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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244화 (244/1,055)

0살부터 슈퍼스타 244화

영웅출판사는 다양한 장르의 책을 출판하고 재능 있는 신인 작가들을 모아 소수의 독자를 위해 책을 내는 작은 출판사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출판사라 마이너 장르의 책들을 출판한다는 자부심도 품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과거의 이야기였다. 점점 책을 읽는 사람들이 줄어들고 마이너 장르의 책들은 더욱더 설 자리를 잃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있는 힘껏 준비한 신인 작가의 책이 그다지 성과를 보지 못하자, 신인 작가 발굴은 멈추고 기성 작가들에게 더 집중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견이 생기고 있었다.

점심시간.

출판사 근처 식당에서 점심을 먹던 직원들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모두 얼굴에 그늘이 져 있었다.

“북콘서트 이야기 들으셨어요? 열 명밖에 안 모였대요. 게다가 3명은 기자였고요.”

“그중 2명은 중간에 나갔대. 기사도 되게 작게 났더라.”

“홍보비로 준 돈이 얼만데…….”

자신들의 직장이라 더 한숨이 나왔다. 우울한 이야기에 밥맛까지 떨어지는 것 같자, 한 직원이 다른 화제를 입에 올렸다.

“그러고 보니 좀 있으면 배심원 베스트셀러 될 것 같던데 말이죠.”

“베스트셀러는 무슨. 아직 그 정도는 아니야. 베스트셀러가 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데. 거긴 완전 콘크리트야.”

베스트셀러는 날이 가면 갈수록 잘 팔리고 그 아래의 책들은 어지간해선 베스트셀러가 되기 어려운 게 이 바닥이었다.

“그래도 배심원 정도면 정말 잘 나오는 거지.”

“게다가 이번에 연극으로 만든다면서요?”

“이제 배우 모집한대. 배우만 모으면 술술 풀리겠지. 게다가 청소년 필독 도서잖아. 연극으로 만들었으니 학교에서도 많이 홍보할걸?”

“책도 엄청 팔리겠죠? 홍보도 따로 필요 없겠어요.”

“연극으로 유명해지면 영화화도 하고 그런 거지.”

영화화.

그 정도로 유명한 작품이 없는 영웅출판사는 꿈도 못 꿀 이야기였다. 애써 한숨을 삼킨 편집자들이 유명한 배우 이름을 하나둘 꺼냈다.

“엄청 유명한 배우가 나오는 거 아니에요? 이지석 같은?”

“이서준도 있지.”

“배심원이 이서준이 나올 만한 배역이 있어요?”

“음. 있던가?”

커피를 한 잔씩 들고 출판사로 돌아가던 편집자들의 눈에 두 사람의 모습이 들어왔다. 기대를 모았던 신인 작가 최다예와 담당자 김형원이었다.

“최 작가님 또 오셨네?”

“벌써 나흘째죠? 왜 매일 오시는 거지?”

한숨을 푹푹 내쉬며 묻는 최다예 작가와 쩔쩔매며 대답하는 김형원의 모습을 보니 남 일 같지 않았다. 멀어서 그런지 희미한 목소리만 들려왔다.

“꿈 아니라니까요. 저도 봤고 최 작가님도 보셨잖아요.”

“근데 사진도 없고…… 연락도 없으니까…….”

“걱정 마세요. 그쪽이 하루 이틀로 결정할 수 있는 곳이 아니잖아요. 걸려 있는 계약도 많을 테고 다른 일정이 있을 수도 있고요. 연락 오면 꼭 전해드릴게요!”

“……네. 알겠습니다.”

어깨를 축 늘어뜨린 최다예 작가가 몸을 돌려 출판사 앞을 떠났다. 편집자 하나가 한숨을 내쉬고 있는 김형원에게 물었다.

“뭐야? 무슨 일이야?”

“어…… 아무 것도 아니에요. 홍보 더 할 수 없냐고 물으셔서요.”

이서준의 연극 제안이 확정된 게 아니라 말할 수 없었던 김형원은 다른 핑계를 댔다. 그 말에 이해한 직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작가님 잘 보살펴.”

“네. 알겠습니다.”

김형원이 얼른 대답했다.

모두 안으로 들어가고 울리지 않는 휴대폰을 꺼낸 김형원은 6일 전, 꿈 같았던 북콘서트를 떠올렸다.

“……진짜 꿈이었나?”

최다예가 며칠째 꿈인가 현실인가, 고민하는 것처럼 김형원도 이제는 좀 헷갈리기 시작했다. 최다예 작가도 자신도 [거울]의 성공을 너무 바라서 그런 꿈까지 꿨나 싶었다.

“아, 회의 가야지.”

무거운 한숨을 내쉰 김형원이 안으로 들어갔다.

* * *

영웅출판사 회의실.

좁은 회의실에 영웅출판사의 모든 직원이 모였다.

