 같이 헤쳐나갈 것을 아는 강태영이었다. 강태영이 실없이 웃자 주용진이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소속사에 연락했다.
“어. 태영이가 한단다.”
-예! 바로 연락하겠습니다!
그사이 강태영이 시놉시스를 다시 읽어보았다.
“제목이 봄이 돌아왔다? 줄이면 봄돌? 봄돌, 봄돌. 봄동 먹고 싶다. 형, 봄동 겉절이에 수육 먹자!”
“아이고. 두야.”
강태영의 말에 주용진이 머리를 싸맸다.
* * *
모든 배우가 섭외된 다음 날, 오전.
“30분 뒤에 기사 뜬다!”
촬영장을 다른 피디에게 맡기고 방송국에 머물고 있던 김진명 CP가 외쳤다. 스릴러 ‘내일’도 촬영해야 했고 4부작 기획도 챙겨야 해서 이래저래 바쁜 김진명 CP였다.
“각자 아는 기자들한테서 연락 올지도 모르니까, 다들 입 단속 잘하자.”
김진명 CP의 말에 직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누군가의 행동에 한 번 엎어질 뻔했던 캐스팅이라는 건 아무래도 밝히지 않는 편이 좋았다.
“그럼 이서준 효과를 즐겨볼까!”
점점 낮아지는 월화 드라마, 그리고 수목 드라마의 시청률은 이제 신경도 쓰이지 않았다. 지금부터 드라마 ‘봄이 돌아왔다’가 끝나는 날까지는 꽃길만 펼쳐질 MBS 드라마국이었다.
“우리한테도 봄이 돌아왔구나!”
“우리에게 돌아올 봄도 있었어요?”
뼈를 찌르는 팩트에 모두 찔끔 눈물을 흘렸다.
곧 MBS에서 뿌려진 보도자료가 연예부 기자들의 메일함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버릇처럼 메일함을 훑고 있던 기자 하나가 이서준의 이름을 발견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서준 떴다!!”
각자 다른 일을 하고 있던 기자들이 하던 일을 멈추고 바로 메일을 확인했다. 보도자료를 읽고 기사를 쓸 준비를 하고 휴대폰을 들었다. 그러고는 시청률이 낮을 때는 거의 연락하지 않았던 MBS 관계자들의 번호를 눌렀다.
“아이고. 피디님! 오랜만입니다!”
“방금 보도 자료를 받았는데…….”
전화를 받는 MBS 관계자들도, 전화를 거는 기자들도 바쁘게 움직였다. 휴대폰을 어깨로 지탱하며 키보드를 두드렸다.
그리고 기사가 업로드되었다.
* * *
“그러고 보니 며칠 전에 캐스팅 제안 들어왔거든.”
평화로운 하루.
평소처럼 일하고 있던 직원 하나가 무언가를 떠올렸다. 손과 눈은 일하고 귀는 직원의 목소리에 집중했다.
“어딘데?”
“MBS.”
“MBS면 오영철 작가 거?”
“아니. 4부작 기획. 그거 팀장님께 보고하니까. ‘우리 태인이가 그런 걸 할 급은 아니지.’ 하는 거 있지?”
직원의 팀장 성대모사에 다른 직원들도 웃음을 터뜨렸다.
“근데 MBS도 좀 너무했어요. 아무리 주연이라고 해도 우리 배우가 4부작에 나올 정도는 아니죠.”
“그러게.”
직원들이 떠들고 있을 때, 홀로 연예부 기사를 살피는 직원이 있었다. 모니터링 업무를 맡은 신입 직원이었다.
‘4부작이라…….’
대화에 낄 생각은 못 하고 귀를 기울이면서 MBS 4부작에 대해 검색했다. 다른 사람들의 반응을 보니 그렇게 기대할 만한 건 아니겠다 싶어서 신입직원도 별로 기대하지 않았는데 의외로 기사가 많이 떴……?……!
“저기…… 섭외 온 기획 있잖아요…… 스릴러였어요? 로맨스였어요?”
