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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246화 (246/1,055)

0살부터 슈퍼스타 246화

서준은 가방을 들고 차에서 내렸다. 자동차 문을 닫자 조수석의 창문이 내려갔다. 운전석에 앉은 이민준이 웃으며 말했다.

“내일 집에 올 때 엄마한테 전화하고.”

“응!”

“형들이랑 삼촌 힘들게 하면 안 된다?”

“안 그래. 내가 애도 아니고.”

내년이면 고등학생이지만 이민준의 눈엔 아직도 꼬꼬마 같았다. 작게 웃은 이민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재미있게 놀다 와.”

“아빠도 조심해서 가.”

손을 휘휘 저으며 이민준에게 인사한 서준이 뒤를 돌아 이지석의 집으로 향했다. 이지석이 알려준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가 엘리베이터를 탄 서준은 휴대폰을 꺼냈다.

<지석이 형!

<저 아파트 입구에요!

<저 엘리베이터에요!

<저 문 앞이에요!

>지석: …….

>지석: 이런 식으로 보내기냐?

<ㅋㅋㅋ

<여름이잖아요.

삐리릭.

도어락 소리가 들리고 서준의 앞에 있던 현관문이 열렸다.

“초인종을 눌러. 초인종을.”

편안한 복장의 이지석이 서 있었다. 서준이 웃으며 말했다.

“재미있지 않았어요?”

“친구들이랑 그렇게 노냐? 중학생?”

“아하하하. 네.”

피식피식 웃는 모습이 지석이 형도 재미있었나 보다. 안으로 들어가는 이지석을 따라 서준도 신발을 벗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서준이가 마지막이네.”

“그러게요.”

“종호 삼촌! 도훈이 형! 언제 오셨어요?”

“꼭두새벽부터 왔어.”

이지석이 질린 듯한 얼굴로 소파에 늘어져 있는 김종호와 팬에게서 받은 1,000피스짜리 퍼즐을 맞추고 있는 박도훈을 바라보았다. 마치 자신의 집인 양 행동하는 모습을 보니 열이 올랐다.

“할 일도 없고 해서 일찍 왔지.”

“나도. 서준아, 덥지 않아? 온도 내려줄까?”

“괜찮아요.”

서준이 이지석을 따라 오늘 잘 방에 가방을 내려두고 오니, 박도훈이 오렌지 주스를 건네주었다. 시원한 오렌지 주스를 마시고 나니 더위가 싹 가시는 것 같았다. 물론, 거실에 설치된 에어컨 바람도 한몫했다.

서준이 숨을 돌린 것 같자 소파에 늘어져 있던 김종호가 몸을 일으켰다.

“일단 대본부터 볼까?”

“그래. 한 달 내내 궁금해서 못 참겠더라.”

종호 삼촌에 지석이 형, 도훈이 형까지. 번쩍이는 눈빛을 보니 어지간히 궁금한 모양이었다. 서준은 쑥스러운 듯 볼을 긁적였다.

“가방에 있어요. 가지고 올게요.”

“그래. 얼른 갔다 와.”

서준이 가방에 든 대본을 가지러 간 사이 김종호가 자리에서 일어나 테이블 앞에 앉자 박도훈과 이지석도 테이블을 둘러싸듯 앉았다.

‘한국인에게 소파란 뭘까. 왜 앉으라는 소파에 앉지 않고 바닥에 앉는 걸까.’

금세 대본을 들고 돌아온 서준은 텅 비어 있는 폭신폭신한 소파와 바닥에 앉은 세 배우를 바라보다 이내 자신도 익숙하게 바닥에 자리를 잡았다.

“회사에서 복사해 왔어요.”

“역시 우리 서준이!”

1인 1대본.

서준이 네 개의 대본을 챙겨오자 누가 먼저 읽나, 으르렁거리고 있던 김종호와 이지석이 환하게 웃었다. 세 배우는 서준에게서 대본을 받자마자 첫 장을 넘겼다.

