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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274화 (274/1,055)

0살부터 슈퍼스타 274화

솔직히 말하자면, 유청아 작가도 공희찬 피디도 이서준의 섭외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저 이 배역을 가장 잘 소화해 줄 배우에 이서준이 떠올랐을 뿐.

미소를 띤 유청아 작가가 어깨를 으쓱였다.

“일단 시놉시스가 완성되는 대로 코코아엔터에 보낼 생각이긴 해요. 진짜 될 리는 없겠죠. 난이도는 하늘의 별 따기 정도?”

“슈퍼스타 이서준이라, 진짜 별을 따는 거네요.”

공희찬 피디도 마주 보고 웃었다. 반쯤 진심, 반쯤 농담으로 제법 편안해진 분위기에 공희찬 피디가 입을 열었다.

“그럼 2안도 준비해 두죠.”

2안이라고는 말하지만, 사실이게 원래 계획이었다. 이서준 배우가 출연할 1안이 채택될 확률은 0.0001%. 2안이 채택될 확률은 99.9999%니까. 웃음기 가득하던 유청아 작가도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배역들은 괜찮은데 남자주인공 아역배우는 오디션으로 뽑을까요?”

“오디션은 시간이 걸리지 않겠습니까. 후보 배우들에게만 제안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렇네요. 그럼 후보를 뽑아볼까요? 떠오르는 아역 배우 있으세요?”

유청아 작가와 공희찬 피디는 호흡이 잘 맞았다. 유청아 작가가 눈을 반짝였다. 소은진 작가와 최민성 피디의 작업방식을 바로 옆에서 보고 있어서 지금 두 사람이 얼마나 잘 맞는지 알 수 있었다.

‘어쩌면 작가님과 피디님처럼 멋진 콤비가 될지도 모르겠네!’

유청아 작가가 환하게 웃었다.

* * *

이틀 후.

소은진 작가의 작업실.

다른 장소보다 익숙해서 유청아 작가는 이곳에서 작업하기로 했다. 그리고 조금 전 시놉시스를 완성했다.

>공희찬 : 좋네요!

>공희찬 : 바로 보내셔도 될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공희찬 피디의 오케이에 유청아 작가는 환하게 웃으며 코코아엔터 2팀으로 시놉시스를 보냈다. 보내기 버튼을 누르는 유청아 작가를 보던 소은진 작가는 유청아 작가와 공희찬 피디의 패기에 감탄했다.

“너도 대단한데, 그 피디님도 장난 아니네.”

그 말에 유청아가 환하게 웃었다.

“공 피디님하고 마음이 잘 맞는 것 같아요. 시놉시스 작업도 술술 되고. 대본도 빨리 쓸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도 플랜 B도 준비해 둬. 서준이가 섭외될 가능성은 엄청 적으니까.”

유청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공 피디님하고도 이야기 나눴어요. 이서준 배우 섭외하는 건 하늘의 별 따기 정도의 확률이니까, 지금부터 일주일 동안 답이 없으면 바로 아역 배우들한테 제안 보내려고요.”

코코아엔터의 답변을 기다리는 일주일 동안, 섭외가 끝나면 바로 촬영에 들어갈 수 있게 완벽하게 준비를 마칠 생각이었다.

하늘의 별.

유청아의 비유에 고개를 끄덕이던 소은진 작가가 말했다.

“하긴 겨울 방학이라 아역 배우는 금방 구하겠네.”

“그렇죠? 남주랑 아역 배우 이미지도 비슷해야 해서 후보를 많이 찾아뒀어요.”

이제 제법 드라마 작가 같은 유청아의 모습에 소은진 작가가 미소를 지었다.

* * *

코코아엔터 2팀 사무실은 언제나 그렇듯 밀려드는 시놉시스, 대본, 출연 제안에 떠들썩했다. 연극 거울과 졸업식 공연의 여파는 여전했다.

2팀 직원들은 익숙하게 무슨무슨 협회에서 온 재능 기부 메일을 삭제하고 파일 형식으로 보내온 시놉시스와 대본을 프린트하고 전화로 온 섭외 제안을 목록에 적어넣었다. 그렇게 한바탕 일이 끝나면 다음 순서로 넘어갔다.

