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249화
“세상에…….”
이서준의 배심원 출연에 놀랐던 것도 잠시. 상상했던 끔찍한 장면이 아니라는 생각에 안도한 영업팀 직원이 메시지를 살폈다.
>이서준이 배심원에도 출연한대!!
>헐. 그럼 우리 책 묻히는 거 아니에요?
>그러게. 이건 졸업 공연일 뿐이니까.
>우리 지금까지 준비한 건 어쩌죠?
>그래도 우리 건 너튜브 공개되는 거니까…… 괜찮지 않을까?
>……저건 플러스에 올라가지 않을까요?
>아이고. 망했네.
전화도 문자도 바나나톡도 전부 거울이 묻힐까 봐 새로운 홍보 계획을 세우자는 연락이었다.
>편집장님 : 너만 오면 돼.
다들 이 주말에 출근한 모양이었다. 마지막 메시지에 직원이 벌떡 일어나 출근을 준비했다.
제가 생각했던 최악은 아니지만, 차악 정도는 되는 것 같았다.
준비를 끝내고 막 집을 나서려던 그때, 휴대폰이 울렸다.
출판사인가 생각하고 휴대폰 화면을 보니 전화가 오는 중간중간에도 바나나톡 메시지와 문자가 쏟아지고 있었다.
“이번엔 또 무슨 일이지.”
직원이 침을 꼴깍 삼키고 인터넷에 들어갔다.
[배우 이서준이 선택한 소설 ‘거울’]
“헐.”
이젠 슬슬 최악인지 최선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 * *
“인생이 계획대로 되는 게 아니라지만 이렇게 몇 분 사이에 이 정도로 바뀌기도 쉽지 않겠죠?”
한 편집자의 말에 직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배우가 배우라서 그런지 변화도 반응도 블록버스터급이네.”
“저…… 전화선부터 빼놓고 이야기하면 안 될까요?”
영웅출판사 회의실.
벽을 뚫고도 들려오는 전화벨 소리에 사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허락에 문과 가까이에 앉아 있던 직원들이 뛰어나가 전화선을 뽑아댔다.
출판사가 잠잠해지자 모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게 될 거라고 예상했지만, 예상보다 더한 것 같네.”
사장은 아직도 들리는 것 같은 벨 소리에 관자놀이를 매만졌다.
“그럼 우리 계획은 어떻게 되는 거죠?”
“그러게요. 학교 쪽에서 흘러나갈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예상보다 빠르네요.”
“일단 회의부터 시작합시다.”
사장의 말에 직원들이 입을 다물고 편집장이 입을 열었다.
“책 띠지에 QR코드를 넣어 너튜브 영상을 연결하는 계획은 계속 진행해도 될 것 같습니다. 여울 예중의 동의도 얻었고 영상이 올라오기 전까진 준비 중이라는 화면을 띄울 예정입니다.”
소설을 먼저 읽고 연극을 보던, 연극을 먼저 보고 소설을 읽던 QR코드로 사람들의 접근이 쉬워질 터였다.
“책은 지금 풀어야겠지?”
“네. 최대한 책을 비축하려고 했는데…… 계획보다는 이르긴 하지만 기사까지 난 이상 지금이 적당한 시기인 것 같습니다.”
사장이 아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최대한 책을 비축해 둔 후 이서준의 연극 소식이 알려졌을 때, 일시에 풀어 베스트셀러의 자리에 올려놓을 계획이었는데 알려지는 시기가 조금 일렀다.
“10월만 되도 충분했을 텐데 말이에요.”
“그러게 말이야.”
아직 9월 중순.
겨우 2주 차이였지만 직원들도 아쉬운 얼굴이었다. 베스트셀러 하나를 만드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미 일어난 일이니 어쩔 수 없지. 지금은 수요증가…… 아니,”
허탈하게 웃은 사장이 단어를 바꿨다.
“수요폭증에 대비해서 어떻게 책을 공급할 건지 의논해야지.”
