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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247화 (247/1,055)

0살부터 슈퍼스타 247화

9월.

여름방학이 끝나고 여울 예중 2학기가 시작되었다.

평소와는 달리 아침 일찍 등교한 서준은 교실에 가방을 내려놓고 파일 하나를 꺼냈다. 파일 안에는 서준이 집에서 만들어온 공고가 여러 장 있었다.

“1층부터 붙일까?”

아무도 없는 교실을 나온 서준은 각 층 게시판에 공고를 붙였다.

일찍 등교하던 아이들은 게시판 앞에 서 있는 선배를 보고 살며시 지나가려다가 그 선배가 이서준인 걸 알아채고 입을 틀어막았다.

“뭐 하시는 거지?”

“뭐 붙이고 있나 본데?”

여름방학 동안 능력의 효과가 떨어졌는지 개학하자마자 만난 서준의 모습에 흥분해 있던 아이들은, 조금 침착해지자 서준이 무얼 하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1층에 공고를 붙인 서준이 2층으로 올라가자 아이들이 게시판 앞으로 몰려들었다. 구겨진 자국 하나 없는 빳빳한 A4용지 하나가 유난히 눈에 띄었다.

“헐.”

[졸업 공연 팀원 모집]

[팀장 : 3학년 2반 이서준]

으로 시작한 공고가 붙자마자 여울 예중은 난리가 났다.

“으아아아! 드디어 붙었다!”

3월에 서준이 졸업 공연 신청서를 내고 그 뒤로 매일같이 게시판을 힐끗거리던 아이들이 공고를 찍어 단톡방에 올렸다. 누군가는 놀라 직접 반으로 달려가기도 했다.

등교하던 아이들도 막 버스를 탄 아이들도 쏟아지는 메시지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3개의 학과, 각 학년 2반씩 있는 여울 예중에 소식이 퍼지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미술과, 음악과, 연기과 할 것 없이 난리가 났다. 교무실마저 들썩일 정도였다.

“쌤! 이서준 선배님이 공고 붙였대요! 잠시만 보고 올게요!”

2학년 반장이 눈을 빛내며 교무실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 날렵한 모습에 담임선생님이 감탄했다.

“대단하네. 쟤 저렇게 뛰는 모습을 본 적이 없는데.”

선생님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근데 서준이가 드디어 정했네요.”

“전 취소할 줄 알았어요.”

졸업 공연 신청을 취소하는 경우도 없지는 않았다. 적당한 대본이 없거나 함께할 배우들이 없을 때, 작품이 여울홀로서는 감당이 안 될 때, 연습 시간이 촉박해서 팀이 깨질 때,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하는 공연이니만큼 이유도 가지각색이었다.

“이번 졸업 공연 엄청 기대되네요.”

“그러게요.”

“근데 서준이 작품이 뭐래요?”

* * *

“거울?”

“거울이 뭐야?”

이서준 선배의 공고가 뜬 건 좋았는데 작품 이름이 듣도 보도 못한 거라 2학년 아이들이 고개를 갸웃했다.

“한석아! 거울이 뭐야?”

그러면 항상 이서준 선배와 가장 친한 김한석에게로 질문이 돌아갔다.

“잠시만.”

<누나! 거울이 뭐예요?

>주경 : 그거 책이야! 서준이가 책 각색한 거래!

>주경 : 와…… 어떻게 책을 각색할 생각을 한 거지?

>주경 : 재능충도 이런 재능충이 없어!!

“헐.”

“뭐야, 뭐라셔?”

“소설책이래. 그걸 서준이 형이 각색한 거래.”

“와…… 미쳤다…….”

연기과 2학년 2반에서 퍼진 정보는 금세 여울 예중을 뒤덮었다. 여울 예중이 서준의 넘치는 재능에 감탄하고 있을 때,

자신의 자리에 앉아 있던 서준은 각색할 때와는 다른 의미로 초조해지고 있었다.

‘왜 아무도 안 오지?’

이제 곧 조회시간이 되는데도 아무도 신청서를 내러 오지 않았다.

그래도 같은 반 애들 중 몇 명은 신청할 줄 알았는데 다들 휴대폰만 보고 있었다. 주희랑 주경이랑 지호랑 재한이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이 모르는 사건이라도 터졌나, 휴대폰을 꺼내 봤지만, 세상은 평소와 같았다. 휴대폰을 집어넣은 서준의 얼굴에 그늘이 졌다.

‘어려운 곡은 아닌데…….’

배경음을 맡을 음악과 학생들도.

‘배경 만들기 쉬운데…….’

배경과 소품을 만들 미술과 학생들도.

아무도 오지 않았다.

‘……망했나.’

원하는 작품을 못 찾거나 각색을 못 할 거라고는 예상했지만, 사람을 못 구해서 망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서준의 얼굴에 진 그늘이 점점 짙어져 갈 때, 서준의 책상 위로 새하얀 종이가 나타났다.

