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262화
이중인격.
김진우의 말에 정채원은 몸을 앞으로 당겼다. 어째서 김진우가 경찰서에 가지 않고 정신과에 왔는지 알 것 같았다.
힘겹게 내뱉은 김진우는 그것만으로도 마음이 편해진 듯 얼굴색이 한결 나아져 보였다. 정채원이 딸깍 펜을 눌렀다.
“저에게 자세히 들려줄 수 있나요?”
“네. 그러려고 여기 온 거니까요.”
김진우는 차분히 말을 이었다.
“언젠지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더 옛날부터일 수도 있고 제가 알아챈 그 날부터일 수도 있거든요.”
“어떻게 알아챘나요?”
“어느 날, 잠이 늘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7시간 정도 자던 수면시간이 8시간, 9시간, 10시간으로 늘었죠. 늦잠을 자서 회사에 늦을 때도 있었습니다.”
조곤조곤한 이서준의 목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여울홀을 울렸다. 말 한마디 한마디가 관객들의 귀에 속속 박혔다. 음악팀의 잔잔한 연주가 배경이 되어 이서준의 목소리를 더욱 뚜렷하게 만들었다.
“몸이 피곤하신 게 아니었을까요?”
“네. 저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병원에도 갔었죠. 스트레스성이라는 이야기에 회사도 그만두고 휴가를 보내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하지만?”
“……오히려 상황은 악화됐습니다.”
김진우의 낙담한 목소리가 여울홀에 울려 퍼졌다.
김진우의 목소리가 떨렸다. 만지작거리던 두 손을 핏줄이 보일 정도로 꽉 마주 잡고 힘겹게 그날의 일을 떠올렸다. 목소리에 담긴 두려움에 정채원도 숨을 죽였다.
“이제는 나아지겠거니 생각하고 안심한 바로 다음 날, 저는 어느 순간 정신을 잃었습니다. 한밤중도 아니고 대낮에 말입니다.”
“……쓰러진 게 한 번이 아니군요.”
“네.”
차분하던 김진우의 얼굴에 불안감이 맴돌았다. 표정을 자세히 볼 수 없던 뒷자리에서도 알 수 있을 만큼 두려움과 불안함이 가득한, 위태위태한 목소리였다.
“그 이후로는 매일매일 시간도 일정하지 않고 정신을 잃었습니다. 깨어나 보면 이상한 점이 늘어갔죠.”
“얼마나 정신을 잃고 있나요?”
“10분, 30분, 1시간, 3시간. 이것도 일정하지 않습니다.”
답답한 마음에 김진우는 마른세수를 했다.
김진우의 답답한 숨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스피커에서 흘러나왔다. 여울홀이 조용했다. 들리는 소리라고는 김진우와 정채원이 내는 소리뿐이었다. 모두 숨을 죽이고 무대 위를 바라보았다.
“또 다른 점이 있었나요?”
“……항상 제자리에 있던 물건들이 다른 장소에 놓여있고 정리해 둔 이불이 엉망이 되어 있습니다. 깨끗하게 정리해 둔 옷들이 더러워져 있고 냉장고에는 제가 먹지 않는 음식들이 들어가 있었죠.”
“외부인의 침입일 가능성은 없었습니까?”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CCTV를 달았죠.”
제법 침착하게 말을 이어나가던 김진우는 점점 불안한 듯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날만 떠올리면 속이 울렁거렸다.
정채원은 불안한 듯 보이는 김진우에게 찻잔을 밀었다. 김진우는 그 찻잔을 보지도 못할 정도로 반쯤 정신을 놓은 것 같았다.
“그날도 평소처럼 제가 쓰러졌습니다. 전 현관문이 열릴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아니었죠.”
거의 죽을 것 같은 목소리였다.
“쓰러진 제 몸이 꿈틀거렸습니다.”
그때를 떠올리는 듯 김진우의 시선은 정채원이 아닌 허공을 바라보았다. 기억을 떠올리는 것도 힘겨운 듯 말이 뚝뚝 끊어지고 시선이 이곳저곳을 헤맸다.
“손이 움직이고”
“상체가 들리고”
“몸을 일으켰습니다.”
