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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272화 (272/1,055)

0살부터 슈퍼스타 272화

“다호 형.”

“응?”

서준이 준 따뜻한 유자차를 마시고 있던 안다호가 서준의 부름에 고개를 들었다.

거실에 앉아 푸른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서준은 어쩐지 오늘따라 해탈한 듯 보였다.

‘고등학생이 되니까 마음이 복잡한가.’

아직 입학도 하지 않았지만 중학교를 졸업했으니 고등학생이나 다름없었다.

‘이제 성인까지 3년밖에 남지 않았고 대학 입시도 있으니 마음이 복잡할 것 같긴 하지. 근데 서준이는 성인이 돼도 배우 계속할 것 같으니, 딱히 진로는 고민할 게 없지 않나?’

아역 배우에서 성인 배우로 넘어갈 때 걸림돌이 되는 이미지 변신도 서준의 연기력이면 걱정 없었고 할리우드나 한국에서 계속 들어오는 대본들에 작품 걱정할 것도 없었다.

오히려 코코아엔터 2팀은 서준이 성인이 되면 폭발적으로 밀려들어 올 작품들을 3년 뒤를 걱정하기도 했다. 아무래도 미성년자인 아역 배우보다는 성인인 배우가 연기할 수 있는 배역 폭이 훨씬 넓으니까 말이다.

‘아니면 중학교 때 안 왔던 사춘기가 온 건가.’

이미 인간들은 상상도 못 할 사춘기를 겪은 서준에게 사춘기가 올 일은 거의 없을 테지만, 그 사실을 모르는 안다호는 저도 모르게 자세를 바로 하고 서준의 말을 기다렸다.

어떤 질문이 나와도 미리 청소년 심리학을 공부한 만큼 잘 대답할 자신이 있었다.

어떤 황당한 질문에도 당황하지 마라.

정성껏 대답해 주어라.

더 이상 아이가 아니라 하나의 인격체라는 것을 인정해라.

안다호는 책에 쓰여 있던 문장들을 떠올리며 서준의 입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검색 기능은 어떻게 만든 걸까요?”

“……응?”

역시.

사춘기 청소년의 사고는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서준의 생각을 따라가려고 머리를 굴리던 안다호가 말했다.

“검색 사이트 같은 거 만들려고? 근데 그런 건 서준이 혼자 하긴 힘들 텐데? 친구들이랑 같이 할 거야?”

“그렇죠. 혼자선 힘들겠죠.”

최상급 능력을 갖춘 전생들이 열심히 만든 도서관이었다. 그것도 하나도 아닌 여럿이 심혈을 기울여 만들었다. 이제 막 상급 도서관을 문을 연 서준이 생의 도서관에 무언가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했다.

‘시도는 해봤는데…….’

어젯밤.

서준은 상급의 능력 중 검색 능력이 있는 책을 찾아 읽었다. 그리고 그 능력을 사용해 봤지만, 씨도 먹히지 않았다.

파직파직.

자신이 지시한 검색어를 찾으려고 사방으로 뻗어 나가던 능력이 도서관의 책장에 부딪히며 산산이 부서지던 모습을 떠올라, 서준은 허허 웃었다. 최상급 도서관의 문을 열 때까지는 꼼짝없이 일일이 찾아 읽어야 하는 운명인 것 같았다.

‘근데 최상급 도서관의 문을 연다고 해도 검색 기능 같은 걸 만들 수 있을지도 확실하지 않으니…….’

현생의 ‘이서준’은 마법의 ‘ㅁ’도 모르고 연기 이외에는 특별한 능력도 없었다. 최상급 도서관의 문을 연다고 생의 도서관을 바꿀 수 있을까. 왠지 불가능할 거라는 예감이 팍팍 들었다.

‘……그래. 책상이랑 의자가 생긴 게 어디야.’

딱딱한 바닥보다 훨씬 좋았다.

후후후.

먼 곳을 바라보고 웃는 서준의 모습에 안다호가 말했다.

“학원 알아봐 줄까?”

