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254화
아쉬움을 털어내고 WTV영화제의 시작 전까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리첼 힐이 눈을 빛냈다.”
“그러고 보니 준. 연극 준비는 잘 돼 가?”
리첼 힐의 물음에 에반 블록과 라이언 감독, 스왈린 애넘도 귀를 기울였다.
네 사람 모두 서준에게서 연극 소식을 전해 들었다. 2주 전에는 서준이 직접 번역한 ‘거울’의 대본을 받아 읽어보기도 했다. 어차피 너튜브 영상 올릴 때 영어 자막도 넣을 생각이라서 번역은 그렇게 힘들진 않았다.
“네. 근데 10월에 시험이 있어서요. 같이 연습하는 애들도 시험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어서 아직 리딩만 하고 있는 중이에요.”
“시험?”
“고등학교 입시 시험이요. 예술고라서 연기 시험도 보거든요.”
“아, 그러고 보니 역이 시험 영상에서부터 시작한 거지?”
에반 블록의 말에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래도 11월부터는 온전히 연극에만 신경을 쓸 수 있을 거예요.”
“얼른 12월이 됐으면 좋겠네!”
네 사람 모두 서준의 두 번째 연극에 눈을 반짝였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며 기다리고 있으니, 펑! 하고 축포가 터졌다. 관객석에서 함성이 들리고 WTV영화제가 시작되었다.
WTV영화제는 올해 가장 유명했던 밴드의 공연으로 시작되었다.
힘껏 내려치는 드럼, 묵직한 보컬, 화려한 기타, 묵직한 베이스에 맞춰 화려한 불꽃이 사방에서 피어오르고 폭죽이 터졌다. 서준은 8년 전 그랬던 것처럼 열심히 박수를 치며 공연을 보았다.
멋진 공연이 끝나고 MC가 마이크를 잡았다. 놀랍게도 8년 전, 그때와 똑같은 MC였다.
관객들이 진정할 때까지 잠시 주변을 둘러보던 MC는 쉐도우맨팀 쪽으로 시선을 돌리다 서준과 눈이 마주치자 환하게 웃었다.
WTV 측에서 일부러 자신을 불렀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8년 전, 슈퍼스타의 첫 시작을 MC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MC의 반가운 마음을 알아차린 듯, 서준이 손을 흔들자 씨익 웃은 MC가 다시 진행을 이어갔다. 두 사람의 모습이 그대로 방송을 탔다.
-노렸네. 노렸어ㅋㅋ
-WTV 대단ㅋㅋ
-서준이만 자라고 8년 전이랑 똑같은 것 같음ㅎ
MC는 간단히 WTV영화제에 대해 소개하고 한 사람 한 사람 상을 받을 사람들을 호명했다.
“올해 가장 매력적인 여우주연상!”
무대 뒤, 화면에 리첼 힐과 다른 배우들의 얼굴이 나타났다. 관객들이 배우들의 배역을 외쳤다. 가장 크게 들리는 건 벨 나트라의 이름이었다.
“리첼 힐!”
서준과 사람들의 박수를 받으며 리첼 힐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축하해요!”
“고마워, 준!”
무대 위로 올라간 리첼 힐이 웃으며 팝콘 통 모양의 트로피와 꽃다발을 받았다. 수상 소감을 말하기 위해 마이크 앞에선 리첼 힐이 입을 열었다.
“올해 가장 매력적인 배우라니, 정말 좋네요. 올해뿐만 아니라 내년에도 그 이후에도 가장 매력적인 배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함께 열심히 촬영한 쉐도우맨팀, 정말 즐겁고 행복한 촬영이었습니다. 투표해 주신 팬분들께 정말 감사하다고 전해드리고 싶어요.”
리첼 힐의 소감이 끝나고 관객석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전하!”
“벨 전하!”
