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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279화 (279/1,055)

0살부터 슈퍼스타 279화

MBS가 하루 종일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상황에서 홀로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있었다. 드라마 작가, 유청아가 콧노래를 부르며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었다.

“히히.”

웃음소리가 입 주위를 떠나지 않았다. 잠시 작업실에 들른 소은진 작가가 실실 웃고 있는 유청아 작가를 보며 피식 웃고 말았다.

“그렇게 재미있어?”

“어, 작가님! 언제 오셨어요?”

“나 노크했다?”

유청아 작가가 볼을 긁적였다. 얼마 전에도 이런 적이 있는 것 같은데…… 소은진 작가도 그걸 알아차렸는지 충고했다.

“작업할 때 집중하는 건 좋은 점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가끔 주위를 살펴봐. 무슨 사고가 일어날지 모르니까 말이야.”

“넵!”

유청아 작가가 씩씩하게 대답했다.

“작업은 잘돼 가?”

“네. 점심때 피디님에게서 연락이 왔거든요. 더 연장할 수 없냐면서요. 그래서 시놉시스 다시 만들고 있었어요.”

“좋네.”

시청자들의 반응이 좋은 작품은 방송국 쪽에서 연장방송을 바라고는 했다.

‘물론 이번엔 서준이 덕분이겠지만.’

작게 웃은 소은진 작가가 유청아 작가에게 물었다.

“얼마나 늘리려고?”

“단막극을 4부작으로 바꾸면서 들어냈던 부분이 있거든요. 그걸 넣으면 좀 더 길어질 것 같아요.”

“방송국에서 좋아하겠네.”

지금 그 방송국이 난리가 난 것을 모르는 소은진 작가와 유청아 작가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생글생글 웃고 있던 유청아 작가의 얼굴이 금세 시무룩해졌다.

“근데 이서준 배우가 어떻게 반응할지 모르겠어요.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는데…….”

“그래서 안 쓸 거야?”

“아뇨! 그래도 일단 써보려고요. 공 피디님도 안 되면 그냥 4부작으로 찍자고 했으니까요. 이렇게 간 보듯 해도 되는지는 모르겠지만요.”

“좋은 방법인 것 같은데? 드라마 촬영 시작하고 나서 늘리는 것보다는 지금 확실하게 정하는 게 낫지. 게다가 서준이가 작품 욕심이 있어서 연장한 시놉시스가 4부작보다 좋으면 흔쾌히 찍자고 할걸.”

“정말요?”

눈을 빛내는 유청아의 모습에 소은진 작가가 웃으며 말했다.

“서준이가 나 진이라는 예명을 쓰는 이유가 뭐겠어. 그런 예명까지 쓰면서도 어린이 연극 봄, 한 걸음을 하고 싶었다는 거잖아. 연극 거울처럼 하고 싶은 작품은 자신이 만들어내기도 하고. 연기하고 싶다고 그렇게까지 하는 배우는 드물지.”

소은진 작가는 내의원 때도, 거울 때도 있는 힘껏 연기했던 배우를 떠올렸다.

“서준이, 아니, 이서준 배우는 그냥 연기 잘하는 배우가 아니라 작품 욕심이 있는 무서운 배우야. 그런 배우가 네 대본이 마음에 들었다는 거니까 열심히 해.”

“넵!”

부담감과 함께 자신감까지 얻은 유청아 작가가 키보드를 연신 두드렸다. 어쩐지 술술 써지는 것 같았다. 그런 유청아 작가를 바라보던 소은진 작가가 부드럽게 웃고는 작업실을 떠났다.

그렇게 얼마간 시간이 지나고 유청아 작가가 키보드에서 손을 뗐다.

“완성!”

그리고 바로 휴대폰을 들었다.

<공 피디님!

<분량 늘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시놉시스 다시 썼는데 코코아엔터에 보내볼까요?

아직 오후 5시 12분.

어제까지는 10초도 안 돼 사라지던 표시가 몇 분이 지나도록 사라지지 않았다. 유청아 작가가 고개를 갸웃했다. 굳었던 몸을 스트레칭하고 커피를 한 잔 마시고 나서야 공희찬 피디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공희찬 : 아, 작가님.

>공희찬 : 답장 늦어서 죄송합니다.

>공희찬 : 저한테 먼저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 * *

“실례했습니다.”

유청아 작가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돌아온 공희찬 피디가 바짝 긴장한 모습으로 의자에 앉았다. 공희찬 피디의 옆에 앉아 있던 CP가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박규민 피디는 이번 기획에서 빠지게 됐습니다.”

“저희 때문입니까?”

이번 기획이란 건 박규민 피디의 입봉을 말하는 거였다. 입봉을 못하게 됐다니, 예상보다 높은 징계에 안다호가 미간을 찌푸렸다. 박규민 피디가 징계를 받기를 원했지만, 그것도 적당해야 했다. 과한 징계는 오히려 서준에게 나쁜 영향을 줄 수도 있었다.

