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253화
피규어.
만화. 애니메이션. 영화, 게임 등의 캐릭터들을 그대로 축소해 플라스틱, 금속 등으로 만들어낸 모형.
-헐. 피규어? 예약받음?
=아직. 어떤 캐릭터가 나오는지도 안 떴음. 그냥 만들 계획이래.
-쉐도우맨이랑 벨 나트라 피규어는 나왔으니까. 쉐도우맨 팀이라는 건……!
=진 나트라랑 튤 나트라 이야기겠지!!
=진 나트라아아!!
-근데 이제 쉐도우맨 시리즈 끝났는데 이제 파는 건가? 살 사람 있음?
=나!!
=22 쉐도우맨 시리즈 평생 안 볼 거 아니잖아?
=333 살 수 있을 때 안 사면 나중에 후회함.
-근데 피규어 만들면 쉐도우맨 1이야 2야 3이야?
=그러게. 진 나트라는 123 완전히 다르잖아.
-와. 그럼 쉐도우맨1의 윌리엄 피규어가 나올 수도 있다고?
=세상에. 착한 진 나트라 피규어가 나올 수도 있다고?
=123 진 나트라 모아두면 진짜 좋겠다ㅎㅎ
=3에선 엔딩 버전 윌리엄도 만들어줬으면!!
-빌런 진 나트라 피규어 멋질 듯.
=22포스 장난 아닐 것 같다!!
=난 왠지 악몽 꿀 것 같은뎈ㅋㅋ
=윌리엄 피규어도 옆에 놓아두자ㅋㅋㅋ
-근데……우리가 살 수 있으려나?
=왜?
=이서준 팬들이 너무 많아……!
=22 그쪽도 난리겠지?
[새싹부터]
-서준이 피규어라니!!
-세상에. 아기 서준이랑 꼬마 서준이랑 청소년 서준이를 모두 만나다니!!
-아직 확정된 건 아니랍니다.
-근데 이런 이야기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언젠가 만들어질 거라는 이야기가 아닐까요?
-으아아! 하는 김에 성녕대군마마랑 그레이랑 단종 전하랑 늑대 인간 버전까지 만들어줬으면 좋겠네요!
-222 고주원도요!! 이스케이프 파크에 있는 고주원 모형 정도면 진짜 통장이 텅장이 되도 살 텐데 말이죠.
-그거 할리우드 특수분장팀이 만들었다던데……가격 장난 아닐걸요.
-지금부터라도 적금 들겠습니다!
-돈이 있더라도 왠지 수량이 적을 것 같다는 느낌적 느낌.
-222 선착순이 아닐까 싶네요.
-이거…… 어마어마한 피바람이 불겠어요.
“이거 어마어마할 것 같은데?”
간 보듯 던진 이야기에 뒤집힌 인터넷과 새싹부터의 반응에 김희상과 몬스터사 직원들이 식은땀을 흘렸다.
“누가 그랬어요? 쉐도우맨 시리즈 끝나면 한풀 꺾여서 그다지 치열하지 않을 거라고 한 사람.”
김희상이 말에 회의실 안에 있던 사람들이 김희상을 바라보았다.
“대표님이요.”
“미안합니다.”
김희상이 으하하하 어색하게 웃고는 말을 이었다.
“서준이 첫 피규어라서 양보다는 퀄리티를 높이려고 했는데.”
게다가 몬스터사에서 만드는 이상 허접스러운 퀄리티는 김희상이 용납하지 않았다.
“그래서 미러팀도 부르셨죠.”
“그냥 코코아엔터 통해서 한번 물어본 건데 좋다고 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마린사에서 컨셉아트를 만들고 그 실물을 미러팀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다. 몬스터사는 그 작품을 간소화해 양산할 수 있게 만들 계획이었다.
“물론 그 양산도 뚝딱뚝딱 만들어낼 정도는 아니지만.”
퀄리티를 높이기 위해선 사람 손을 타야 하고 그러면 단가는 높아지고 양은 줄어들게 된다.
“게다가 적정 수량으로 제한하는 것도 필요하구요.”
남이 가지지 못한 것을 소유하는 기쁨.
그게 바로 한정판의 묘미였다.
“그래도…… 늘려야겠죠?”
“네.”
회의실 안의 직원들이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쉐도우맨 시리즈가 막이 내리고 한풀 꺾일 거라 생각했던 진 나트라의 인기는 그렇게 약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몬스터사의 회의가 끝나고 대표실로 돌아온 김희상은 회의 때 정해진 내용이 담긴 메일을 미국에 있을 이민준에게 보냈다.
<잘 부탁함.
>이민준 : ……너 이……!
“믿을 만한 친구가 있다는 건 좋은 거야.”
