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248화
기사가 뜨기 며칠 전.
여울 예중 근처 연기학원.
강사가 넓은 화이트보드에 어렵게 구한 소설 [거울]의 두 번째 이야기의 캐릭터들을 적어 내려갔다. 여울 예중 아이들이 눈을 빛내며 바라보았다.
“이 배역은 이서준이 할 예정이라고?”
“네.”
배역 분석에 들어간 강사와 여울 예중 학생들을 다른 학교 아이들이 바라보고 있었다. 막 다른 수업을 끝내고 온 초등학생들이 중학생들에게 물었다.
“저 형들이랑 누나들은 따로 특강 받는 거예요?”
“아니.”
그저 그런 특강이라면 이렇게 쳐다만 볼 게 아니라 당장 합류해서 같이 받았겠지만, 이번만은 그러기 힘들었다. 중학생들은 부러운 눈길로 여울 예중 학생들을 바라보았다.
“이번에 이서준이 여울 예중 졸업 공연한대.”
“정말요?!”
중학생들의 말에 초등학생들이 눈을 빛냈다.
여울 예술중학교를 진학 1순위 학교로 삼고 있는 아이들이니만큼 여울 예중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있었다.
비록 자신들이 여울 예중에 입학한다고 하더라도 이서준과 함께 학교생활을 하진 못하겠지만 이서준이 졸업한 중학교의 학생이라는 것만으로도 멋진 타이틀이 될 터였다.
“무슨 작품인데요?”
초등학생들이 너튜브에 올라와 있는 여울 예중의 졸업 작품들을 나열했다. 중학생들이 고개를 젓고 손가락으로 화이트보드를 가리켰다. 초등학생들의 고개가 일제히 돌아갔다.
“소설이 원작이래. 이서준이 직접 각색했다더라.”
“주위에 아는 작가, 감독이 많아서 도와줬겠지만 말이야.”
감탄하는 초등학생들의 눈에 글자가 빼곡히 적힌 화이트보드와 진지한 표정으로 필기하고 있는 여울 예중 학생들의 모습이 보였다.
* * *
-내 친구의 동생의 친구의 친구가 다니는 연기학원에 여울 예중 애들 많이 다니는데 이서준 차기작 연극이래.
하나의 댓글로 시작한 소문은 금세 인터넷을 뒤덮었다.
-헐. 연극? 연극?!
-진짜임?
-근데 이렇게 퍼지는 거 보면 아닌 것 같은데.
=ㄴㄴ 진짜라던데. 나도 들음.
-아직 개막 안 한 거겠지?
-봄처럼 목소리만 나오는 거면 지금 하는 걸 수도 있음.
-뭐지. 찾아볼까?
토요일 저녁.
기삿거리를 찾기 위해 평일 주말 할 것 없이 인터넷을 떠돌던 기자들의 눈에도 들어왔다.
“연극이라…….”
영화나 드라마 같이 볼 수 있는 사람이 많은 영상 매체와 달리 연극 같은 경우에는 볼 수 있는 관객 수가 정해져 있어 배우 팬들은 티켓을 구하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게다가 배우들의 연기를 바로 눈앞에서 느낄 수 있다는 매력도 있지.”
어린이 연극 ‘봄’ 이후 연극은 하지 않았던 이서준이라면, 오스카상으로 인정받은 이서준이라면 다른 배우들보다 더 관심이 쏠릴 터였다.
팬들뿐만이 아니라 연극에 관심이 없는 일반인조차도 한 번쯤 보러 갈까, 생각하게 하는 배우니까.
먹이를 찾은 기자들이 눈을 번뜩이며 인터넷을 뒤졌다.
-소설 원작이라던데.
=소설?
-소설 원작인 연극 몇 개 있지 않나?
“소설 원작?”
또 하나 힌트가 튀어나왔다.
기자가 소설 원작 연극을 찾아보았다. 베스트셀러부터 동화까지. 어디로 튈지 모르는 배우 이서준이라 목소리만 등장하거나 특이한 배역까지 샅샅이 훑었다.