소감을 마치고 자리를 비키려던 리첼 힐이 그 목소리에 웃으며 다시 마이크 앞에 섰다. 리첼 힐도 나트라의 차기 왕이 벨 나트라이지 않을까, 하는 추측을 알고 있었다.
“지구인 여러분. 제 동생 윌리엄과 쉐도우맨을 잘 부탁해요!”
와아아아아!
여기저기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다양하고 재미난 수상 부문만큼 다른 시상식들보다 가볍고 즐거운 WTV영화제였다.
즐겁게 웃던 쉐도우맨팀이 트로피를 들고 돌아온 리첼 힐을 반겼다.
“그럼 나도 뭐라고 해야 하려나.”
“저도 생각해 봐야겠어요.”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에반 블록과 서준은 생각에 잠겼다.
웃음소리가 잦아들고 MC가 입을 열었다.
“걱정 마세요. 벨 전하. 윌리엄과 뮐 나트라는 아주아주 유명한 배우가 됐답니다. 두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 지구인은 없죠.”
다시 한번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럼 다음으로, 올해 최고의 영웅상을 시상하겠습니다!”
봉투에서 카드를 꺼낸 MC가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이런, 배우가 된 줄 알았더니 진짜 정체는 슈퍼히어로였군요! 올해 최고의 영웅상!”
“에반 블록!”
MC의 말에 사람들이 빵 터졌다. 서준과 리첼 힐, 에반 블록도 웃음을 터뜨렸다.
-배우냐, 슈퍼 히어로냐ㅋㅋㅋ
-낮에는 배우, 밤에는 히어로?
-바쁘겠네ㅋㅋ
트로피와 꽃다발을 받은 에반 블록이 웃음기가 가시지 않는 얼굴로 마이크 앞에 섰다.
“여러분. 벨 나트라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전해주세요. 전 아주 행복하게 지내고 있으니까요.”
빙그레 웃은 에반 블록이 말을 이었다.
“쉐도우맨1부터 벌써 10년이 흘렀습니다. 여러분께 이렇게 인사를 드리게 될 수 있어서 정말 기쁩니다. 10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입니다. 저는 그때와 똑같은 기분인데 우리의 윌리엄은 훌쩍 자랐죠.”
카메라 렌즈가 서준에게로 향했다.
갑작스럽게 화면에 잡혀 놀란 서준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여러분에게 어떤 10년이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쉐도우맨을 찍는 동안 정말 행복했습니다. 여러분들도 쉐도우맨을 보고 즐거웠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에반 블록이 꾸벅 인사를 하자,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아. 진짜 마무리 같음ㅠ
-그러게ㅠㅠ 아무도 기대해달라는 소리를 안 해.
-그래도 쉐도우맨이랑 벨 나트라는 어셈블 시리즈에 나올 것 같지 않음?
=22 진짜 안 나올 것 같은 건 윌리엄이지ㅠㅠ
-윌리엄ㅠㅠ
“다음은 ‘최고의 악당상’입니다.”
MC의 말에 관객들도 방송을 보고 있던 사람들도 약속된 수상에 박수를 치려는 듯 두 손을 들었다.
무대 뒤, 화면에 5명의 후보가 비쳤다.
그중 10년이 지났어도 유난히 어린 얼굴의 배우가 눈에 띄었다. 아무래도 ‘최고의 악당상’이니만큼 다른 배우들의 얼굴선이 굵직굵직해서 아직 앳된 얼굴이 더 눈에 띄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MC가 웃으며 입을 열었다.
“8년 전에도 그랬지만 이 배우의 투표율은 여전히 장난이 아니네요. 여러분, 축하의 박수를 보내주십시오. 8년 전, 이 자리에서 ‘주목할 만한 배우상’을 받았던 어린 배우가 다시 돌아왔습니다. 상 이름대로 모두 열심히 주목해 주셨는지 어마어마한 배우가 돼서 말이죠. 최고의 악당상 수상자는!”