으흐흐. 얄밉게 웃던 김희상은 미국 일을 완전히 이민준에게 맡겨놓은 채 다른 서류를 집어 들었다.
* * *
“이 세 옷 중에 고르면 됩니다. 수선은 바로 여기서 할 거고요.”
이민준이 김희상이 보내온 메일을 읽는 동안 서은혜와 서준은 킹즈 에이전시에서 준비한 시상식 옷들을 살펴보았다.
“사진으로 볼 때보다 더 좋은 것 같은데?”
“그러게.”
서은혜의 말에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국에 있을 때 킹즈 에이전시가 보내준 사진 중 3개의 옷을 고른 상태였다.
“그럼 이거 입고 올게.”
서준이 첫 옷을 입으러 들어가자 서은혜가 에이전시 직원에게 물었다.
“근데 저번에 사이즈를 보냈을 때보다 준이 조금 자랐는데 괜찮을까요?”
에이전시 직원이 웃었다.
“세 브랜드에서 온 직원들이 대기 중입니다. 옷도 같은 디자인, 다른 사이즈로 여러 개 보내줬고요. 아마 디자인만 고르기면 준에게 딱 맞는 옷으로 고칠 겁니다.”
그렇게 솜씨 좋은 사람들이 서준을 위해 기다리고 있다는 말에 서은혜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대기 중이요?”
“네. 여기 옆 방에서요.”
물론 서로 마주치지 않게 방을 나누기는 했다.
킹즈 에이전시 직원들도 설마 WTV영화제 때 급한 수선을 위해서 파견하는 직원들이 아니라, 서준 리만을 위해서 브랜드에서 따로 사람들을 보낼 줄은 몰랐다.
‘그것도 세 브랜드 모두.’
에이전시 직원이 속으로 혀를 내두를 때, 서준이 ‘레든’의 옷을 입고 나왔다.
“엄마, 이거 괜찮아?”
서은혜와 에이전시 직원의 시선이 서준에게로 향했다.
“와! 잘 어울리는데!”
* * *
“이런, 레든에서도 왔군.”
“……하이브?”
“아레시스도 왔다.”
킹즈 에이전시에서 애써 방을 나눈 의미도 없이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의류 브랜드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하이브, 레든, 아레시스.
세 브랜드에서 파견한 직원들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디자이너 한 명에 따라온 직원들. 같은 직종에서 일하고 있는 만큼 익숙한 얼굴들이 많았다.
“안 왔으면 큰일 날 뻔했네요.”
레든의 디자이너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 앉았다.
세 브랜드 중 가장 오래된 브랜드, 하이브의 디자이너가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이런 ‘정성’이 옷 선택에 영향을 줄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이렇게 다 오면 의미가 없지.”
“안 오면 더 큰 일이죠. 하이브까지 온 걸 보면 서준 리가 대단하긴 대단한가 봐요.”
레든 디자이너의 말에 하이브 디자이너가 삐죽 웃었다.
“대단하지. 서준 리는 지금까지 마땅한 홍보 모델이 없었던 10대부터 20대까지 홍보할 수 있는 배우이니까.”
“하긴 10대 스타 중 서준 리보다 영향력 있는 슈퍼스타는 찾아보기 힘들긴 하죠. 이미지도 좋고. 지금부터 좋은 관계를 유지한다면 나이를 먹으면서 20대, 30대까지 이어나갈 수도 있죠.”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서준 리 덕분에 훌쩍 커버린 브랜드도 여기 있잖아요.”
레든 직원들과 하이브 직원들의 시선이 한쪽으로 쏠렸다.
“저희야 항상 감사할 따름이죠.”
아레시스의 디자이너가 웃으며 말했다.
“뭐, 이번엔 힘들겠지만.”
하이브의 디자이너의 말에 레든의 디자이너와 아레시스의 디자이너가 빙그레 웃었다. 웃는 얼굴인데도 마주치는 디자이너들의 시선에 불꽃이 튀는 것 같았다.
* * *
[WNET, 오늘 WTV영화제 생중계!]
[WTV영화제, 배우 이서준 ‘최고의 악당상’, ‘최고의 연기상’! 노미네이트!]
[할리우드 스타, 이서준이 레드카펫에서 입고 나올 옷은?!]
-기다린다! 생중계
-벌써 8년 전 일이네. 그 작던 꼬마가ㅠㅠ
-어제 WNET에서 8년 전 WTV영화제 방송해 줬는데 서준이 너무 작더라ㅋ
=22그래도 씩씩하게 수상소감 말하는 거 너무 귀여웠어ㅠ
=쉐도우맨3 기대해 주세요!
=ㅠㅠ이젠 못 듣겠지.
