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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276화 (276/1,055)

0살부터 슈퍼스타 276화

다음 날.

MBS 드라마국.

회의 중 잠시 전화를 받으러 나왔던 4부작 드라마의 책임자인 CP가 사무실에 들른 공희찬 피디를 발견했다.

“공희찬!”

자신의 자리에서 서류를 찾고 있던 공희찬 피디가 고개를 들었다.

“잠깐 이야기 좀 하자.”

“예.”

CP와 공희찬 피디가 자판기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캔커피 하나를 공희찬 피디에게 건네주려던 CP의 시선이 공희찬 피디의 손으로 향했다.

공희찬 피디의 손에는 배우들의 사진이 가득했다. CP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4부작 드라마는커녕 제작비가 빵빵한 드라마에도 섭외하기 힘든 배우들도 보였기 때문이었다.

고개를 갸웃하던 CP가 이내 어깨를 으쓱이고는 본론부터 말했다. 회의 중간에 나와서 어서 빨리 들어가 봐야 했다.

“대본은 잘 구해왔어. 소은진 작가 보조작가니 잘하겠지. 이야기도 좋더라. 민규가 스릴러고 희찬이 네가 로맨스니 지루하지도 않을 거고.”

“예.”

알아서 잘하는 두 조연출, 아니, 두 피디의 모습에 CP는 뿌듯해졌다.

“근데 배우는? 촬영장은 구했어? 스태프들은? 민규는 내일부터 촬영 들어가는데…… 너 빨리 안 하면 촬영 못 한다? 좋은 스태프들은 전부 오영철 작가 드라마에 들어갈 수도 있어.”

CP의 걱정에 공희찬 피디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영원히 숨길 수도 없는 일이고 이서준과 계약을 하려면 윗사람들도 알아야 했다.

“안 그래도 말씀드리려고 했습니다.”

공희찬 피디가 활짝 웃자 CP가 눈을 깜빡였다. 공희찬이 웃는 상이라 웃는 얼굴은 자주 봤지만 이렇게 환하게 웃는 건 처음인 것 같았다.

“음. 중간에 그만두는 건 안돼.”

CP의 농담에 실실 웃던 공희찬 피디가 CP의 말에 웃으며 무어라 말했다.

CP의 눈이 천천히 커졌다. 움직임을 멈춘 CP의 손에 있던 캔커피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다행히 텅 빈 캔이라 커피가 쏟아지지는 않았다. 대신 CP의 어이가 탈출한 것 같았다.

“너…… 너…… 너……!”

공희찬 피디를 가리키는 CP의 검지손가락이 부들부들 떨렸다. 말도 제대로 잇지 못하고 있었다.

“……이 미친놈!”

타박하는 말과는 달리 CP의 얼굴이 환희로 가득 찼다.

* * *

쾅!

“국장님!”

커다란 소리와 함께 회의실의 문이 열렸다.

오영철 작가의 드라마에 사활을 걸고 티켓파워가 있는 배우들을 찾기 위해 한참 회의를 하고 있던 드라마국 국장과 CP들이 인상을 쓰고 문 쪽을 바라보았다. 4부작의 CP가 거기 서 있었다.

“전화 받으러 간 거 아니었어? 왜? 무슨 일인데?”

“큰일 아니면 나중에 해. 오 작가 드라마 배우들 섭외가 먼저야.”

“그게 문제가 아닙니다.”

CP의 떨리는 목소리에 다들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공희찬이! 우리 공희찬 피디가!”

“숨넘어가겠다. 빨리 말 안 해?”

질질 끄는 CP에 국장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서준 배우를 섭외했답니다!”

CP의 말에 회의실에 무거운 침묵이 깔렸다.

이해가 되지 않는 듯 국장과 CP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아니, 여기서 갑자기 이서준이 왜 나와? 라는 생각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갑자기 왜 여기서 이서준이 나오는 건데?”

“그 이서준 배우가 우리가 아는 그 배우 맞아?”

