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살부터 슈퍼스타-260화 (260/1,055)

0살부터 슈퍼스타 260화

졸업 공연 2주 전.

연극에 쓸 마지막 곡을 녹음하기 위해 음악팀이 여울 예중 녹음실로 모였다.

마음에 들지 않는 연주에 악보를 체크하던 음악팀 팀장과 3학년들은 지친 듯한 1, 2학년의 모습에 잠시 쉬는 시간을 가졌다.

각자의 악기를 조율하는 동안 누군가 말했다.

“거울, 해외 판매 시작했다면서요?”

“그래. 서준이 해외 팬들이 엄청 산다더라.”

“한국어판이랑 영어판이랑 둘 다 읽어본 사람이 후기 올렸던데 번역 잘했대.”

영어판 소설 ‘거울’이 해외 판매를 시작했다.

서준의 해외 팬들이 책을 사니 판매량이 올라갔고 판매량이 올라가니 순위에 들었다. 순위에 드니 일반인들도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국 소설이 해외에서 엄청 팔려나가고 있다는 소식이 기사로 나자 관심 없던 사람들도 한 번쯤 책을 검색해 보고는 했다.

9월에 그랬던 것처럼 12월에도 소설 ‘거울’은 불티나게 팔려나가고 있었다.

“요즘도 엄청 팔리고 있다던데. 출판사 엄청 바쁘겠네.”

“으. 그 많은 사람이 우리 연극 본다니까 떨려요.”

1학년의 말에 2학년과 3학년들도 부르르 몸을 떨었다. 아직 나가본 콩쿠르도 전국 단위 정도였는데 좀 있으면 제 연주를 전 세계에 들려주게 생겼다.

“녹음이라 다행이에요.”

“주희 선배 말대로 라이브였으면 큰일 날 뻔했어요.”

“우리가 이런데…… 연기과 애들은 엄청 떨리겠다.”

지금도 연습실에서 열심히 연습하고 있을 서준과 배우팀을 떠올린 아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우리도 녹음 시작하자.”

“네!”

음악팀 팀장의 말에 아이들이 씩씩하게 대답했다.

음악팀이 바쁘게 작업하고 있을 때, 배경&소품팀도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여울홀과 이어진 창고에 졸업 공연에 올라갈 소품과 물건들이 팀별로 나뉘어 있었다. ‘거울팀’에게 마련된 자리에 선 배경팀 팀장이 체크리스트를 들고 하나씩 체크했다.

“의상!”

“다 있어요!”

다섯 명의 배우가 입을 의상이 옷걸이에 걸려 있었다. 뜯어진 곳이 없는지 더러운 곳은 없는지 살펴본 1학년 박민형이 외쳤다.

“소품!”

“전부 있습니다!”

크기가 큰 소품부터 연극의 디테일을 살려줄 작은 소품까지. 빌리거나 필요한 건 직접 만든 2학년이 외쳤다.

“가구는?”

“다음 주에 보내준대.”

만들기 어렵고 학교에 없는 쓸 만한 가구들을 수소문해서 구한 3학년이 대답했다. 빈 곳 하나 없는 체크리스트. 완벽하게 마무리된 준비에 배경팀 팀장이 흐뭇하게 웃었다.

“이제 옮기는 거 연습하자. 서준이가 배치도 줬거든. 10분 내로 무대 위로 옮기려면 연습해야 할 거야.”

“네!”

졸업 공연 일주일 전.

공연하는 아이들은 오전, 오후 수업을 빠질 수 있게 되었다.

“내일부터 여울홀 개방한다니까 무대 위에서 연습할 수 있어. 팀별로 시간이 나뉘어서 그 시간밖에 못 하지만.”

서준의 말에 거울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연습실에서 연습하고 무대 위에선 리허설을 하면 되겠다.”

“리허설이라 떨리는데?”

“선생님한테 카메라 빌려서 녹화하고 모니터링하자.”

배우팀 아이들의 의견에 고개를 끄덕이던 서준이 시선을 돌려 음악팀과 배경팀을 바라보았다. 음악팀 팀장과 배경팀 팀장을 번갈아 보던 서준이 입을 열었다.

“조명이랑 배경음, 효과음 조절해 줄 사람이 필요한데.”

음악팀은 모든 작업을 끝냈고 배경팀은 졸업 공연 당일 무대를 꾸며야 하는 일이 남아 있었다. 그럼 배경팀 팀장은 무리.

“채연아, 네가 해줄래?”

“으. 자신은 없지만 해볼게.”

음악팀 팀장, 피아노 전공자 김채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연극을 보면서 라이브로 연주하는 것보다는 낫겠지. 배경팀 팀장이 김채연을 응원했다.

“내일부터 익숙해지면 당일에도 잘할 거야.”

“……익숙해지려나.”

그리고 다음 날.

연극 ‘거울’의 무대 위에서의 첫 리허설이 시작되었다.

의자에 앉아 고개를 숙이고 스포트라이트가 켜지기를 기다리고 있던 서준은 켜지지 않는 조명에 고개를 들었다.