“이 감독 평이 안 좋던데요.”

“아, 저도 들었어요. 배우 엄청 혹사한다고.”

“시나리오 작가만 아깝게 됐죠.”

그렇게 한 작품이 탈락하고.

“이거 괜찮지 않아요?”

“감독, 작가 평 좋고 제작사도 괜찮네요.”

“대본도 꽤 재미있어요.”

그렇게 한 작품이 서준의 대본 상자에 들어갔다.

“이건……?”

새로운 시놉시스를 넘겨보던 직원이 손을 멈추었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앞장을 훑고 뒷장을 훑고 대본을 한바탕 읽고 다시 앞쪽의 감독과 작가, 방송사를 확인했다.

이 일을 계속하다 보니 웬만한 배우들과 관계자들보다 많은 감독들과 작가들을 알고 있는데 처음 보는 이름이었다.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서준의 이름값을 노려 초짜 감독, 작가들도 자신의 작품을 보내기도 했으니까.

다음 직원에게 넘겨줘야 하는데 계속 붙들고 있는 직원에 다른 사람들이 하나둘 관심을 가졌다. 마지막으로 작품들을 검토하던 안다호도 고개를 들었다.

“그거 뭐예요?”

“할리우드? 할리우드에서 왔어요?”

가끔 할리우드에서 대본이 오면 2팀은 떠들썩해졌다.

한국 작품을 찍는 것보다 영향력이 어마어마해서 뒷일이 무섭긴 했지만, 자신이 서포터하는 배우가 전 세계적으로 활동하는 모습은 정말로 기뻤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결국 서준의 선택을 받지 못해 그대로 창고행이지만 말이다.

옆자리라 고개를 빼 시놉시스를 훔쳐보던 직원이 고개를 저었다.

“할리우드 대본은 아닙니다. 한국어로 적혀 있어요.”

“그럼 뭐예요?”

다들 관심을 가지니 이내 정신을 차린 직원이 시놉시스를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 팀장인 안다호까지 관심을 가지고 두 번째 페이지 위에 쓰인 글자를 읽었다.

텅텅 빈 곳 중, 단 한 곳만 이름이 채워져 있었다.

[남자주인공(아역) : 이서준]

“……헐?”

안다호와 2팀 직원들의 시선이 그곳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서준이가…… 남주 아역이요?”

“우리 서준이가 아역……!”

두 눈으로 보고 있는데도 믿기지 않았다.

“서준이가 아역 배우긴 한데. 진짜 아역이 왔네요.”

“이거 되게 오랜만 아니에요?”

“그러게 말입니다. 오버 더 레인보우 찍고 아카데미 상 받은 이후엔 아역 제안이 아예 없었는데…….”

그게 6학년 2월이었다.

새삼 초등학생 때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은(‘오버 더 레인보우’의 촬영은 5학년 때였다) 서준의 경력에 감탄하며 직원들은 손가락을 꼽았다.

“6학년 1년에, 중학교 3년이면 벌써 4년 전이네요.”

“고등학생이 코앞이라 배역이 다양해질 줄은 알았지만, 이쪽이 될 줄은 몰랐는데…….”

“저도요. 서준이를 비중이 적은 배역을 넣긴 너무 아까우니까 말이에요.”

2팀 직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작감은 누구예요?”

시놉시스를 읽고 있던 안다호가 시놉시스 앞 페이지를 몇 장을 떼어내 직원에게 넘겨주었다.

“방송사는 MBS고 작가는 유청아, 감독은 공희찬.”

드라마 정보도 적혀 있었다. 4부작 드라마라는 정보에 2팀 직원들은 할 말을 잃었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이야?”

“4부작? 4부작이라고?”

그사이 직원 하나가 MBS에 전화를 걸어 공희찬 피디에 관해 물었다.

“공희찬 피디, 있답니다.”

“진짜?”