MC가 말하기도 전에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서준의 이름과 진 나트라의 이름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왔다.
“지구와 나트라를 동시에 파괴하려고 했던 무시무시한 악당, 진 나트라 역의 서준 리!”
서준의 이름이 불리고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진 나트라, 윌리엄, 서준 리.
사람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이름을 불러댔다.
관객석에 앉아 있던 서은혜와 이민준도 활짝 웃으며 박수를 쳤고 안다호도 환하게 웃으며 화면 가득 클로즈업된 서준의 사진을 찍어 코코아엔터 사장과 직원들에게 보냈다.
서준이 환하게 웃으며 무대 위로 올라갔다.
어리둥절, 멍하니 있다가 겨우 상 하나에 만족할 뻔했던 그 어렸던 때와는 달랐다. 더 많은 작품과 더 많은 상, 더 많은 사랑을 받으려고 하는 욕심쟁이가 팝콘 통 모양의 트로피와 활짝 핀 꽃다발을 안아 들었다.
“안녕하세요. 이서준입니다.”
트레이드마크처럼 서준의 첫인사는 한국어였다.
“이 무대에 올라오는 게 8년 만이네요. 장소도 똑같고 MC분도 똑같아서 꼭 그때로 돌아온 듯한 기분이 들어요. 하지만 시간은 흘렀고 저도 많이 자랐습니다. 이렇게 오랜 시간이 흐르는 동안 끊임없이 쉐도우맨을 사랑해 주신 여러분들에게 꼭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환호성과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소감을 마치고 내려가려고 몸을 반쯤 돌리던 서준이 다시 마이크 앞에 섰다.
카메라 렌즈가 서준을 찍었다. 관객들과 시청자들이 숨을 죽였다. 리첼 힐과 에반 블록이 그랬던 것처럼 서준도 ‘지구인’에게 남기는 메시지가 있는 것 같았다.
서준이, 아니, 윌리엄이 환하게 웃었다.
순수하고 다정한 미소였다. 행복함이 가득 담긴 미소였다. 진실한 목소리였다.
“사랑하는 아버지와 벨에게 전해주세요. 저는 이제 행복하다고. 믿음직한 쉐도우맨에게 전해주세요. 저는 이제 외롭지 않다고.”
시상식장은 시간이 멈춘 듯 잠시 침묵에 잠겼다.
라이언 윌 감독과 스왈린 애넘, 에반 블록과 리첼 힐이 놀란 표정을 짓다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이건 ‘윌리엄의 말’이었다.
어렸던 윌리엄이 훌쩍 자라 말을 전하고 있었다.
이제는 볼 수 없다고 생각했던, 마치 특별 쿠키 영상처럼 아주 짧게 나온 쉐도우맨의 뒷이야기에 직접 보던 관객들과 WTV영화제를 시청하던 사람들이 와아, 탄성을 내뱉었다.
-ㅠㅠ이런 곳에서 볼 줄은 몰랐다ㅠㅠ
-이렇게 잘 자란 윌리엄이라니ㅠㅠ
-이것까지 봐야 완전히 해피엔딩이구나!
-서준이 센스ㅠㅠ
-근데 여전히 연기력 무시무시하다;;
-222 한순간에 윌리엄 되네;;
-근데 설정 오류 아님? 윌리엄 기억상……(읍)
-윗댓…… 평행세계라고 하자.
서준이 자리에서 내려가고 다른 부문들의 수상자들이 호명됐다. 서준과 쉐도우맨팀도 박수를 보내며 배우들을 축하했다. 그리고 드디어 마지막 순서가 다가왔다.
봉투에서 카드를 꺼낸 MC가 어깨를 쫙 펴고 말했다.
“조금 전, 직접 제 눈으로 이 배우의 연기를 볼 줄 몰랐습니다. 순식간에 이 넓은 시상식장을 침묵하게 만드는 아주 대단한 연기력이었죠. 그 연기력에 골든글로브도, 아카데미도 찬사를 보내며 트로피를 안겨 줬습니다. 거기에 우리가 빠질 수는 없죠! 최고의 연기상 수상자는!”