* * *
문화부 최 기자는 다리를 달달 떨며 다시 한번 전화를 걸었다.
수신자는 거울의 담당자 김형원.
자신이 알고 있는 사람 중 이 상황을 더욱 큰 화제로 만들 수 있는 사람이었다.
“인터뷰 하나만 해주면 좋을 텐데…… 여기저기서 엄청 연락이 오는 모양이네.”
한 시간 내내 휴대폰을 붙잡고 있었는데 연결이 되지 않았다. 김형원이 전화를 받을 때까지 전화를 걸 생각이었던 최 기자는 끊기는 연결음에 숨을 죽였다.
-여보세요.
휴대폰 건너에서 김형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제야 연락이 됐네요!”
-안녕하세요. 최 기자님. 북콘서트 기사 감사했습니다.”
“저야말로 감사하죠. 지금 그 기사 조회수 장난 아니게 올라가고 있어요.”
두 달 전에 올린 기사인데 어떻게 알았는지 사람들이 찾아보고 있었다.
“근데 이서준 배우랑은 어떻게 연락이 된 겁니까? 저한테 살짝만 알려주시면 안 될까요?”
-하하. 최 기자님이 모르시면 안 되죠.
“……네?”
김형원의 말에 최 기자는 고개를 갸웃했다.
이미 회의에서 북콘서트 이야기를 기사로 내기로 한 후라 김형원은 마음 편히 대답할 수 있었다.
-그때, 열심히 질문하던 학생 생각나십니까? 검은 모자를 쓴 남학생이요.
“음. 기억하죠.”
휴대폰을 든 최 기자는 김형원에게 전화를 걸면서 잠시 읽어보았던 ‘거울’을 눈으로 훑었다. 최다예 작가의 사인이 남아 있는 북콘서트의 흔적. 다른 사람들은 이 책을 찾아 헤매고 있는데 자신은 이미 손에 넣었다는 사실이 짜릿했다.
“다들 질문 안 하는 곳에서 열심히 질문하던 모습이 인상 깊었죠. 작가님과 그 학생이 하던 대화 때문에 저도 거울에 흥미가 생겼거든요. 얼굴은 잘 보이지 않지만, 기사에 올린 사진에도 조금 찍혀 있을 겁니다.”
그러고 보니 북콘서트를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해 녹음을 했던 기억이 있었다. 기사에 쓰인 최다예 작가와 학생의 질의응답도 그 녹음을 듣고 적었다.
‘그 녹음본이 어디 있더라…….’
다시 정리해서 기사로 만들면 꽤 조회 수가 나올 터였다.
‘사진도 있을 텐데…… 어디다 저장해 뒀더라.’
그때 최 기자의 귀로 김형원의 들뜬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학생입니다.
마우스로 이 파일, 저 파일 뒤지던 최 기자가 고개를 갸웃했다. 이서준 배우의 이야기를 하다가 학생이라니?
“네? 그게 무슨?”
-그 학생이 이서준 배우였습니다.
막 [(7월)거울/최다예 작가/북콘서트 자료]의 파일을 열어 가장 앞에 있던 사진 하나를 클릭한 최 기자의 입이 쩌억 벌어졌다.
“……네?!”
모니터 화면 위로 나타난 검은 모자를 쓴 학생의 옆모습을 보던 최 기자의 눈이 크게 요동쳤다.
* * *
[거울의 저자, 최다예 작가와 만나다.]
<최다예 작가가 쓴 거울은 세 개의 에피소드와 세 개의 이야기를 관통하는 하나의 이야기가 매력적인 소설이다……(하략)>
(북콘서트 사진)
(북콘서트가 끝나고 사인을 받는 사진)
(작가와 독자, 질문 대답 요약본)
-와. 책이 없어서 이런 걸 다 보네.
-2달 전에 북콘서트를 했구나.
-근데 독자 질문 잘하는 듯. 질문이랑 작가 대답만 읽어도 되게 재미있을 것 같다.
=222 독자 되게 책 열심히 읽었나 봐.
