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살부터 슈퍼스타-261화 (261/1,055)

0살부터 슈퍼스타 261화

오늘 무대에 오르는 7개의 팀이 각자의 연습실에서 마지막 연습을 하고 있었다.

가장 먼저 무대에 오를 팀은 지호가 있는 팀이었는데 점점 다가오는 공연 시간에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다음 팀은 주희가 있던 팀. 2번 팀도 1번 팀 못지않게 열정적으로 마지막 연습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네 개의 팀이 끝나면 거울팀의 순서였다.

“우린 좀 시간이 있으니까 차근차근 체크하자.”

서준의 말에 아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무대를 앞두고 열심히 아이들에게 3학년 연기과 선생님이 찾아왔다. 복도로 팀장들을 모은 선생님이 무어라 말하자 6명의 팀장은 일제히 한 명을 바라보았다. 시선의 끝에는 감독들을 모은 이서준이 있었다.

친구들의 시선에 서준이 볼을 긁적였다. 서준도 너튜브에 업로드된 여울 예중의 졸업 공연 영상이 밋밋하다고 생각했지만 그렇다고 일이 이렇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선생님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동안은 졸업 공연을 같은 방식으로 올렸는데 이렇게 된 김에 올해부터는 달라져도 괜찮을 것 같다는 의견이 많았어. 그래서 내년부터는 찍어주실 감독님들도 모실까, 생각 중이야. 너희가 괜찮으면 올해 촬영은 세 감독님한테 맡기지 않을래?”

팀장들이 각자의 연습실로 돌아가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전하니 만장일치로 촬영을 맡기겠다는 결론이 나왔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 선생님이 말했다.

“그럼 다들 대본 있지? 가장 잘 찍어줬으면 좋을 것 같은, 그러니까 강조하고 싶은 부분들, 표시해서 한 부씩 선생님한테 줘. 복사해서 감독님들에게 전해드릴게.”

“네!”

조금 전까지 공연으로 긴장하고 있던 아이들이 들뜬 얼굴로 각 팀의 대본 앞에 모여들었다.

* * *

1시가 되자 교문이 닫혔다. 더는 외부인의 출입을 막기 위해서였다. 먹잇감을 노리는 기자들이 교문 앞을 맴돌았지만,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었다.

조금 일찍 도착해 여울 예중을 둘러본 서은혜와 이미준이 서준이 준 티켓에 표시된 자리에 앉았다.

티켓의 자리는 랜덤이라고 들었는데 운이 좋았는지 무대가 잘 보이는 중앙 자리였다.

“서준이 연극 보는 거 되게 오랜만이다.”

“그러게. 봄이 1학년 때였으니까 8년 만이네.”

“봄에는 서준이 목소리만 나왔잖아. 서준이가 확실히 나오는 연극은 이게 처음이니까 나중에 분장한 모습 꼭 찍어야지. 그땐 평상복이라 아쉬웠어.”

카메라를 든 서은혜가 활짝 웃었다. 이민준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다 관객석 계단에 서 있는 사람들을 발견했다.

“저분…… 최대만 감독님 아니야? 최대만 감독님이 왜 저기 계시지?”

“어? 우정한 감독님이랑 최민성 피디님도 계시네?”

특별 초청 강의를 했던 유명한 감독들이 오늘 졸업 공연을 보러 온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왜 저런 곳에서 카메라를 들고 있는 건지, 영문을 알 수 없어 부부는 물론이고 연기과 학부모들도 고개를 갸웃했다.

* * *

학부모들과 특별초청 강사들, 그리고 ATR재단의 높으신 분들까지 자리를 잡고 나자, 학생들이 여울홀로 들어왔다.

연기과 1학년 선생님이 연기과 1, 2학년들을 자리로 데려갔다. 아이들의 자리는 양주희가 농담으로 말했던 무대 바로 앞, 의자가 없는 곳이었지만 지금은 접이식 의자들이 놓여 있었다.

입구와 가까운 자리들은 연극을 끝내고 올 아이들을 위해 비워놓고 연기과 1, 2학년들이 자리에 앉았다.

