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257화
이서준의 연기는 특별하다.
마치 정말로 있는 캐릭터를 데려온 듯 ‘이서준’은 사라지고 ‘배역’만 남는다.
성녕대군도 그랬고 진 나트라도 그랬으며 그레이 바이니도 그랬다. 이서준이 아니라 고주원이었고 단종이었다.
그렇게 완벽한 연기였기에 사람들은 ‘이서준’과 위의 캐릭터들을 구분했다.
영화를 본 지 얼마 되지 않아 감정이 남아 있을 땐 이서준의 위에 배역들을 입혀 보기도 했지만 ‘이서준’이 지구를 파괴한다거나 ‘이서준’이 그레이 바이니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위의 캐릭터들은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였으니까.
하지만 만약.
이서준이 ‘자기 또래의 학생’을 연기하면 사람들은 배역과 이서준을 구분할 수 있을까.
서준 본인은 물론이고 알고 있는 지인들은 배역과 이서준의 차이를 알고 있겠지만, 심사를 보던 세 선생님은 아니었다.
진짜 사랑을 하는 듯한 눈빛, 상처 입은 표정, 절절한 목소리.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서준의 연기에 선생님들은 감탄했다.
“……연기겠죠?”
“연기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연기든, 진짜를 연기로 만든 거든 진짜 잘하네요. 숨도 안 쉬고 본 것 같습니다.”
자유연기가 끝나고 바로 점수를 매겼던 541번 김하운 때와는 달리 선생님들은 서준의 연기를 곱씹고 있었다.
“아, 이럴 때가 아니죠.”
“다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난 선생님들은 자리를 정리하고 교무실 옆 회의실로 향했다. 회의실에는 연기과 선생님들이 앉아 있었다.
“오셨네요!”
“얼른 보죠!”
카메라를 프로젝트 빔에 연결하는 사이 한 선생님이 심사를 본 세 선생님에게 물었다.
“어떠셨어요?”
“대단했어요. 실제로 보니까 박력부터가 다르던데요.”
“오. 어떤 연기였는데요?”
“직접 보시는 게 빠를 거예요.”
이미 알고 있는 세 선생님은 여유롭게 후후 웃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프로젝트 빔에서 빛이 나오고 새하얀 스크린 가득 텅 빈 시험장이 보였다. 곧 문을 열고 이서준이 들어왔다. 정시운이 훌쩍 자란 제자의 모습에 흐뭇하게 웃었다.
이서준은 자기소개를 한 후 자유연기를 시작했다.
순식간에 변하는 서준의 분위기에 정시운이 눈을 반짝였다. 학생이 학생 연기를 하면 제 모습을 반영해서 연기하고는 하는데 서준은 완벽하게 ‘배역’이 되어 있었다.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도 상처 입은 듯한 눈빛으로 카메라를 주시하는 소년의 눈빛에 괜히 선생님들의 마음이 찡해졌다. 몇몇 선생님들을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풋풋한 소년의 이룰 수 없는 첫사랑은 보기만 해도 짠했다.
서준의 연기가 끝나고 영상이 꺼졌다.
넋을 놓고 보고 있던 선생님들이 정신을 차렸다.
“……잘하네요.”
그 말이 가장 먼저 튀어나왔다.
“근데…… 진짜 좋아하는 애를 떠올리고 연기한 게 아닐까요?”
“저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다른 캐릭터들이랑 다르게 분위기 변화가 크지 않아서 그런 걸까요?”
“그래요? 전 시작할 때 분위기가 확 변하는 것 같던데?”
“역할이 학생이라서 그래요.”
정시운의 목소리에 선생님들의 시선이 모였다.
“학생이요?”
“네. 예를 들면 이런 겁니다.”
정시운이 말을 이었다.
“서준이가 파란색이라고 생각해 봅시다. 진 나트라는 검은색, 윌리엄은 노란색, 단종은 초록색, 성녕대군은 연두색. 서준이는 연기할 때마다 이렇게 색을 확확 바꾸고 작품에 자신의 색을 칠하죠.”
오호.