“이거?”
그러던 중 기자들의 눈에 익숙한 이름이 보였다.
[소설 ‘배심원’을 연극으로 만나다!]
<청소년 필독서 중 하나, 송문석의 소설 ‘배심원’이 연극으로 만들어진다. 오는 11월 개막 예정으로……(중략)…… 박원경의 아버지 역에 배우 김종호가 출연할 예정이다……(하략)>
일명, 이서준 사단.
“……김종호?”
연예부 기자의 눈이 번뜩였다.
배우, 김종호였다.
* * *
일요일 아침부터 기사가 뜨기 시작했다.
[배우 이서준, 연극 ‘배심원’에 출연!]
[배우 이서준, 배우 김종호, 연극 무대에 올라!]
[이서준의 두 번째 연극!]
[청소년 필독서 ‘배심원’에 대해 알아보자!]
[계획 살인인가? 사고인가? 모든 판단은 책을 읽는 당신에게!]
-헐! 서준이 연극하네!
-무슨 연극이냐!! 꼭 보러 가야지ㅠㅠ
-표 삽니다!!
=222 표 삽ㄴ…… 아직 안 파네. 빨리 팔아라!!
=……피켓팅이 될 것 같다;;;
-김종호 배우랑 같이함? 재미있겠다!!
-김종호도 연극 10년 만 아닌가?
=서준이도 8년 만임!
=꼭 봐야겠다ㅠㅠ 언제 또 할지 모름ㅠㅠ
-와. 김종호 팬에 이서준 팬이면…… 대박이네.
-배심원? 무슨 내용이야?
=주인공이 배심원임. 검사랑 변호사 이야기만 듣고 판단하는데 진짜 배심원 된 것 같음.
=책 읽어보는 거 추천!
=오. 근데 이서준은 무슨 배역이야?
=……글쎄?
* * *
“아니, 이게 무슨 일이야?”
서은찬이 사색이 된 얼굴로 차에서 내렸다.
아내 김수련은 친구들과 1박 2일로 여행을 갔고 딸 서은수는 서준의 집에서 자고 올 예정이라, 늑장 부릴 생각에 느긋하게 일어났더니 자신도 모르는 소속 배우의 출연 사실에 온 세상이 떠들썩해져 있었다.
쌓여 있는 메시지와 부재중 전화들을 확인하고 헐레벌떡 코코아엔터로 달려오니 코코아엔터도 난리가 나 있었다.
급하게 출근한 안다호 팀장은 물론이고 배우 이서준 전담 2팀 직원들까지 기자들에게서 쏟아지는 확인 연락에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입니까?”
일단 상황파악이 먼저라 서은찬이 안다호에게 물었다.
“기자들이 서준이 연극 소식을 들은 것 같은데 회사에 확인도 없이 내보낸 것 같습니다.”
“아니, 왜 확인을 안 하고 기사를 내보내고 난리야…….”
안다호의 말에 서은찬이 기자들을 향해 이를 갈았다. 어휴, 한숨을 쉰 서은찬이 다시 물었다.
“근데 왜 정정기사를 안 내보내는 겁니까?”
“그게 저희도 확실하지가 않아서…….”
“그게 무슨?”
이서준 전담팀인 2팀과 매니저인 안다호가 서준의 출연에 대해 확신이 없다니? 서은찬이 미간을 찌푸리자 그늘진 얼굴의 안다호가 휴대폰을 내밀었다.
“이게 제일 먼저 뜬 기사입니다. 나머지는 다 이걸 보고 따라 쓴 것 같습니다.”
서은찬은 안다호가 내민 기사를 바라보았다.
[배우 이서준, 연극 ‘배심원’의 무대에 오르나?]
