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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245화 (245/1,055)

0살부터 슈퍼스타 245화

“우와. 저 사람이 이서준 매니저예요? 매니저도 되게 멋지다.”

[거울]의 담당자, 김형원과 부드러운 미소를 띠며 들어오는 남자가 있었다.

검은 정장을 입고 걸어오는 모습이 TV에 나오는 일에 치여 피곤해 보이는 매니저들과는 달랐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프로의 향기가 물씬 풍겼다.

회의실로 가는 복도가 잘 보이는 곳에 옹기종기 모여 있던 영웅출판사 직원들이 그 모습에 감탄했다.

“할리우드 배우는 매니저도 멋진가 봐요. 운동도 한 것 같지 않아요?”

“그러게. 저 사람도 할리우드 가 봤겠지?”

“당연히 가 봤겠죠. 쉐도우맨3 작년에 찍었잖아요.”

할리우드 스타, 이서준의 매니저가 회의실 안으로 들어갔다. 굳게 닫힌 회의실 문을 바라보고 있던 직원들이 하나둘 웅크렸던 몸을 폈다.

“알아보니까 저 사람 되게 옛날부터 이서준 매니저였다더라.”

“그건 또 어떻게 아셨어요?”

“우리 딸이 이서준 팬이거든. 매니저는 어떤 사람이냐고 물으니까 술술 대답해 주던데. 엄청 좋은 사람이라더라고.”

“혹시…… 말하셨어요?”

“아니! 소문났다가 안 한다고 하면 어떻게 하냐.”

“그죠? 저도 삼 일 전부터 술 끊었어요.”

“술을 끊을 필요까지 있어?”

“저 술버릇이 했던 말을 하고, 또 하고, 또 하는 거거든요. 언제 어디서 저도 모르게 말할지 몰라서요.”

영업팀 직원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술 먹고 일어나 보니 인터넷에 [배우 이서준, 연극 ‘거울’에 출연!]라는 기사가 떠 있는 거예요. 실검이며 기사며 완전히 도배되고 회사도 난리가 나고.”

“와아…….”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상황에 편집자들과 직원들은 저도 모르게 탄성을 내뱉었다.

“게다가 곧바로 [배우 이서준, 졸업 공연 없던 일로!]라는 기사가 뜨잖아요. 그렇게 되면 회사 앞에서 석고대죄해도 모자랄 것 같아서요.”

“그래. 잘했어. 계속 먹지 마.”

‘정체가 밝혀지면 이서준이 작품을 관둔다’라는 말은 어느새 ‘그런 적은 없지만 그렇게 될 것 같은’ 도시 전설이 되어버렸다.

아마 그 시작은 8년 전 서준, 아니, ‘나 진’이 어린이 연극 봄에 출연할 당시 아역 배우들의 부모와 관계자의 입을 막기 위해 작전을 벌였던 2팀이었을 것이다.

이 사실을 2팀과 안다호가 알았다면 ‘효과 참 오래가는구나.’ 하고 감탄했을 터였다.

“제발 잘 이야기했으면 좋겠는데…….”

“윈윈(win-win)입니다! 사장님! 매니저님!”

영웅출판사 직원들은 두 손을 모으고 눈을 반짝이며 회의실만 바라보았다.

그렇게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 흘러갔다.

얼마 후, 회의실의 문이 열렸다.

들어갈 때처럼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를 띠며 나온 이서준의 매니저는 옹기종기 모여 있는 직원들과 눈이 마주치자 꾸벅 인사를 하고 출판사를 나섰다. 함께 회의실에서 나온 사장과 편집장이 매니저를 배웅했다.

“……잘된 건가?”

“글쎄요.”

매니저가 회사를 나갈 때까지 숨죽이고 있던 직원들이 한걸음에 사장과 편집장에게로 달려갔다.

“사장님! 편집장님!”

“어떻게 됐어요?!”

“사진엽서, 포스터, 책갈피까지 생각해 뒀는데!”

“적당한 제작사도 찾아놨습니다!”

먹이를 기다리는 아기 새처럼 눈을 반짝이고 있는 직원들을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던 사장이 입을 열었다.

“책표지, 띠지 안 된대.”

“……네?!”

“그 이외의 관련 상품도 전부 안 되고.”

“……네에?!”

“왜 그런대요? 홍보비 충분히 주신다고 안 하셨어요?”

“했지. 근데 돈은 상관없대.”

사장이 아쉬움을 가득 담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배우 본인은 정말 책이 재미있어서 골랐는데 홍보비를 받으면 이런저런 오해가 생길 수도 있다더라. 게다가 연극도 혼자 하는 게 아니라 또래 친구들과 하는 거잖아. 애들이야 안 그러겠지만, 가족까지 그렇게 생각할지는 모르는 일이고. 언제고 생길 불만을 미리 방지하겠다는 거지.”

이해가 가는 이유라 직원들도 아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럼 아예 홍보를 못 하는 거예요?”

