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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258화 (258/1,055)

0살부터 슈퍼스타 258화

여울 예중 연기과 3학년 40명 중 21명이 미리내 예고에 합격했다. 생각보다 많은 합격 인원에 여울 예중 선생님들도 놀라워했다.

“같은 재단 소속이라도 가산점은 하나도 없는데 대단하네요.”

“게다가 일반 고등학교로 진로를 바꾼 애들도 있고 배우가 아니라 제작 쪽으로 방향을 튼 아이들도 있잖아요.”

각자의 사정은 다양하다.

미리내 예고에 지원서를 내지 않은 아이 중에는 서준이나 다른 애들의 재능이 두려워 떠나간 아이들도 있었고 음악과나 미술과 수업에 흥미가 생겨 진로를 바꾼 아이들도 있었다.

“그런 애들을 빼면 합격률은 더 올라가겠네요.”

“떨어진 애들도 못 하는 애들이 아닌데…….”

“그만큼 재능 있는 중3 애들이 지원했다는 거겠죠.”

선생님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전국 중3 아역 배우들 중 탑 40명 중 21명이 여울 예중 아이들이란 이야기였다.

* * *

“주경이랑 재한이랑 지호랑 주희도 합격했어. 같이 졸업 공연 준비하는 성민이랑 시영이도 합격했고.”

“그래? 잘됐네.”

“이제 음악과랑 미술과 애들도 입시 끝나서 이제 본격적으로 준비하려고. 으. 엄청 재미있을 것 같아!”

“학교 연습실은 몇 시까지 빌릴 수 있는데?”

서준과 부부는 거실에서 사과를 먹으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늘 김종호가 연극 ‘배심원’을 홍보하기 위해 촬영한 토크쇼가 방송된다고 했다.

“시작하나 보다.”

아버지 역의 김종호와 박경원 역의 최찬영, 그리고 변호사 역과 검사 역의 배우가 자리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배우들에게 연극 ‘배심원’의 출연 계기와 연습 상황에 관해 묻고 떠들던 MC가 입을 열었다.

“재미있는 통계가 있습니다.”

큐카드를 넘겨보던 MC가 웃으며 말했다.

“올해 하반기 독서 인구가 부쩍 늘었다는 사실, 아시나요? 특히 ‘배심원’과 ‘거울’의 판매량이 폭발적으로 늘었답니다. 인터넷소설 ‘별을 기다리며’도 전자책이 엄청 팔리고 있다네요.”

왠지 이유를 알 것 같아 김종호와 배우들이, 그리고 텔레비전으로 보고 있던 서준과 부부가 웃음을 터뜨렸다.

[부쩍 는 독서 인구! 원인은?]

[거울, 배심원 사러 가는 김에 다른 책도!]

[동네 서점부터 대형서점까지! 서점 나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출판사와 서점들! 이번 달 이벤트를 알아보자!]

-나도 이서준 덕분에 올해 책 좀 읽었다.

=22 작년엔 한 번도 안 갔던 서점을 엄청 갔어.

-거울 사러 가는 김에 다른 책도 사고ㅋ

-배심원 재미있더라.

=별을 기다리며도 괜찮던데?

=22 유치하긴 한데 밤에 읽으면 울음바다ㅋㅋ

=거울은?

=아무도 안 봤을걸. 연극 보고 본다고ㅋㅋ

=진짜 신기함ㅋㅋ 왜 사놓고 보질 못하니!

-난 아직 거울 안 샀음. 사면 궁금해서 읽을 것 같아서.

=22 나도.

=그런 사람들도 꽤 있는 듯. 그래도 12월에는 사야 할걸? 졸업 공연 가까워지면 한꺼번에 품절되는 거 아님?

=출판사도 대비하고 있겠지.

-독서장려정책 필요 없고 그냥 이서준이 한 달에 한 번씩 2분 영상만 올려주면 될 듯.

=ㅋㅋ 진짜 다른 홍보도 필요 없음ㅋㅋ

-하여튼 연말까지는 출판사랑 서점은 이서준 특수임ㅋㅋ

* * *

여울 예중 거울팀이 열심히 연습하고 있던 11월 중순.

은하수센터에서 연극 ‘배심원’이 개막했다.