<배우 이서준이 연극 무대를 준비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소설 원작의 연극으로, 가장 가능성이 큰 것은 올 11월에 개막하는 송문석의 소설 ‘배심원’이다. 연극 ‘배심원’은 배우 김종호가 출연을 확정 지은 상황이고, 배우 김종호와 이서준의 친분을 보면 특별출연으로 나올 가능성이 클 것……(하략)>
연극 무대를 준비하는 것도 사실, 소설 원작의 연극이라는 것도 사실, 서준과 김종호가 친하다는 것도 사실이었지만 나머진 다 기자의 추측에 불과했다. 이 추측 기사가 이 사태의 원인이었다.
일찌감치 정정기사를 내면 해결될 일이 어째서 이렇게까지 커진 건지 이해할 수 없었던 서은찬이 입을 열었다.
“하지만 서준이는 별말 없었잖습니까? 안 팀장님도 따로 들은 게 없죠?”
특별출연한다면 출연한다고 말했을 서준이었다. 매니저인 안다호도 이서준 전담팀인 2팀 직원들도 미리 알고 있었을 터였다.
“그렇긴 한데…….”
안다호와 2팀 직원들이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엄청 바쁠 때가 아니면 언제나 활기찼던 평소와 달리 침울한 2팀의 분위기에 서은찬이 눈을 끔벅였다.
“이제 서준이 재계약 기간이지 않습니까.”
“……그렇죠?”
올해까지니 이제 3달 정도 남았다.
‘슬슬 누나랑 매형한테 사인받아야 할 텐데…….’
아직 서준이 미성년자라 보호자의 사인이 필요했다. 오늘 사인받으러 갈까, 잠시 고민하던 서은찬의 귀에 안다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른 곳과 계약할 예정이라 저희한테 알려주지 않은 게 아닐까요?”
“……네?”
‘아니, 이게 무슨 소리야?’
안다호의 말에 서은찬이 멍하니 안다호와 2팀 직원들을 바라보았다. 그런 서은찬의 반응에 정곡을 찔린 것이라고 생각한 2팀 직원들이 우울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서준이도 별말 없고…….”
“사장님도 재계약 이야기를 안 꺼내시니까요.”
“서준이 다른 기획사랑 이야기 나누고 있는 거 아니에요?”
“아니면 1인 소속사를 만들거나요.”
1인 소속사 이야기에 안다호의 얼굴이 더욱 우울해졌다.
3학년 2학기가 되면서 2팀은 서준의 재계약으로 이것저것 의견을 나누는 일이 잦아졌다.
아무리 삼촌이라고 해도 아예 불만이 없을 수는 없다는 것과 어릴 때 했던 계약이라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을지도 모른다는 것, 다른 소속사에서 더 좋은 조건이 들어왔을지도 모른다는 것이 주된 의견이었다.
2팀 직원들의 말에 서은찬이 황당한 얼굴로 되물었다.
“왜 재계약한다고는 생각 안 했습니까?”
“그랬으면 더 일찍 말해주셨을 것 같아서요.”
재계약 날짜는 다가오는데 배우인 서준도 사장인 서은찬도 별말이 없었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결정권자인 두 사람을 바라보는 안다호와 직원들만 전전긍긍했다.
평소와 같은 서은찬과 서준의 모습인데도 왠지 싸늘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루하루 ‘서준이 다른 회사 가면 어떻게 하지?’, ‘다른 팀으로 가야 하려나?’ 하며 앞으로의 일을 걱정하던 차에 ‘자신이 모르는’ 배우에 관한 기사가 떴다.
처음 ‘배심원 출연’기사를 봤을 때는 재계약 불발의 증거인 것 같아, 심장이 쿵 떨어졌던 안다호와 2팀이었다.
정정기사를 지금까지 쓰지 못한 것도 혹시나 서준이 자신들에게는 말하지 않은 출연일까 봐 고민했기 때문이었다.
“괜히 출연 기사, 정정기사가 계속 나오면 불화설이 돌 테고 그럼 서준이 이미지에도 흠이 갈 테니까요.”