쏟아지는 질문에 CP의 뒤에 서 있던 공희찬 피디가 대답했다.

“네. 할리우드 배우 이서준 맞습니다. 아직 계약서는 못 썼는데 출연 확답은 받았습니다.”

공희찬 피디의 말에 회의실이 폭발했다.

* * *

“으하하하. 시청률은 걱정 안 해도 되겠어!”

급하다던 오영철 작가의 드라마 캐스팅도 뒤로 물린 채 국장과 CP들은 반색하며 떠들었다.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지질 않았다. 떠들썩한 사람들 사이로 공희찬 피디와 CP도 자리에 앉았다.

“그러게 말입니다! 이서준이라면 시청률은 보장되죠!”

“이렇게 갑자기 이서준이라니……! 어떻게든 살아날 방법이 있네요!”

“홍보! 홍보 어떻게 하죠?”

한 CP의 말에 모두 정신을 차렸다.

그 이서준이 나온다는데, 홍보를 대충 할 수는 없었다.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시청자들을 끌어모을 기회였다.

“그래. 홍보! 우리가 들고 있는 이서준 작품이 뭐가 있지?”

국장의 말에 CP들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가 1초도 안 돼 우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골든글로브 시상식하고 인터뷰가 있습니다.”

너무 없어서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하…….”

빈약한 상태에 국장은 할 말을 잃었다. 하지만 곧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그래. 이렇게 새로 생기게 됐는데 과거야 상관없지.”

“맞습니다! 이서준 배우 작품이라면 시청률은 보장되는 데다가 이서준 배우가 화제가 될 때면 계속 재방송으로 내보낼 수 있으니 출연료가 얼마가 됐던 꼭 잡아야 합니다!”

그 말에 국장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4부작의 CP가 웃으며 말했다.

“게다가 내의원 이후 드라마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벌써 7년이나 지났거든요.”

7년 만의 드라마 출연!

국장과 CP들의 얼굴이 헤벌쭉해졌다.

얼굴에서 미소가 떠나질 않아 입꼬리가 아플 지경이었지만 그래도 좋았다. 잔뜩 흥분한 얼굴로 국장이 말했다.

“이서준이라. 회당 얼마를 줘야 하지?”

“탑급. 탑급 이상은 줘야 하지 않을까요?”

“맞습니다. 드라마는 7년 만이긴 하지만 영화 쪽에서 쌓은 이력도 있고요.”

“그렇게 줘도 광고비는 그 이상으로 나올 겁니다.”

“그래. 12주나 방영될 걸 생각해 보면 넉넉하게 줘도 남을 거야.”

“그렇죠!”

들뜬 국장과 CP들의 모습에 4부작의 CP와 공희찬 피디가 서로 마주 보다가 어색하게 웃었다. CP는 가볍게 한숨을 쉬며, 배우 이서준의 24회 출연료와 광고비를 계산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찬물을 끼얹졌다.

“국장님. 이거 4부작입니다. 그것도 일주일에 하루 방송되고요.”

청천벽력같은 소리에 회의실이 무거운 침묵에 잠겼다.

다시 한번 회의실이 폭발했다. 이번엔 나쁜 쪽이었다.

CP들이 절규했다.

“이서준이 나오는데 4부작? 겨우 4부작이라고?”

“24부작으로도 모자라서 50부작으로 만들고 싶은데 4부작?!”

“그것도 일주일에 한 번이라니!”

“재방송을 해도 내의원하고는 비교도 안 되잖아.”

“KBC처럼 스페셜 방송 만들고 싶었는데!”

KBC가 내의원 플러스로 광고비는 물론 시청률까지 챙긴 것을 떠올리며 이런저런 방송을 구상하던 CP가 절규했다.

그 말에 공희찬 피디가 볼을 긁적이며 말했다.

“저희 드라마 로맨스라서 그렇게 내보낼 것도 없을 겁니다.”

“이서준의 첫 로맨스라서 좋긴 한데…… 아니, 왜 4부작이야!”

“누구야! 누가 이딴 기획을 했어!”