연극 ‘배심원’ 첫날은 배우들과 관계자들의 지인들, 그리고 일반인들이 관람할 예정이었다.

“초대석 입구는 이쪽입니다.”

직원의 목소리에 배우들과 관계자들의 지인들이 발걸음을 옮겼다.

김종호에게 초대권을 받은 서준과 이지석, 박도훈도 극장 안으로 향했다. 세 배우의 매니저들도 그 뒤를 따랐다.

“서준아. 꽃다발 사 왔어?”

“차 안에 있어요. 연극 끝나고 가지고 올 거예요. 도훈이 형은요?”

“나도 차에 있어. 연극 볼 때 불편하니까.”

박도훈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서준이 극장 안으로 발을 디뎠다. 서준과 박도훈을 따라가던 이지석이 고개를 갸웃했다.

“서준아. 왜 나한텐 안 물어봐?”

“지석이 형은 안 사올 것 같아서요. 그렇죠, 도훈이 형?”

“그래. 형이 종호 삼촌한테 꽃다발을 사 오다니…….”

상상도 되지 않는 풍경에 서준과 박도훈이 키득키득 웃었다. 지금이라도 사러 가야 하나, 이지석이 고민했다.

작게 웃던 서준이 관객석을 바라보다 고개를 갸웃했다.

‘어라?’

극장 안으로 들어가 보니 무대와 가까운 관객석의 세 줄은 앉을 수 없게 되어 있었고 그 뒤부터 몇 줄은 초대석, 초대석 뒤가 일반인이었다. 특이한 상황에 고개를 갸웃거린 서준은 이내 초대권을 꺼내 좌석을 확인했다.

“지석이 형, 도훈이 형. 이쪽이에요.”

서준과 두 배우가 무대가 가장 잘 보이는 초대석 정중앙에 앉았다. 배우들의 뒷자리에 배우들의 매니저들이 앉았다.

“자리는 괜찮네.”

“근데 왜 앞자리는 안 쓰는 걸까요?”

“글쎄. 여기까지 쓰려고 그려나? 가끔 관객석에서도 공연하는 연극도 있으니까.”

“근데 배심원은 그런 내용이 아니었는데…….”

서준의 물음에 이지석도 잘 모르는지 고개를 갸웃했다. 어째서일까, 고민하는 사이 초대석이 가득 차고 일반 관객들도 하나둘 들어왔다.

빈자리 없이 가득한 관객석을 둘러보던 박도훈이 웃으며 말했다.

“서준이 덕분에 홍보가 잘돼서 매진행렬이래.”

서준과 이지석도 웃었다.

“저도 종호 삼촌한테 들었어요. 연장공연도 생각하고 있다던데…….”

“그럴 의도는 없었겠지만 노이즈 마켓팅이 제대로 된 거지.”

세 배우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초대석에 앉은 배우들의 지인들과 관계자들의 지인들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했다. 모자와 마스크로 가렸지만 이지석과 박도훈이라는 걸 알아볼 수가 있었다. 그리고 또 한 명. 왜인지 한눈에 알아볼 수는 없었지만 이지석과 박도훈이 있다는 걸 알면 알아챌 수밖에 없는 배우.

“헐. 이서준.”

“야, 김수한. 서준이 왔어.”

친구들의 말에 고개를 쭉 빼고 친구들이 가리키는 방향을 바라보던 김수한이 삐이- 울리는 시작음에 아쉬운 얼굴로 무대를 바라보았다.

* * *

새까만 천막이 천천히 위로 올라갔다.

“오.”

“와아.”

막이 올라가고 보이는 무대에 서준과 이지석, 박도훈이 감탄했다.

연극 ‘배심원’의 무대 구성은 특이했다.

마치 무대 위에 무대를 하나 더 만든 것처럼 무대가 높았다.

이지석이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래서 앞에 세 줄은 안 쓰는 모양이네. 무대가 높아졌으니 앞좌석에 앉으면 고개를 들어야 하니까.”

2층 무대는 재판장으로 꾸며져 있었다.

소설 속 주인공이 앉아 있던 배심원석은 가장 왼쪽에 있었고 9명의 배심원이 앉아 있었다. 성별과 나이대도 전부 달랐다. 검사석이 그 옆에 있었고 판사석은 무대 정중앙에 변호사석은 오른쪽에 있었다.

