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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250화 (250/1,055)

0살부터 슈퍼스타 250화

“와. 이게 뭐라고 이렇게 긴장되지?”

음악과 학생들이 쿵덕쿵덕 뛰는 심장을 부여잡았다.

피아노 같은 다른 악기 전공자들은 그나마 제정신인 것 같았지만, 바이올린 전공자들은 기절 직전인 것 같았다.

특히, 서준과 만날 일이 거의 없는 1학년들은 더 그랬다. 청심환까지 먹었다는 아이는 약효가 돌지 않는지 아직도 얼굴이 창백했다.

“선배님…… 저 지금 죽을 것 같아요.”

“저두요. 그레이 바이니한테 심사받는 것 같아요.”

“……나도 그래.”

그렇다고 서준과 합동 수업을 받는 3학년들의 상태가 좋다는 건 아니었다.

“편하게 생각해. 그건 단지 배역일 뿐이잖아.”

화요일 오디션을 돕던 지호가 시니컬하게 말하자, 합동 수업으로 친해진 음악과 3학년들이 눈을 번뜩였다.

“그레이 바이니라고! 그레이 바이니! 빌보드 클래식 차트 1위!”

“제이슨 무어랑 벤자민 모튼 교수님이 칭찬한 천재 바이올리니스트라고!”

“어떻게 오버 더 레인보우를 듣고 단지 배역일 뿐이라고 할 수 있어?!”

“온몸에 전율이 흐르던 버스킹 버전은 보지도 않았냐?!”

쏟아지는 3학년들의 반발에 지호가 어깨를 으쓱였다.

“너희는 단지 배역이지만 우리 연기과는 그 ‘그레이 바이니’를 연기하고 오스카상을 받은 배우 이서준이 심사한다고.”

“아…….”

시니컬한 게 아니라 체념한 모양이었다. 음악과 학생들의 눈이 짠해졌다.

“어쩐지. 연기과 애들 눈에 초첨이 없더라니…….”

“나 같아도 제이슨 무어가 심사 본다면 그럴 듯.”

“와씨. 방금 소름 돋았어!”

오디션 심사위원이 자신의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사람이라면 부담감이 장난 아닐 터였다.

“이번 주는 연기과 애들이 뭘 하든 따뜻한 눈으로 바라봐주자.”

음악과 3학년의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음악과 애들의 애정이 어린 눈빛에 질색하며 팔을 문지른 지호가 말했다.

“그러니까 편하게 해. 우리보단 열 배는 나으니까.”

* * *

“오늘 음악이었지? 오디션은 어땠어?”

안다호의 물음에 서준이 기억을 더듬었다.

“다른 악기 전공자들은 무난했는데 유난히 바이올린 전공자들이 긴장한 것 같더라고요. 지호가 그러던데 그레이 바이니 때문이래요.”

간간이 ‘그레이 바이니’의 바이올린 연주를 원하는 사람들이 코코아엔터로 메일을 보낸다는 것을 알고 있는 안다호가 작게 웃었다. 음악을 좋아하는 일반인은 물론이고 그중에는 해외 유명 클래식 음반 회사들도 있었다.

서준이 관심이 없어서 다 거절했지만 말이다.

“그래? 그럼 다들 실수 많이 했겠네?”

“처음엔 그랬는데 그대로 놔두면 바이올린 파트는 아예 한 명도 못 뽑을 것 같아서 애들한테 말도 걸고 칭찬도 하고 바이올린에 관해 이야기도 했죠.”

서준이 유쾌하게 웃으며 말했다.

“어쩐지 심사가 아니라 레슨한 기분이었어요.”

“그레이 바이니의 레슨이라니. 다들 엄청 좋아했겠는데?”

“표정이 밝긴 했어요.”

그냥 밝은 정도가 아니라 오디션이 끝나고 바로 휴대폰을 들어 여기저기 자랑할 정도로 벅찬 기분이었지만 다른 아이들의 연주를 듣고 있던 서준은 눈치채지 못했다.

“아 참. 오늘은 이거 말하려고 했는데.”

“뭔데요?”

안다호가 웃으며 말했다. 이야기를 듣던 서준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 * *

오늘의 점심 메뉴는 바삭바삭한 돈가스와 양송이 스프, 육즙 가득한 미트볼 스파게티와 상큼한 오렌지 주스, 노릇노릇한 마늘 빵이었다.

다들 좋아하는 메뉴라 평소와 달리 대화도 없이 바쁘게 손과 입을 움직였다.

만족스럽게 배를 채우고 오렌지 주스를 마시던 서준이 물었다.

“근데 다들 ‘거울팀’ 오디션만 보는데 다른 연극은 안 하는 거야?”

서준의 물음에 마당발인 주희가 대답했다.

“다들 거울팀에 들어가는 게 1순위라서 그래. 오디션에서 떨어지면 바로 원래 준비 중이던 팀으로 돌아갈 거야.”

“나도 그렇고.”

지호도 고개를 끄덕였다.

주희와 지호는 1학기부터 따로 연극을 준비하는 팀이 있었다. 서준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래도 돼? 우리 팀에 들어오게 되면 원래 있던 팀은 어쩌고? 1학기부터 준비했으면 배역도 맡았을 거 아니야?”