선생님은 연기과 1, 2학년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여기가 제일 좋은 자리야. 배우 숨소리까지 들리고 몸의 움직임이랑 떨림까지 가장 잘 보이는 자리니까. 연기과 1학년.”

“네!”

“연기과 2학년.”

“네!”

“선배님들의 연기를 똑똑히 보고 배워라.”

세계에 이름을 떨치고 있는 선배와 그 선배와 3년 동안 함께 수업을 들은 3학년 선배들.

연기과 아이들의 눈이 별처럼 반짝였다.

“네!!”

* * *

다들 각자의 자리를 찾아 앉는 동안 세 배우는 막 여울홀로 들어온 이다진을 발견했다. 처음 만나는 소은진 작가와 인사한 이다진이 관객석 계단에서 1번 팀 대본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세 감독을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와. 어떻게 그 세 분이 만나셨대요?”

“영상도 꽤 괜찮게 나올 것 같아. 서준이 연극을 멋진 영상으로 남길 수 있어서 다행이지.”

“그것도 6대나.”

김종호와 이지석이 만족스럽게 웃었다. 이럴 때는 죽이 잘 맞는 두 배우의 모습에 박도훈과 이다진, 소은진 작가가 웃고 말았다.

* * *

1시 30분이 되고 졸업 공연을 시작하겠다는 방송이 나왔다. 한 팀의 연극이 끝나면 다음 팀이 준비할 때까지 쉬는 시간을 가질 거라는 이야기도 있었다.

“쉬는 시간이 있구나.”

“하긴, 연달아 7개나 보긴 힘드니까.”

서은혜와 이민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첫 순서는 연기과 3학년 한지호, 김수연…….]

방송으로 1번 팀에 대한 설명이 흘러나오며 여울홀이 어두워졌다.

배우로 등장하는 아이들의 이름은 물론이고 도움을 준 음악과, 미술과 학생들의 이름까지 빠짐없이 나왔다.

[모두 박수 부탁드립니다.]

커다란 박수 소리가 들리고 천천히 막이 올랐다.

* * *

“이제 가서 준비하자.”

선생님이 거울팀에게 6번 팀이 무대에 올랐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5연습실에서 마지막 연습을 하고 있던 서준과 아이들이 연습실을 나와 여울홀 옆에 있는 대기실로 향했다.

배경팀이 소품들을 다시 한번 점검하고 음악팀 팀장이 음악을 확인하는 사이, 배우들은 옷을 갈아입었다. 다들 교복을 입고 있는 터라 옷을 갈아입어야 했다.

“민형이가 고른 옷. 연극이랑 정말 잘 어울리는 것 같아.”

“나도 그렇게 생각해.”

옷을 갈아입은 주희의 말에 서준도 동의했다. 서준이 대략적인 색과 모양을 알려주긴 했지만, 박민형이 찾아온 옷은 연극과 캐릭터에 찰떡같이 어울렸다.

“감사합니다!”

선배들의 칭찬에 감격한 박민형의 볼이 빨갛게 상기되었다. 귀여운 1학년의 모습에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게 거울팀이 마지막 점검을 하며 긴장을 푸는 사이, 6번 팀의 공연이 끝나고 박수 소리가 울려 퍼졌다.

막이 내려가고 이제 마지막 순서만이 남았다. 극장 안의 불이 켜지고 잠시 쉬는 시간을 가지는 사이 6번 팀의 무대가 정리되고 7번 팀의 무대가 만들어졌다.

“이쪽으로!”

“민형아! 이거 어디다 놓아야 해?”

“그거 이쪽이요!”

“여기?”

“네!”

배경팀 팀장과 1학년이 무대를 반으로 나눠 지휘하고 있었다.

벽에 붙은 장식 하나 스쳐 지나가지 않고 꼼꼼히 확인했다. 체크리스트를 확인하고 리허설 때 찍은 사진과 비교해 보던 박민형이 외쳤다.

“선배님! 끝났어요!”

“그래. 이쪽도 끝났어.”

할 일을 완벽하게 끝낸 배경팀 아이들이 웃으며 무대에서 내려갔다. 그곳에는 거울팀의 음악팀, 배우팀 아이들이 전부 모여 있었다.

