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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259화 (259/1,055)

0살부터 슈퍼스타 259화

은하수센터 대기실.

“그럼 선배님! 먼저 가보겠습니다!”

“그래. 내일 공연도 있으니까 너무 마시지는 말고.”

“넵!”

박원경의 역을 맡아 열연한 배우 최찬영이 상기된 얼굴로 꾸벅 인사를 하고 대기실을 나섰다.

“마지막에 소름 돋았음. 너 장난 아니던데?”

“흐. 그래?”

“무대 연출도 대단하더라. 이번 연극 대박 나겠어.”

최찬영의 친구들인 듯 조금 열린 문틈 사이로 떠들썩한 목소리가 들렸다.

잔뜩 신이 난 목소리들에 김종호도 김종호의 매니저도 웃고 말았다.

“근데 이 녀석들은 왜 이렇게 안 와?”

“그러게요. 전화해 볼까요?”

“아니야. 좀 있으면 오겠지.”

잠시 투덜거리던 김종호는 폭신한 소파에 앉아 대본을 다시 읽으며 누군가를 기다렸다.

똑똑.

노크 소리가 들리고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오자 대본을 덮은 김종호가 씨익 미소를 지었다. 김종호의 매니저도 웃으며 대기실의 문을 열었다.

문 앞에는 반짝반짝 빛나는 두 배우와 연기는 잘하지만 인성은 별로인 배우 한 명이 서 있었다.

“종호 삼촌! 저희 왔어요!”

“오늘 연극 잘 봤어요.”

서준과 박도훈이 웃으며 김종호의 품에 꽃다발을 안겨주었다.

험상궂은 얼굴에 풍성한 꽃다발 두 개를 안고 있으니 언밸런스했지만 김종호는 마냥 기분이 좋았다.

“둘 다 고맙다.”

“저기, 형? 나도 왔다고? 안 보여?”

연기는 잘하지만 인성은 별로인 배우, 이지석이 눈앞에서 알짱거려도 김종호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이지석의 매니저, 윤성오가 익숙한 모습에 킬킬 웃다가 들고 있던 종이가방을 이지석에게 건넸다.

이지석이 웃으며 종이가방 안에 있던 것을 꺼냈다.

“종호 형이 10년 만에 무대에 오른 기쁜 날인데 샴페인이 빠질 수가 있나! 가게에서 제일 비싼 거로 사 왔어.”

오!

서준과 박도훈이 새삼스러운 눈빛으로, 하지만 이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투덕투덕 대도 오랜 시간을 친하게 지내는 데는 이유가 있는 법이었다.

“지석이 네가 이런 걸 사오다니 별일이네.”

김종호가 턱을 매만지며 말했다.

의아한 목소리였지만 슬쩍 올라간 입꼬리가 샴페인 선물이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저는 못 마시겠네요.”

미성년자인 서준이 어깨를 축 늘어뜨리는 시늉을 하자 이지석이 킬킬 웃으며 말했다.

“서준이도 마셔도 돼. 무알코올로 사 왔으니까.”

“……그럼 내 선물은 아니지 않냐?”

무알코올 샴페인이라니. 그건 그냥 탄산음료였다.

김종호가 그럼 그렇지, 하며 이지석을 바라보았다.

이지석이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어깨를 으쓱였다. 그러자 서준과 박도훈, 매니저들은 익숙한 두 배우의 모습에 웃음을 터뜨렸다.

“그럼 이제 저녁 먹으러 가자.”

“근데 저희랑 가도 되는 거예요? 공연 첫날이라서 회식 같은 거 하지 않아요?”

서준의 물음에 김종호는 성공적으로 첫 공연을 마치고 잔뜩 상기된 얼굴로 가족들과 지인들과 축하파티를 하러 떠나던 배우들의 모습을 떠올렸다. 꼭 한 번씩 대기실에 들러 김종호에게 인사를 하고 갔다.

“오늘은 첫날이라서 배우들 가족들이랑 지인들도 많이 왔거든. 첫날은 가족들이랑 좋은 시간을 보내야지. 회식이야 공연 마지막 날 해도 괜찮으니까.”

김종호의 말에 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어디로 갈까?”

“제가 예약해 둔 곳 있어요.”

이지석의 말에 박도훈이 손을 들었다.

배우들과 매니저들은 관객들이 있는 은하수센터 로비 쪽이 아니라 관계자들만 사용하는 통로로 이동했다.

“차 한 대로 가는 게 낫겠지?”

“그럼 제 차 타고 가요.”

“그럴까?”

배우들의 차 중 가장 큰 서준의 차에 세 배우가 올랐다.

이지석의 매니저, 윤성오는 함께 가기로 했고 박도훈과 김종호의 매니저는 이만 퇴근하기로 했다. 그리고 윤성오는 이지석의 차를 운전해서 따라오기로 했다.

안다호가 운전석에 올랐다.

마주 보고 앉은 네 배우가 안전벨트를 맸다.

꽃다발이 상하지 않게 조심스럽게 옆에 둔 김종호가 잠시 머뭇거리더니 크흠, 헛기침하고 물었다.