안다호의 말에 서은찬이 입을 벙긋벙긋거리다가 겨우 한마디를 내뱉었다. 이 모든 걱정과 불안을 날려줄 한 사람의 이름이었다.
“……서준이는요?”
“전화를 안 받습니다.”
안다호가 울적한 얼굴로 대답하자 2팀 직원들도 풀이 죽은 듯 조용히 모니터만 바라보았다. 이런 상황에, 정말로 피하는 듯 전화까지 안 받으니 안다호와 2팀은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안다호의 말에 서은찬이 2팀 사무실을 뛰쳐나와 주차장에 세워놓은 차에 올랐다.
“서준아아!!”
재계약 100%라고 생각해서 재계약의 ‘ㅈ’도 꺼내지 않았던 서은찬이었지만 막상 일이 이렇게 되자 당장 서준의 집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 * *
“은수가 부쉈어.”
“헤헤헤.”
왜 전화를 안 받느냐는 서은찬의 말에 서준은 액정이 산산조각이 난 스마트폰을 내밀었다. 서준의 뒤에서 고개를 빼꼼 내밀고 있던 은수가 현관에서 거의 쓰러지듯 주저앉은 아빠를 웃으며 바라보았다.
“딸……!”
연락 두절의 원인이 어젯밤 서준의 집에서 놀다가 잠이 든 자신의 딸, 서은수라는 말에 서은찬은 자신도 모르게 뒷목을 잡았다.
* * *
은수를 서은혜에게 맡기고 서준은 서은찬의 차를 타고 코코아엔터로 향했다. 서은찬이 주절주절 늘어놓는 이야기에 서준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아니, 그게 무슨 소리야?”
“너 다른 회사 가는 게 사실일까 봐 누나랑 매형한테 전화도 못 하고 나 올 때까지 기다렸다더라. 넌 왜 휴대폰 고장 났다고 전화를 안 했어? 기사도 계속 뜨는데.”
“난 알아서 정정기사 내보낼 줄 알았지. 게다가 오늘 일요일이잖아.”
그래서 정정기사가 늦게 뜨는 줄 알았다.
“설마 그런 이유로 걱정하고 있을 줄은 몰랐지.”
서준이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결정권자인 배우 이서준과 사장 서은찬은 너무 가볍게 생각하고 있었고 안다호와 2팀은 너무 무겁게 생각하고 있었다.
코코아엔터에 도착한 서준은 2팀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서준을 발견한 안다호가 어정쩡한 모습으로 의자에서 일어나고 2팀 직원들도 놀라 서준을 바라보았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다들 고민이 많았는지 얼굴이 조금 상한 것 같았다.
8년 동안 함께 지낸 안다호와 2팀 직원들을 바라보며 서준은 그 어느 때보다 활짝 웃으며 말했다.
“저 다른 데 안 가요.”
그 말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른다.
안다호와 2팀 직원들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서준을 바라보았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사람들의 모습에 서준은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다른 데 가더라도 다호 형이랑 2팀, 모두 같이 가야죠. 삼촌한텐 미안하지만.”
“이서준!”
“아하하하.”
서준의 시원시원한 웃음에 걱정을 내려놓은 안다호와 2팀 직원들도 활짝 웃었다.
[배우 이서준, 연극 ‘배심원’ 출연 계획 없어!]
[이서준, 여울 예중 졸업 공연 예정!]
[학생들이 만들어가는 여울 예중 졸업 공연!]
[여울 예중 졸업 공연을 직접 보기 위해서는!?]
[배우 이서준이 선택한 소설, ‘거울’]
-아. 아니었구나…….
-졸업 공연ㅠ 난 못 보겠지.
=너튜브 뜬대.
-직접보고 싶었다ㅠ
-근데 기자들도 기사 너무 막내는 듯.
-이상하게 이번엔 정정기사가 좀 늦었다?
=222 코코아엔터가 웬일이래?
=일요일이라 그런 거 아님?
-거울? 읽어봐야겠다.
=근데 책이 없음.
=??
=책이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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