배심원을 읽어본 사람들이 고개를 갸웃했다. 배심원은 재판장과 검사 측과 변호사 측이 상상하는 과거 재현을 오가는 소설이었다.

“근데 집이랑 병원 같은 장면은 안 나오고 재판장만 나오는 건가?”

“그러게요.”

서준과 두 배우가 고개를 갸웃할 때 판사의 등장으로 재판이 시작되었다.

판사석 앞에 나선 검사 측이 사건 개요를 말하고 물러나자 재판장으로 꾸며진 2층 무대 아래, 단순한 단처럼 보였던 벽의 앞부분이 양쪽으로 갈라져 열렸다.

오!

서준과 두 배우가 눈을 빛내며 감탄했다. 다른 관객들도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1층 무대가 열리자 평범한 집의 거실이 보였다. 앞의 문이 열리면 2층 무대의 바닥도 함께 열리는 것인지, 2층 무대 중앙이 뚫려 있었다.

왼쪽의 검사석, 중앙의 판사석, 오른쪽의 변호사석.

마치 재판장에서 거실을 내려다보는 것 같았다.

“대단한데?”

“그러게요. 이러면 다른 장소도 쉽게 만들 수 있겠어요.”

피의자석에 앉아 있던 박경원이 일어나서 뒤로 걸어갔다. 변호사석 뒤쪽에 1층 무대로 향하는 계단이 설치된 것 같았다. 그사이 옷을 갈아입은 듯 피의자 옷을 입고 있던 박경원은 평상복을 입고 있었다.

“와.”

박경원의 아버지 역인 김종호가 나왔다.

술에 취한 듯 벌건 빛이 도는 일그러진 얼굴과 사나운 분위기가 극장을 가득 채웠다. 무대연출을 보며 감탄만 하던 서준과 두 배우가 입을 다물고 배우들의 연기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박경원은 아버지와 싸우다 검사 측의 말대로 아버지를 머뭇거림도 없이 찌른다. 새빨간 피가 튀고 아버지가 죽어가고 1층 무대의 문이 닫혔다.

무대 중앙에 선 변호사가 주인공을 변호한다. 다시 1층 무대의 문이 열리고 이번엔 박경원의 실수로 아버지가 죽는다.

그 모습을 배심원과 검사, 판사, 변호사가 2층 무대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었다.

“기껏해야 옆쪽에 무대를 만들 거라고 생각했는데…….”

“연출가가 대단한걸.”

물 흐르듯이 이어지는 재판 과정과 과거 재현에 관객들도 빠져들었다. 검사와 변호사의 말에 바뀌는 상황을 그대로 재현하는 모습에 감탄만 나왔다.

증인들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중요한 이야기는 어김없이 1층 무대의 문이 열리고 증인과 박경원 또는 아버지의 모습이 보였다.

2층 무대는 재판장.

1층 무대는 과거 재현.

어지러울 수도 있는 구성이었지만 적절한 각색과 배우들의 멋진 연기는 보는 사람들까지도 사건의 진실을 궁리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서준의 눈이 배심원들에게로 향했다.

책에서는 가장 중요한 역할이었지만 관객들이 배심원 자체가 되어버린 턱에 가장 비중이 적은 역할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배심원 역을 맡은 배우들은 열심히 연기하고 있었다.

박원경은 소설처럼 모든 질문에 순순히 대답했다. 자신에게 불리한 내용도 유리한 내용도 모두. 검사와 변호사가 마지막 변론을 했다.

“피의자는 철저한 계획 살인을 저질렀습니다!”

“이번 사건은 불행한 사고일 뿐입니다!”

두 사람의 커다란 목소리가 극장을 울렸다. 관객들도 저마다 검사, 변호사 측의 의견에 고개를 끄덕였다.

땅! 땅! 땅!

배심원들의 의견이 전해지고 판사가 입을 열었다. 판사는 변호사 측의 손을 들어주었다. 분한 표정의 검사 측과 기쁜 변호사 측의 모습이 대비됐다.

재판이 끝나고 변호사석 옆쪽에 마련된 문으로 나가려던 박경원이 관객석을 바라보며 말했다.