“괜찮아요. 그냥 자주 쓰는 검색 사이트가 어떻게 만들어진 건가 궁금했던 것뿐이에요. 검색어 하나 넣으면 알아서 찾아주잖아요. 생각해 보니까 그게 되게 편한 것 같아서요.”

서준의 설명에 반쯤 납득한 안다호였다. 반만 납득해서 바로 돌아가면 평이 좋은 학원을 찾을 예정이었지만 말이다.

그렇게 생각한 안다호가 가져온 상자에서 시놉시스와 대본을 꺼냈다. 저렇게 해탈한 듯 멍하니 있는 서준의 모습은 보기 싫었다.

“슬슬 대본 읽어볼까?”

테이블 위로 올라오는 대본들.

평소보다 많은 작품에 서준이 환하게 웃었다. 반짝반짝 빛나는 서준의 얼굴에 안다호도 미소를 지었다. 역시 서준의 고민과 스트레스를 날려버리는 데는 대본이 최고였다.

“이게 오늘 거예요?”

“그래. 방학이라 많이 들어오더라. 연극도 많이 있어.”

“이건 뭐예요?”

서준은 예능 출연 제의 목록 뒤에 있던 도서 목록에 고개를 갸웃했다. 도서 목록이라는 제목처럼 책의 이름과 간단한 줄거리, 작가의 이름과 출판사의 이름이 쓰여 있었다.

“거울 연극이 업로드되고 나서 부쩍 늘었어. 책 읽고 마음에 들면 연극으로 만들어달라고. 연극 저작권은 당연히 서준이 너한테 줄 거고 제작비도 출판사 측에서 부담한대.”

“아아. 홍보네요.”

“그렇지. 그렇게 돈을 써도 서준이가 홍보해서 벌어들이는 돈이 더 많을 테니까 말이야.”

“음.”

서준이 도서 목록을 읽어 내려갔다. 읽었던 책부터 처음 보는 책까지. 다양한 장르의 책이 가득했다.

“옛날 책도 있고 이제 막 출간한 신간도 있어.”

“그렇구나.”

사재기 논란이 있거나 작가의 대우가 좋지 않은 출판사와 표절 등의 논란이 있는 작가도 뺐지만, 그것까지 서준이 알 필요는 없어 안다호는 입을 다물었다.

“근데 각색은 별로 안 끌리네요.”

“서준이 좋을 대로 해.”

도서 목록을 내려놓은 서준이 다시 대본과 시놉시스로 관심을 돌렸다.

서준이 시놉시스 하나를 꺼내 읽기 시작하자 안다호도 휴대폰을 들어 연예계 소식을 살펴보았다.

팔랑팔랑. 종이가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언제나 그렇듯 평화롭고 조용한 거실이었다.

* * *

[MBS 월화 드라마, 시청률 1.8%!]

-M사 망했네ㅎㅎ

-2퍼센트에서 올라도 망할까 말깐데 떨어졌어.

-1.8퍼센트. 케이블이냐.

=애국가 시청률 아님?

=애국가 시청률 0.3 정도임ㅎ 아직 남았음.

=점점 떨어지다가 마지막 회에 될 듯.

[MBS, 4월 4부작 드라마 방송 예정!]

[MBS, 두 피디의 입봉작!]

[MBS, 시청률 상승 가능할까!]

* * *

“와. 기사를 뿌리면 뭐 해. 반응이 없는데.”

“그러게. 어떻게 1빠, 댓글도 없냐?”

MBS 방송국 1층 카페에서 커피를 사서 나오던 조연출 김단비와 동기 최현우가 휴대폰에 뜬 기사를 보며 투덜투덜거렸다. 김단비는 한숨을 내쉬며 휴대폰을 주머니 안에 집어넣었다.

김단비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어쩐지 끄물끄물 흐려지는 하늘이 MBS의 미래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내 촉이 울리고 있어.”

“뭐?”

김단비의 말에 앞서 걸어가던 최현우의 발걸음이 멈추었다. 긴장한 얼굴로 김단비의 말을 기다렸다.

조연출로 일하면서 발달한 자신의 촉이 오늘따라 삐뽀삐뽀 경고를 울려대고 있었다. 김단비가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딱 주연 배우가 사고 났을 때 이런 느낌이었는데. 아니면 작가님 대본 파일이 날아가거나.”

