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살부터 슈퍼스타-268화 (268/1,055)

0살부터 슈퍼스타 268화

1월.

작년에서 올해로 12월에서 1월로. 해와 달이 바뀌는 첫날.

뉴욕의 대형서점 직원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어젯밤 가게 문을 닫고 크리스마스 장식을 떼고 이리저리 정리했지만 아직 마무리가 남아 있었다.

“오픈 전까지 정리해야 해!”

“네!”

서점 매니저의 말에 다들 큰 소리로 대답했다. 새해를 맞는 장식을 새로 바꾸고 청소를 하고 가장 앞에 놓인 책의 먼지를 털고, 어디 뜯어진 곳은 없는지 살폈다.

여러 인종이 살고 일하는 뉴욕이라서 그런지 서점 직원들의 출신지도 다양했다. 다양한 직원들 사이 눈에 띄는 사람이 있었다. 아직 수습이라 제 할 일을 찾아 이리저리 맴도는 동양인.

매니저가 작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수진!”

“넵!”

“이거 베스트셀러 목록인데 빠진 책 없는지 잘못 넣은 책은 없는지 체크해 줘.”

“네!”

뉴욕에 있는 대학에 다니며 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한국인, 김수진은 할 일이 생기자 눈을 반짝이며 얼른 종이를 받아 들었다.

그러고는 곧바로 서점에서 가장 좋은 자리에 있는 베스트셀러 코너로 향했다.

“1위…… 맞고, 2위…… 맞고.”

가장 눈에 띄는 자리에 베스트셀러 1위의 책이 놓여 있었고, 그 옆자리에 2위가 된 책이 놓여 있었다.

어, 먼지. 손으로 표지 위에 있는 먼지를 탁탁 털던 김수진의 눈에 익숙한 표지의 책이 눈에 들어왔다.

“헐!”

김수진은 오전 타임의 아르바이트라 어젯밤 청소에 참여하지 않아 새롭게 바뀐 베스트셀러도 조금 전까지 몰랐다.

베스트셀러 목록에 적힌 것도 같은 제목의 다른 책이라고 생각했다.

“……잘못 놓여 있는 건 아니겠지?”

김수진의 눈이 베스트셀러 목록으로 향했다. 익숙한 책 제목과 그 옆에 쓰인, 왜 이제 봤나 싶은 작가의 이름. 김수진도 읽고 보고 감탄하고 경악했던 연극의 원작 소설이었다.

[거울]

[저자 : 최다예]

[서준 리의 거울을 들여다보다[■]]

표지 디자인부터 책 띠지의 QR코드까지 한국의 그것과 똑같은 한국 소설, 거울이 미국 베스트셀러 순위에 올랐다.

머나먼 나라에서 만난 한국의 책에 김수진은 연신 감탄했다.

“미국에 와서 한국 책이 베스트셀러에 드는 건 처음 보는 것 같은데!”

들뜬 얼굴로 베스트셀러 목록을 체크하면서도 김수진의 시선은 흘긋흘긋 거울로 향했다. 모든 책을 체크하고 김수진은 다시 거울 앞에 섰다.

아무런 장식 없이 놓여 있는 책이 아쉬웠다. 자신이 느낀 감동과 경악을 이 책을 구매할 손님들에게도 전하고 싶었다.

“음.”

‘1위부터 순서대로 놓여 있어서 자리를 옮기지는 못하겠지만.’

잠시 생각에 잠겼던 김수진이 씨익 웃으며 몸을 뒤로 돌렸다.

“매니저님!”

잠시 후.

서점이 오픈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이른 시간부터 서점에 들렀다. 사람들은 서점에서 가장 눈에 띄는 자리에 있는 베스트셀러 코너를 먼저 둘러보았다.

“이번 달 베스트셀러인가 봐.”

“뭐가 재미있을까? 응? 웬 QR코드?”

“이거랑 이거는 읽었고…… QR코드?”

사람들은 베스트셀러 사이 유난히 눈에 띄는 책을 발견했다. 미러라는 제목을 가진 책은 다른 책들과 달리 책 띠지에 QR코드가 들어가 있었다.