“왜 우는 거지?”

그 한마디에는 제 계획이 만족스럽게 끝난 서늘한 기쁨이 가득했다.

제 계획에 놀아난 사람들의 비웃고 있는 박경원의 모습에 관객들은 사실은 검사 측이 맞았다는 사실에 침음성을 내뱉었다.

‘음.’

아마도 연출가 아니면 배우는 주희와 같은 똑똑하게 미친놈으로 해석한 모양이었다. 자신의 해석과는 달랐지만 멋진 작품이었기에 서준은 있는 힘껏 박수를 보냈다.

짝짝짝!

눈을 뗄 수 없었던 검사와 변호사의 싸움과 분위기가 다른 두 가지 과거를 재현했던 김종호와 최찬영의 연기. 열연을 보여준 배우들에게 커다란 박수가 쏟아졌다.

이지석과 박도훈도 만족스럽게 웃으며 박수를 쳤다.

“재밌네. 각색도 잘했고.”

“네. 책과는 다른 재미가 있네요.”

“그럼 종호 삼촌한테 꽃다발 드리러 가요!”

서준의 말에 이지석과 박도훈이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연극 ‘배심원’을 보러 온 소설 ‘배심원’의 작가, 송문석이 은하수센터 로비 옆에 마련된 작은 테이블에 앉았다. 송문석 작가와 함께 연극을 보러 온 출판사 직원이 물었다.

“작가님. 어떠셨어요?”

“재밌었습니다. 중요한 부분도 잘 살려두고 무대 연출도 좋았어요. 배우들은 두말할 것도 없었습니다.”

“그렇죠? 특히 김종호 배우랑 최찬영 배우가 잘하더라고요. 마지막 대사에 소름이 돋더라니까요.”

아, 마지막 대사.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던 송문석 작가의 얼굴이 일순 흐려졌다.

“이서준 배우가 출연한다는 오보 때문이긴 하지만 매진 행렬에 연장공연 문의까지. 어쩌면 영화화될지도 모르겠어요. 아, 송 작가님, 잠시 전화 좀 받고 오겠습니다.”

“네.”

생각지도 않은 흥행에 계속 들떠 있던 출판사 직원이 떠나고 송문석 작가는 주머니에서 동전을 꺼내 자판기에 집어넣었다. 답답해진 속에 사이다를 넣듯 시원한 음료수라도 마실 생각이었다.

캔사이다를 딴 송문석 작가가 의자에 앉았다.

그때였다.

“마지막 대사?”

“어. 나랑은 좀 해석이 다른 것 같아서.”

“그래? 네 해석은 뭔데?”

사이다를 마시려던 송문석 작가의 손이 멈추었다. 들려오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음. 감정 없는 미친놈? 박경원은 아예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했어.”

제 속을 들여다본 듯한 해석에 송문석 작가가 손을 떨었다.

“어째서 사람들이 울고 웃는 건지 이해를 못 해서 검사 측 질문도 다 솔직하게 대답하고 어떤 판결이 떨어져도 상관 안 했을걸. 마지막 대사도 진짜 왜 우는 건지 이해가 안 가서 묻는 걸 테고.”

송문석 작가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테이블 위로 탄산이 가득한 사이다가 쏟아졌다. 전화를 받고 돌아오던 출판사 직원이 놀라 달려왔다. 목소리의 주인공을 찾으려던 송문석 작가를 붙잡았다.

“작가님! 옷이!”

“자, 잠시만요.”

“일단 이걸로 닦…… 송 작가님?!”

송문석 작가가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달려갔지만, 연극이 끝난 후의 로비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남자도 여자도 아이도 어른도. 은하수센터 로비를 이곳저곳을 빠르게 살펴보던 송문석 작가가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출판사 직원이 어리둥절해하며 송문석 작가를 따라 나왔다.

“무슨 일 있으세요? 송 작가님?”

“아, 아니요. 별거 아닙니다.”

“다행이네요. 아, 방금 출판사에서 전화가 왔는데 송 작가님 작품을 드라마로 제작하고 싶다고…….”

출판사 직원의 목소리가 흩어졌다. 송문석 작가는 미련 가득한 눈빛으로 로비를 둘러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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