“잘 읽을게.”

“근데 원작은 읽어보셨어요?”

“알려주자마자 읽었지. 근데 책 찾기가 더 힘들던데?”

“나도 창고에 있는 거 겨우 샀어.”

“그렇게 잘 팔리는 책은 아니래요.”

“그래?”

“그렇구나.”

대본에 정신이 팔린 배우들의 모습을 알아챈 서준이 입을 다물자 이내 거실이 조용해졌다.

팔랑팔랑 종이가 넘겨지는 소리가 들렸다.

배우들이 날카로운 눈으로 대본을 살피는 모습이 보였다. 왠지 긴장된 서준이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다 뒷목을 매만졌다.

‘감독님들도 이런 기분이었을까.’

한 장 한 장 넘어갈 때마다 서준은 저도 모르게 세 사람의 표정을 살폈다.

고개를 끄덕이면서 읽고 있는 도훈이 형, 집중한 듯 표정 변화 하나 없이 읽고 있는 종호 삼촌, 가끔가다 한군데서 눈을 멈추는 지석이 형.

도통 그 의미를 알 수가 없어 서준은 조금 초조해졌다.

그렇게 길지 않은 연극이라 대본을 읽는 데도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다. 제일 먼저 대본을 내려놓은 이지석이 입을 열었다.

“잘 썼네.”

“정말요?”

“대본 처음 쓴 거잖아. 엄청 잘 썼어.”

“그래. 진짜 잘 썼어.”

이지석의 말에 김종호도 박도훈도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원작 소설이 있더라도 처음 쓴 대본치고는 제법 잘 썼다.

“그렇다고 문제가 없는 건 아니지만.”

“어떤 거예요?”

서준이 눈을 반짝였다.

오늘 이지석의 집에 온 것도 ‘문제’를 찾기 위해서였다. 문제가 있다는 말에도 실망하지 않고 문제를 고치려는 서준의 모습이 참 기특해, 세 배우는 미소를 지었다.

“설명이 너무 많아.”

“설명이요?”

이지석의 말에 서준은 다시 대본을 읽어보았다. 음. 그런가? 고개를 갸웃하는 서준의 모습에 이지석이 말을 이었다.

“딱 서준이 연기 스타일이랄까. 정신과 의사도 다른 등장인물들도 모두 네가 연기했을 때를 가정해서 지문을 써 놓은 거지?”

‘……어떻게 알았지?’

정곡을 찔린 서준이 데굴데굴 눈을 굴리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무슨 소리예요?”

박도훈의 물음에 다시 처음부터 한 장 한 장 대본을 넘겨보던 김종호도 고개를 끄덕였다.

“예를 들면 이런 거지. 여기 정신과 의사의 지문을 살펴보면 ‘침착하게’ 한 단어로 표현되는 지문을 시선의 방향부터 손과 발의 움직임까지 다 적어놨잖아.”

김종호의 말대로 서준의 대본에는 각색가의 의도가 담긴 ‘꼭 필요한 지문’도 있지만 ‘이것까지?’ 하고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지문도 있었다.

“서준이가 정신과 의사를 연기하면 이렇게 할 것 같지 않아?”

박도훈은 대본을 다시 읽었다. 지문의 내용을 상상하며 정신과 의사를 연기하는 서준을 상상하니 자연스럽게 그 모습이 떠올랐다.

‘그렇구나.’

연출가는 자신이 생각하는 가장 좋은 장면을 구상한다. 가장 좋은 장면에 어울리는 배우들을 캐스팅하고 좋은 장면이 나올 때까지 몇 번이고 NG를 내고 편집하고는 했다.

연기파 배우인 서준이 떠올릴 수 있는 ‘가장 좋은 장면’은 정신과 의사도, 다른 배역들도 전부 ‘배우 이서준’, 바로 자신이 연기했을 때였다.