책 띠지에 있는 QR코드는 확실히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QR코드를 보자 반사적으로 휴대폰을 꺼내는 사람들도 있었고 책을 집어 드는 사람들도 있었다.

“서준 리의…… 거울을 들여다보다?”

턱을 매만지며 QR코드와 책 띠지, 책 뒤쪽에 쓰인 줄거리를 살펴보던 남자가 책을 펼쳤다. 몇몇 사람들도 책을 펼쳤다.

책을 읽는 사람들과는 달리 QR코드를 휴대폰으로 찍은 사람들은 시작되는 영상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휴대폰에서 흘러나오는 박수 소리에 소리를 끄는 사람들도 있었고 이어폰을 꽂는 사람들도 있었다.

화면 속 막이 올라가고 무대가 보였다.

“연극?”

사람들이 고개를 갸웃했다.

“잠시만. 아직 읽지 마.”

“응?”

막 책을 펼치려고 했던 여자가 친구의 부름에 손을 멈추었다. 친구의 시선이 책장 한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왜 그래?”

“저거 봐. 작아서 못 봤나 봐.”

친구의 목소리를 들은 사람들의 손도 멈추었다.

“왜 그래?”

“책 읽기 전에 연극을 봐야 한대.”

“연극?”

여자와 사람들의 시선이 친구가 가리킨 쪽으로 향했다. 그 끝에는 소설 거울의 책장에 작게 붙어 있는 하얀 종이가 있었다.

[1. QR코드를 찍어 연극 거울을 본다.]

[2. 소설 거울을 읽는다.]

이리저리 둘러보고 있던 서점 직원, 김수진이 베스트셀러 코너 앞에 모여 있는 사람들을 보며 울상을 지었다. 좀 더 화려하게 장식해서 홍보하고 싶었지만 다른 책들도 있어 이게 한계였다.

“그래도 없는 것보단 낫겠지?”

“수진!”

“넵!”

매니저의 부름에 김수진이 얼른 달려갔다.

* * *

[소설 거울 후기]

-연극! 연극부터 봐!

-:( 책을 먼저 봤어! 그래도 재미있었지만! 연극부터 봤으면 더 재미있었을 것 같아.

-여러분. 따라 해보세요. 연극-소설-연극!

-QR코드를 찍어!

-내가 간 서점에는 미리 알려줘서 연극 먼저 봤어! :) 정말 다행이야!

=뉴욕 블루홀서점이야?

=응. 너도?

=그래. 안내문이 좀 작아서 좀 읽긴 했지만, 다행히 반전은 안 보고 연극 볼 수 있었어!

=나도! 누군진 모르겠지만 정말 고마워! ;)

* * *

[브라운블랙 15주년 다큐멘터리 방송 예정!]

[소설 ‘거울’ 미국 베스트셀러에 올라!]

[연극 ‘거울’ 조회 수 폭발!]

[뉴욕 블루홀 서점에 붙은 거울의 안내문!]

-브블 다큐 일정 떴네?

=이서준 나와서 시청률 잡으려는 듯.

-와. 한국 소설이 미국 베스트셀러라고?

=이서준 연극이 홍보에 한몫한 듯.

=책 띠지에 QR코드가 있어서 접근하기도 쉬워.

=나도 책 안 읽는데 이건 볼 수밖에 없었다.

=나 미국인데 거울뿐만이 아니라 덩달아 다른 한국 소설도 팔리고 있음.

=……장난 아니네!

-거울 안내문이라. 하긴 이서준 모르는 사람은 책 먼저 보고 연극 보겠다.

=확실히 지금까지는 서준이 팬들이나 서준이 작품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판매하는 거라 별다른 설명이 필요하지는 않았지만, 이제부턴 일반인에게 판매하는 거니까 조치를 취해야 할 듯.

=책 띠지에 안내문도 함께 넣으면 될 것 같은데?

=22 안내문 붙이면 될 듯.

-유학생도 대단하네! 저런 의견 내기 쉽지 않을 텐데!

=매니저도 고마움ㅎ

* * *

“미국 베스트셀러에 들다니, 진짜 대단하다!”

“우리 연극을 미국 사람들도 보는 거야?”