김진우의 시선 끝에는 관객들이 앉아있었다. 김진우와 눈이 마주친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연기과 1, 2학년들이 숨을 멈추고 의자에 몸을 파묻었다. 접이식 의자라 딱딱했지만 그런 걸 신경 쓸 여유는 없었다.
김진우가 그때 느꼈을 경악과 두려움, 소름 끼치는 섬뜩함이 그대로 전해지는 것 같았다.
“주저앉아 있던 ‘그것’이”
“자리에서 일어나”
“두 발로 섰어요.”
알 수 없는 것에 대한 공포.
그때를 떠올리는 김진우의 손이 떨렸다.
“‘몸’은 집 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녔습니다. 제 휴대폰을 사용하고, 텔레비전을 보고 제가 안 먹는 음식을 먹고, 제 옷을 입고, 웃고, 떠들고.”
손가락 끝에서 번져나간 떨림이 김진우의 몸까지 번져나갔다. 김진우는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았다.
“하지만, 하지만 전 그런 기억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날 하루뿐이었나요?”
“아니요. 그때부터 지금까지 쭉. 어제도 그랬습니다. 오늘도 언제 그럴지 모르겠습니다.”
그저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진이 빠졌다. 김진우는 송골송골 맺힌 식은땀을 닦아냈다. 차트에 무언가를 적던 정채원이 잠시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
“진우 씨는 왜 ‘그 사람’이 진우 씨를 죽일 거라고 생각하죠?”
“‘이건’ 제 시간을 차지하고 있어요. 어느새 하루 중 4분의 1은 ‘이게’ 차지하게 되어버렸다고요. 알 수 없는 존재가 천천히 제의 몸을 잠식해가고 있는데…… 어떻게 이게 살인이 아니죠?”
“진우 씨를 차지한다. 그게 진우 씨를 죽이는 건가요?”
“네. ‘제’가 아닌 ‘저’는 제가 아니잖아요.”
정채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진우 씨를 죽이려고 한다던 두 사람도 그런 식으로 진우 씨를 죽이려고 하나요?”
정채원은 이중인격이 아니라 다중인격일 가능성도 고려했다.
“아니요. 그 두 사람은 정말로 절 죽이려고 하고 있어요.”
“어떻게 알았어요?”
“‘그게’ 제 몸을 차지하고 있을 때, 그 두 사람을 공격했거든요. 아마 그 원한일 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사실은 어떻게 아셨죠?”
“경찰서에서 정신을 차렸습니다. 경찰분이 자세히 설명해 주셨죠.”
정채원은 침착하게 김진우의 이야기를 들었다.
경찰서에서 나오고 난 후 이어진 위험들. 누군가 계단에서 뒤를 밀었고, 차도로 밀려고 했으며 머리 위로 무거운 물건이 떨어졌다는 김진우의 이야기.
“그렇군요.”
“경찰에게 알려도 믿어주질 않습니다. 증거가 없다고요.”
마른세수를 한 김진우는 지친 듯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그래도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나니 제법 어깨가 가벼워진 듯한 모습이었다. 김진우를 안쓰럽게 바라보던 정채원이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진우 씨. 제가 뭘 도와드리면 될까요?”
정채원의 물음에 김진우는 입술을 깨물며 제 심장께를 꽉 쥐었다. 새하얀 스웨터에 많은 주름이 생겼다.
“……‘이걸’ 없애고 싶습니다.”
왜 이런 게 생겨서 내 인생을 망치고 있나.
어째서 내 삶까지 차지하려고 하는 건가.
그 말에 담긴 울분과 억울함, 고통과 두려움을 알아챈 정채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검사부터 해보죠. 결과는 이틀 후에 나오니 그때 한 번 더 오세요.”
“네. 알겠습니다.”
김진우가 자리에서 일어나 진료실 밖으로 향했다. 간호사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 무대 옆으로 사라졌다.
정채원이 차트에 무언가를 써 내려갔다. 잠시 진료실을 살피던 간호사가 스위치를 눌러 불을 끄는 시늉을 했다.
‘지금!’