‘자신감이 과하다기엔 서준이가 너무 연기를 잘하지.’

주인공부터 조연, 엑스트라까지 ‘이서준급’ 실력의 배우들로 가득한 작품.

‘……보고 싶네.’

그런 생각이 저절로 들 정도였다.

박도훈이 빌런 진 나트라와 활을 든 고주원이 대치하는 장면을 떠올리는 사이, 이지석과 김종호는 테이블에 대본을 펼치고 펜으로 체크했다.

“여기. 간섭이 너무 심해.”

“여기도. 어떤 의도인지는 알겠는데 그건 시선 처리만으로도 괜찮아.”

이곳저곳 한 바닥에 꼭 하나 이상 체크되는 붉은 펜에 서준은 끄응 앓았다.

“그렇게 엉망이에요?”

어쩐지 축 늘어진 강아지 귀가 보이는 것 같았다. 서준의 말에 이지석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네가 워낙 몰입을 잘해서 주인공도 다른 캐릭터들도 그마다 차이점은 확실히 보여. 이대로만 연기하면 완벽한 연극이 되겠지.”

서준은 배역마다 자신이 연기한다면 이렇게 하겠다는 움직임을 하나부터 열까지 글로 표현해 놓았다. 연기력으로 인정받은 서준이니 연극은 완벽할 터였다.

“근데 애들이 소화하기는 힘들걸.”

이지석만 해도 이렇게 자세하게 적힌 지문을 따라 하기란 쉽지 않았다. 완벽하게 만들어진 틀에 배우를 맞추는 거니까.

‘첫 장면은 어찌어찌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 뒤는…… 글쎄…….’

첫 분위기를 연극 끝까지 유지해 나가는 것도 힘들 것이다.

“게다가 서준이도 이런 대본으로 연기하는 건 싫지 않아?”

한마디로 서준이 쓴 대본은 처음부터 끝까지 배우의 자유가 없는 대본이었다.

“으음.”

다시 대본을 받아 든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서준이 하고 싶은 연기를 하나부터 열까지 써놓아서 서준은 만족스러웠지만 아마 이런 대본을 안다호가 들고 왔다면 서준은 거절했을 터였다.

완벽한 대본을 원했고 완벽한 대본이었지만, 제 마음에만 드는 대본이었다.

“고쳐야겠네요.”

“그래도 이야기 흐름은 부드러운 것 같아. 대사가 튀는 곳도 없고.”

“소품 활용은 좀 더 생각해 봐야겠지만.”

이지석과 김종호, 박도훈이 서준의 대본에 필요하거나 수정해야 될 부분을 적절히 알려주었다. 이런 방법도 있다는 식으로 서준이 선택할 수 있게 조언해 주었다. 서준은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며 받아적었다.

“아니지! 그런 식으로 하면 뒤쪽까지 안 보이잖아!”

“그래도 이건 필요한 거라니까?! 게다가 여울 예중 홀은 작아서 뒤쪽까지 커버할 수 있다고!”

뭐. 이렇게 될 줄 알았다.

“그럼 우리는 밥 먹을까?”

하루도 빠지지 않고 투닥거리는 이지석과 김종호의 모습에 박도훈은 웃으며 저녁을 준비하기 위해 부엌으로 향했다.

“벌써요?”

서준이 놀라 시계를 보니 어느새 저녁 먹을 시간이 다 됐다. 대본에 푹 빠져 있는 동안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도 몰랐다.

“도훈이 형. 저도 도와드릴게요.”

“고마워. 종호 삼촌이 한우 사 왔어. 그거 구워 먹자.”

“전 상추랑 깻잎 씻을게요.”

“그래.”

서준은 익숙한 듯 흐르는 물에 상추와 깻잎을 씻었다. 이지석의 냉장고에서 반찬 통을 꺼내 그릇에 옮기던 박도훈이 물었다.