“미국인만 보겠어? 전 세계인이 보고 있을걸.”

3학년 2반 교실에 모인 아이들이 들뜬 얼굴로 떠들었다. 서준도 아이들과 함께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 연극 조회수도 엄청 나왔어.”

1번 팀이었던 지호의 말에 다른 팀이었던 아이들도 헤헤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거울팀의 연극을 본 사람들이 다른 아이들의 연극에도 관심을 가졌다.

그중에는 인상 깊은 연기로 감독이나 작가의 눈에 든 아이들도 있었다. 지호와 주희, 재한 그리고 몇몇 아이들이 그렇게 오디션 제안을 받았다.

“다들 오디션 갈 거야?”

서준의 질문에 아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가야지. 마침 겨울방학이라 시간도 많고.”

“맞아. 오늘 졸업식 끝나면 3월 입학식 때까지는 여유로우니까.”

졸업식.

그 이야기에 즐겁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아이들이 하나둘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특히, 미리내 예고가 아니라 다른 고등학교로 진학하는 아이들의 표정이 어두웠다. 고등학교 가서도 잘할 수 있을까. 고민이 가득한 아이들의 모습에 강재한이 얼른 입을 열었다.

“벌써 졸업식이라니 진짜 시간 빠르지 않아?”

“그러게. 3년이나 지났어.”

“근데 이번 3년은 되게 알차게 보낸 것 같아.”

김주경의 말에 서준과 아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초등학생 때는 영화나 드라마 촬영도 안 해봤는데 중학교 들어와서는 영화도 출연하고 연극도 해보고. 엄청 재미있었어.”

“나도. 에반 블록이랑 리첼 힐하고 만나진 못했지만, 패딩이 생겼으니 너무 좋아!”

재한과 주희의 말에 지호가 웃으며 말했다.

“할리우드 스타 이서준이랑 친구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나도!”

“입학 전까지는 이렇게 친해질 줄 몰랐지!”

친구들의 말에 서준은 그저 볼을 긁적이기만 했다.

3년.

초등학생 때보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연기과 학생들의 수가 적은 만큼 그때보다 더 친해졌다. 서준은 앞으로 쭉 함께 연기할 수도 있고 다른 학교로 진학해 전혀 다른 길을 걸을 수도 있는 친구들을 바라보았다.

애써 분위기를 바꾼 보람도 없이 다들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눈동자가 촉촉해져 있었다. 휴대폰으로 연락하면 바로 닿을 수 있지만 ‘졸업’이라는 단어는 아이들에게 무거운 감정을 전해주었다.

잠시 친구들을 바라보던 서준이 휴대폰을 들어 담임선생님께 바나나톡을 보냈다.

* * *

여울 예중의 졸업식.

시간이 다가오자 3학년들의 학부모들과 가족들이 하나둘 학교에 도착했다. 서은혜와 이민준도 졸업식이 열릴 여울홀로 향했다.

“졸업식도 입학식처럼 2명만 들어갈 수 있네.”

“밖에 있는 가족이 전부 들어오긴 자리가 부족하니까.”

“그건 그래.”

여울홀로 들어온 사람들이 하나둘 자리를 잡고 앉자, 곧 3학년 아이들이 들어와 접이식 의자가 놓인 맨 앞자리에 앉았다. 아이들이 들어오자 학부모석이 시끌벅적해졌다. 각자 자신의 아이들이 어디 있는지 살펴보느라 바빴다.

이민준과 서은혜도 목을 쭉 빼고 연기과 3학년 2반 자리를 바라보았다. 언제 어디서도 반짝반짝거리는 아들을 열심히 찾아보았지만 보이질 않았다.

“서준이는 없네?”

“입학 때처럼 3학년 대표인 거 아니야?”

“아. 그럴 수도.”

이민준의 말에 서은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얼른 카메라를 준비했다.

잠시 후.

졸업식이 시작되었다.

개식사와 국민의례 순서가 지나고 교장 선생님의 축사가 있었다.

“3년 전, 갓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여울 예중에 입학했던 여러분들이 이제 이 학교를 졸업합니다. 그리고 다시 신입생이 됩니다.”

