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251화
배우 이서준의 공식 팬클럽 [새싹부터].
[새싹부터]의 시작은 10년 전 만들어진 팬카페에서부터였다.
그 팬카페를 만든 사람들이 작은 카페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게 이렇게 커질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휴대폰으로 팬카페를 둘러보던 세 명의 관리자 중 하나, 닉네임 [물뿌리개]가 그때와는 천지 차이인 가입자 수에 질린 듯한 표정을 지었다. 생크림이 가득 올라간 음료를 먹고 있던 닉네임 [햇빛빛]이 활짝 웃었다.
“그때 완전 웃겼는데! 영화 다 보고 울면서 팬카페 만들었잖아.”
쉐도우맨1을 보고 울면서 이서준의 팬카페를 만들었던 당사자, 닉네임 [흙흙]은 햇빛빛이 놀리고 있다는 것은 깨닫지 못하고 뿌듯한 얼굴로 커피를 마셨다.
“연예인한테는 관심도 없고 공부만 하던 애가 ‘이 배우는 성공해. 내가 그렇게 만들 거야!’ 하면서 만들었지! 목소리랑 표정은 엄청 진지했는데 눈물은 계속 흘리고. 얼마나 웃겼으면 10년이 지났는데도 하나도 안 까먹었어!”
햇빛빛이 아하하하 웃었다.
“난 얘는 덕질 같은 건 안 할 줄 알았어.”
“동감! 안 하던 애가 하면 빠져드는 속도가 무시무시하잖아. 그 조그맣던 팬카페가 공식 팬카페로 인정받고 이름까지 팬클럽에 적용될 줄이야. 아주 대단해. 흙흙.”
“카페에서 이름 놔두고 흙흙이 뭐냐. 근데 난 왜 물뿌리개야.”
“새싹이 나무로 잘 자라려면 뭐가 필요해? 당연히 좋은 흙하고 쨍쨍한 햇빛하고 시원한 물이잖아! 넌 시원한 물 담당!”
“아니. 하고 많은 것 중에 물뿌리개가 뭐냐고.”
“웃겨서?”
물뿌리개가 햇빛빛의 옆구리를 마구 찔렀다. 악악! 소리가 나는데도 흙흙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언제나처럼 휴대폰으로 팬카페에 들어갔다.
올해 3월에 있었던 팬들의 생일 축하 이벤트에 활짝 웃고 있는 서준의 사진이 카페의 첫 화면을 장식하고 있었다. 언제 봐도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사진이었다.
[북콘서트 사진 보정했어요!]
[이서준 투어하고 왔어요(국내)]
[서준이 배경화면 공유합니다!]
많은 게시글이 생겨나고 순식간에 댓글들이 달렸다. 활발한 팬들의 활동에 흙흙은 저절로 가슴이 뻐근해졌다.
서준의 지인들을 제외하면 거의 공식 첫 팬인 [흙흙].
서준의 팬인 닉네임 ‘흙흙’이 쉐도우맨1을 관람한 후 만든 팬카페 [새싹부터]가 만들어지고 어느새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서준이 다양한 장르의 작품 활동을 이어가면서 서준의 팬들도 다양해졌다.
‘봄’을 좋아하는 어린이 팬부터 ‘내의원’과 ‘역’을 좋아하는 중장년층 팬들까지. 전 세계 개봉하는 영화들과 서준의 작품을 두 팔 벌려 환영하는 플러스+ 덕분에 외국인 팬들도 많아졌다.
가지각색의 국적과 다양한 연령대의 팬들이 공식 팬카페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흙흙, 햇빛빛, 물뿌리개.
세 명밖에 없었던 [새싹부터]가 이렇게 잘 자라났다.
“그래도 코코아엔터에서 많이 도와줘서 일상생활이랑 병행할 수 있었지. 취업했을 때는 어떻게 하나 고민했어.”
“그러게! 물론 난 프리랜서지만!”
“아, 그 퇴근이 없다는?”