“으. 이거 꼭 해야 하는 거야?”

배경팀 팀장이 몸서리를 쳤다.

“왜? 난 좋은데.”

음악팀 3학년이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저두요!”

“언제 이런 걸 해보겠어요!”

1, 2학년들도 눈을 빛냈다.

아이들의 반응에 제안자 서준이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연극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

서준의 손 위에 양주희의 손이, 강재한의 손, 박시영의 손, 전성민의 손이 올라갔다. 그리고 음악팀, 배경팀 아이들도 손을 뻗었다.

“다들 2학기 내내 고생했어.”

서준의 말에 아이들도 입을 열었다.

“멋진 연극 보여줘.”

“다들 깜짝 놀라게 만들어버려!”

“리허설대로만 해도 멋질 거예요!”

반짝이는 친구들과 후배들의 시선에 배우팀과 서준이 씨익 웃었다.

“맡겨둬.”

믿음직한 서준의 말에 거울팀 아이들이 키득키득 웃었다.

“하나, 둘……!”

“거울팀, 화이팅!”

* * *

무대를 감추고 있는 막은 아직 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아직 쉬는 시간임에도 이서준의 연극이라는 기대에 여울홀에는 기대가 담긴 침묵이 흘렀다.

1번 팀부터 6번 팀까지, 바로 직전 무대에 올랐던 아이들도 빈자리에 자리를 잡고 무대를 바라보았다. 6번 팀 아이들은 아직 옷도 갈아입지 않은 상태였다. 거울팀의 음악팀, 배경팀 아이들이 자리를 잡고 앉았다.

첫 무대이자 마지막 무대. 어쩌면 두 번 다시는 못 볼 무대였다.

최대만 감독과 우정한 감독, 최민성 피디는 막이 내려진 무대를 카메라 렌즈에 담았다. 이 기대감이 섞인 침묵마저 찍을 만한 가치가 있었다.

세 감독은 숨을 죽이고 심장 박동을 느리게 만들고 최대한 평정심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모두의 시선을 사로잡는 서준의 연기를 아는 만큼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무대 위의 열기를, 관객석의 마음을 그 어떤 동요도 없이 카메라에 담고 싶었다.

[이번 순서는 연기과 3학년 이서준, 양주희, 박시영, 전성민, 음악과 3학년 김채연…… 미술과 1학년 박민형이 꾸민 무대로, 소설 ‘거울’을 원작으로 한 연극입니다. 모두 박수 부탁드립니다.]

드디어.

커다란 박수 소리가 여울홀을 가득 채우고 천천히 막이 올랐다.

무대는 사람들에게 익숙한 병원으로 변해 있었다.

무대를 반으로 잘라 사용할 모양인지 무대의 오른쪽에만 조명이 켜져 있었다. 관객들의 시선이 오른쪽으로 향했다. 무대의 오른쪽은 환자들의 신청을 받고 대기하는 로비로 꾸며져 있었다.

환자들이 앉아서 대기할 수 있게 폭신한 소파들과 간호사가 서 있는 카운터가 있었다. 로비 카운터에는 간호사역의 박시영이 차트를 정리하고 있었다.

따르릉.

그때 전화가 왔다. 차트를 정리하던 간호사가 전화를 받고 무어라 말하는 시늉을 했지만,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잠시 후.

딸랑.

종소리가 들리고 카운터에 있던 간호사가 웃으며 무대 끝에서 나오는 사람을 반겼다.

“오셨어요? 선생님.”

하늘색 스프라이트 무늬의 셔츠에 재킷을 입고 있는 양주희가 웃으며 인사했다.

“네. 점심 드셨어요?”

“저야 금방 먹었죠. 아, 선생님. 진료실에 환자분이 기다리고 계세요.”

“아, 그래요?”

간호사의 말을 들은 의사가 고개를 끄덕이고 무대 중앙으로 향했다. 완전히 어둠에 잠긴 왼쪽 무대와 맞닿은 곳이었다.

양주희가 문을 여는 시늉을 하자 끼익,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무대 왼쪽에도 조명이 비쳤다.