무대 옆을 바라보니, 이제 정신을 차린 듯한 음악팀 팀장이 당황하는 모습이 보였다.

‘음. 채연이가 익숙해져서 타이밍을 맞출 수 있다면 좋겠지만 아니면 다른 방법도 생각해 놔야겠네.’

서준과 배우팀 아이들이 음악팀 팀장을 위로하고 있을 때, 모든 일을 끝내고 관객석에서 리허설을 구경하던 음악팀과 배경팀 말없이 소름 돋은 팔을 매만졌다.

아이들은 타이밍을 맞추지 못한 음악팀 팀장을 이해했다.

아니,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와. 어떻게 연습 때보다 더 잘하냐.”

배경팀 팀장의 말에 아이들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 * *

[12월 26일, 브라운블랙 15주년 콘서트 예정!]

[WNET, 브라운블랙 15주년 다큐멘터리 방송 예정!]

[내일 23일, 여울 예중 졸업 공연!]

[여울 예중 졸업 공연 너튜브 업로드는 언제?]

-오. 브블 벌써 15주년임?

=이서준이 16살이니까ㅎ

=ㅋㅋ이서준 나이로 알 수 있다니ㅋㅋ

-다큐멘터리에 이서준 나올 것 같다.

=22 15주년 기념이면 데뷔 때 이야기부터 나올 텐데 서준이가 안 나올 수가 없지.

-벌써 내일이 졸업 공연이라니!

=봉인되어 있던 책을 꺼낼 때가 왔다!

=일단 너튜브에 올라와야 읽지. 언제 올라오냐.

=지금까지 업로드된 거 날짜 보니까 일주일 안에는 올라오는 듯.

=너무 느려……!

-근데 편집 마음에 안 들어.

=22 확실히 연극이라서 카메라는 계속 고정된 상태임. 배우들 얼굴이 보이기는 하는데 드라마나 영화처럼 클로즈업은 없음.

=어쩔 수 없지ㅠㅠ

* * *

12월 23일. 졸업 공연 날.

특별초청 강의로 여울 예중의 관계자로 졸업 공연에 갈 수 있게 된 이지석이 박도훈의 차에 올랐다. 이지석의 손에는 겨울인데 활짝 핀 꽃다발이 들려 있었다.

“도훈아. 종호 형한테 갈 거야?”

“네.”

“형 빼고 가는 건 어때?”

“아하하하.”

이지석의 말은 가볍게 한 귀로 흘린 박도훈이 차를 운전했다. 김종호의 집으로 향하는 차에 어깨를 으쓱인 이지석이 입을 열었다.

“그거 알아? 여울 예중 졸업 공연 3일이래.”

“그래요?”

“첫날은 연기과의 연극, 둘째 날은 미술과의 전시회, 셋째 날은 음악과의 음악회라더라.”

“그건 몰랐네요.”

“종호 형한테 날짜, 내일로 알려줄까?”

“아하하하.”

-너 이 자식!

갑자기 들리는 김종호의 목소리에 이지석이 놀라 고개를 빼 들었다. 박도훈의 휴대폰이 스피커폰으로 작동 중이었다.

수신자는 [종호 삼촌].

“……언제?”

“방금요.”

“……많이 컸네. 우리 도훈이.”

휴대폰에서 흘러나오는 쩌렁쩌렁한 김종호의 목소리에 이지석은 귀를 막았다.

* * *

여울 예중에 학부모들과 관계자들이 하나둘 여울 예중의 여울홀로 모였다. 박도훈의 차가 관계자 주차장에 멈췄다. 세 개의 꽃다발을 차 안에 둔 세 배우가 내렸다.

“다진이는 언제 온대?”

이지석의 물음에 박도훈이 대답했다.

“지금 오고 있는 중이래요.”

“1시에 교문 닫는다니까 빨리 오라고 해야겠다.”

“네.”

주차장을 빠져나와 여울홀로 가려던 세 배우가 익숙한 얼굴들을 발견했다.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세 사람.

“최대만 감독님 아니야?”

“우정한 감독님, 최민성 피디님도 오셨네요?”

역, 이스케이프, 내의원의 감독들이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세 감독도 세 배우를 발견했다. 서로 웃으며 인사를 나누던 중 박도훈이 물었다.

“소은진 작가님도 특별 초청 강의하셨다고 들었는데 안 오셨어요?”

“아, 아까 아는 사람을 발견했다고 해서요.”

최민성 피디의 말대로 소은진 작가는 익숙한 얼굴을 보고 깜짝 놀라 뒤쫓아온 상태였다.

“……정시운 배우?”

이름이 불린 정시운 선생님은 ‘배우’라는 호칭에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서로 낯익은 얼굴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이내 활짝 웃었다.

“아, 소은진 작가님. 만나서 반갑습니다.”

“저야말로 정말 반가워요!”

“기사로 봤습니다. 작가님이 드라마 작가가 되셨을 줄이야. 드라마도 잘 보고 있습니다.”