‘박규민 피디가 언론에 손을 쓸 수도 있고.’

심각해진 안다호의 표정에 CP가 얼른 손을 저었다.

“아뇨! 다른 문제까지 고려해 내려진 징계입니다. 외부에 밝힐 수는 없습니다만…… 이서준 배우 때문은 절대 아닙니다. 걱정하시는 일 없으실 겁니다. 박규민 피디도 허튼짓은 못할 겁니다.”

그 어느 것보다 확실한 증거인 녹음본이 있으니 박규민 피디도 어떻게 할 수는 없으리라. 공희찬 피디도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CP의 말에 동의했다.

날카로운 눈빛으로 CP와 공희찬 피디의 표정을 살피던 안다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방송국 내부의 일인 듯 더 물어봐도 말해줄 것 같지도 않았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이번 일은 정말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CP님과 공 피디님이 사과할 일은 아니죠. 두 분 다 모르고 있었고 말입니다.”

안다호의 말에 CP와 공희찬 피디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다른 4부작은 누가 연출하게 됩니까? 스릴러라고 들었는데…….”

자신이 궁금했다기보다는 서준이 궁금해할 것 같았다. 안다호의 물음에 김진명 CP가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제가 하게 됐습니다.”

CP가 된 후로는 직접 연출한 적이 없었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그가 할 수밖에 없었다. 어수선할 촬영장 분위기를 잡기엔 입봉 피디에겐 버거운 일이었고, 작품의 주인인 공희찬 피디에게 맡기기엔 가제 ‘봄’이 있어서 무리였다.

“김진명 CP님이라면 좋은 작품이 나오겠네요.”

“감사합니다.”

CP와 공희찬 피디를 번갈아 보던 안다호가 입을 열었다.

“저희도 너무 급하게 출연 거부를 결정 내린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드라마 출연 결정을 내린 지 하루도 안 돼, 회사로 다른 작품 피디님이 찾아오질 않나, 자신으로 교체해 달라고 말하질 않나. 이런 일을 겪은 건 처음이라 잠시 흥분한 것 같습니다.”

안다호의 한 마디 한 마디에 CP와 공희찬 피디가 움찔움찔 떨었다. 목소리도 부드럽고 웃고 있는 얼굴인데 왜 이렇게 심장이 아픈지 모르겠다.

“……죄송합니다.”

“그래도 이번엔 공희찬 피디님이 확실하게 맡는다고 하시니, 드라마 출연 건은 배우와 한 번 더 곰곰이 생각해 보고 알려드리겠습니다.”

바닥 끝까지 쭈그러들던 CP와 공희찬 피디가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저 말 속에서 희망을 봤다면 착각인가.

“그럼……!”

“물론 확정은 아닙니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공희찬 피디가 환하게 웃었다. CP도 입꼬리를 씰룩거리며 속으로 환호성을 내지르고 있을 때, 안다호가 미소를 띤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런데 24부작 이야기는 무슨 이야기신지? 박규민 피디님의 독단적인 의견이었습니까, 아니면…… MBS의 의견입니까?”

“……!”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게 이런 느낌일까, 찔리는 게 있는 CP와 공희찬 피디는 다시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쭈그러들었다.

* * *

“그래서 유청아 작가님이 새로 적고 있으시대.”

“지금요?”

“응. 시놉시스는 다 적었다는데. 어떻게 할까? 보내달라고 해?”

남은 포토 카드는 내일 이어서 사인하기로 하고 연습실에서 연기 연습을 하고 있던 서준이 CP와 공희찬 피디를 만나고 온 안다호의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얼마나 늘리셨대요?”

“6부작. 2화 늘렸대.”

“음. 그 정도면 내용도 확 바뀐 건 아닌 것 같은데…… 읽어봐도 돼요?”

“당연하지.”

안다호가 휴대폰을 두드리며 연습실 내부에 설치된 프린트기로 향했다. 곧바로 안다호의 휴대폰이 진동하고 안다호가 몇 번 휴대폰을 터치하니 프린트기가 작동했다.

“답은 언제까지 하면 되요?”

“적어도 4일 안에는 해달라고 하네. 빠르면 빠를수록 좋고. MBS도 이래저래 바쁜 모양이야.”

“그렇구나.”

안다호가 프린트기에서 빠져나오는 종이들을 하나로 모으며 물었다.

“시놉시스 여기서 읽고 갈래? 아니면 집에 가서 읽을래?”

“오늘 형들이랑 저녁 먹기로 했어요. 저번에 내기했거든요.”

“내기?”

“네. 이기는 사람이 메뉴 정하는 거였는데 제가 이겼어요. 한식 먹으러 갈 거예요.”

서준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형들 올 때까지 여기서 읽고 있을게요.”

“그래. 필요하면 부르고.”

“네.”