김단비가 몸을 떨었다.

“뭔진 몰라도 뭔가 큰일이 터질 것 같아. 그것도 아주 나쁜 쪽으로!”

그 말에 최현우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심각한 표정의 김단비를 비웃었다.

“네 촉 똥촉이잖아.”

“아니거든!”

김단비의 반발에도 최현우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을 이어나갔다.

“주연 배우 사고는 가벼운 접촉사고여서 조금 늦긴 했지만 촬영했고 작가님 대본은 백업 파일이 있었잖아.”

게다가 김단비가 콜타임을 착각했던 날의 촬영분은 드라마의 손에 꼽을 정도의 명장면이 됐고 구사일생으로 백업 대본이 남았던 그 화는 시청자들에게 엄청 호평이었다.

“오히려 네가 감이 좋다고 했을 때 사고가 났지.”

최현우가 손가락을 접어가며 ‘사고’를 나열했다.

“조연 배우가 음주운전을 하는 바람에 짤려서 촬영 다시 해야 했지, 완성본이 실수로 초고로 바뀌는 바람에 좀 찍다가 다시 찍어야 했고. 잘 서 있던 조명이 쓰러져서 부서지는 바람에 촬영 하루 날렸던 적도 있었잖아.”

김단비의 잘못은 아니었지만, 항상 김단비가 좋을 것 같다고 이야기하면 사고가 터졌다. 김단비와 함께 작업하던 피디들이 제발 그런 말 좀 하지 말라고 빌 정도였다.

“오늘은 진짜 안 좋거든!”

“그래. 그래. 복권이나 살까.”

최현우는 한 귀로 흘려보내면서 걸음을 옮겼다. 김단비가 왁왁 소리를 지르며 그 뒤를 따랐다.

잠시 후.

-내가 옛날부터 눈여겨보던 작품이라고 하는데 자기가 뭐라고 할 거야? 책상 위에 있던 대본 훔쳐보고 내가 먼저 계약했다고? 잘도 믿겠다.

-근데 그 새끼가 대본 보는 눈이 좋긴 해.

-알아서 잘 찾겠지.

비상구 계단 위에서 들려오는 박민규의 목소리에 최현우가 작게 속삭였다.

“……너 돗자리 깔아라.”

평소라면 ‘내 말 맞지!’ 하고 으쓱했을 테지만 동기의 감탄에도 김단비는 그저 멍한 얼굴로 비상구 계단 위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설마, 그 나쁜 촉이 존경하는 선배 공희찬에게로 향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 * *

시끌벅적한 고깃집.

치이익, 고기가 달궈진 불판 위로 올라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미친 거 아니에요!”

이를 바득바득 갈던 김단비가 소주 뚜껑을 힘껏 돌렸다. 그러고는 빈속에 소주를 들이부었다.

“하하.”

“아니, 지금 하하 웃을 때예요!”

“공 선배. 그래도 이번엔 좀, 아니, 많이 잘못된 것 같습니다.”

최현우까지 한마디 거드니 공희찬은 씁쓸하게 웃고 말았다.

“선배가 선택한 대본을 가로채는 게 어딨어요!”

“어떻게 알았어?”

“박 선배가 원래 입이 좀 가볍잖아요. 비상구에 떠들던데요. 누구랑 통화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최현우의 말에 김단비도 고개를 끄덕였다. 최대한 늦게 올라가기 위해 비상구 쪽으로 걸어가지 않았다면 김단비와 최현우도 몰랐을 터였다.

“어떻게 된 거예요?”

“음.”

공희찬은 오전의 일을 떠올렸다.

“오전에 작가님한테 가 보니까 이미 규민이랑 계약을 하셨다는 거야. 어제저녁에 계약하신 것 같더라고.”

“박 선배는 뭐라고 합니까?”

“음. 옛날부터 알고 있었다고는 하는데.”

“그걸 믿어요?”

“음…… 안 믿지.”