그에 맞춰 무대 옆에 숨어 있던 음악팀 팀장이 조명을 껐다. 동시에 무대 위의 조명이 꺼졌다.
“윽!”
서준은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얼른 보드라운 스웨터를 벗어 던지고 안에 입은 회색 셔츠를 매만졌다. 대기하고 있던 강재한과 전성민이 서준에게 달라붙어 단정한 머리를 엉망으로 만들었다.
영화나 드라마와는 달리 빨리 움직여야 하는 연극의 재미에 서준과 재한, 성민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다.
“좋아. 끝났어. 채연아!”
“응!”
준비가 끝난 서준이 부르자 음악팀 팀장, 김채연이 조명 스위치를 켰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웃고 있던 서준이 얼굴을 굳혔다. 순식간에 몰입한 서준의 모습을 보며 재한과 성민이 고개를 끄덕이며 엄지를 척, 들어 올렸다.
깜깜한 암흑.
조금의 시간이 지나고 다시 조명이 켜졌다.
정채원은 진료실 소파에 앉아 있었다. 간호사도 카운터에 서서 차트를 살피고 있었다.
딸랑!!
거칠게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무대 옆에서 김진우가 튀어나와 바닥에 주저앉았다.
날짜가 지난 걸 표시하는 듯 새하얗던 스웨터가 회색 셔츠로 바뀌어있었다. 차분하고 단정하던 모습은 어디 가고 조금 곱슬거리던 머리가 엉망진창이었다. 한눈에 봐도 다급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카운터에서 간호사가 나와 바닥에 주저앉은 김진우를 붙잡았다.
“환자분! 괜찮으세요?!”
“선생님!! 선생님!!”
공포와 혼란스러움이 가득 담긴 목소리였다. 무언가 불안한 듯 주위를 둘러보았다. 간호사가 붙잡고 있는데도 덜덜 떨리고 있는 김진우의 모습이 느껴졌다.
로비의 소란에 진료실에 있던 정채원이 로비로 나왔다. 그리고는 바닥에 주저앉은 김진우와 간호사를 발견했다. 놀란 정채원이 얼른 김진우의 앞으로 달려갔다.
“이게 무슨! 진우 씨? 진우 씨? 괜찮으세요?”
“선생님!! 선생님!!”
김진우가 엄마를 찾는 아이처럼 정채원을 찾았다.
그 위태위태한 모습이 어째선지 섬뜩했다. 김진우의 적이 얼마나 무섭길래, 이렇게 참담하고 무력한 모습을 보이는 걸까. 바로 전 단정하던 모습과 비교되어 더욱 충격적이었다.
가장 앞자리에서 서준의 표정, 눈동자, 숨소리, 떨림까지, 눈도 깜빡이지 않고 보고 있던 연기과 1, 2학년들이 물론이고 무대에서 멀리 떨어진 자리에서 보던 관객들도 꼴깍 침을 삼켰다.
김진우가 울부짖었다.
“그놈이 알고 있었어요!!”
스피커로 전해지는 이서준의 목소리에 소름이 돋았다. 그 안에 담긴 공포가 그대로 관객들에게 전해졌다. 관계자석에서 보고 있던 네 배우도, 소은진 작가도, 카메라를 통해 서준을 보고 있던 감독들도 숨을 쉬는 것도 잊은 채 무대에 집중했다.
“진우 씨. 진정하세요.”
정신과 의사, 정채원은 침착하게 움직였다. 간호사의 도움을 받아 두려움에 가득 찬 김진우를 진료실로 데리고 갔다. 정채원을 보고 그나마 안심한 모양인지 김진우는 순순히 움직였다.
정채원이 김진우를 소파에 앉혔다. 자신의 앞에 놓인 찻잔에도 김진우는 다리를 덜덜 떨며 창백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놈이 알고 있었어요. 알고 있었어. 어떻게, 어떻게 하면 좋지……? 안 돼. 이러다간 빼앗길 거야. 안 돼. 이건 내 몸이라고. 왜 이런 일이 생긴 거지? 내가 뭘 잘못한 거야?”
혼잣말이었다. 작게 읊조리는 목소리였다.