“……넌 가끔 정곡을 찌른다니까.”
물뿌리개의 말에 햇빛빛이 타격을 받은 듯 쓰려지는 시늉을 했다.
“근데 맞는 말이야! 오늘도 밤새야 해!”
“그게 그렇게 밝게 말할 일이 아닐 텐데?”
물뿌리개가 황당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 흙흙의 휴대폰이 울렸다.
그레이 바이니의 연주곡, no.1
아름다운 바이올린의 선율이 들려오자 세 사람이 흙흙의 휴대폰에 시선을 돌렸다.
[코코아엔터 2팀]
“오! 무슨 일이지?”
“토요일 책 판매 때문인가?”
“하긴 우리가 제일 난리긴 하겠네! 나도 갈 생각인데!”
“공지 올려야겠다.”
햇빛빛과 물뿌리개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흙흙이 전화를 받았다. 부드럽게 웃으며 인사를 주고받던 흙흙의 표정이 천천히 굳어졌다.
햇빛빛과 물뿌리개가 숨을 죽였다.
“네. 알겠습니다.”
이젠 비장해 보이기까지 하는 흙흙의 표정에 햇빛빛과 물뿌리개는 서준에게 큰 문제가 생겼나, 걱정하기 시작했다.
“사고 났나?”
“그러게. 무슨 일이지?”
잠시 휴대폰을 바라보던 흙흙이 고개를 돌려 친구들을 바라보았다.
무슨 말이 나올까, 침을 꼴깍 삼키고 기다리던 햇빛빛과 물뿌리개를 보던 심각한 표정의 흙흙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다음 주 토요일부터 WTV영화제 투표한대.”
“……그게 그렇게 심각할 일이야?!”
“으아! 다행이다……!”
물뿌리개는 소리쳤고 햇빛빛은 쓰러졌다.
친구들의 반응에도 흙흙은 여전히 굳은 얼굴로 대답했다.
“당연하지. 우리 손에 서준이 상이 걸린 거 아니야.”
사고가 아니라는 소식에 안심하던 햇빛빛도 얼른 일어나 주먹을 꽉 쥐고 말했다.
“맞아! 우리가 골든글로브랑 아카데미 때 얼마나 애를 태웠어! 투표권이 있었으면 그렇게 걱정도 안 했겠지! 이번엔 우리가 투표할 수 있다니!”
“그래. 그때처럼 두 손 놓고 있지 않을 거니까.”
“내가 시상식 때까지 잠도 못 잤는데!”
“걱정 마. 이번엔 푹 잘 수 있을 거야.”
“둘 다 진정해.”
비장한 표정으로 말하는 흙흙과 날뛸 것 같은 햇빛빛을 말린 물뿌리개가 입을 열었다.
“공지부터 올려야지. 서준이가 확실하게 상 받을 수 있게.”
당연한 이야기지만 물뿌리개도 서준의 팬이었다.
* * *
<새싹부터>
[공지 : 소설 ‘거울’ 토요일부터 판매 예정!]
[공지 : 서준이는 연극 ‘배심원’에 출연하지 않습니다.]
[공지 : 여울 예중 졸업 공연은 관계자만 관람 가능합니다.]
[공지 : 여울 예중 졸업 공연은 너튜브에 업로드될 예정입니다.]
배우 이서준의 팬카페에 새로운 공지가 떴다.
[공지 : 드디어 이날이 왔습니다.]
평소에 제목만 봐도 내용을 알 수 있었던 평소의 공지와는 달리 그 뜻을 알 수 없는 공지였다. 어쩐지 공지를 쓴 흙흙의 비장함마저 느껴지는 제목이었다.
[공지 : 드디어 이날이 왔습니다.]
<안녕하세요. 흙흙입니다.
거두절미하고 코코아엔터에서 전해준 소식을 먼저 알려드리겠습니다.
드디어 이날이 왔습니다.
다음 주 토요일부터 일주일간 WTV영화제의 투표가 시작됩니다.