이해하기 쉬운 비유에 연기과 선생님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이번 ‘최은율’의 연기는 파란색과 아주 비슷한 색인 겁니다. 하늘색이나 남색 정도로. 아니면 더 비슷한 색…….”
정시운이 휴대폰을 꺼내 검색했다.
“미드나잇 블루, 세룰리안 블루, 로얄 블루, 코발트 블루…… 종류도 많네요. 하여튼 ‘최은율’이란 캐릭터의 색은 ‘파란색’과 닮아서 ‘이서준’과 비슷해 보이는 거죠.”
“그럼 앞으로도 ‘파란색’과 비슷한 연기를 하면, 그러니까 서준이가 ‘배우’나 ‘학생’ 같은 역할을 맡으면 사람들이 착각하지 않을까요?”
지금은 거의 그렇지 않지만, 예전에는 악역을 연기한 배우를 진심으로 나쁘게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것도 ‘이미지의 고정’이었다.
정시운이 고개를 저었다.
“디자이너들이 어떻게 색을 잘 구분할 수 있는 건지 생각해 보시면 됩니다. 익숙해지는 거죠. 미드나잇 블루에 익숙해지면 파란색과 구분할 수 있게 될 겁니다. 이 영상이 너무 짧아서 그렇지 10분만 더 봐도 구분이 될 거예요. 서준이가 정말 완벽하게 연기를 해서 확실히 다르다는 걸 쉽게 알 수 있거든요.”
“그건 그래요.”
심사를 봤던 세 선생님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영상을 보니 바로 직전의 서준과 연기하는 서준의 모습은 달랐다. 당시 서준이 좋아하는 사람이 있나, 하고 놀랐던 게 이상할 정도로 연기하는 서준은 ‘소년’ 그 자체였다.
“게다가 이서준의 연기를 한 번만 볼 사람들은 없겠죠. 몇 번만 봐도 확실히 구분할 겁니다. 둔감한 사람들은 더 봐야 하겠지만요.”
정시운의 말에 다들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2학년 선생님이 물었다.
“근데 최은율이라니, 이 작품 아십니까?”
“아. 이거 MBS에서 한 청소년 드라마예요. 아마 인터넷소설이 원작이었을 겁니다.”
“오. 그래요?”
“네. 서준이 연기한 ‘최은율’을 맡은 배우가 연기를 못해서 중간에 대본이 수정되다가 결국 졸작으로 끝났지만 말입니다. 수정 전 대본은 어떻게 구했는지 대단하네요. 코코아엔터가 온갖 대본을 쓸어담는다는 소문은 들었는데 진짠가 봅니다.”
연기과 선생님들이 고개를 갸웃했다. 망한 드라마라고 하더니 정시운은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어떻게 그렇게 잘 아세요?”
한 선생님의 물음에 정시운이 빙그레 웃었다.
“제가 남주인공이었거든요.”
* * *
[배우 이서준, 미리내 예고 합격!]
[미리내 예고 합격자 발표! 그래서 합격생 실기 영상은 언제?]
[미리내 예고 실기 영상, 내일 업로드 예정!]
[실기 영상, 오늘 오후 6시 업로드 예정!]
-왔다!!
-실기 영상! 실기 영상!
-안돼!! 오늘 야근이라고!!
=……오늘 금요일인데? 불금인데ㅠ
-왜 아무도 합격엔 신경을 안 쓰는 거지?
=? 이서준이 떨어질 리가 없잖아?
=22 다른 건 약간 의심할 수 있지만 이건 연기라고? 어떻게 이서준이 떨어져?
-서준아! 합격 축하해!!
-이번에는 무슨 연기 했을까?
=짐작도 안 됨ㅋㅋ
=여울 예중 실기도 10년 전 영화였잖아? 이것도 꽤 옛날 거 아니려나?
=뭐가 됐든 기다린다!
금요일 오후 6시가 되자, 너튜브에 미리내 예고 합격생들의 실기 영상이 업로드되었다.
[541번, 김하운]
[542번, 이서준]
수험번호순인지 서준의 영상은 가장 마지막에 있었다.