하지만 서준이 내뱉는 대사는 단 한 글자도 빠짐없이 관객들의 귀에 꽂혔다. 서준의 전달력도 좋았고 여울홀을 가득히 채운 긴장감에 관객들의 청각이 평소보다 더 발휘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진우 씨. 진정하세요. 그놈이 누구죠?”
“저 말입니다! 저!!”
자신도 모르게 버럭 소리를 지른 김진우는 정채원과 눈이 마주치자 정신을 차린 듯 놀란 표정을 지었다. 감당하지 못할 공포에 신경질적으로 변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김진우의 얼굴에 죄책감이 드러났다.
“죄송, 죄송합니다. 정말로. 제가…….”
하지만 불안감을 떨칠 수가 없는지 연신 두 손을 만지작거리고 다리를 떨어댔다. 김진우의 고개가 진료실 안을 살피듯 이리저리 움직였다.
진료실 안이었어야 했지만 여기는 무대였다. 서준과 마주 보고 있던 관객들이 서준의 불안한 눈과 마주칠 때마다 몸을 떨었다. 서준의 불안과 공포가 옮겨 오는 것 같았다.
“아뇨. 괜찮습니다. 진우 씨. 일단 심호흡을 해보세요.”
김진우는 정채원의 말에 따랐다.
겨우 심호흡이었지만 그 심호흡마저도 눈을 뗄 수가 없었다.
“CCTV를 봤어요.”
겨우 진정한 김진우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그놈이 CCTV를 봤다고요. CCTV를 보면서 웃었습니다. 의기양양하게 웃었어요. 자신을 숨기기는커녕 제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걸 아는 것 같았습니다.”
김진우가 몸을 덜덜 떨었다. 정채원이 안타까운, 하지만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진우 씨의 다른 인격은 진우 씨의 상황을 알 수 있다는 거네요. 진우 씨는 어떤가요? 진우 씨도 ‘그놈’의 상황을 알 수 있나요?”
“아니요. 아니요. 모르겠어요.”
김진우가 웅크리듯 몸을 말았다.
“모르겠어요. 어째서 저한테 이런 일이 생겼죠? 도대체 그놈은 뭘 하려고 이러는 걸까요? 제 인생을 빼앗아서 뭘 하려는 걸까요? 그 두 사람을 공격한 것처럼 다른 사람들도 공격하면 어떻게 하죠? 선생님. 저 좀 도와주세요. 제발 도와주세요.”
애처로운 김진우의 목소리에 정채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도와드릴게요.”
“감사, 감사합니다…….”
“일단 약을 드릴게요. 약을 먹고 저와 이야기도 나누면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거예요.”
약이라니.
정신과 의사라면 의사다운 대답에 관객들은 못마땅하면서도 이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관객들이 생각하기에도 약과 상담 이외에는 ‘이중인격’을 치료할 특별한 대책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굿이나 퇴마를 할 수도 없고.’
의사, 정채원은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뿐이었다.
“네…….”
김진우도 그렇게 생각한 모양인지, 아니면 자신의 이야기를 믿어주는 사람이 생긴 덕분인지 꽤 안심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진료실을 나서는 김진우를 정채원이 안쓰럽게 바라보았다. 진이 빠진 듯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걷는 모습마저 힘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김진우는 간호사에게서 약 봉투를 받고 무대 옆으로 사라졌다.
소파에 앉은 정채원은 생각에 잠겼다. 간호사가 누군가와 통화했다.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정채원이 차트에 무언가를 써 내려갔다. 간호사가 다시 스위치를 눌러 불을 끄는 시늉을 했다.
무대 뒤.
관객석에서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다시 한바탕 소란이 일었다.
서준은 재빨리 회색 셔츠를 벗고 목을 덮는 검은색 폴라티를 입었다. 강재한이 서준의 머리를 차분히 쓸어내리는 사이, 전성민은 미리 준비한 거즈를 서준의 왼쪽 볼에 붙였다.
“끝!”
“채연아!”
“우리도 준비해야지!”
서준이 바로 나갈 수 있게 무대와 가까운 곳에 서고 이번에 출연하는 재한과 성민도 후우, 숨을 내쉬며 그 뒤에 섰다. 김채연이 조명 스위치를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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