“여기 기사도 있어요. 4월 4부작 드라마. 피디 입봉작이네요.”

댓글은커녕 조회수도 별로 없는 묻힌 기사를 또 다른 직원이 찾아냈다. 그 옆에 있던 직원은 유청아 작가에 대해 찾아보았다. 서준을 서포터하면서 물 흐르듯 움직이게 된 2팀 직원들이었다.

“유청아 작가는 기사가 아예 없습니다. 다른 작품도 없는 것 같고. 작가도 입봉작인 것 같습니다.”

작가와 피디 모두 입봉작이라는 말에 2팀 직원들이 감탄했다.

“역시 신입의 패기란…….”

“아무리 신입이라도 서준이를 아역으로 섭외할 생각을 하다니…… 작가도 감독도 대단하네요.”

시놉시스를 읽던 안다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줄거리는 괜찮네요.”

“어, 괜찮습니까? 아역인데요?”

안다호가 어깨를 으쓱였다.

“아역이든 비중이 적은 역이든 서준이가 하고 싶다고 하면 하는 거죠.”

“그러면 작가, 감독에 대해서 알아볼까요?”

“그러죠. 입봉작이긴 하지만 조연출 때 모습을 알고 있는 스태프들이나 배우들이 있을 테니까 알아보기는 쉽겠네요.”

“유청아 작가는 어떻게 할까요?”

드라마 작가라.

안다호는 알고 있는 드라마 작가 한 명을 떠올렸다.

* * *

겨울방학이 돼도 서준의 일과는 변하지 않았다.

평소보다 느긋하게 대본을 읽고 새로 나온 영화와 드라마를 보고 있으면 금세 시간이 흘러 안다호가 집에 왔다.

“어서 오세요. 다호 형.”

이제 마주 보고 서면 자신과 눈이 마주치는 서준의 모습에 안다호가 빙그레 웃었다. 이렇게 서면 정수리가 보이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이만큼 자랐다. 그래도 대본이 든 상자를 받으며 즐거워하는 서준의 모습은 그대로여서 안다호의 미소는 더욱 짙어졌다.

“밖에 눈 오던데 봤어?”

“네. 꽤 많이 내리던데요.”

거실 창문 밖으로 눈이 내리는 모습이 보였다. 새하얀 솜털 같은 눈이 내렸다. 대본 상자를 내려놓은 서준이 부엌으로 가 따뜻한 유자차를 준비했다. 안다호가 겉옷을 벗어 걸어두었다.

“올겨울은 따뜻해서 눈이 안 올 줄 알았는데 말이야.”

“뉴스 보니까 올해는 봄도 일찍 올 거 같대요.”

거실 테이블 앞에 앉은 서준과 안다호는 따뜻한 유자차를 마시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봄이 일찍 오면 올여름은 엄청 덥겠어.”

“여름 촬영은 힘들겠어요.”

기승전촬영.

이래나 저래나 연기와 촬영 생각뿐인 서준에 안다호가 웃음을 터뜨렸다.

저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내뱉은 말에 안다호가 웃자 잠시 뻘쭘한 미소를 짓던 서준도 결국 웃고 말았다.

한바탕 웃은 후, 대본 상자에서 대본과 시놉시스를 꺼내던 안다호가 입을 열었다.

“뉴스 하니까 생각난 건데. 오늘 밤에 유성우 떨어진다던데, 봤어?”

“네. 그래서 저녁에 은수랑 수빈이랑 별 보러 갈 예정이에요. 가족들도 다 같이 가기로 했어요.”

“그래? 잘 보고 와. 엄청 떨어진다더라.”

“네. 사진 멋지게 찍어서 보내드릴게요.”

“기대할게.”

안다호의 말에 서준이 환하게 웃었다.

* * *

팔랑팔랑.

평소와 다름없이 평화로운 시간이 흘러갔다.

다 읽은 시놉시스를 옆에 내려놓은 서준이 다음 시놉시스를 집어 들었다.

[가제 : 봄]

[감독 : 공희찬]

[작가 : 유청아]

[방송사 : MBS]

‘MBS. 드라마네.’