-책 읽고 싶은데 책이 없어!
이서준이 선택한 소설 ‘거울’의 정보를 이리저리 찾고 다니던 사람들의 눈에 북콘서트 기사 하나가 들어왔다. 두 장의 사진과 짧은 내용이지만 작가와 독자의 질의응답은 묘하게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와. 출판사 책 팔 생각이 없나 봐. 서점에 책이 없어.
>북콘서트 기사만 계속 나오고 있네.
>그것도 첫 기사 복사+붙여넣기야. 다른 정보가 없어.
친구들의 메시지에 박성원은 낄낄 웃으며 바나나톡을 보냈다.
<(최다예 작가 사인이 있는 거울 표지 사진)
<나 북콘서트 갔었음ㅋ
>네가? 북콘서트를?
>ㅋㅋ어디서 합성 사진을ㅋㅋ
<진짜임ㅋㅋ
<사람이 별로 없어서 중간에 그냥 갈까 생각했는데 끝까지 앉아 있길 잘한 것 같음.
>……혹시 다섯 명만 있었어?
>중간에 사람들 나가서.
“음?”
친구의 물음에 박성원이 기억을 떠올렸다.
열 명 중 다섯 사람이 중간에 나가고 다섯 명이 자리에 남아 있었다.
카메라를 들고 있던 기자로 보이는 남자 한 명, 친구인 것 같은 여자 두 명. 열심히 질문하던 검은 모자의 남학생 한 명. 그리고 자신까지.
<ㅇㅇ 5명 + 작가 + 사회자
<한 명은 기자였던 것 같은데.
>헐. 헐…….
>검은 모자 쓴 남학생이 질문 계속하고?
>또박또박 말도 잘하고?
>아우라 같은 건 없었음?
<아우라는 모르겠는데…… 검은 모자 쓴 애가 똘똘하긴 했지.
<걔 아니었으면 나도 중간에 나왔을걸.
<근데 어떻게 알았냐?
>와…… 미쳤다.
>이거 봐.(링크)
[(단독) 거울의 최다예 작가와 배우 이서준이 만났던 그 날!]
<작은 공간, 일곱 명의 독자와 세 명의 기자, 그리고 한 명의 작가가 만났다.
처음에는 ‘거울’을 소개하느라 사회자와 작가만이 대화를 나눴다.
지루한 듯 세 명의 독자와 두 명의 기자가 자리를 떴다.(본 기자는 끝까지 남아 있었다!)
(열 명이 앉아 있는 사진1)
(다섯 명이 앉아 있는 사진2)
열 명 중 반이 떠나간 공간은 어색한 공기가 흘렀다. 다른 독자들도 어색한 얼굴에 이대로 북콘서트가 끝나나 싶었는데! 검은 모자를 쓴 학생 하나가 손을 번쩍! 들었다.(안타깝게도 사진은 없다.)
작은 공간이라 학생의 목소리는 잘 들렸지만 불행히도 당시에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녹음 파일)
최다예 작가는 떨리는 목소리였지만 열정적인 독자의 질문에 친절히 대답해 주었다. 듣고 있던 본 기자마저 책에 관심이 갈 정도로 작가와 독자의 대화는 재미있었다.
(중략)
조금 전, 영웅출판사 측에서 깜짝 놀랄 소식이 전해졌다.
책을 좋아하는 평범한 학생 같았던 이 검은 모자의 학생이 ‘배우 이서준’이라는 것!
믿을 수 없는 이야기에 몇 번을 물어도 돌아오는 대답은 한결같았다.(정말로 바로 옆에 배우 이서준이 있었던 것이다!)
(중략)
이런 곳에서 만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인물이라 당시 최다예 작가와 출판사 관계자도 당황했다고 한다. 자세한 이야기는 최다예 작가와의 인터뷰에서 풀어나갈 예정이다.>
(북콘서트가 끝나고 사인을 받는 사진)
(B컷 검은 모자 학생 사진 1)
(B컷 검은 모자 학생 사진 2)
(B컷 검은 모자 학생 사진 3)
-아니. 왜 여기서 서준이가 튀어나와?