“서준이 네가 연극을 한다고 해도 연극과 애들을 전부 출연시키지는 못하잖아.”

지호의 말에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사 한마디씩만 해도 한 시간이 훌쩍 넘어갈 터였다.

“그래서 의논했지. 합격 발표가 나자마자 새로운 배우를 뽑아서 연습하기로.”

“내가 합격하든 다른 애들이 합격하든 서로 이해하기로 했어. 뭐, 속마음까진 어쩌지는 못하겠지만 말이야.”

“물론 배우가 중간에 이탈하는 게 싫은 애들은 서준이 팀에 지원 안 할 애들만 모여서 따로 팀을 만들었고.”

재한과 주경도 알고 있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엄청 철저하네.”

플랜 B까지 생각해 놓은 아이들의 모습에 서준이 감탄했다.

* * *

학교 수업이 모두 끝나고 배우 오디션이 시작되었다.

랜덤으로 배정된 배우 오디션의 첫 순서는 2학년.

“잘 부탁드립니다!”

오다가다 얼굴을 봤지만 이렇게 가까운 곳에서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2학년의 자기소개가 끝나고 서준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학교 행사고 학생들로만 만들어가는, 어른들의 눈에는 아기자기한 장난 같은 연극일지도 모르지만, 연기라는 장르에서 서준은 한순간도 진지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선배 이서준에서 배우 이서준으로 순식간에 바뀐 분위기에 2학년생은 저도 모르게 침을 꼴깍 삼켰다.

배우 이서준을 가까이서 보기 위해서, 혹시나 자신이 되지 않을까 하는 어정쩡한 자세로 오디션에 나섰던 2학년생이었다. 3년 내내 서준과 함께 연기 수업을 받았던 연기과 3학년들이 들으면 어이없어할 마음가짐이었다.

“그럼 먼저 맡고 싶은 캐릭터에 관해서 설명해 주세요.”

“네, 네!”

다시 한번 침을 꼴깍 삼킨 2학년생이 연기학원에서 강사가 분석해 준 것을 그대로 내뱉었다.

* * *

“오늘부터 배우 오디션이지? 어땠어?”

“새벽 연기학원이 애들한테 인기가 많나 봐요.”

어제 음악 오디션을 평가할 때와는 달리 생각할 시간도 필요 없는 듯 서준은 안다호의 물음에 바로 대답했다.

“……응?”

오디션이 어땠냐고 물었는데 서준에게서 돌아오는 대답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의아해하는 안다호를 바라보며 서준이 쓰게 웃었다.

“비슷한 캐릭터 분석이 많더라고요. 누군가 아예 정답을 이야기해 준 것처럼.”

“아. 그렇구나.”

그제야 이해한 안다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새벽 연기학원’의 강사가 한 분석을 그대로 아이들이 따라 한 모양이었다.

“그 연기학원의 분석이 네 마음에 들었어?”

“들었으면 좋았겠지만…….”

서준이 어깨를 으쓱였다.

“너무 책에 매달려서 해석했어요. 반전을 위해선 숨길 땐 숨기고 드러낼 땐 드러내야 하는데. 다들 나 뭔가 있어요. 하고 연기하더라고요.”

아마 반전을 암시하기 위해 관객들에게 위화감을 주라는 강사의 의견이 포함되지 않았나 싶었다.

“반전을 아는 이상 신경 쓰일 수밖에 없겠지.”

“그건 그렇지만 연기할 땐 잊어야죠.”

“그럼 오늘 오디션에선 마음에 드는 사람이 없었어?”

“네. 그래도 목요일, 금요일까지 이러면 큰일이니까 후보는 뽑아 뒀어요.”

* * *

‘거울팀’의 배우를 뽑기 위한 두 번 째 오디션이 열리는 목요일.

이미 오디션을 마친 아이들은 홀가분한 표정이었고 몇 시간 후면 오디션을 봐야 하는 아이들은 학원이나 본인이 직접 만든 대본만 바라보고 있었다.

“이서준 선배. 완전 무섭지 않았냐?”

“그러게. 한석이 충고 아니었으면 말도 못 할 뻔했어.”

열심히 연습하고 가서 다행이었지, 얼렁뚱땅 가벼운 마음으로 갔다가는 이서준 선배님의 분위기에 눌려서 한마디도 못하고 올 뻔했다. 한석이랑 더 친하게 지내야겠다고 다짐한 아이에게 오늘 오디션을 보는 친구가 물었다.

“왜? 선배님이 화냈어?”

“아니. 뭐라고는 안 했는데 진짜 진지하게 쳐다보시더라. 작년에 내가 이스케이프 오디션 본 거 이야기 했나?”

했지. 수십 번도.

하지만 다들 조용히 입을 다물고 오디션 후기를 듣기 위해 귀를 기울였다.

“그때 최대만 감독님이랑 다른 감독님들이 뚫어지라 쳐다본 것보다 더 날카로운 눈빛이었어. 네 연기의 하나부터 열까지 싹 해체해서 분석하겠다!라는 느낌?”