“그래서 연극은 어땠어?”

김종호의 질문에 세 배우는 기다렸다는 듯 입을 열었다.

“다들 잘하던데. 튀는 사람들도 없고 연극다운 대사 강약조절도 좋았어.”

“배우들 감정이 일정한 게 좋았어요. 1층 무대에서 과거를 재연하는 동안은 관객들의 시선이 1층 무대로 향하는데도 2층 재판장 분위기는 그대로였잖아요.”

“맞아요. 조금 딴생각을 할 법도 한데 다들 집중하는 게 보였어요. 그리고 분위기가 다른 비슷한 장면을 두 번씩 연기하는 게 쉽지는 않았을 텐데, 검사 측 주장이랑 변호사 측 주장 전부 일리 있게 연기하는 게 대단했어요.”

김종호의 말에 ‘1층, 2층으로 나눴던 무대가 대단했지.’ 하고 생각하고 있던 안다호가 이지석과 박도훈, 서준의 말을 듣고 웃었다.

아무래도 배우들이라서 그런지 한눈에 바로 알 수 있었던 무대보다 배우들의 연기가 더 신경 쓰인 모양이었다.

쏟아지는 칭찬에 김종호가 씨익 웃었다. 연기에 관해서는 진지한 세 배우였으니까 믿을 만한 평이었다.

“찬영이가 잘했지. 다른 배우들도 잘했어.”

말없이 서 있다 마지막에 박경원을 데리고 재판장을 벗어나는 청원 경찰, 혀를 차고 인상을 찌푸리거나 훌쩍훌쩍 우는 시늉을 하며 재판을 바라보는 배심원들.

서로의 의견을 강렬하게 내세우는 검사 측과 변호사 측, 최대한 위엄있는 표정으로 내려다보는 판사들.

그리고 곰곰이 기억을 떠올리며 긴장한 듯한 어조로 증언하는 증인들.

“다들 연습 열심히 했어.”

화제가 된다는 건 좋은 일이긴 하지만 상상 이상의 큰 화제가 된다는 건 부담감이 쌓이는 일이었다.

‘이서준 출연’이라는 오보로 세간에 더욱 화제가 된 연극에 배우들은 기쁘면서도 개막이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부담감이 쌓여갔다.

부담감을 이기기 위해선 더 열심히 연습할 수밖에 없었다.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밤낮없이 연습하는 배우들의 중심을 잡아준 건 김종호였다.

‘몇 년 전이라면 신경도 안 썼을 테지만…….’

김종호의 시선이 즐겁게 배심원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세 배우에게로 향했다.

연기를 사랑하는 배우들과 지내다 보니 마음이 조금 넓어진 것 같았다.

슬슬 다시 후배 배우들에게 조언해도 괜찮지 않을까.

이지석과 박도훈이 들었다면 기뻐했을 생각을 하며 김종호가 웃었다.

“보통 연극을 하면 제법 친해지긴 하는데 이번엔 다른 때보다 더 친해진 것 같아.”

열심히 연습하던 배심원팀 배우들을 떠올린 김종호가 흐뭇하게 웃으며 말하자 연기를 사랑하는 세 배우도 활짝 웃었다.

“형 마음에 드는 배우들이라……. 오랜만인데?”

“그러게요. 다음에 소개해 줘요, 종호 삼촌.”

“저도요. 저도 만나고 싶어요.”

“그래.”

김종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좋은 배우들이니 금방 친해질 터였다.

* * *

[연극 ‘배심원‘! 멋진 무대 구성에 감탄!]

[배우 김종호, 배우 최찬영, 멋진 연기력을 뽐내다!]

[재판장에서 내려다보는 과거! 연출가는 누구?]

[검사? 변호사? 누구의 말이 맞았나?]

[소설 ‘배심원‘의 작가, 송문석의 다른 소설 드라마화 예정?]

[연극 ‘배심원‘, 연일 매진 행렬!]

-와. 무대 장난 아니더라. 아예 무대 하나를 더 만들었던데.

=와…… 너 봤구나? 부럽다.

=지인찬스. 초대석이었다ㅎ

=여기서까지 인맥……. ㅠ 그래. 이야기나 더 해봐.

- _______ >> _검_ 판사 _변_

=ㅣ_ㅣ_ㅣ >>ㅣ_ㅣ거실ㅣ_ㅣ

=그냥 무대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열림. 이거 열릴 때 관객석에서 떠들썩했다ㅋㅋ

=문 닫혔다 열리면 병원, 거실, 야외로 확확 바뀜ㅋㅋ 장난 아니었음 ㅎ

-이 무대 연출 때문에 앞에 세 줄은 관객도 안 앉혔다더라.

=그렇게 내 자리가 사라졌구나!!

=목 아파도 내 목이 아플게요! 보고 싶다!

-연출도 대단했는데 배우들도 연기 잘함.

=김종호야 두말할 것 없고 주인공 맡은 최찬영도 잘하더라.

=마지막에 소름!

=소설에서는 변호사냐, 검사냐 애매하게 끝났는데 연극은 아예 검사 쪽으로 정하고 반전을 만든 모양.