[소설 ‘별을 기다리며’의 원작자, 내의원의 소은진 작가!]라는 기사를 읽었던 정시운이었다.

“저도 기사 봤어요. 미리내 예고 선생님이라고 봤었는데…….”

[드라마 ‘별을 기다리며’의 배우들은 지금?]라는 기사를 읽었던 소은진 작가였다. 사진은 없었지만, 드라마 자료화면이 남아 있어 얼굴을 알아볼 수 있었다.

“아, 졸업 공연 때는 사람들이 많이 와서 예고 선생님들이 도와주고는 합니다.”

“그렇구나. 저…… 이제 연기는 안 하세요?”

소은진 작가의 물음에 정시운이 웃었다.

“합니다. 작은 극단이긴 하지만 가끔 무대에 오르곤 하죠.”

“어떤 극단이죠? 꼭 보고 싶네요!”

그 옛날, 유일하게 가장 자신이 생각한 캐릭터와 똑 닮은 연기를 보여주었던 배우를 만난 원작자가 눈을 빛냈다.

* * *

“카메라를 말입니까?”

“네. 따로 정해진 사람이 없으면 제가 찍어도 될까요?”

우정한 감독의 말에 정시운이 볼을 긁적였다.

여울홀로 가는 통로에서 소은진 작가와 이야기를 하다 보니 세 감독과 세 배우와 마주쳤다. 선생님이라는 소개에 우정한 감독이 눈을 반짝였다.

“너튜브에 업로드된 졸업 공연 영상들을 봤습니다. 카메라를 세 대밖에 안 쓰시죠?”

너튜브에 올라온 졸업 공연 영상들은 정면, 오른쪽, 왼쪽에서 찍은, 클로즈업 등의 아무런 카메라 기교도 없이 정말 무대만 비추는 밋밋한 영상들이었다.

“네. 따로 영상을 담당하는 분이 없으셔서. 전체적인 무대만 찍고 배우들의 표정이나 자세한 움직임은 안 찍습니다.”

아마 그건 서준이 연기하는 이번 연극 무대도 똑같을 터였다.

정시운의 뒷말을 읽은 감독들과 배우들의 얼굴에 ‘그런 아까운 짓을……!’이란 생각이 떠올랐다.

정시운도 이번만큼은 인정했다. 분명 밋밋한 영상에서도 서준은 빛날 테지만 적절한 카메라 기교까지 포함된다면 더 멋진 장면이 나올 터였다.

우정한 감독은 여울 예중의 졸업 공연 영상들을 봤을 때부터 고민하던 말을 꺼내놓았다. 혼자 하기엔 조금 힘들겠지만 여긴 두 사람이 더 있었다.

“저희가 카메라를 잡으면 어떻겠습니까?”

“네?”

“정면, 오른쪽, 왼쪽. 딱 세 명이네요.”

우정한 감독이 정면에 자신을 가리키고 오른쪽에 최대만 감독을, 왼쪽에 최민성 피디를 가리켰다.

오호.

최대만 감독과 최민성 피디도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이지석과 박도훈, 김종호, 소은진도 잠깐 놀랐다가 괜찮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각자 스타일이 달라서 편집 때 힘들 테지만 알아서 잘할 터였다.

“그건…….”

고민하는 정시운의 모습에 최대만 감독이 얼른 우정한 감독을 도왔다.

“물론 다른 아이들 무대까지 전부 찍어드리겠습니다.”

다른 팀들까지 찍겠다는 최대만 감독의 말에 정시운은 다른 선생님들과 회의를 해보겠다고 말하며 자리를 떴다.

반쯤 넘어온 듯한 정시운의 태도에 감독들이 활짝 웃었다.

“저도 차라리 내가 카메라를 잡을까 생각했는데…… 우 감독님도 그렇게 생각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영상이 너무 정적이긴 했죠.”

속이 시원해진 최민성 피디가 문득 떠오른 것에 입을 열었다.

“근데 카메라 세 대로는 부족하지 않겠습니까? 우 감독님?”

영화라면 두 번 찍었을 테지만 이건 한 번밖에 하지 않는 연극이라, 풀샷과 클로즈업 샷을 동시에 찍을 수밖에 없었다.

카메라 하나는 풀샷, 하나는 클로즈업 샷을 찍어야 할 테니 적어도 2대. 장소가 정면, 오른쪽, 왼쪽 세 군데니 적어도 6대의 카메라가 필요했다.

우정한 감독이 어깨를 으쓱였다.

“차에 카메라가 있습니다. 적당한 크기에 가장 좋은 카메라로 가져왔죠.”

“저도 트렁크에 카메라 두 대가 있습니다.”

이미 서준을 찍을 생각이 가득한, 준비성이 투철한 두 영화감독의 말에 최민성 피디가 볼을 긁적였다.

“저만 안 가져왔나 보네요.”

“빌려드릴까요? 세 대 있거든요.”

“그럼 감사하죠!”

우정한 감독의 말에 최민성 피디가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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