“맞아. 같은 배우라서 그런지 보는 방식이 감독님이나 작가님하고는 조금 다른 느낌이었어.”

“……같은 배우는 아니지 않냐?”

“그러게. 신계랑 인간계 정도의 차이 아님?”

연기과와의 합동수업을 위해 연기 연습실에 들어오다 연기과 2학년들의 이야기를 들은 음악과 2학년이 고개를 갸웃했다.

“나한텐 엄청 친절하시던데?”

“난 조언도 해주셨음!”

그 옆에 있던 바이올린 전공인 2학년들이 활짝 웃으며 오디션 후기를 늘어놓았다.

“말도 먼저 걸어주셨고 바이올린 자세도 고쳐주셨다? 현 짚는 것부터 활 쓰는 법도 봐주셨는데 오늘 수업시간에 쌤한테 엄청 칭찬 들었어!”

“나도! 그레이 바이니를 제일 좋아한다니까 되게 좋아하셨어!”

음악과 2학년들의 이야기를 듣던, 오디션을 본 연기과 2학년생들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화요일과 수요일.

하루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길래 이렇게 차이가 나는 걸까?

“미술과는 어땠어?”

“엉? 우리도 친절하셨는데?”

“이서준 선배님. 미술도 잘 아시더라.”

월요일에 있었던 배경&소품 오디션을 봤던 미술과 아이들의 반응도 음악과 아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왜 이렇게 차이가 나는 거지?”

“수요일에 기분 나쁜 일이 있으셨나?”

“헐. 그런가! 제발 오늘은 기분 좋으셨으면 좋겠다.”

“내일도!”

오늘내일 오디션을 보는 연기과 2학년들이 두 손을 마주 잡고 기도를 올렸다.

월, 화요일과 수요일.

확연하게 차이가 나는 서준의 심사 모습은 연기과 3학년들의 귀에도 들어왔다.

“뭐, 별일도 아니네.”

“애들이 아직 서준이를 잘 모르는구나.”

이야기를 들은 1, 2학년이 원인이 뭘까, 고민하는 것과는 달리 3학년들은 어깨를 으쓱이고는 다시 소설과 대본에 시선을 고정했다.

친구들의 반응에 서준은 볼을 긁적였다.

‘음.’

뭐라 말할 수는 없지만, 기분이 묘했다.

* * *

선생님 심부름으로 늦게 연기 연습실로 온 김한석이 친구들의 이야기에 고개를 갸웃했다.

“서준이 형이 기분 나빠서 그런 게 아닐 텐데?”

“응?”

“수요일은 연기 오디션이었잖아. 그러니까 진지하게 심사한 거야. 월요일이랑 화요일은 연기가 아니라서 편하게 심사한 거고.”

“……그럼 오늘도?”

“? 말했잖아. 서준이 형, 연기에 봐주는 거 없다고.”

김한석의 말에 연기과 2학년들이 침을 꼴깍 삼켰다.

* * *

목요일 저녁.

예고했던 최다예 작가와의 인터뷰가 업로드되었다.

[거울의 저자, 최다예 작가와의 인터뷰]

[이서준이 선택한 소설 ‘거울’ 토요일부터 판매 시작!]

[거울, 드디어 읽을 수 있다!]

[연극 먼저? 책 먼저? 고민하는 사람들!]

-와. 첫 만남부터 장난 아니네. 이거 몰래카메라 아님?

-어떻게 북콘서트에 관객이 없어서 서점에서 아무한테나 말을 걸었는데 그게 이서준일 수가 있지?

=담당자님. 복권을 사세요.

=22 그 정도 운이면 복권을 사ㅠ

-아니, 10분 만에 책을 읽고 그 정도 질문을 한다고?

=속독 장난 아니다.

=배우라 대본 읽는 게 많아서 그런 듯.

-근데 작가랑 담당자 진짜 놀랐겠다.

=ㅋㅋ완전 내 옆자리에 이서준이 있었다는 거 아님?

-토요일에 바로 서점가서 사야겠다.

-나도 고민 중. 연극 보기 전에 책을 읽어도 되려나?

=영웅출판사에 물어보고 왔음.

=오. 뭐래?

=연극이 나오기 전이라 뭐라고 말해줄 수가 없대.

=ㅋㅋ맞는 말이긴 한데ㅋㅋ 어이가 없다ㅋㅋ

-일단 책은 살 거지만 안 읽어야겠다.

=22 언제 품절될지 모르니 책은 살 거지만 연극 보고 난 다음 읽어야지.

=333 이서준이 나오는 연극이니 반전을 알고 봐도 재미있겠지만 역시 모르고 보는 게 더 재미있을 것 같음.

=4444 12월까지 어디 봉인해 둬야 할 듯.

-헐. 이것도 8년 만인가?

=그러게. 내 아이디가 뭐더라…….

=??뭐가??

=(링크)

[(단독) 다음 주 토요일부터 WTV영화제 투표 시작!]

전 세계를 뒤덮었던 3월의 생일 이벤트 이후, 조용히 팬카페 안에서만 놀고 있던(화력은 무시무시하다.) 배우 이서준의 팬클럽 [새싹부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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