프린트기가 멈추고 안다호는 시놉시스를 모아 서준에게 건네주었다. 서준이 눈을 반짝이며 의자에 앉아 시놉시스를 읽는 동안 안다호는 연습실을 나와 2팀 사무실로 향했다.

박규민 피디가 왔던 점심때부터 2팀 사무실은 전쟁터 같았다. 최대한 인맥을 동원해 박규민 피디의 정보를 알아냈다. 기진맥진한 2팀 직원들을 보며 안다호가 웃었다.

“오늘 모두 고생 많았습니다.”

“안 팀장님 오셨어요? 어째 서준이 작품 공개 후보다 더 힘든 것 같아요.”

“그땐 우리가 받아주는 위치였던 데다가 거의 좋은 소식만 있었잖아요. 이번에는 우리가 묻는 위치였고 좋은 일도 아니니까요.”

한 직원의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좋게 끝났으니 다행이네요.”

“근데 갑자기 피디 교체라니. 무슨 일일까요?”

직원의 의문에 안다호가 굳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내일부터는 그걸 알아내야 합니다. 아무래도 좋은 일은 아니니까 서준이랑 엮이기 전에 자료라도 모아둬야 할 것 같습니다. MBS에서는 괜찮다고 말했지만, 그것만 믿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죠.”

“그러네요.”

없던 일도 생기는 연예계의 상황을 잘 알고 있는 직원들이 안다호의 말에 비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퇴근합시다.”

안다호의 말에 2팀 직원들이 활짝 웃었다.

* * *

이틀 후.

박규민 피디는 근신에 들어갔고 MBS 드라마국은 살얼음 위를 걷는 것처럼 위태위태했다. 박규민 피디 탓은 아니었고 먹이를 노리는 한 마리의 사자처럼 사무실을 어슬렁대는 드라마국 국장 때문이었다.

“연락 왔어?”

“아뇨. 아직 안 왔습니다.”

CP와 공희찬 피디에게서 코코아엔터에서의 대화를 들은 국장은 하루하루 지옥과 천국을 오가며 국장실이 아닌 공희찬 피디의 근처를 맴돌았다. 그런 상황에 사무실에 머무는 직원들의 스트레스가 쌓여갔다. 일부러 사무실에 나타나지 않는 직원들도 있었다.

“연락 왔어?”

“……아뇨, 아직…….”

“국장님. 바로 알려드릴 테니까 국장실에 가 계십시오. 10분에 한 번씩 물어보면 공피디가 일을 못 하잖습니까.”

CP의 말에 국장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뒤를 돌아 국장실로 향했다. 공희찬 피디의 전화가 울리지 않았다면 말이다.

이틀 동안 공희찬 피디의 휴대폰이 고장 난 건 아닌지 여러 번 전화를 걸어봐서 익숙해진 벨소리였다. 국장실로 돌아가려던 국장과 국장을 이끌던 김진명 CP, 사무실에 있던 직원들까지 모두 화들짝 놀라 공희찬을 바라보았다.

공희찬 피디가 침을 꼴깍 삼키고 휴대폰 화면을 보았다. 환희에 찬 공희찬의 얼굴에 모두 짐작했다.

코코아엔터다!

국장이 빠르게 손짓했다. 받아, 빨리 받으라고!

공희찬 피디가 전화를 받았다.

“네.”

“네네.”

대답만 하는 공희찬 피디의 모습에 모두 숨을 죽였다. 무어라 말하려는 김단비의 입을 최현우가 막았다.

‘감이 좋든 나쁘든 입 다물어.’

‘죄송.’

눈을 번뜩이는 최현우의 모습에 김단비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알겠습니다.”

전화가 끊기자, 국장이 얼른 다가와 물었다.

“코코아엔터에서 뭐래?”

“……이서준 배우 출연한답니다. 6부작으로!”

공희찬 피디의 말에 MBS 드라마국이 폭발했,

“아무도 이 기획 건드리지 마. 손도 대지 마!”

국장의 포효에 환호성을 지르려던 드라마국 사무실이 쥐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최현우와 김단비가 만세 삼창을 하려고 쭉 뻗었던 팔을 주섬주섬 집어넣었다.

“PPL이든 투자든! 지인 찬스든 끼워넣기든! 털끝 하나 끼어들었다가는 회사생활 힘들어질 거 각오해.”

한 번 상처 입은 국장이 제 새끼를 보호하는 사자처럼 으르렁댔다.

피디 교체까지는 아니더라도 입봉 피디, 입봉 작가의 작품이니만큼 어떻게 한 번 발을 들이밀어 보려던 사람들이 숨을 죽이고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공희찬.”

“넵!”

살벌한 분위기에 처음 입사했을 때처럼 잔뜩 기합이 들어간 공희찬 피디가 국장의 부름에 대답했다.

“잘 만들어 봐.”

“……예!”

돌고 돌아, 드디어 입봉작을 만들 수 있게 된 공희찬 피디가 환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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