처음엔 정말로 우연인 줄 알았다. 좋은 작품이니 박규민도 눈여겨봤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공희찬의 직업은 사람의 감정에 민감한 직업이었다. 배우의 눈빛 하나 허술하게 넘기지 않아야 하는 직업이었다.

그래서 공희찬이 박규민의 눈빛과 표정을 읽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공희찬은 박규민의 네가 뭘 어쩔 거냐는 눈빛에, 너무 착하게만 살았나 회의감이 들었다.

김단비는 삼겹살을 박규민인 양 씹어댔다.

“왜 가만히 있는 거예요?”

“벌써 CP님한테도 말한 것 같고 작가님한테 규민이가 먼저 접촉한 이상 내가 먼저 선택했다는 증거도 없으니까.”

속이 타는 건 공희찬도 마찬가지였지만 후배들 앞에서 티 내기는 싫어 그냥 하하 웃기만 했다. 어차피 이미 되돌릴 수도 없는 일이고 증거도 없었다. 쓰라린 속에 공희찬이 소주를 들이마셨다. 안타까운 모습에 김단비가 손을 번쩍 들었다.

“저희가 증인 할게요!”

“난 빼주지?”

최현우의 말에 소주잔을 들이켜던 김단비가 소리쳤다.

“배신자!”

“그래. 넌 멍청이.”

“넌 박 선배 편이야?! 으. 선배라고도 부르기 싫다!”

“잘됐네. 이젠 피디님이라고 부르면 되겠다.”

“되겠냐!”

“자자. 둘 다 물 마시고 진정하자.”

공희찬이 두 사람에게 물을 주는 사이 찬물을 시원하게 들이켠 최현우가 냉정하게 말했다.

“여기서 아이디어랑 대본 뺏기는 게 한두 번이냐. 보조작가는 작가한테 아이템 뺏기고 일은 조연출이 다해도 공은 피디한테 가잖아.”

“그렇지만…….”

“게다가 이번 상황은 더 증명하기 힘들어. 우연히 같은 대본을 생각하고 있던 두 피디 중 하나가 먼저 계약한 것뿐이야. 다른 사람들 보기엔 공 선배는 그냥 운이 없었던 것처럼 보일걸. 오히려 왜 빨리 계약 안 했느냐고 탓하지 않으면 다행이지.”

“으. 아까 녹음해둘걸!”

김단비의 말에 공희찬이 작게 웃었다. 그래도 펄펄 날뛰며 대신 화를 내주는 김단비 덕분에 꽉 막혔던 속이 조금은 풀리는 것 같았다.

“제일 급한 건 대본이겠네요.”

“그래. 여기저기 물어보고 있긴 한데 단막극 아니면 장편뿐이라 4부작 대본은 찾기가 힘드네.”

“박 선배가 들고 간 것보다 좋은 작품으로 골라요!”

“그게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라서.”

좋은 작품이란 건 알 수 있지만, 그게 어느 정도로 성공할지는 공희찬도 알 수 없었다. 박규민이 훔쳐간 작품은 정말 좋았다. 4부작으로 만들기 딱 좋은 데다가 소재도 독특해 시청자들의 흥미를 끌기 좋은 작품이었다.

다시 속이 탔다. 소주를 한 잔 마신 공희찬이 한숨을 내쉬듯 말했다.

“4부작 중엔 그게 가장 좋은데 더 좋은 걸 찾을 수 있을까 모르겠네.”

공희찬의 말에 최현우가 말했다.

“장편을 줄이는 건 어때요?”

“아니면 단막극을 4부작으로 늘려도 괜찮지 않아요?”

후배들의 말에 공희찬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좀 더 범위를 넓혀볼까?”

“우리도 찾아볼게요! 시청률로 박 선배를 눌러버리는 거예요! 정의구현! 타도 박규민!”

“이게 소년 만화냐. 시청률로 누르면 이기게.”

아웅다웅 대는 두 후배를 흐뭇하게 바라보던 공희찬이 주머니에서 느껴지는 진동에 휴대폰을 꺼냈다.

>입봉작 구한다며?

예전에 함께 촬영했던 드라마의 조명감독에서 온 문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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