-헐…… 열심히 질문하던 독자가 이서준이었다고?
-처음부터 끝까지 서준이만 찾고 있었는데…… 남학생이 서준이었어……ㅋ
=22 서준이는 언제 나오나 했음.
=333 왜 북콘서트 이야기뿐인가 싶었는데……ㅎ
-근데 기자 속마음 너무ㅋㅋ 기사를 쓰라니까 경험담을 적어놓네ㅋㅋ
=난 비하인드 같아서 좋음ㅎ
-침착-흥분-경악-급침착ㅋㅋ
-와. 그냥 북콘서트 갔는데 알고 보니 이서준이 있었어.
-녹음본이랑 사진이라니. 이건 이 기자한테만 있는 자료일 듯.
=22 진짜 둘도 없는 보물 같은 자료.
=하루에 사진 하나씩만 풀어도 조회 수는 보장이네.
-조회 수 올라가는 거 장난 아님. 다들 이것만 보고 있는 듯.
-이런 서준이 모습 좋은 것 같아. 진짜 일상이잖아.
=22 그동안 ‘배우’ 이서준이었으면 이건 ‘학생’ 이서준 같은 느낌ㅎ
-먼저 간 기자 2명은 큰일 날 듯
=그러게. 바로 앞에서 특종을 놓쳤네.
-헐. 나 저기 있었는데.
=이야기 좀!!
=친구랑 갔는데 다들 나가길래 나가려고 했거든. 근데 누가 질문하길래 조금만 듣고 가야겠다 생각했음. 작가랑 하는 대화가 재밌어서 끝까지 봤음.
=근데 그게 이서준이 있었을 줄이야. 지금 친구랑 난리 남ㅎ 사인 받고 싶었는데ㅠㅠ
=이건 성덕이냐 덕계못이냐ㅋㅋ
=그러게. 근처에 있었던 데다가 목소리까지 들었는데 못 알아봤어ㅋㅋ
-작가 인터뷰 꼭 봐야겠다.
=22 이서준이 어떻게 북콘서트에 오게 된 건지 궁금함.
“와…….”
북콘서트 참가자 중 하나인 박성원은 말을 잇지 못했다.
* * *
월요일.
다른 학교들이 서준의 졸업 공연에 대해 떠들고 있는 것과는 달리 여울 예중은 이번 주 내내 이어질 이서준의 오디션에 집중했다.
학교 수업이 모두 끝나고 서준은 선생님께 부탁해 빌린 교실에 혼자 앉아 있었다.
이번 주 내내 이 교실에서 오디션을 치를 예정이었다.
오늘은 배경&소품. 내일은 음악. 수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배우.
유능한 매니저, 안다호의 예상대로 몰려든 신청서에 서준은 배우 오디션을 3일로 정해야 했다.
서준은 책상 위에 올려둔 배경&소품에 지원한 학생들의 신청서를 하나씩 넘겨보았다. 미술과 학생들이 대부분이었는데 간간이 연기과 학생들도 보였다.
오디션을 시작할 시간이 되자 대기실로 만든 옆 교실에 있던 주희가 문을 열고 물었다. 고맙게도 친구들이 오디션을 도와주기로 했다.
“서준아. 시작할까?”
“그래.”
서준이 고개를 끄덕이자 옆 교실로 간 주희는 오디션 순서대로 앉아 있는 아이들 중 가장 앞에 앉아 있던 아이를 불렀다.
“1번이지?”
“네!”
“지금 가면 돼.”
“네! 감사합니다!”
주희의 부름에 아이가 벌떡 일어났다.
이렇게 가까이서 이서준을 본 적이 없는 미술과 1학년은 입시 면접을 볼 때보다 더 떨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교실 안으로 들어갔다.
“아, 안녕하세요! 미술과 1학년 1반 5번 정민형이라고 합니다!”
씩씩한 목소리에 서준이 빙그레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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