“이젠 장르를 바꾸고 기성 작가분들을 잡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편집장의 말에 사장은 침음성을 내뱉었다. 직원들의 반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고 나머지 반은 애매한 표정이었다. 내키지는 않지만, 이해는 간다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우리 출판사가 설립된 이유가…….”

“출판사가 살아야 신인 작가를 발굴하든 마이너 장르의 책을 내든 하죠. 이번에 출간한 책을 보면 아시잖습니까.”

[거울]의 이야기에 사장은 피곤한 듯 관자놀이를 매만졌다. 좋은 책인데, 왜 아무도 관심을 안 가질까. 사장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이대로 가면 망합니다. 저도 우리 출판사 책 좋아합니다. 다양한 장르의 책들이, 다양한 작가님들의 책들이 더 많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일단 출판사가 살아야,”

“저기…….”

한창 발언하던 편집장과 사장, 직원들의 고개가 옆으로 향했다. [거울]의 담당자, 김형원이 초조한 얼굴로 손을 들고 있었다.

“잠시 화, 화장실 좀 다녀오겠습니다.”

“……갔다 와.”

어이가 없어서 화도 못 내겠다.

사장의 말에 벌떡 일어난 김형원은 회의실 밖으로 향했다. 다급한 김형원의 손에는 휴대폰이 들려 있었다.

가볍게 한숨을 내쉰 편집장이 다시 말을 이었다. 이런저런 비용을 줄이고 고정 독자층이 있는 기성 작가들을 소개했다.

“물론 기존의 출판사가 있어서 쉽지는 않지만…….”

길고 긴 이야기였지만 회의실에 있는 누구도 집중력을 잃지 않았다. 책이 좋아 모인 사람들이었지만, 돈은 중요한 일이었다.

“확실히 기성 작가가 안정성이 있긴 하,”

“사장님!”

벌컥 문을 열고 들어오는 김형원 때문에 또 한 번 회의가 멈추었다.

편집장과 사장이 부리부리한 눈으로 김형원을 바라보았다. 성격 좋은 사장과 편집장이지만 지켜야 하는 선은 지키는 두 사람이었다. 큰소리가 날 것 같아 직원들은 목을 움츠렸다.

막 편집장이 입을 열려고 할 때, 김형원이 소리쳤다.

“이서준이요!”

“뭐?”

“배우 이서준이요!”

지금, 여기서 들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이름에 사장이 허리를 바로 세우고 김형원을 바라보았다. 눈알만 데굴데굴 굴리고 있던 사람들도 모두 고개를 돌려 김형원을 바라보았다.

붉게 상기된 얼굴의 김형원이 흥분을 참지 못하고 큰소리로 외쳤다.

“이서준이 학교 졸업 공연으로 [거울]을 올리고 싶답니다!”

모두 멍하니 김형원의 얼굴만 바라보았다. 귓속으로 파고든 문장을 도무지 해석할 수가 없었다. 첫 단어부터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서준이 왜 여기서 나오지?’

잠깐의 침묵 후.

김형원의 말을 겨우 이해한 사장은 저도 모르게 들고 있던 펜을 놓쳐버렸다. 테이블 위로 떨어진 펜이 데굴데굴 굴러가다 바닥으로 떨어졌다.

타닥.

펜이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회의실이 폭발했다.

* * *

몇 분 전.

회의 중간에 안다호에게서 문자를 받은 김형원은 화장실을 핑계로 밖으로 나와 안다호에게 연락했고 대답을 들었다.

“와아아!!”

기쁨에 환호성을 지르던 김형원이 얼른 회의실에 들어가기 위해 걸음을 옮기다 조금 전 출판사 앞에서 만났던 사람을 떠올렸다. 어깨를 축 늘어뜨린 뒷모습이 안쓰러웠다.

“아! 작가님!”

자신만큼이나 이 기쁜 소식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최다예 작가가 떠올랐다. 김형원은 얼른 최다예 작가에게 연락했다.

-네!

전화를 걸자마자 바로 대답이 들려왔다. 6일 내내 휴대폰을 손에서 놓지 않고 있었던 김형원처럼 휴대폰을 계속 보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최다예 작가의 기대와 걱정이 뒤섞인 떨리는 목소리에 김형원이 으하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작가님! 한대요! 연극!”

-!!!!

비명 같은 환호성에 김형원은 귀에 대고 있던 휴대폰을 멀찍이 떨어뜨렸다. 조용조용한 최다예 작가가 이렇게 큰 소리를 내는 건 오늘 처음 들었다. 커다란 환호성에 귀가 잠시 멍했지만, 김형원은 웃음만 나왔다.

‘하긴, 그럴 만도 하지! 그 이서준인걸!’

흥행 보장. 인지도 세계급.

입었던 옷, 가지고 있던 물건, 연주한 악기, 먹었던 음식 등.

이서준이라는 이름만 붙으면 대박이 나는 게 한둘이 아니었다.