이서준 배우가 후보에 오른 부분은 ‘최고의 악당상’, ‘최고의 연기상’입니다.
모두 투표 부탁드립니다.>
“올렸어.”
카페와 가장 가까운 흙흙의 집.
흙흙의 말에 팬카페의 대문을 장식할 배경화면을 만들고 있던 물뿌리개가 흙흙의 공지를 읽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러면 다들 무슨 일인지 모르잖아.”
“댓글 봐봐.”
“응?”
흐뭇하게 웃는 흙흙의 얼굴에 물뿌리개가 댓글창을 보았다.
-드디어 이날이 왔군요.
-이날만 기다렸습니다!
-제목부터 짐작하고 있었습니다!
“……난 이제 모르겠다.”
물뿌리개가 다시 노트북으로 고개를 돌렸다.
“나도 공지 올렸어!”
햇빛빛이 외쳤다. 물뿌리개가 어휴, 한숨을 쉬고는 햇빛빛의 공지를 읽었다.
[공지 : WTV영화제 투표 방법을 알려드립니다!]
<안녕하세요. 햇빛빛입니다!
다들 골든글로브 시상식과 아카데미 시상식 때 투표권이 없어서 애타던 그 마음을 기억하시나요! 전 아주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드디어! 우리에게 투표권이 생겼습니다!
투표권이 있으니 투표를 해야죠!
벌써 8년 전 일이라 생각이 안 나신다고요? 저만 믿으세요! 아래의 순서에 따라 투표해 주시면 됩니다!
우리 모두 투표해요!>
뿌듯한 표정의 햇빛빛에 물뿌리개는 이마를 짚었다.
‘그래. 뭐, 괜찮아. 얘가 쓴 공지는 다 이러니까.’
애써 신경을 돌린 물뿌리개는 자기 일에 집중했다.
“……어?”
컴퓨터 앞에 앉아있던 흙흙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젠 좀 무서워지려던 물뿌리개가 잠시 외면하려다 입을 열었다.
“……왜 그래?”
“WTV 사이트 터졌어.”
“와! 진짜?! 진짜 터졌네!”
“음. 우리 때문인가?”
“그러게! 우리 때문인가 보다!”
묘하게 뿌듯해 보이는 흙흙과 그저 해맑은 햇빛빛에 물뿌리개는 울기 일보 직전의 얼굴로 타닥타닥 키보드를 두드렸다.
[공지 :WTV영화제 투표는 다음 주 토요일부터입니다ㅠ]
<안녕하세요. 물뿌리개입니다ㅠㅠ
WTV영화제 투표는 다음 주 토요일부터입니다ㅠ
지금 홈페이지에 들어가도 투표할 수 없으니까 모두 자제해 주세요ㅠ
사이트 터졌어요ㅠ 아무래도 범인은 우리인 것 같습니다ㅠ
아, 다음 주 토요일부턴 터뜨려도 됩니다.>
-물뿌리개 님은 마음 약한 것처럼 보여도 한 방이 있다니까요.
=22 다음 주 토요일부턴 사이트 터뜨려도 된대ㅋㅋ
=열심히 터뜨리겠습니다!
-투표! 투표라니! 투표의 민족에게 투표할 상황을 주다니!!
-골든글로브도 오스카상도 도와줄 수가 없어서 얼마나 답답했는지 몰라요!!
=22 동의. 그게 투표 형식이었으면 그렇게 애타지도 않았을 텐데요.
-WTV영화제는 서준이가 수상할 거라는 확신을 가지고 시상식장에 들어가도록 만듭시다!
=222 만듭시다!!
얼마 후.
물뿌리개의 공지가 효과가 있었던 모양인지 WTV홈페이지가 멀쩡해졌다. 안도의 한숨을 내쉰 물뿌리개는 아까부터 만들고 있던 배경화면을 팬카페 대문에 올렸다.
8년 전, 8살이던 꼬마 서준이 빨간 팝콘 통 모양의 트로피를 들고 활짝 웃고 있는 사진이었다.