교장 선생님이 자신을 바라보는 아이들을 둘러보았다.

“가 본 적 없는 곳이고 무서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 3년 전을 떠올려보세요. 그때도 무서웠을 겁니다. 낯선 장소, 낯선 친구들 사이에서 잘할 수 있을지 고민했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 주위를 둘러보세요.”

교장 선생님의 말에 주위를 둘러보다 친구들과 선생님과 눈이 마주친 아이들이 작게 웃었다.

“친한 친구들, 좋은 선생님들, 익숙한 학교. 낯설었던 모든 것이 익숙해졌습니다. 모두 잘해냈습니다. 고등학교에서도 잘해낼 겁니다. 행복하고 즐거웠던 중학교 생활만큼 고등학교 생활도 즐겁고 행복할 겁니다.”

교장 선생님의 말씀이 끝나고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다음은 2학년 대표의 송사와 3학년 대표의 답사가 있겠습니다.]

사회자의 말에 무대 끝에서 2학년 대표와 3학년 대표가 나타났다. 2학년 대표는 김한석이었고 3학년 대표는 양주희였다.

3학년 아이들은 잠시 놀랐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주희가 3학년 대표였구나.”

“주희가 3년 내내 여기저기 돌아다니기는 했지. 2학년이 팀장으로 연말 공연한 건 드문 일이잖아. 보통 3학년이 팀장인데 말이야.”

“세 과 통틀어서 양주희를 모르는 애는 없고.”

“선생님들도 다 알고 있을걸.”

송사와 답사가 끝나고 박수를 보내던 아이들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럼 서준인 어디 간 거야?”

[다음은 졸업 축하 공연이 있겠습니다.]

축하 공연?

아이들과 학부모의 시선이 무대 위로 향했다. 어쩐지 모두 같은 생각을 떠올렸다. 서은혜와 몇몇 학부모가 카메라를 동영상 모드로 돌리고 있을 때, 무대 끝에서 한 학생이 걸어 나왔다.

서준이었다.

“와!!”

서준의 손에 들린 바이올린에 학생들과 학부모들에게서 환호성과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선생님들과 ATR재단의 사람들도 들뜬 얼굴이었다.

서준은 박수 소리와 환호성을 한몸에 받으며 무대 중앙으로 걸어갔다. 무대 조명이 꺼지고 단 하나의 조명만이 서준을 따라갔다.

무대 중앙, 스포트라이트 아래에 선 서준이 꾸벅 인사를 했다. 다시 한번 함성과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으아아아! 바이올린!!”

“서준아!”

“이서준!!”

유난히 잘 들리는 바이올린 전공 아이들과 연기과 아이들의 함성에 작게 웃은 서준이 바이올린에 턱을 괴었다.

그와 동시에 함성과 박수 소리로 가득하던 여울홀에 적막이 내려앉았다. 숨소리마저 들릴 것 같은 조용함. 바이올린 전공 학생들이 눈을 번뜩이며 서준을 바라보았다.

침도 함부로 삼키지 못할 무거운 침묵을 바이올린 소리가 꿰뚫었다.

여울홀에 ‘오버 더 레인보우’가 울려 퍼졌다.

설렘.

기쁨.

절망.

그리고 찬란!

이제 졸업하는 친구들을 위해 서준은 정성껏 바이올린을 연주했다. 천장으로 꽉 막힌 하늘에서 새하얀 깃털들이 아래로 떨어졌다. 하늘하늘 내려오던 새하얀 깃털은 아이들에게 닿자 사르르 사라졌다.

[(선)아낌없이 주는 아기 천사의 날갯깃-하급-이 발동됩니다.]

[(선)아낌없이 주는 아기 천사의 날갯깃-하급]

아낌없이 주는 아기 천사의 날개 깃털입니다.

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 깨끗하게 만들어줍니다.

하루 한 번 소소한 축복을 내릴 수 있습니다.

다른 학교로 진학하는 친구들에게 좋은 일만 생기길 바라며, 어려움이 있더라도 그레이처럼 찬란한 미래를 얻길 바라며, 서준은 그 어느 때보다도 진심으로 ‘오버 더 레인보우’‘를 연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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