국장의 말에 회의실 안에 있던 모두가 국장을 바라보았다. 4부작의 CP가 다시 한번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이 기획이 아니었으면 이서준 배우가 출연하지 않았겠죠.”

“……그렇겠지.”

국장과 CP들이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이서준이 출연하는 건 기쁜데 왜 정말로 기뻐할 수는 없는 걸까.

“적어도 16부작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불안한 듯 다리를 달달 떨고 있던 국장이 고개를 들어 공희찬 피디를 불렀다.

“공 피디.”

“예?”

두 사람의 대화에 낙담하고 있던 CP들도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게 힘들었는지 그 몇 분 사이 많이 초췌해졌다. 국장이 심각한 얼굴로 물었다.

“그거 못 늘리나?”

국장의 말에 CP들이 눈을 빛냈다.

“그래! 늘리자. 단막극에서 4부작으로 늘렸댔지? 그럼 아예 24부작으로 늘리자!”

공희찬 피디가 입을 열기도 전에 CP들이 경쟁하듯 말했다.

“24부작이 안 되면 16부작이라도!”

“그 작가가 누구라고 했지?”

“소은진 작가 보조작가요.”

“그러면 16부작 정도로 늘릴 수 있지 않을까? 소은진 작가도 장편 많이 해봤잖아.”

“그러게요. 소은진 작가가 돕는다면 더 늘어나지 않을까요?”

“근데 그거 늘리면 이서준 배우가 출연할까요?”

한 CP의 말에 모두 침묵에 잠겼다.

“……안 할까?”

“잘 모르겠습니다. 이서준 배우가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를 모르니까요. 약간의 수정…… 4부작을 16부작으로 늘리는 게 약간이라고 할지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약간의 수정은 허용할 정도로 이 작품이 마음에 들었다면 출연하겠지만, 지금의 작품이 좋은 거라면 안 하겠죠.”

“으음.”

맞는 말에 국장과 CP들이 끄응 앓았다.

“24부작은 너무 길고…… 8부작 정도라면 가능하지 않을까요? 안 되면 6부작이라도요.”

누군가의 말에 국장이 공희찬 피디를 불렀다.

“공희찬.”

“네.”

“일단 작가한테 말해서 대본을 어느 정도 늘릴 수 있는지 물어봐. 지금의 완성도를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양을 늘릴 수 있게 말이야. 5부작도 괜찮고 6부작도 괜찮아.”

국장이 공희찬 피디의 어깨를 붙잡았다.

“최대한 늘려.”

“아.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수정된 걸 이서준 배우한테 가져가. 그래도 싫다고 하면 그냥, 그냥…….”

국장이 눈물을 삼켰다.

“4부작으로 간다.”

크흡.

황금 거위의 발끝만 보게 된 MBS 드라마국 회의실이 눈물을 삼키는 소리로 가득 찼다.

* * *

그렇게 갑자기 열린 회의는 끝나는 것처럼 보였다. 4부작의 CP가 아니었다면 말이다.

“근데 이서준은 무슨 역이야?”

어느새 공희찬 피디가 제출한 시놉시스를 찾아온 CP가 팔랑팔랑 종이를 넘기며 살펴보고 있었다. 공희찬에게서 이서준이 출연한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그게 무슨 역인지는 아직 듣지 못한 것이었다.

두 번째 장에 적힌 배역 옆의 배우 이름은 아직 텅 비어 있었다.

“남자주인공을 맡기엔 나이가 너무 어리고. 딱히 할 역할은 없어 보이는데?”

“분장하려고? 할리우드 분장팀까진 못 불러줘도 스탐이나 도화원은 부를 수 있어.”

“아뇨. 거기 남자주인공 아역을 연기할 겁니다.”

“아…… 남자주인공 이름이 아역이야? 특이한데?”

어째 김단비와 최현우처럼 한 번에 이해하지 못하는 국장과 CP들의 모습에 공희찬 피디가 볼을 긁적였다.

“아뇨. 남자 주인공 어렸을 때를 연기한다고요. 고등학생 때 말입니다.”