드디어 보이는 왼쪽 무대에 관객들의 시선이 향했다.

무대 왼쪽은 의사의 책상과 모니터가 있는 진료실이었다. 보통 좁고 작은 의자만 있는 진료실과는 달리 무대 위 진료실에는 소파와 테이블이 놓여 있었다. 소파는 관객석에서 잘 보이도록 ┌ 모양으로 놓여 있었다.

관객석과 마주 보는 소파에는 하얀색의 보드라운 스웨터를 입은 남자가 고개를 약간 숙이고 앉아 있었다.

의사가 진료실 안쪽으로 발을 디디자 무대 오른쪽, 병원 로비의 조명이 꺼졌다. 관객들은 온전히 진료실에 집중했다.

인기척을 느꼈는지 남자가 고개를 들었다. 순한 얼굴의 청년이었다.

“늦어서 죄송해요. 점심시간이라.”

“아, 아닙니다.”

“잠시만요.”

자연스럽게 진료실 안으로 들어간 의사는 옷걸이에 재킷을 벗어두고 새하얀 의사 가운을 입었다. 책상 위에 놓아둔 청진기를 목에 걸고 소파 상석에 앉았다.

관객들은 조용히 소파에 앉은 양주희의 옆 모습과 이서준를 바라보았다.

‘이제 시작 부분이라서 그런가? 평범하네?’

의사는 소파 앞에 있는 테이블 위에 준비된 차트를 들고 가운 주머니에서 볼펜을 꺼내 들었다.

“반가워요. 전 정채원이라고 해요. 환자분 성함이?”

“안녕하세요. 김진우라고 합니다.”

“진우 씨라고 불러도 될까요?”

“네. 선생님.”

부드러운 목소리만큼 김진우는 순하게 웃었다. 약간 곱슬거리는 머리카락, 살짝 미소를 띤 표정이 김진우의 성격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았다. 편안한 분위기에 정채원도 미소를 지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정채원이 진료실 한쪽으로 가 찻잔 두 개를 들고 왔다.

“이건 요즘 선물 받은 차인데 향도 좋고 맛도 좋아요. 드셔 보실래요?”

“네. 감사합니다.”

정채원에게서 찻잔을 받아 든 김진우는 따뜻한 찻잔을 만지작거리다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저희 병원에 오셨다는 건…… 걱정거리가 있으신가요?”

“……네.”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던 김진우의 표정에 살짝 그늘이 졌다. 애써 웃고 있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정채원이 차를 마시며 상냥하게 물었다.

“힘드시지 않다면 저한테 이야기해 주실 수 있나요?”

김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이곳을 찾은 이유도 전문가의 도움을 받기 위해서였다. 웅크리듯 상체를 앞으로 숙여 두 손을 만지작거리던 김진우가 조금 주저하다 입을 열었다.

“요즘…… 저를 죽이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렇군요.”

잠시 텀을 두고 입을 연 정채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의 침묵을 느낀 김진우가 씁쓸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꼭 비를 맞은 강아지 같은 모습이었다.

“거짓말이 아닙니다. 선생님.”

김진우의 표정은 자신의 말을 믿지 않는 정채원을 책망하거나 원망하는 표정이 아니었다. 그저 마지막으로 찾아온 장소에서까지 이런 반응을 보게 된 게 조금 슬픈 표정이었다.

정채원의 눈빛이 조금 바뀌었다.

막무가내로 우기는 것이 아닌 김진우의 반응에 관심이 생긴 것이었다.

“진우 씨를 죽이려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가요?”

“두 사람은 잘 모르는 사람입니다.”

“두 사람은? 그럼 다른 사람이 또 있나요?”

“네. 그 사람은…… 누군지…… 어디 있는지 알고 있습니다.”

정채원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럼 경찰서에 신고하면 되지 않을까요? 전 정신과 의사라 진우 씨를 도와줄 수가 없어요.”

무겁게 한숨을 내쉰 김진우가 입술을 달싹거리다 겨우 말을 내뱉었다.

“접니다.”

“네?”

“……또 다른 제가…… 절 죽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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