“이제 거기에 작가님 책도 들어가는 겁니다!”

-이거 꿈은 아니겠죠?!

“당연히 아니죠! 아, 지금 제가 회의에 들어가야 해서…… 바로 확답받고 알려드리겠습니다!”

-네!

최다예 작가도 김형원도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그 이서준이 연극으로 만들어서 홍보해 주겠다는데 반대하는 출판사가 있을까.

선명하게 보이는 꽃길에 울렁이는 마음을 애써 진정시킨 김형원은 위풍당당한 걸음으로 회의실 문을 벌컥 열었다. 일제히 돌아보는 얼굴들에 짜릿함까지 느껴졌다.

잠시 이 시선을 즐기고 싶었지만, 입이 근질거려 참을 수가 없었다.

“이서준이 학교 졸업 공연으로 [거울]을 올리고 싶답니다!”

김형원의 커다란 목소리에 회의실은 난리가 났다.

침착하게 자리에 앉아있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주위에 있던 직원들은 물론이고 제일 안쪽에 있던 사장까지 한걸음에 김형원이 있던 곳까지 뛰쳐나왔다.

“그게 무슨 소리야?!”

“진짜, 진짜 이서준이요?”

“쉐도우맨 찍은 그 이서준!?”

“네! 그 이서준이요!”

대답을 들어도 믿기지 않았다.

회의실이 도떼기시장처럼 시끌벅적해졌다.

“아니, 갑자기 이서준이 왜 튀어나와?”

“졸업 공연? 졸업 공연이 뭔데요?”

“거울? 거울이라고? 왜 다른 책 놔두고 다 망한 거울이야?”

“근데 왜 출판사가 아니라 너한테 연락해?”

“잠깐. 다들 조용히 해봐.”

묵직한 사장의 목소리에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하지만 침묵 속에서도 그들이 하고 싶은 말이 들리는 것 같았다. 사장도, 편집장도, 직원들도 흥분한 듯 상기된 얼굴이었다.

사장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처음, 처음부터 말해봐.”

“그게…….”

김형원이 늘어놓는 이야기에 사장과 편집장, 직원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네가 북콘서트 관객으로 참가해 달라고 부탁했던 학생이 이서준이었다고?”

“그때 공짜로 준 책을 재미있게 읽은 것 같다고?”

“작가님 사인받고 연극을 해도 되냐고 물었다고요?”

“아니, 아니, 그게 무슨 우연이야……!”

들으면 들을수록 기가 막힌 이야기였다.

“……야. 솔직히 말해봐. 이거 몰래카메라지?”

너무 어이가 없어 회의실 내부를 살피며 없는 카메라를 찾을 정도였다.

점심시간까지만 해도 [배심원]의 연극에 출연할 것 같은 배우들의 이름을 대며 부러워하던 직원들은 겨우 2시간 만에 바뀐 상황에 말을 잇지 못했다. 부러움을 가득 담아 내뱉었던 이름이 이렇게 돌아올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진짜 이서준이 우리 책으로 연극을 만든다고?”

“네에.”

사장과 편집장, 직원들이 돌아가면서 묻는 말에 기쁘게 대답하는 것도 한두 번이지, 이제 조금 피곤해진 김형원이 얼른 본론을 꺼냈다.

“그래서 코코아엔터에서 빠른 시일 내에 답변 부탁한다고…….”

“답변……! 그래. 답변해야지.”

뜻밖의 행운에 정신을 못 차리던 사장이 후우 숨을 내쉬었다. 바로 눈앞에 찾아온 어마어마한 행운을 그냥 흘려보낼 사장이 아니었다.

속은 모르겠지만 겉모습만은 침착해진 사장이 입을 열었다.

“바로 연락해. 써도 괜찮다고.”

“넵. 알겠습니다!”

김형원이 밝은 얼굴로 회의실 밖으로 뛰어나갔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사장은 아직까지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는 직원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오늘 회의 주제는 이걸로 합시다.”

영웅출판사의 운명이 달린 회의를 하던 중이었지만, 결정을 내리려고 했던 사장도, 회의를 이끌던 편집장도, 진지한 표정으로 귀를 기울이며 듣던 직원들도 신경 쓰지 않았다.

모두 재빨리 자신의 자리에 앉아 사장을 바라보며 눈을 빛냈다.

“이 기회를 어떻게 활용할 건지.”

사장의 말에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의견들이 튀어나왔다.

“책표지에 이서준 사진을 넣죠! 연극 중 한 장면이라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띠지엔 평소 모습을 넣고요!”

“책갈피랑 포스터도 만들죠!”

“일단,”

신난 직원들 목소리 사이로 편집장이 의미심장한 목소리가 들렸다. 단 한마디로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을 만큼 무언가 벅차오르는 목소리였다.

“[거울]의 영어판을 준비하는 건 어떻습니까?”

……!

편집장의 말에 다시 한번 회의실이 폭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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