이름이 불리기도 전에 박수 소리가 튀어나왔다. 관객석에서 ‘서준 리’의 이름이 불렸다. 커다란 목소리들에 MC가 웃으며 크게 외쳤다.
“서준 리!”
두 번째 상을 받게 된 서준이 트로피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고 무대 위로 향했다. 관객석에서 커다란 박수 소리와 함성이 들려왔다.
“안녕하세요. 서준 리입니다.”
두 번째 수상 소감을 말하기 위해 마이크 앞에선 서준이 잠시 시상식장 안을 둘러보다 입을 열었다.
“오늘 시상식장에 들어오면서 느꼈습니다. 더는 ‘쉐도우맨 시리즈를 기대해 주세요’라고 말하지 못한다는 사실을요. 촬영이 끝났을 때는 몇 년 후에 다시 촬영하지 않을까, 마음 한구석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들은 서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제가 처음 영화에 출연한 것도 쉐도우맨이었고 악역 연기를 도전하게 된 것도 쉐도우맨이었습니다.”
그 오랜 전생들에서도 한 번도 동시에 열지 못했던 두 개의 도서관을 열게 된 것도 쉐도우맨 때문이었다.
“생애 첫 상을 받은 것도 쉐도우맨이었습니다. 여기 WTV영화제에서 받은 ‘주목할 만한 배우상’이었죠. 얼마나 기쁘고 행복했는지, 아무도 모를 거예요.”
‘정말로.’
오랜 전생을 거쳐서 겨우 받게 된 상이었다. 그 길고 긴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들은 ‘서준’과 ‘첫 생’이 얼마나 기뻤는지 절대 모를 터였다.
“쉐도우맨을 촬영하면서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작품을 하게 되고 이렇게 다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가장 즐거웠던 영화였고, 제 삶에 아주 중요한 영화이고, 평생 잊지 못할 영화일 겁니다.”
배우, 서준 리가 환하게 웃었다.
“제가 가장 사랑하는 쉐도우맨을 사랑해 주신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서준이 꾸벅 인사를 하자,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 어린 배우가 얼마나 쉐도우맨을 사랑했고, 사랑하고, 사랑할 것인지 충분히 느낀 사람들이었다.
“좋겠습니다. 감독님.”
“네. 좋네요.”
스왈린 애넘의 말에 라이언 감독이 활짝 웃었다.
함께 촬영한 배우가 저렇게 영화를 좋아한다는데 싫을 리가 없었다.
* * *
[할리우드 배우 이서준, ‘최고의 악당상’, ‘최고의 연기상’ 수상!]
[무대 위에 선 8살 이서준과 16살 이서준!]
[깜짝 쿠키?! WTV영화제에 나타난 쉐도우맨! 벨 나트라! 윌리엄!]
[WTV영화제, 두 개의 트로피를 든 배우 이서준!]
[배우 이서준이 가장 사랑하는 영화, 쉐도우맨!]
-서준아, 수상 축하해!
-이번에는 걱정 안 하고 봤다ㅎㅎ
=그러게. 골든글로브랑 아카데미와는 다르게 마음 편하게 봤음ㅋ
-영화제에서 쿠키를 볼 줄이야!
=벨 나트라에 쉐도우맨에 윌리엄이라니…… 진짜 좋았어ㅠ
-그레이 바이니 때도 봤지만 진짜 확확 바뀌는구나.
=22 진짜 대단함.
-진짜로 끝났네. 쉐도우맨.
=어셈블로 나올지도 모르지만 쉐도우맨 시리즈는 끝났지ㅠ
=윌리엄도 이제 없고ㅠ
=이 텅 빈 마음을 피규어로 달래야겠다!
=22 언제 나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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