“아니. 그건 아니야. 책 띠지에 이름은 적을 수 있어. 북콘서트 이야기도 기사로 내면 반응이 좋을 거고.”

편집장의 말에 직원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서준 효과를 아예 못 보는 줄 알았다.

“해외는요?”

“그것도. 책 띠지뿐이지만 써도 된대.”

책을 팔아야 하는 영업팀 직원들이 생각에 잠겼다. 여러 가지 띠지 디자인과 가장 효과적일 문구를 떠올렸다.

“근데 언제부터 이서준 이름으로 홍보할 수 있어요? 연극도 아직 안 만들어졌는데…….”

“그러게?”

[이서준이 연극으로 만든 소설]이라는 띠지를 붙이고 싶어도 보여줄 증거물인 연극이 아직 만들어지지도 않은 상태였다.

“그래서 생각해 둔 게 있는데…….”

편집장의 말에 모두의 눈이 모였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통찰력이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사장까지 귀를 쫑긋 세웠다. 조곤조곤한 편집장의 목소리에 영웅출판사는 오랜만에 불타올랐다.

* * *

평범한 매니저처럼 일에 파묻혀 있던 2팀 직원이 사무실 안으로 들어오는 안다호를 발견했다. 평소의 편안한 옷차림과는 달리 말쑥한 차림새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라? 안 팀장님 오늘 어디 가세요?”

“오. 소개팅이라도?”

자신의 자리에서 USB 하나와 2팀 직원들이 정리해 둔 섭외 프로그램 목록을 챙긴 안다호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뇨. 오전에 영웅출판사에 다녀왔습니다.”

“그건 알고 있었는데…… 그런 차림으로 가셨는진 몰랐어요. 잔뜩 힘주고 가셨네요.”

“기선제압이랄까. 아침부터 때 빼고 광낸다고 고생 좀 했죠.”

안다호가 멋쩍게 웃었다.

“하긴. 출판사 쪽에선 아쉬워했겠네요. 이것저것 사은품 만들어서 팔면 대박일 테니까요.”

“아무래도 가볍게 입고 가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아서 말입니다.”

옷차림 때문인지 걱정했던 것보다는 말이 잘 통해서 다행이었다.

“바로 서준이한테 가세요?”

“네. 연극 리허설 녹화본 하나를 찾았는데 이게 지금 서준이에겐 더 필요할 것 같아서요. 그럼 저 먼저 가 보겠습니다.”

“네.”

안다호가 사무실을 나가자 2팀 직원들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안 팀장님도 대단하시지. 머릿속에 온통 서준이 생각뿐일걸요.”

“그러게요. 경호원 없을 때도 있을 거라면서 호신술까지 배우는 매니저가 어디 있어요. 그것도 지금도 하고 계시고.”

“응급처치 자격증도 있으시던데.”

“그건 꽤 옛날에 따셨습니다. 아마 2팀 만들어지고 바로 따셨을걸요.”

그렇다면 서준이 8살, 안다호와 서준이 처음 만났을 때였다. 거의 8년 전의 이야기에 놀라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서준이 중학교 들어가서는 영양학도 공부하시더라고요. 성장기인 지금 잘 자라야 한다고. 촬영 때도 잘 먹여야 한다고 하시던데요.”

“저래서 계속 서준이랑 일할 수 있는 거겠죠.”

“아, 그러고 보니,”

2팀에서 안다호와 함께 가장 오래 일한 직원 하나가 무언가를 떠올렸다.

“서준이 계약이 올해까지였던 것 같던데…….”

그 말에 2팀 직원들 모두 입을 쩌억 벌렸다.

* * *

콱!

이민준이 큼지막한 수박에 식칼을 내리꽂았다. 수박을 돌려가며 칼질을 하니 동그란 수박이 반으로 잘렸다.

“서준이는 휴가 갔다 와서도 계속 방에만 있네.”

“그래도 연기 연습은 안 빼먹잖아. 방학이라 시간도 많은데 괜찮지 않아?”

“그 방학도 벌써 반이나 지났지만 말이야.”

“시간 참 빠르네.”

반으로 또 반으로.

서은혜는 그 옆에서 빨간 속만 네모나게 잘라 밀폐용기에 차곡차곡 넣었다. 완벽하게 착착 들어맞는 모습이 한두 번 해본 것 같지 않았다.

“서준이 졸업 공연하는 거 우리도 볼 수 있으려나?”

“공연하는 학생들은 가족까지는 볼 수 있다고 적혀 있더라.”

“그래? 잘됐네.”

그사이 수박 한 통이 깨끗하게 해체됐다.

“자, 다했다. 서준이도 한 접시 가져다줘.”

이민준은 세 사람이 먹을 수박을 조금 빼놓고 나머지는 냉장고 안에 넣어두었다. 이민준이 놓아둔 수박 두 접시 중 하나를 손에 든 서은혜가 서준의 방문을 두드렸다.