“……!”

공희찬 피디의 말에 회의실은 다시 경악으로 가득 찼다.

“이서준을 섭외해 놓고 아역?! 아역이라고?!”

“다른 역 다 놔두고 아역이 뭐야?!”

“분량 봐! 아역 분량 보라고!”

난리가 난 회의실 바깥으로 소리가 퍼져 나갔다.

방음이 잘 안 되는 탓인지 아니면 목소리가 너무 컸는지 대충 내용을 알 수 있었다. 회의실 바깥에 있던 조연출들과 피디들도 상상도 못 한 소식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 * *

코코아엔터.

배우 이서준 연습실.

포토카드를 정리하던 안다호가 자신의 앞에 앉아 포토카드에 사인을 하던 서준에게 물었다.

“서준아, 어제 유성우 어땠어?”

“엄청 예뻤어요. 진짜 비처럼 쏟아지던데요. 빛나는 게 꼭 불꽃놀이 같기도 했어요.”

어젯밤 유성우는 정말 빛의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하나하나 선명하게 빛나면서 떨어지는 별똥별들에 휴대폰이나 카메라로 촬영하고 있던 사람들마저 자신들도 모르게 감탄했다.

“네가 보내준 사진으로 봐도 대단하던데? 그것보다 더 멋졌어?”

“네. 진짜로 보면 더 대단해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서준은 포토카드에 사인하던 손을 멈추지 않았다. 또 하나의 포토카드 오른쪽 아래에 서준의 사인이 그려졌다.

포토카드의 사진들은 지금까지 부부와 안다호가 찍은 것들이었다.

쉐도우맨을 찍던 어렸던 서준의 모습, 곤룡포를 입고 패딩을 입은 모습, 진지한 얼굴로 배우들과 이야기하는 모습, 팬들에게서 받은 푸드트럭의 음식을 먹는 모습.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모습, 양궁을 연습하는 모습, 대본 리딩을 하는 모습, 팬들의 편지를 읽으며 환하게 웃는 모습 등.

아직 몰입하지 않아 ‘캐릭터’가 아닌 ‘이서준’의 모습이 보이는,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는 볼 수 없었던 서준의 사진들이었다.

“팬미팅도 오랜만이지?”

“네.”

서준이 빙그레 웃었다.

브라운블랙 15주년 콘서트를 보고 서준도 팬들을 만나고 싶어졌다. 갑작스러운 배우의 부탁에 매니저도, 소속사도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 난리 나겠는데. 드라마에 팬미팅까지 하다니 말이야.”

“아, 다호 형. 팬미팅 때 연극해도 되요? 거울요. 친구들도 괜찮다고 했어요.”

“좋지. 거울은 배경이 단순해서 이것저것 설치할 필요도 없잖아.”

“조명만 약간 신경 쓰면 될 것 같아요. 그리고 브블 형들이 노래 연습 도와준다고 했거든요. 노래도 부르고 바이올린도 연주할까 싶어요.”

“오.”

연극에 노래에 바이올린까지.

이 소식에 뒤집힐 새싹부터를 떠올리던 안다호는 어쩌면 외국 팬들도 올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때, 노크 소리가 들렸다.

사인하던 서준의 손이 멈추고 안다호가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었다.

코코아엔터 직원이었다.

“저 MBS 피디님이 안 팀장님을 만나고 싶다고 하는데 어떻게 할까요?”

“MBS?”

안다호와 서준이 눈을 끔벅거렸다.

“아, 공희찬 피디님이신가?”

“그러게. 어제 알려줬는데 벌써 계약하러 오셨나? 빠르시네.”

서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안다호가 고개를 돌려 직원을 바라보았다. 슈퍼스타와 매니저의 대화에 조용히 눈만 깜빡이던 직원이 고개를 저었다.

“어. 아니에요.”

“네?”

“박규민 피디님이시라던데요.”

박규민 피디?

처음 듣는 이름에 서준과 안다호가 고개를 갸웃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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