“서준아. 내 신청서야.”

왠지 심각한 표정으로 책상을 바라보고 있던 서준이 천천히 고개를 들어 재한을 바라보았다.

슈퍼스타 이서준이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환하게 웃었다. 어쩐지 배경에 꽃에 후광까지 보이는 것 같았다. 그 아우라에 휴대폰만 바라보고 있던 아이들의 시선까지 서준에게로 모였다.

“재한아, 고마워! 근데…… 연극 못할지도 모르겠어.”

“응?”

배우가 한 명 생겼다는 사실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서준이 아직도 모자란 신청서에 저도 모르게 입술을 삐죽였다.

“다른 애들은 관심이 없나 봐. 다호 형이 2학년, 3학년 애들 중 반은 신청할 거라고 해서 조금 걱정했는데…… 괜히 걱정했나 봐. 아무도 안 와. 이러다 연극 못하면 어떻게 하지?”

각색이 끝난 다음 날.

안다호가 적어도 40명의 오디션을 볼지도 모른다고 이야기해서 반쯤 그럴까? 생각하며 오디션 스케줄을 짠 서준이었는데, 이제 겨우 신청하는 한 명에 김칫국을 거하게 마신 것 같아 민망했다.

이건 이불킥 감이다.

자기 전에도 이불킥. 생의 도서관에서도 이불킥.

다음 생의 자신이 이서준의 책을 본다면 흑역사 10위쯤에 들지 않을까.

서준의 말에 서준의 옆자리인 지호가 허 하고 허탈한 웃음을 내뱉었다.

“그거야 다들 거울이 뭔지 알아보는 중이니까 그런 거지.”

“그래도. 배역 이름이랑 성별, 이미지는 적어뒀는데…….”

“네가 얼마나 눈이 높은 줄 우리 학교 애들은 다 아는데 얼렁뚱땅 신청하면 네가 제대로 봐주겠어? 혹시라도 ‘지금 당장 오디션 보자’라고 말하면 죽도 밥도 안되는 거잖아.”

음.

맞는 말이라 서준은 입을 다물었다.

“나도 지금 책 사는 중이니까. 오디션 며칠만 기다려 줘.”

아까부터 계속 휴대폰을 살벌하게 두들기고 있던 주희가 눈을 번뜩이며 말했다.

“나도. 윽. 여기도 매진이야.”

“책이 있는 곳이 없어! 도대체 이 출판사는 책 팔 생각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휴대폰을 붙들고 있던 다른 아이들도 불만을 토해냈다. 그런 아이들의 반응에 서준이 눈을 깜빡였다. 어라?

“설마 다들 책 사는 중이었어?”

“그래. 그러니까 신청 기간 좀 늘려.”

주희의 말에 서준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으로 신청서를 낸 재한이 볼을 긁적이며 말했다.

“나도 너한테 책 빌려 읽어서 지금 낼 수 있었던 거지. 아니었으면 며칠 걸렸을 거야.”

“그랬구나.”

‘관심 없던 게 아니었구나.’

어쩐지 안심이 된 서준이 헤헤 웃었다.

“재한인 좋겠다. 책 읽어봐서.”

부러워하는 주경에 재한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책 사야 하는 건 변함없어. 누가 소설책 읽는데 이 배역 대사를 외워야겠구나, 이 배역을 분석해서 연기해야겠구나 생각해? 나 되게 편하게 읽었단 말이야.”

“그건 그래.”

“누가 책 읽다가 연극으로 만들어야지라고 생각하…… 는 애가 있구나.”

주경과 재한, 지호의 시선에 서준이 아하하하 어색하게 웃었다.

“아! 여기도 매진이야!”

“으아아아! 샀다!”

“잠깐 거기 어디야!?”

“주소, 주소!”

왠지 자신 때문에 난리가 난 것 같아 서준은 조용히 파일에 재한의 신청서를 넣어두었다.

* * *

“엄마! 엄마! 엄마아!!”

학교에서 돌아온 아들의 외침에 엄마는 저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

“너 연기학원 안 갔…….”

“이서준 선배!”

헐레벌떡 들어온 아들이 엄마의 화를 풀 만능단어를 내뱉었다. 불같이 화를 내려던 엄마가 놀란 얼굴로 아들 앞으로 달려왔다.

“이서준 선배가 왜!”

“졸업 공연 공고 붙였어!”

“드디어!”

아들이 여울 예중에 입학하고 나서부터 일주일에 한 번씩은 꼭 언급되는 이름.

이서준.

분명 3월에 졸업 공연을 신청했다고 들었는데 1학기가 지나고 여름방학이 지나도 붙지 않던 공고가 드디어 붙었다.

엄마의 눈이 번쩍였다.

“신청서 냈어?”

“아니!”

단번에 대답하는 아들의 모습에 엄마는 뒷목을 잡았다.

“……우리 해맑은 아드님. 왜 안 내셨을까?”

“모르는 작품이야!”