=깜짝 발표해 줬으면. 쉐도우맨4 기대해 주세요! 라고ㅠㅠ
-8년 전엔 아레시스였는데 되게 신기했음. 그때 진짜 조그만 신생 브랜드였는데ㅎ
=22 아레시스도 그때 홍보한 덕분에 지금처럼 커졌지.
=이번엔 어디 거 입고 나올까?
=하이브랑 레든도 ‘서준 리’를 위해서 따로 디자인했다던데.
=와…… 대단하네.
* * *
레드 카펫 끝에 커다란 차가 섰다.
전 세계로 방송을 내보내고 있던 카메라가 차로 향했다. 이번에는 어떤 스타가 나타날까, 두근두근 뛰는 심장을 부여잡고 기다리고 있으려니 드르륵, 차 문이 열렸다.
새까만 머리카락을 완전히 뒤로 넘긴 에반 블록이었다.
“꺄아아악! 쉐도우맨이다!”
“에반 블록!”
팬들에게 웃으며 손을 흔들던 에반 블록이 옆으로 물러섰다.
에반 블록이 자리를 비켜주자 이번엔 차분히 머리카락을 내린 소년이 차에서 내려왔다.
번쩍번쩍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고 그 빛은 마치 서준을 빛내주는 것 같았다. 반짝반짝 빛나는 외모와 아우라에 다시 한번 비명과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진! 진 나트라!”
“이서준!”
자신의 이름이 불리자 서준이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으아아아아!
함성에 마주 보고 웃은 에반 블록과 서준 리가 활짝 열린 차 문 앞에 섰다.
마치 문 앞을 지키는 기사처럼 어깨와 등을 곧게 펴고 차 안쪽으로 에스코트를 하듯 손바닥이 위로 향하게 뻗었다.
그 우아한 두 배우의 모습에 팬들은 저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두 사람의 손 위로 리첼 힐의 양손이 올라왔다. 에반 블록과 서준 리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리첼 힐이 천천히 레드 카펫 위로 내려왔다.
에반 블록, 리첼 힐, 서준 리.
반짝반짝 빛나는 배우들이 멋지게 차려입고 한자리에 모여 있으니 그 아우라가 대단했다. 실제로 보고 있던 팬들도, 텔레비전으로 시청하고 있던 사람들도 감탄했다.
-와…… 진심 멋있어.
-에스코트라니, 서준이가 진짜 엄청 컸구나.
-그러게. 8년 전엔 작아서 못했을 텐데ㅋㅋ
와아아아!
세 배우의 퍼포먼스에 레드카펫 위가 불타오르고 있을 때,
“……이거 우리 내려도 되는 건가?”
“그러게 말입니다.”
차 안에서 내릴 준비를 하고 있던 스왈린 애넘과 라이언 윌 감독이 농담이 섞인 진심을 내뱉으며 웃었다.
“스왈린! 감독님! 안 나오세요?”
“선생님!”
서준과 리첼 힐의 부름에 스왈린 애넘과 라이언 감독도 차에서 나왔다.
쉐도우맨팀의 주역, 다섯 명이 모두 나타나자 다시 한번 함성이 터져 나왔다.
리첼 힐과 서준이 활짝 웃었다.
“시리즈의 마무리니까 다 같이 가야지!”
“정말 좋아요!”
차에서 내린 쉐도우맨팀이 팬들에게 인사를 하며 레드카펫 위를 걸었다.
팬들에게 손을 흔드는 서준의 얼굴은 기쁨으로 가득했다. 그래도 마구마구 아우라를 뿜어대던 어렸던 그때처럼 흥분하진 않았다.
‘신기하네.’
8년 전엔 한 걸음 한 걸음을 걸을 때마다 떨렸었는데, 지금은 그렇게 떨리지 않았다. 그래도 여전히 흥분되고 기뻤다.
“쉐도우맨팀! 반갑습니다!”
마이크를 든 리포터가 활짝 웃으며 쉐도우맨팀을 반겼다.
짧은 인터뷰가 끝나고 시상식장 안으로 들어간 쉐도우맨팀이 자리에 앉았다. 자리에 앉는 중에도 서준의 시선은 자꾸만 인터뷰했던 포토존이 있던 밖으로 향했다.
“음.”
“왜 그래, 준?”
“그게, 좀 아쉬워서요.”
서준의 말에 네 사람이 서준을 바라보았다.
“8년 전엔 ‘쉐도우맨3 기대해 주세요’라고 말했는데, 이제부터는 못 하잖아요.”
“아, 그러네.”
“나도 뭔가 빠진 것 같긴 했어.”
에반 블록과 리첼 힐도 아쉬운 듯한 표정이었다.
이미 만족한 라이언 감독은 작게 웃고 말았고 오랜 세월 많은 영화를 찍은 스왈린 애넘은 세 배우를 귀엽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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