첫 생과 현생을 통틀어 처음 상을 받았던, 서준의 기쁨과 행복이 그대로 나타나는 팬들이 가장 좋아하는 사진 중 하나였다.
“이때 되게 좋았는데!”
“그러게. 또 보고 싶다.”
햇빛빛과 흙흙이 8년 전, 그날을 떠올렸다.
팬미팅 중간에 알고 얼마나 놀랐는지, 가족과 친구들까지 동원해서 투표하고 이리저리 다른 사이트에 투표 방법을 알리고 투표를 독려했다.
마침내 트로피를 손에 든 서준이 활짝 웃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이번에도 우리가 힘내야지.”
WTV영화제 투표까지 9일.
이번에는 전 세계 모든 새싹들이 힘을 모을 예정이었다.
* * *
[다음 주 토요일 WTV영화제 투표 시작!]
[배우 이서준, 진 나트라로 ‘최고의 악당상’, ‘최고의 연기상’ 후보에 올라!]
[8년 만의 시상식! 수상 가능성은?]
[앞으로 9일! WTV영화제 투표 방법에 대해 알아보자!]
[WTV홈페이지 접속 불가! 원인은?]
-새싹부터.
-새싹.
-이서준 팬.
-……나?
-ㅋㅋ다들 왜 알고 있어ㅋㅋ
=거기 공지 올라온 거 기사 났거든.
=기자들 열심히 팬카페 염탐하고 있나 보다.
=확실히 공지가 효과가 있는지 이젠 접속됨.
=이렇게 밝혀진 원인ㅋㅋ
-새싹부터 장난 아님.
=22 평소엔 조용조용해서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다가 한번 일어나면 난리 남ㅋㅋ
=333 생일 이벤트 진짜 대단했지.
-오. 실검 떴어!
=이서준이랑 WTV는 알겠는데ㅋㅋ새싹부터ㅋㅋ
=22 왜 여기에ㅋㅋ
1. 이서준
2. WTV영화제
3. WTV영화제 투표
4. WTV 투표 방법
NEW 새싹부터
NEW 이서준 팬카페
* * *
‘거울’의 작가, 최다예의 인터뷰와 WTV영화제로 들썩이던 목요일이 지나고 금요일이 되었다. 오늘로 ‘거울팀’의 오디션이 끝난다.
오디션의 마지막 순서.
계속 앉아 있어서 찌뿌둥한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던 서준이 문을 열고 들어오는 친구의 모습에 빙그레 웃었다.
“많이 기다렸어?”
“아냐. 연습하다 보니까 금방 가던데?”
부드럽게 웃던 재한이 볼을 긁적였다.
자신의 앞에 앉아 있는 서준의 모습이 어색했다. 서준이 들고 있는 신청서가 자신의 것이라 더 그랬다.
“근데 이렇게 보니까 좀 어색하다.”
“난 좀 익숙해진 것 같아.”
그다지 친분이 없는 1, 2학년은 편하게 했는데 3학년 애들은 전부 친한 사이라서 막상 교실에 들어와서는 서로 어색해했다.
물론 연기를 시작하면 3학년들도 서준도 어색함을 잊어버리고 집중했지만 말이다.
서준이 먼저 입을 열었다.
“반가워요. 자기소개 부탁할게요.”
“하핫. 안녕하세요. 3학년 2반 강재한입니다.”
작게 웃은 재한이 능청스럽게 서준의 말을 받아주었다.
“그러니까 진짜 감독님 같아.”
“다른 애들도 그러더라.”
재한의 말에 빙그레 웃던 서준이 재한의 신청서 위로 펜을 올렸다.
“그럼 맡고 싶은 배역의 해석 먼저 들어볼게.”
친구를 보며 반가워하던 눈빛은 어디로 갔는지 순식간에 프로의 눈빛으로 변한 서준에 재한은 가볍게 한숨을 쉬고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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