“……학원에서 이것저것 다 해봤다며?”

이서준이 신청서를 내고 난 다음 날부터 중학생이 할 만한, 아니, 범위를 넓혀 유명한 작품들을 연습했다고 들었다.

아니었나. 연기학원을 바꿔야 하나.

엄마가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을 때 아들이 입을 열었다.

“이서준 선배가 만들었대!”

“……뭐?”

“원작이 소설인데 그걸 각색해서 연극으로 만들었대!”

각색? 본인이 직접?

도저히 한 살 위의 선배라고는 느껴지지 않을 정도의 능력이었다. 하긴 할리우드 배우라는 경력도 만만치 않지만 말이다.

“세상에…… 근데 신청서는 왜 안 냈어?”

“난 하려고 했는데 한석이가 허접하게 오디션 보면 눈에 안 띈다고 했어. 오히려 싫어할지도 모른다고. 오디션에 탈락해도 연기 잘하면 이서준 선배한테 인상 깊게 남을 거라고 해서 안 냈어!”

“아들.”

“응?”

“한석이랑 친하게 지내.”

“응!”

지금도 친하지만, 더 친하게 지내야지!

엄마는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우리 아드님은 어찌 이리 해맑을꼬.

“아 참! 엄마 나 돈 좀!”

“돈은 왜?”

“원작이 소설이랬잖아. 서점에 가서 책 사려고! 인터넷은 다 품절이야! 우리 반 애들도 다 책 사러 간대!”

“……그걸 먼저 말했어야지!”

엄마가 벌떡 일어나 한 손에는 핸드백을 한 손에는 아들의 손을 잡고 뛰쳐나왔다.

“학교랑 가까운 곳은 다 팔렸을 테니까 먼 곳으로 가야겠다. 아들. 안전벨트 매!”

“으응.”

활활 불타오르는 엄마를 본 아들은 저도 모르게 안전벨트를 두 손으로 꽉 잡았다.

* * *

“ㅅ……ㅏ이다. 크윽. 사이다 줘.”

“별일이네. 이 애주가가 술을 안 마시고.”

친구들의 놀림 속에서도 영웅출판사의 직원은 열심히 알코올이 가득 든 초록색 병을 피하며 길쭉한 초록색 병에 든 음료수를 마셨다.

“넌 쟤랑 같은 초록색인데 왜 이렇게 맛이 다르냐?”

“……진짜 무슨 일 있냐? 한 잔만 마셔봐.”

“안돼! 난 취하면 안 돼!”

“아. 한 잔만 먹어보라고.”

망할 친구들의 권유에 혹한 직원은 얼른 고개를 젓고 벌떡 일어나 가게를 뛰쳐나왔다. 번개같이 사라지는 친구의 모습을 다들 얼빠진 얼굴로 쳐다보았다.

“……저놈이 미쳤나?”

유혹을 뿌리치고 집으로 돌아온 직원은 얼른 씻고 잠자리에 들었다.

“빨리 11월이 됐으면…….”

그러면 술도 마음껏 먹을 수 있을 텐데.

이제 겨우 9월이라는 사실에 직원은 슬퍼하며 잠을 청했다.

다음 날 아침.

“난 취하면 안 돼!!”

직원이 벌떡 일어났다. 식은땀이 흐르는 얼굴이 창백했다.

악몽을 꿨다.

친구놈들이 술을 퍼주고 자신은 뭐가 그리 맛있는지 들이마셨다. 순간 장면이 바뀌고 기자회견장 같은 곳에서 마이크를 앞에 두고 기자들에게 나불거렸다. 기자들 뒤쪽에 나타난 빌런 모드의 진 나트라가 노려보는 장면까지.

“어휴. 빨리 밝혀지든가 해야지.”

머리를 벅벅 긁은 직원이 시간을 확인하기 위해 휴대폰을 보았다. 오늘이 주말이긴 하지만 너무 늦게 일어났,

[부재중 전화 43]

[문자 82]

[바나나톡 325]

“……어?”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등골이 오싹해지며 오한이 들었다. 식은땀이 정수리부터 흘러내려 온몸을 뒤덮는 것 같았다. 손과 발이 땀으로 흥건해졌다.

“……!!”

설마 내가 꾼 악몽이 꿈이 아니었나?

말을 내뱉지도 못하고 덜덜 떨리는 손으로, 검색사이트 앱을 눌렀다. 차마 바나나톡과 문자는 확인하지 못했다.

‘죄송합니다. 사장님! 편집장님!’

석고대죄는 몇 시간 동안 해야 하는 건가, 잠시 현실도피를 하던 직원은 가늘게 뜬 눈으로 휴대폰을 바라보았다.

뭘 검색할 필요도 없었고 찾으려고 애쓰지 않아도 됐다. 바로 눈앞에 큼지막하게 쓰여 있었다.

[배우 이서준, 연극 ‘배심원’에 출연!]

“망했…… 응?”

직원이 눈을 깜빡였다.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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