“응? 음. 스릴러가 아니라 로맨…….”
콰앙!
배우 1팀 팀장이 사무실을 문을 거칠게 열고 들어왔다. 거칠게 숨을 내쉬고 얼굴이 잔뜩 붉어져 있었다. 어디서부터 뛰어왔는지 얼굴이 땀범벅이었다.
흥건한 땀을 닦지도 않는 팀장의 시선이 직원들의 얼굴을 맴돌다 섭외 전화를 받은 직원에게로 향했다. 막 신입에게 대답해 주려던 직원이 심상치 않은 팀장의 분위기에 몸을 굳혔다.
성큼성큼 직원 앞으로 걸어온 팀장이 입을 열었다.
“MBS에서 섭외 온 거 스릴러였어? 로맨스였어?!”
팀장의 말에 사무실 안에 있던 직원들의 시선이 신입에게로 향했다. 희미했던 직원의 대답을 들은 신입의 안색이 새하얗게 질렸다.
직원이 확연하게 변하는 신입의 얼굴에 뭔가 일이 터졌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로맨스는 아니지?”
로맨스가 아니라 스릴러라면 아쉽긴 하지만 그럭저럭 넘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로맨스라면? 회사에 천금 같은 기회를 놓쳤다는 사실이 알려질 수도 있었다.
“잠깐. 아니지. 로맨스여야 하나?”
로맨스라면, 아직 섭외가 끝나지 않았다면 기회는 아직 남아 있을 수도 있었다.
팀장의 마음이 오락가락했다.
직원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로맨스였는데…….”
“뭐!? 빨리 전화! 전화 걸어!”
“누, 누구한테 걸까요?”
“MBS! 전화 온 조연출한테 걸라고!!”
팀장과 직원이 전화를 걸고 있을 때, 직원들이 신입에게로 몰려들었다.
“무슨 일이야?”
“뭐 때문인지 알지?”
“그게…….”
갑자기 집중된 관심에 신입이 침을 꼴깍 삼켰다.
“이서준 배우가 MBS 특별기획에 출연한대요. 로맨스 작품이요. 게다가 4부작에서 6부작으로 늘었대요.”
“……세상에!”
그 정도 급의 배우가?
직원들의 시선이 팀장에게로 향했다. 초조해진 팀장이 소리를 질렀다.
“왜 이렇게 전화를 안 받아!”
* * *
“벌써 올라오기 시작하네!”
“역시 화력 자체가 달라.”
“과거 기사까지 조회 수 엄청 올라가고 있어요.”
MBS 드라마국에 있던 직원들의 휴대폰이 울리는 것처럼 조연출 김단비와 최현우의 휴대폰도 울리기 시작했다. 특히, 두 사람이 직접 섭외 전화를 돌린 탓에 쏟아지는 메일과 문자도 상당했다.
휴대폰 화면에 뜬 이름에 김단비와 최현우의 입꼬리가 한쪽만 씨익 올라갔다.
“넌 어디야?”
“김태인 소속사. 넌?”
“임예윤 소속사.”
둘 다 출연을 제안했던 배우였다. 물론 MBS에 하는 4부작 드라마라는 소리에 거절했지만 말이다. 시선이 마주친 김단비와 최현우는 어깨를 으쓱이며 전화를 받았다.
“네. 여보세요.”
“예. 무슨 일이십니까.”
마음 같아서는 받고 싶지도 않았지만, 드라마를 이번 한 번만 찍을 것도 아니고, 드라마에서 빠질 수 없는 배우 소속사와 척져서는 좋을 게 없었다.
“아, 네. 진짜 나옵니다. 아, 그때는 아직 확정된 게 아니라서 말씀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게 어쩌죠? 출연하지 않으신다고 해서 벌써 다른 배우랑 계약했는데…….”
전화를 받으며 김단비와 최현우가 자신의 자리에 앉아 인터넷 반응을 확인했다. 사이트에 들어가자 가장 위에 뜬 기사가 보였다.
[MBS 특별기획 드라마, 배우 이서준 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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