-이거 방송 안 해주냐? ㅠ

* * *

방과 후.

거울의 연습을 시작하기 전, 서준은 거울의 대본과 무대 연출을 살펴보았다.

거울과 같이 소설이 원작인 연극 ‘배심원’을 보고 나니 바꾸고 싶은 부분이 조금 보였다.

하지만 잠시 고민하던 서준은 대본을 덮었다.

무대를 홀로 쓸 수 있는 게 아니라면 더 이상 바꿀 수 있는 부분은 없었다.

‘거울이 그런 내용도 아니고.’

그냥 계획했던 대로 하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연습을 시작하기 전, 음악팀 아이들과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양주희가 농담처럼 말했다.

“음악 말이야. 라이브로는 못하겠지?”

“절대 못 하지.”

음악팀 팀장을 맡은 음악과 3학년이 단호박 같은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졸업공연을 하는 여울홀은 무대와 관객석 사이에 공간이 있다. 오페라 공연처럼 무대의 앞에 곡을 연주할 악단이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었다.

주희의 의견은 그곳에 음악팀이 들어가 연극과 함께 생생한 배경음을 들려주자는 것이었다.

음악팀 아이들도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왜?”

옆에서 듣고 있던 강재한이 고개를 갸웃하자 음악팀 팀장이 허허 웃었다.

11월이 되고 대본 리딩이 아니라 진짜 연기 연습을 시작한 서준과 배우팀을 처음 마주했을 때가 떠올랐다.

“서준이가 연기를 너무 잘하잖아!”

음악팀과 배경팀 아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첫날의 그 광경을 잊지 못하고 있었다.

‘레디, 액션.’

서준의 한마디에 순식간에 빠져드는 서준과 배우팀 아이들.

익숙했던 연습실이 어느새 스포트라이트가 비치는 무대로 바뀌어 있었다.

아이들은 연주 연습하던 것도, 배경을 만들고 있던 것도 멈추고 멍하니 배우들을 바라보았다.

거친 숨소리, 흐르는 땀방울마저 들릴 만한 가까운 거리에서 연기하는 배우들.

연습인데도 진짜 무대 위에서 연기하는 것처럼 온 힘을 다하고 있었다.

이래서 사람들이 연극을 보러 가는구나, 하고 저절로 생각이 들 정도의 박력이었다.

‘……재들 연습하는 거 오늘 처음 아니야?‘

‘어째서 황금세대라고 하는지 알겠다.’

‘나 그거 듣고 엄청 웃었는데…… 이제 못 웃을 듯.’

주변을 흑백으로 만들며 멋진 색을 만들어 나가는 배우들을 보며 음악팀과 배경팀 아이들이 침을 꼴깍 삼켰었다.

“다른 애들도 너무 잘해! 만약에 라이브로 연주한다면 연극을 보면서 타이밍을 맞춰야 하는데 너희가 신경 쓰여서 지휘도 못 하고 넋 놓고 있을 것 같아.”

연극을 보며 타이밍을 맞춰서 지휘해야 하는 지휘자가 넋을 놓다니.

음악의 타이밍이 맞지 않으면 연극과 불협화음이 생길 터였다.

잠시 양주희의 말에 혹했던 서준은 라이브 연주의 좋은 점과 나쁜 점을 저울질하다 결론을 내렸다.

‘계획대로 녹음하자.’

그사이 배경팀과 음악과 아이들이 배우팀 아이들에게 물었다.

“연기과 애들은 매일같이 이런 연기를 보는 거야? 눈앞에서?”

“너희도 우리과랑 통합수업 듣잖아.”

전성민이 고개를 갸웃하자 3학년들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때도 넋 놓고 보고 있다고. 게다가 통합수업은 간단한 것만 하잖아.”

“너흰 잘도 익숙해지는구나.”

“하여튼 라이브로는 연주 못 함. 절대 못 함.”

격렬한 아이들의 반응에 양주희가 두 손을 들었다.

“농담이었어.”

서준과 아이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아, 그러고 보니 오늘 결과 나왔지? 다들 합격 축하해. 우리 팀은 다 붙었네!”

“축하해요!”

박시영의 말에 1, 2학년 아이들이 박수를 치자 음악과, 미술과 3학년들이 활짝 웃었다.

거울팀 3학년 전원 미리내 예고 합격.

어마어마한 결과에 서준을 보는 선생님들의 시선이 묘해졌다.

“연기과랑 바이올린은 이해하는데…….”

“미술과랑 다른 악기들은 어떻게 안 거니?”

서준은 그저 자신이 듣고 보기에 가장 ‘거울’과 어울리는 아이들을 선택한 것밖에 없었다.

‘다들 합격할 줄은 몰랐지.’

아이들이 3학년들을 축하하고 있을 때, 오늘 수업이 늦게 마친 미술과 1학년 박민형이 도착했다.

“늦어서 죄송해요!”

“아냐, 괜찮아.”

거울팀 아이들이 모두 모이자 서준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오늘 연습 시작하자.”

이제 졸업공연까지 4주도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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