이번에는 어떤 연기를 보여줄까. 사람들은 들뜬 얼굴로 재생버튼을 클릭했다.
* * *
쿵!
방 안에서 들려오는 큰 소리에 보조작가가 놀라 벌컥 문을 열었다. 내의원 집필 이후 스타작가로서 이름을 날리고 있는 소은진 작가가 책상에 머리를 박고 있었다.
“소 작가님!? 왜 그러세요? 어디 아프세요? 119, 119 부를까요?!”
“괜, 괜찮아…….”
“괜찮은 게 전혀 아니신데요?! 아까까지만 해도 서준이 실기 영상 보면서 소재 찾을 거라고 신나 보이시더니 10분도 안 지났는데 이렇게 초췌해지셨어요?!”
난리가 난 보조작가의 모습도 눈에 들어오지 않은 소은진 작가는 속으로 눈물을 흘렸다.
‘여기서 이걸 보게 될 줄이야……!’
고등학생 때 주위 친구들이 너도나도 읽고 적기에 소은진도 장난 반 진심 반, 인터넷에 올렸던 소설. 인기를 얻고 출간이 되고 다시 인기를 얻어 드라마화까지 된,
인터넷소설 [별을 기다리며].
가장 애정했던 ‘최은율’을 시작으로 드라마가 엉망진창이 되는 모습을 원작자이자 당시 고3이었던 소은진은 그저 멍하니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다. 그 울분이 계기가 되어 소은진은 드라마 작가가 되었다.
‘별을 기다리며’는 소은진 작가의 첫 작품이며 독자나 다른 사람들은 하나도 생각하지 않고 가장 신나게 적었던 작품이었지만, 그랬기에 더 문제였다.
‘흑역사라고!’
속으로 울부짖은 소은진 작가가 다시 고개를 올려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이마가 붉게 변해 있어 보조작가가 다시 난리를 쳤지만 소은진 작가는 마우스를 움직일 뿐이었다.
‘근데 최은율이 너무 최은율이야……!’
머릿속으로만 떠올렸던 최은율이 정말로 나타난 것 같았다. 재생버튼을 누르자 모니터 속 서준이 움직였다. 스피커에서 최은율의 목소리가 들리고 보조작가와 소은진 작가는 서준의 연기에 빠져들었다.
“……작가님.”
“……응?”
“이거 무슨 작품인지 아세요?”
방울방울 눈물을 흘리고 있는 최은율에게 반해버린 듯, 눈을 반짝이는 보조작가의 모습에 소은진 작가는 이마를 짚었다.
‘이런 사람이 한둘이 아니겠지.’
그 사람들이 드라마를 찾고, 원작 소설을 찾는다고 생각하니 원작자, 소은진은 기쁘면서도 제 일기장을 세상에 내놓는 듯한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게다가 그 원인이 슈퍼스타 이서준이라면 여파는 어마어마할 것이 분명했다.
‘서준아아!’
* * *
사방이 서준의 실기 영상으로 떠들썩한데 우울한 곳이 있었다.
11월.
대학교 입시전쟁을 치르는 고3들이었다.
“아, 서준이 실기 영상 떴어.”
쉬는 시간.
휴대폰을 들고 머뭇거리던 친구, 임예나의 말에 송유정이 고개를 갸웃했다.
“보면 되잖아? 2분도 안 되지 않나?”
“계속 돌려보게 되니까 그러지. 수능이 이제 2주도 안 남았는데 지금 보면 질릴 때까지 보고 말 거야. 근데 안 질리니까 문제지.”
너튜브에 들어가 이서준의 영상을 누르고, 이제 재생버튼만 누르면 된다. 임예나가 손가를 댈 듯 말 듯 움직이며 끙끙 앓았다.
“그래?”
담담한 송유정의 말에 임예나가 고개를 갸웃했다.
“유정이 넌 서준이 안 좋아해?”
“아니, 좋아하는데…….”
송유정이 볼을 긁적였다.