그러고 보니 드라마를 찍은 것도 엄청 오래된 것 같았다. 서준이 마지막으로 찍은 드라마를 떠올렸다. 음?

‘내의원밖에 없네?’

재수사는 카메오 촬영이었으니, 내의원이 다였다.

‘생각보다 영화를 많이 찍었네.’

볼을 긁적이던 서준이 첫 장을 넘겨 배역들 사이에서 자신의 이름을 찾았다. 그리고 한 곳을 본 서준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남자주인공(아역) : 이서준]

“남자주인공 아역이네요?”

“아. 그거 읽고 있어? 그래. 아역이더라.”

“아역 들어온 거 되게 오랜만이지 않아요?”

“그렇지. 4년 만이니까.”

“4년이나 됐구나.”

아역 제안이 들어온 건 4년 만이지만 아직 서준은 누군가의 아역을 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마음에 드는 아역이 없었지.’

예전에 왔던 작품들을 떠올리던 서준이 눈을 반짝이며 시놉시스를 읽어 내려갔다.

여자 주인공의 대사를 읽고 남자주인공의 대사를 읽고 자신이 맡을 배역의 대사를 읽었다. 시놉시스라 분량은 짧았지만, 그것만으로 서준은 이 작품이 마음에 들었다.

배우 이서준의 매니저, 안다호는 조용히 시놉시스를 읽는 배우를 바라보았다.

아역이란 사실에 서준의 얼굴에 조금 깃들었던 흥미가 점점 번져 나갔다. 반짝이는 눈빛과 이리저리 움직이는 눈썹에 안다호는 조용히 웃으며 서준의 대답을 기다렸다.

시놉시스를 다 읽은 서준이 고개를 들어 안다호를 바라보았다. 안다호는 서준의 입에서 어떤 말이 나올지 예상하고 있었다. 모르는 게 이상할 정도로 서준의 눈이 반짝였다.

“다호 형. 저 이거 하고 싶어요.”

“그래? 알았어. 아 참, 서준아.”

“네?”

이번엔 좀 더 배역에 집중해서 한 번 더 시놉시스를 읽으려던 서준이 안다호의 부름에 고개를 들었다. 안다호가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그 시놉시스 작가님, 소 작가님 보조작가분이시래.”

“……진짜요?”

지인의 등장에 깜짝 놀란 서준이 동그랗게 뜬 눈으로 시놉시스에 적힌 작가의 이름을 바라보았다.

* * *

휴대폰 건너에서 들리는 말에 소은진 작가가 입을 쩍 벌렸다.

“그거 하기로 했다고?”

-네. 재미있었어요. 연기하는 것도 되게 재미있을 것 같아요.

“청아가 들으면 깜짝 놀라겠네. 알았어. 서준아, 매니저님한테는 내가 전해준다고 해줄래?”

-네. 근데 엄청 신기하네요.

“나도. 요새 세상 참 좁다는 걸 깨닫고 있어. 설마 서준이 선생님이 내 첫 작품 주연 배우였고, 서준이가 고른 차기작이 내 보조작가 작품일 줄이야.”

소은진 작가의 말에 전화기 건너 서준이 웃음을 터뜨렸다.

서준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소은진 작가가 유성우를 보러 간다는 서준의 말에 무언가를 떠올리고 미소를 지었다.

“그래. 서준아. 나도 사진 보내줘.”

-네. 멋지게 찍어서 보내드릴게요.

서준과 통화를 끝낸 소은진 작가가 지금쯤 공희찬 피디와 만나 회의를 하고 있을 유청아 작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늘의 별도 딸 수 있었네.”

사람이 직접 하늘에 올라가기 어렵다면 하늘의 별이 직접 내려오면 될 일이었다.

유성우처럼 말이다.

“그러고 보니 운석 가격도 비쌌지.”

-여보세요. 작가님?

슈퍼스타의 마음에 쏙 드는 작품을 만들어낸 작가의 목소리에 흐뭇해진 소은진 작가가 웃음기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청아야. 별똥별이 소원을 이뤄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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