“엄마 들어가도 돼?”

“응.”

빼꼼 문을 연 서은혜는 방안 풍경에 웃고 말았다.

“배우 방이 아니라 꼭 작가님 방 같네.”

“음. 좀 엉망이긴 하지?”

펜을 내려놓은 서준이 볼을 긁적였다.

“시험공부를 할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서은혜는 서준의 책상 주위를 둘러보았다. 서준의 넓은 책상과 그 옆은 이미 종이 더미로 가득했다.

소설 원작의 대본과 소설책. 소설화된 연극 대본과 책. 마음에 들었던 대본들과 모니터에서 재생되고 있는 연극의 동영상. 이것저것 적혀 있는 종이들과 알록달록한 펜.

엉망진창인 것 같지만, 서준이 나름대로 정리한 공간이었다.

빨간 수박이 올려진 접시를 본 서준은 얼른 책상 한쪽에 널려 있던 종이들을 하나로 모았다. 서은혜가 빈자리에 접시를 올려두며 말했다.

“얼마나 했어?”

서준은 포크로 네모난 수박 하나를 푹 찔렀다.

“대충 전체적인 그림은 잡았어. 근데 내 머릿속에 있는 걸 글로 표현하는 게 어려워.”

“그래?”

“어째서 최대만 감독님이 통조림 당했는지 알 것 같아. 계속 여기서만 하니까 머리가 멍해. 그래서 내일은 코코아엔터 연습실에서 하려고.”

서준의 말에 서은혜가 웃었다. 이스케이프 때 최대만 감독이 5성급 호텔에서 통조림 당했다는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재미있는 이야기였다.

“작가님들이랑 감독님들은 뭐라셔?”

서준의 각색은 생각보다 재미있는 화제였다. 지인들에게 이렇게 됐으니 나중에 물어볼지도 모른다고 전하니 다들 신기해하는 눈치였다. 완성되면 꼭 보여달라는 요청이 한두 명이 아니었다.

이곳저곳 어디서든 어떤 사람들에게나 보여주고 싶었던 연기와는 달리 자신이 각색한 대본을 보여주는 것은 조금 쑥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서준은 대본을 좀 더 완벽하게 만들고 싶었다.

“나중에 지석이 형한테 보여주려고.”

“그것도 괜찮겠네. 지석 씨는 연극 했으니까. 그럼 열심히 해.”

“응! 수박 잘 먹을게.”

서은혜가 밖으로 나가고 수박 조각 하나를 입에 넣은 서준은 다시 책상 위로 시선을 돌렸다.

활짝 펴진 [거울].

서준이 거울의 세 이야기 중 두 번째 이야기를 선택해서 그런지 가운데 부분이 유난히 닳아 있었다. 물론 첫 번째, 세 번째 에피소드와 전체 이야기도 무시하지 않았다.

서준이 연극에 꼭 넣고 싶은 장면과 대사, 지문이 알록달록한 색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중요도가 낮은 장면부터 강조하고 싶은 장면까지. 확실히 구분되어 있어 알아보기 쉬웠다.

서준은 먼저 책에 있는 대사들을 뽑아 순서대로 나열했다. 문장으로 표현된 등장인물들의 마음을 지문 속에 넣는다. 군데군데 어색하게 이어지거나 끊기는 순간에 알맞은 대사와 움직임, 지문을 넣어준다.

대충 틀이 잡히면 이것저것 무대 효과를 집어넣는다.

졸업 공연 신청서를 내면서 선생님께 받았던 여울홀의 무대 효과 종류를 살펴보고 너튜브에 업로드된 작년 여울 예중 졸업 공연을 보고 어떤 느낌인지 파악했다.

“확실히 봄이랑은 다르네.”

은하수센터에서 공연했던 어린이 연극 봄.

그땐 연기밖에 관심 없었지만 가끔 무대를 만드는 어른들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어설프던 청룡님과 소품들과 무대 효과가 돈을 쏟아부어 화려하게 변했던 것을 서준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기계를 바꿀 수는 없겠지.”

졸업 공연은 하나의 작품으로 같은 무대에서 수십 번 공연하는 연극과는 달랐다. 서준의 연극뿐만이 아니라 다른 아이들의 연극도 올라가기 때문에 무대 장치를 함부로 바꿀 수도 없었다.

“그래도 우리 학교 무대 장치는 좋으니까.”

같은 ATR재단인 은하수센터에서 쓰던 게 미리내 예고와 여울 예중으로 내려오는 거니 웬만한 소극장의 시설보다 좋았다.

잠시 연극이 재생되고 있는 모니터와 여울홀 무대 장치 목록을 살펴보던 서준이 펜을 들었다.

“그럼 여기선 이걸 써야겠다.”

서준이 욕심이 듬뿍 담긴 대본은 이런저런 현실적 이유로 천천히 수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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