“음. 작품도 재미있어서 이서준이 나온 건 꼭 보고 상 받으면 기쁘긴 한데 너무 유명해서 멀게 느껴진달까?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 같은 느낌? 게다가 되게 어렸을 때부터 계속 봐서 익숙한 느낌도 있고 동생 같은 느낌도 들고. 말로는 표현하기 힘드네.”
“그런 사람들도 있긴 하지.”
대다수의 사람이 이서준을 좋아하지만, 모두가 열성적인 팬은 아니었다. N차를 뛰는 사람도 있고 한 번만 보는 사람도 있으니까.
개인의 취향을 존중하는 임예나가 눈을 반짝이며 송유정에게 휴대폰을 들이밀었다.
“그럼 이거 보고 감상 좀 말해주라! 스포일러는 빼고!”
“그렇게까지 해야겠어?”
“응응!”
“……그래. 알았어.”
미래의 송유정은 할 수만 있다면 임예나의 휴대폰을 받아 들고 있는 지금의 송유정의 멱살을 잡았으리라. 지금 보면 안 된다고, 수능 끝나고 보라고!
그런 미래의 일은 꿈에도 모른 채 송유정은 활짝 웃고 있는 임예나에게서 이어폰과 휴대폰을 받아 들었다. 이어폰을 낀 송유정이 재생버튼을 눌렀다.
-유정아.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태연하려고 애쓰는 노력 사이로 가려지지 않은 다정함과 사랑스러움이 묻어나오는 목소리였다.
-그러니까…… 한 번만. 딱 한 번만.
-나한테도 그렇게 웃어줘.
송유정은 멍하니 뚝뚝 눈물을 흘리고 있는 서준을 바라보았다.
깜빡거림에 흔들리는 속눈썹, 방울방울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 상처 입어 일그러진 미간. 그리고 사랑을 하고 있는 서준의 반짝이는 검은 눈동자.
2분도 안 되는 시간이 마치 2시간으로 늘어난 것 같이 천천히 움직였다.
송유정은 저도 모르게 다시 재생버튼을 눌렀다.
-유정아.
-나한테도 그렇게 웃어줘.
서준의 한 마디 한 마디에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고 움직임 하나하나에 머리가 어지러웠다.
송유정은 숨 쉬는 것도 까먹고 다시 한번 재생버튼을 눌렀다.
“? 유정아? 송유정?”
아이돌팬 경력 8년.
19살 송유정은 처음으로 배우에게 덕통사고를 당했다.
* * *
[배우 이서준, 눈물을 흘리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이서준 덕통사고 후기!]
[배우 이서준, 이제 로맨스도 가능?]
[우는 모습마저도 매력적인 배우 이서준!]
[이서준이 선택한 작품, 첫 인터넷소설 드라마 ‘별을 기다리며’!]
-첫 기사ㅋ 어그로는 확실히 끌었다.
-서준이가 울었어! 울었다고!
=ㅠㅠ울어도 잘생겼어! 아니, 우니까 더 잘생긴 것 같아!
-내 친구도 덕통사고 당함. 아이돌만 파는 앤데 바로 새싹부터 가입함ㅎ
=22 내 친구도ㅋㅋ
=333 접니다. 덕통사고ㅎ 그렇게 울면서 웃어달라는데…… 가입 안 할 수가 없었음ㅠ
-내가 이런 날을 기다리고 있었음! 로맨스라니! 서준이가 로맨스라니!
=이제 슬슬 로맨스 작품도 할 듯.
=근데 우리나라 드라마는 의사도 연애를 하고 형사도 연애를 하잖아ㅋㅋ
=한국 드라마-사랑=0 ㅋㅋ
-어디서 이런 고전을 찾았대;;;
=22 별을 기다리며라니……;;; 내 흑역사;;;
=333 아직 집에 책 있어.
=444 난 요새도 몰래 읽고 우는데ㅋㅋ
-근데 별을 기다리며가 뭐예요?
=……이런 데서 세대차이라니…….
=(링크) 명작입니다. 읽어보세요!
=드라마는 보지 마세요. 서브 남주가 망입니다. 그냥 이서준 실기 영상만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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