“서준인 요리 해봤어?”

“네. 집에서도 자주 해요. 한식 자격증도 있어요.”

“응?”

별생각 없이 물은 질문에 생각지도 않은 답이 돌아왔다. 놀란 박도훈이 서준을 바라보자 서준이 웃으며 말했다.

“다호 형이 한식 자격증 공부하길래 재밌을 것 같아서 같이 공부했어요.”

해외 스케줄 때 서준에게 한식 요리를 해주려고 틈틈이 공부하던 안다호.

그 모습을 서준에게 들켜 버렸다. 서준도 흥미가 생겼는지 어쩌다 보니 안다호와 서준은 함께 이론 시험도 보고 실기 시험도 봤다.

결과는 둘 다 합격.

서준과 자신의 한식 자격증을 보던 안다호의 표정은 미묘했다.

“그래? 그럼 된장찌개 해볼래?”

“맡겨주세요!”

시판용 된장찌개를 뜯으려던 손을 멈춘 박도훈이 서준에게 부탁했다. 서준이 활짝 웃으며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부엌과 거실을 오가며 저녁 식사를 준비하는 두 꼬맹이의 모습에 두 어른의 투닥거림도 멈추었다. 이지석과 김종호도 두 팔을 걷어붙이고 저녁 식사를 준비했다.

달궈진 전기 그릴 위에 한우 등심이 올라갔다.

치이익.

집게를 잡은 김종호는 적당한 타이밍에 고기를 뒤집었다. 잘 익은 고기를 서준과 박도훈의 그릇에 놓아주고 다시 고기를 굽는 데 정신을 집중했다. 이지석은 투덜대며 익은 소고기를 손수 집어 먹었다.

“그러고 보니 소설 원작으로 만드는 연극이 하나 더 있었죠?”

“아, 나 대본 받았어. 배심원이었던가?”

“저도 받았는데. 하기로 했어요?”

박도훈의 물음에 이지석이 고개를 저었다.

“나는 좀 있다가 차기작 들어가서. 너는 하려고?”

“아뇨. 저도 거절했어요. 서준이는 대본 못 받았어?”

상추쌈을 싸고 있던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원작 읽어봤는데 적당한 배역이 없어서 안 온 것 같아요. 판사랑 검사, 변호사도 나이가 있고 배심원들도 미성년자는 안 되잖아요.”

“그건 그러네. 삼촌은요?”

“계약했다.”

상추쌈을 입안 가득 넣은 서준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지석과 박도훈도 고기를 나르던 손을 멈추었다. 김종호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나 배심원 출연한다고.”

“오. 종호 형 연극 되게 오랜만이지 않아?”

“무슨 역이에요?”

서준이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종호 삼촌의 연극이라니, 10년 전 작품이 마지막이었는데 그땐 어려서 보지 못했다.

“박원경 아버지.”

김종호의 말에 이지석과 박도훈, 서준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잘 어울린다.”

“그러게요.”

“찰떡이에요.”

“이 자식들이!”

김종호의 말에 세 배우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럼 보러 가야겠네요. 같이 갈까요?”

“전 좋아요.”

박도훈의 말에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된장찌개를 한 입 먹고 대답하려던 이지석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거 왜 이렇게 맛있어?”

이지석의 반응에 궁금해진 김종호도 된장찌개를 한 입 먹더니 깜짝 놀랐다.

“그러게. 진짜 맛있네!”

“그거 서준이가 한 거예요.”

“응?”

“서준이 한식 자격증도 있대요.”

박도훈의 말에 또 한 번 놀란 이지석과 김종호가 바라보자 서준은 아하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 * *

여울 예중 2학기 개학 며칠 전.

“끝났다!”

서준은 감격하며 깔끔하게 프린트된 대본을 바라보았다.

[거울]

[원작 : 최다예]

[각색 : 이서준]

드디어 거울의 연극 대본을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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